콩고민주공화국(이하 콩고) 서남부 키토나 지역의 왕손, 킨샤사 국립대의 고학생, 반독재 세력 ‘민주사회진보연합’(UDPS) 회원, 콩고비밀정보국(ANR) 대외안전국(DSE) 요원, 인도적 사유에 의한 체류(G-1) 비자를 가진 경기 가평의 사료공장 외국인 노동자, 성공회대 대학원생, 그리고 인천의 한 병원의 사무원.
욤비 토나(45)의 ‘인생 타임라인’은 화려하다 못해 어지럽다. 우리나라 국가정보원에 해당하는 콩고비밀정보국에서 일했던 그는 2002년 로랑 카빌라가 대통령으로 있는 콩고 정부의 비리를 폭로하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고문을 당하고 여러 번 체포 위기를 겪던 그는 결국 그해 여장을 한 채 위조 여권을 들고 홀로 고국을 탈출했다. 콩고~르완다~에티오피아~타이로 나흘 동안 이어진 그의 여정은 중국 베이징에서 멈췄다. 그러나 공항에 내리던 순간은 고달픈 난민의 삶이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는 콩고인 욤비의 난민기를 담담히 엮은 이야기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그가 콩고를 떠나 한국 땅에서 난민 지위를 얻기까지 6년 동안 겪은 체험기다. 키콩고어와 프랑스어를 쓰는 그의 이야기는 난민 소송을 도운 김종철 변호사의 부인 박진숙 에코팜므 대표가 책으로 엮었다. 정리하는 데만 3년 가까이 걸린 욤비의 삶은 그 어떤 영화보다도 서글프고 극적이다.
콩고는 그저 아프리카 어디쯤에 있는 나라라고 떠올릴 만큼 낯설다. 그러나 아프리카 대륙에는 욤비의 조국인 ‘콩고민주공화국’과 ‘콩고공화국’이라는 비슷한 이름의 두 나라가 있다. 한때 ‘자이르공화국’이던 그의 나라는 벨기에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주변에 9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해방 뒤 여러 차례 쿠데타와 내전을 겪었다. 욤비에게 낯설기는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난민 지위를 인정받으려고 중국 톈진을 떠나 인천항에 도착한 배에서 내렸을 때 그는 한국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그는 외국인이 많은 서울 이태원으로 가려고 택시에 오른 뒤 “평양이 여기서 머냐”고 택시 기사에게 물을 정도였다.
그러나 한국에 대한 그의 첫인상은 곧 ‘싸늘함’으로 바뀌었다. 한국에서의 난민 신청은 그 자체로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과의 반복되는 인터뷰, 그리고 기본적인 의사소통의 어려움, 난민 인정 불허. 난민협약 가입국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국의 난민 관련 법 체계는 허술했다. 난민 보호 시민단체 활동가가 콩고까지 가서 그의 과거 행적을 증명하는 자료를 구해와 이의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그때의 절망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지만 천사는 너무나 먼 곳에 있는 듯했다.”
‘난민 신청자’ 신분이던 그가 한국 사회와 부딪히던 기 억 속에는 이방인을 향한 우리의 싸늘한 시선이 묻어 있 다. 생계를 위해 불법 취업자가 된 욤비는 월급을 떼어먹 고 야반도주한 경기 파주시 직물공장 사장을 겪어야 했 고, 공장 기계에 팔이 끼었다며 도움을 요청한 전화를 매몰차게 끊어버린 경기 포천시 직물공장 사장도 만나 야 했다. 그는 “한국에는 두 개의 세계가 있다”고 말했 다. “나 같은 난민에게도 마음을 열고 친구처럼 대하는 사람들이 살고, 다른 한쪽에는 피부색에 따라, 출신 나 라에 따라, 언어에 따라, 때로는 사람 취급을 하지 않을 정도로 야박한 사람들이 산다.” 한때 경기 가평군 사료 공장에서 함께 일했던 나이지리아인 동료도 그와 비슷 한 이야기를 했다. “한국 공장에서 바뀌지 않는 게 있어. 한국 사람은 무조건 왕이야. 그다음이 조선족이고, 그다 음이 필리핀이나 베트남에서 온 사람들이지. 아프리카? 아프리카 사람은 사람도 아니야.”
우리 사회의 민낯을 마주하는 순간
욤비는 2008년 2월 난민 지위를 얻었다. 법무부를 상 대로 행정소송을 벌인 끝에 얻어낸 승리다. 가족도 한국 에 와서 정착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한국에 무사 히 정착한 욤비 가족”으로 끝맺지 않는다. 한국에서 의 료보험을 받고 직업도 얻었지만, 검은 피부인 욤비 가족 이 살아가기에 한국은 콩고만큼이나 여전히 팍팍하다. 콩고의 언어와 기억을 잊어가는 자녀들, 한국 적응에 실 패하고 고립돼 우울증에 시달린 아내, 그리고 정작 해야 할 일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던 욤비의 이야기는 한국의 난민이 부딪히는 너무나 현실적인 문제를 보여준다.
두 팔 벌려 자신을 품어주지 않았지만, 그는 한국을 미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을 배우고 이해하려 애쓰 는 그의 모습은 놀랍다 못해 얼굴을 달아오르게 한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서 살아가는 난민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 사회는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난민의 지원은 한 나라의 경제적인 수준과는 아무런 관 련이 없다. 차라리 인권 의식이 어느 정도냐의 문제와 더 관련 있는 것 같다.” 그의 시선을 통해 우리 사회의 민낯 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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