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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스포츠를 좋아해

등록 2012-11-13 19:43 수정 2020-05-03 04:27

제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버락 오바마(51)는 미국 프로야구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열성팬이다. 그가 태어난 곳은 하와이지만 젊은 시절을 보낸 ‘정치적 고향’이 바로 시카고다. 대통령 당선 연설을 한 곳도 시카고 매코믹플레이스 컨벤션센터였다. 시카고에는 컵스 팬이 더 많지만 오바마는 화이트삭스 팬이다. 그는 보스턴 레드삭스와 콜로라도 로키스가 맞붙은 2007년 월드시리즈를 앞두고 자신이 화이트삭스 팬임을 털어놓으며 “레드삭스 팬인 척하는 인물이 미국의 대통령이 되기보다는 진정한 스포츠 팬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백인의 럭비, 흑인의 축구
그런데 사실 오바마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는 야구가 아니라 농구다. 그는 전문가 뺨치는 농구 지식을 가졌고 농구 실력도 수준급이다. 자신의 생일날 미국프로농구(NBA) 스타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농구를 즐기고, 대통령에 재선되던 11월6일에도 스코티 피펜(47) 등 NBA 레전드들과 농구로 ‘망중한’을 보내기도 했다.
넬슨 만델라(94)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스포츠를 통해 흑백 통합을 이뤄냈다. 남아공에서 흑인들은 축구를 즐겨하고, 백인들은 럭비를 좋아한다. 남아공은 1995년 럭비월드컵을 개최했고, 그해 6월24일 남아공 엘리스파크 경기장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뉴질랜드 대표팀과 맞붙었다. 만델라는 이날 남아공 럭비 대표팀 유니폼인 ‘스프링복스’를 입고 나왔다. 흑인 단체들이 백인 우월주의의 상징이라고 한 그 옷이었다. 남아공 럭비 대표선수들은 감동했다. 그리고 연장 끝에 뉴질랜드 대표팀을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6만여 백인 관중은 일제히 환호했고, “넬슨, 넬슨”을 외쳤다. 백인인 남아공 대표팀 주장 프랑수아 피에나르는 등번호 6번이 찍힌 유니폼을 만델라 대통령에게 건넸고, 두 사람이 포옹하는 순간 남아공의 흑백 장벽은 녹아내렸다.
만델라는 곧이어 축구 월드컵 유치에 나섰다. 2000년 국제축구연맹(FIFA) 총회에서 독일에 불과 1표 차이로 2006년 개최지를 넘겨주며 눈물을 삼켰지만, 4년 뒤에는 아프리카 대륙 최초로 2010년 월드컵 개최권을 따냈다. 당시 86살의 만델라가 FIFA 집행위원들에게 진심으로 호소하고 가슴으로 다가간 덕분이었다.
블라디미르 푸틴(60) 러시아 대통령은 유도 선수 출신이자 무술 애호가다. 22살 때 옛 소련 유도대회에서 우승했고, 러시아 격투기인 삼보 대학챔피언 타이틀도 가지고 있다. 2002년 일본 방문 때는 예고 없이 유도장을 찾아 즉석 대련을 펼쳤고, 203연승에 빛나는 ‘일본 유도의 전설’ 야마시타 야스히로를 식사에 초대하기도 했다. 2006년 중국 방문 때는 ‘무술 도량’으로 유명한 소림사를 들러 화제가 되기도 했다.
32년 동안 쿠바를 지배한 피델 카스트로(86)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젊은 시절 미국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에서 입단 테스트까지 받을 정도로 수준급 야구 실력자였다. 20대 후반까지 대학과 클럽에서 투수로 활약했고, 국가원수가 된 뒤에는 정책적으로 야구를 육성해 쿠바를 아마야구 세계 최강국으로 만들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67) 전 브라질 대통령은 축구광이다. 빼어난 드리블 솜씨를 가진 그는 브라질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축구를 통해 서민 품으로 파고들었다. 특히 2003년 7월에는 브라질 최대 농민운동단체인 ‘토지 없는 농업노동자운동’(MST) 대표와 토지개혁 협상을 하기 전에 축구를 하며 협상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이끌기도 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에서도 스포츠를 좋아한 이들이 있었다. 미국에서 오래 살았던 이승만 전 대통령은 야구를 좋아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육사 생도 시절 축구 골키퍼를 맡는 등 스포츠 마니아였다. 그는 청와대 주인이 된 뒤에도 프로복싱 세계 타이틀매치를 꼬박꼬박 즐겨봤고, 축구대표팀이 중요한 경기를 할 때면 직접 경기장에 나와 지켜봤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육사 시절 유난히 달리기를 잘했다. 100m를 11초대에 끊어 ‘태릉 타잔’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는 테니스도 좋아했다.
18대 대통령은 스포츠와 어떤 인연 맺을까
그러나 스포츠를 통한 잡음도 많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직 시절이던 2003년 4월부터 수년 동안 전 서울시 테니스협회장의 초청을 받아 서울시 산하 시설인 남산 실내테니스장에서 월 2~3회 ‘접대 테니스’를 즐긴 것으로 드러나 곤혹을 치렀다. 700만원가량의 사용료를 내지 않고 공짜 테니스를 쳤다는 것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테니스 국가대표 감독과 선수를 청와대로 불러 테니스를 즐겼는데, 당시 국가대표 감독이던 ㅊ씨가 노 전 대통령 퇴임 직후인 1993년 서울 양재동 시민의 숲에 사설 유료 테니스장을 허가받아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퇴임을 코앞에 두고 태릉선수촌에 올 때마다 불편하다며 경비실에서 선수회관까지 진입로 포장공사를 지시해 논란을 불렀다. 그는 공사 뒤 불시에 태릉선수촌을 찾아오는 바람에 선수와 임원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대통령 선거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은 스포츠와 어떤 인연을 맺을지 궁금하다.

김동훈 기자 한겨레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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