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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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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없어, 무대에서 죽자

고선웅 연출가가 <뜨거운 바다> 남녀 출연진을 뽑는 이틀간의 오디션 현장… 타는 목마름으로 무대를 갈망하는 이들을 만나다
등록 2012-06-06 17:11 수정 2020-05-03 04:26
1차 오디션 마지막 관문. 여성 지원자들이 스크린에 뜬 대사를 분석하고 있다.

1차 오디션 마지막 관문. 여성 지원자들이 스크린에 뜬 대사를 분석하고 있다.

흰 스크린에 대사가 뜬다. 연출가가 소리친다. “자, 앞에 비친 대사를 분석하세요.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예요. 어머니는 매춘부입니다. 나는 어머니의 삐끼입니다. 비린내 나는 가난, 생각하기도 싫은 과거예요. 사인을 주면 연기를 시작합니다. 원, 투, 스리, 포!”

감정 못 추스리고 주저앉아 눈물

무겁고 격정적인 음악이 스튜디오를 가득 채우고, 방금 전까지 소풍 가는 기분, 술에 취한 사람을 연기했던 20명의 지원자는 금세 표정을 바꿔 대사를 친다. “거짓말이 아냐. 그런 부모라고. 내가 좀 컸을 때부터 바닷가 마을에서 거지처럼 불량탄 주워오라고 시켰어. 험한 인부들한테 섞여서 철보다도 무거운 짐을 나르게 했다고. 죽을 만큼 부려 먹었다고. 아버지가 술에 취했을 땐, 내가 어머니 삐끼를 했다고. 친엄마의 삐끼를 한 내 마음이 어떤지 알아?” 누구는 읊조리고, 누구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친다. 누구는 발을 구르고, 누구는 한 문장씩 옮겨갈 때마다 격해지는 감정을 추스리지 못해 주저앉아 눈물을 쏟는다.

이곳은 연극 의 공개 오디션 현장. 남자배우 3명, 여자배우 1명을 뽑는 자리다. 미리 점찍어둔 배우 없이 날것 그대로의 모습만 보고 ‘임자가 나타날 때까지 정정당당하게’ 역할을 뽑겠다는 요지의 공고가 서울 대학로 극장가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연출을 맡은 고선웅은 연극판에서 이름난 연출가다. 를 쓴 재일 한국인 극작가 쓰카 고헤이(김봉웅)는 1970~80년대 일본에서 이른바 ‘쓰카 붐’을 일으킨 당사자다. 좋은 작품과 연출가를 동시에 만날 수 있는 기회 또한 흔치 않다. 그러니 남자 289명, 여자 212명이 ‘내가 임자’라며 지원서를 냈다. 총 501명이다. 5월29일과 30일, 이틀간 이들의 오디션 과정을 따라가봤다. 현장을 지켜보고 무대 뒤 배우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제각기 연기하고 있는 지원자들 사이에서 심사 중인 고선웅 연출가(왼쪽).

제각기 연기하고 있는 지원자들 사이에서 심사 중인 고선웅 연출가(왼쪽).

5월29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 공연예술센터 5층 스튜디오는 배우들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열린 1차 오디션은 10분 간격으로 20명씩 그룹을 지어 봤다. 모든 지시는 자막으로 주어졌고, 배우들은 자막에 맞춰 몸을 움직였다. 심사위원들은 지원자 사이를 돌아다니며 몸짓과 표정과 목소리를 읽었다.

막 오디션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 전승우(27)씨는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오디션을 보기 직전까지 곧 무대에 오를 다른 연극 연습을 하다가 왔다. 대기 시간이 길어져 기다리는 동료들에게 미안해 근처 연습실에 달려갔다. 같이 기다리던 형이 전화를 해줘 다시 달려왔다. 다행히 스크린에 비친 첫 지문은 심호흡을 하고 여유를 가지라는 문장이었다. 턱밑까지 차오른 숨을 겨우 고르고 전쟁 같은 10분을 치렀다. 2009년 배우 생활을 시작한 그는 최근 끝낸 작품 에서 주인공 아들 역할을 했다. 유독 공감한 대사가 있다.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웃음을 주고, 꿈을 꾸게 하고, 희망을 주는 직업이 배우’라고 주인공이 말해요. 저도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러나 배우로서의 삶에 집중하기엔 벌이가 들쭉날쭉하다. 그는 연습 기간이나 작품을 쉴 때, 아르바이트로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전씨는 땀을 흘리며 다시 연습실로 뛰어갔다.

2차 오디션 현장. 지원자들이 대본을 분석하고 있다.

2차 오디션 현장. 지원자들이 대본을 분석하고 있다.

“오디션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아요”

7년차 배우도 아르바이트를 뛴다. 송재연(28)씨는 요즘 연극 에서 ‘이희진’ 역을 맡고 있다. 배우 생활은 2006년부터 시작했다. 그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오디션을 봤다. 붙을 때보다 떨어질 때가 더 많다. 배우이자 생활인으로서 그의 꿈은 작품을 하며 그것 하나만으로 삶을 꾸려나가는 것이다. 돈이 급할 땐 마트 행사나 제품 홍보 같은 단기 아르바이트를 한다. 현실에 발목 잡히며 꿈을 좇는다는 게 쉽지만은 않다.

1차 오디션을 마치고 폭발한 감정을 추스르느라 대학로에서 지하철 다섯 정거장 거리인 정독도서관까지 걸어갔다는 박아무개(34)씨는 상황이 좀 나은 편이다. 영화와 연극을 오가며 연기자로 오래 지내다 보니 여기저기서 미팅도 하자고 하고, 역할 제안도 한다. 오디션 경험이 많지 않다는 그는 오디션을 믿지 않는 편이다. “새로운 작품으로 만나는 건데 특기, 자유 연기 등 준비된 연기를 시키는 기존 오디션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아요.” 지난 2년은 연기를 그만둘 생각까지 하며 대학로에 발길을 끊었다. 1년1개월 동안 옷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처음 석 달은 신나게 일했다. 옷 판매가 천직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잘했다. 그러나 곧 타는 목마름으로 무대를 갈망했다.

5월30일 오전 9시30분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2차 오디션이 시작됐다. 112명이 추려졌다. 이번에는 5명씩 무대에 섰다. 술에 취해 늦은 시각 택시를 잡는 상황, 경마장에서 경마를 보는 장면, 그러다 어머니에게 전화가 오는 장면 등을 몸으로 표현해야 했다. 변호사 등 전문직 역할을 해보라는 지시에 몇몇 지원자는 일상에서 쓰지 않는 용어와 몸짓을 골라내느라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대본이 주어지고 연출자의 지시에 따라 짧은 연기를 했다.

강소영(26)씨는 전날의 격정이 채 가시기도 전, 다시 1번으로 무대에 섰다. 그는 이름 때문에 오디션 대기실에 그리 오래 머물러본 적이 없다. 가장 먼저 이름이 불리는 고단한 1번이다. 지원 순서대로 번호가 정해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지원서만큼은 절대 빨리 제출하지 않는다. 지난해부터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는 그는 지난 겨울 공연을 끝내고 이날 오랜만에 오디션을 보러 나왔다고 했다. 위안부 할머니와 고 장자연씨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 에서 장자연 역할을 맡았다. 우울증을 의심할 정도로 심적으로 굉장히 힘든 역이었다. 일터에서 얻은 괴로움이건만 이를 감싸안는 사회적 울타리는 없다. 혼자서 떨치고 일어나야 할 뿐.

두 번째 오디션을 마치고 나온 김아무개(28)씨는 숨을 헉헉거린다. 인터뷰의 절반은 이런 식이다. “아, 오늘 너무 못해서. 아, 그런데 제가 지금 말도 잘 못하겠고. 아, 이 인터뷰 계속해도 돼요?” 눈동자가 흔들린다. 연출가는 오디션에서 배우들의 감정을 있는 대로 끌어올렸다. 오디션이 열린 5층에서 1층까지 내려왔는데 김씨는 그때까지도 롤러코스터 탄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듯했다. 2010년부터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는 그는 오디션 경험이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자꾸만 오늘 한 연기를 돌아본다. 연기하는 걸 봤다니 눈이 둥그레지며 다시 “진짜요? 아, 진짜 못했는데”라고 말하지만, 그는 자신이 좋은 배우가 되려고 빠르게 전진하고 있음을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대기실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긴장을 다스리는 지원자들.

대기실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긴장을 다스리는 지원자들.

“돈이 센 행사에 끌려다니는 것 같아 그만뒀어요”

“아우, 형까지 여기 오면 어떡해요?” 대기실에 도착한 이기동(42)씨가 오랜만에 만난 후배에게 인사 대신 들은 말이다. 서울과 일본을 오가며 뮤지컬 무대에 주로 선 그에게 연극 오디션은 생애 두 번째다. 뮤지컬 배우는 연극 배우보다 수입이 좋은 편이다. 이씨는 “똑같은 3개월짜리 공연이더라도 뮤지컬과 연극의 출연료가 5배까지 차이 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2005년 데뷔한 이후로 주로 뮤지컬 무대에 서온 전재원(31)씨 또한 연극 오디션을 많이 본 편은 아니다. 생활비가 부족할 때는 행사나 레슨으로 조달한다. 아껴쓰면 적금을 붓는 것도 가능하단다.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나 연극 아르바이트를 한 적도 있다. 출연료가 센 편이다. 그런데 하다 보니 자꾸만 돈을 따라가는 것 같아 그만뒀단다.

우리는 이들 배우를 무대에서보다 백화점 시식 코너에서, 행사장에서, 편의점에서 더 자주 만났을지 모를 일이다. 김정환(39)씨는 오래 극단에 소속돼 있었다. 극단 소속 배우는 월급을 받거나 무대에 오를 때마다 출연료를 받는다. 극단에서 하는 극에만 출연해도 설 무대가 끊기지는 않는 편이다. 그렇다고 형편이 넉넉한 것은 아니다. 아내가 회사에 다니지만 맞벌이로도 부족할 때가 많다. 6살 난 딸은 늘 이것저것 하고 싶다고 얘기한다. 다 들어주지 못하니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래서 2년간 연기를 그만두고 중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 또한 옷을 팔다 대학로로 돌아온 박아무개씨처럼 무대를 잊지 못했다. 그때그때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한다. 본업과 거리가 먼 일도 마다 않는다. 후배 아버지의 농원에 사람이 필요해 지방 출장을 떠난 적도 있다. 이날 그는 3일간 78만원을 받는 무대 설치 아르바이트를 포기하고 오디션을 보러 왔다.

5월30일 저녁, 멘트를 정리하고 있는데 2차 오디션 합격자가 발표됐다. 112명 중에 총 20명이 3차 오디션에 진출한다. 기사에 이름이 실리지 않은 이들을 포함해, 10명의 배우에게 현장에서 말을 걸었다. 이 중에 3차 오디션에 진출한 사람은 단 1명이다. 고선웅 연출가는 “우리는 최고로 연기를 잘하는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역할을 뽑는 것”이라고 누차 얘기하며 지원자들을 다독였다. 그런 한편 “오디션은 어쩔 수 없는 배우의 숙명”이라고 말했다. 무대 경험이 1년이든 10년을 훌쩍 넘겼든 배우들은 숙명을 받아들였다.

2차 오디션에서 지원자들이 대본을 보며 연기를 하고 있다.

2차 오디션에서 지원자들이 대본을 보며 연기를 하고 있다.

최고 연기가 아니라 역할을 뽑는 것

평일 오후 대학로 골목은 한갓졌다. 한낮의 대학로는 과일 파는 트럭, 몸뻬를 입고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아줌마, 구멍가게 앞 의자에 앉아 담배를 태우는 할아버지의 동네였다. 해거름이 지고 주말이 되면, 젊은 공간으로 얼굴을 바꿀 터였다. 배우들의 에너지가 모세혈관처럼 촘촘하게 엮인 골목을 타고 흐르리라. 대학로를 굴리는 힘이다. 장 폴 사르트르가 연극과 희곡에 관해 한 말을 모은 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감정의 전염이지요. 즉, 배우는 우리에게 정신력을 투입하여 우리의 마음에 파고들고 (…) 우리의 열정을 불러일으키며 자신의 극중 인물 속으로 우리를 유인하고 그래서 자신의 가슴으로 우리의 가슴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지배 당한 관객들은 도리어 배우들의 에너지에 힘을 얻고 분주하게 극장가를 누빈다. 그러나 배우들에겐 소진한 에너지를 보상받을 어떤 사회적 장치도 없다. ‘무대에서 죽자, 내일은 없어’란 말로 자신의 열정을 표현한 어느 지원자의 말이 관용어만은 아닐 것 같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사진 한국공연예술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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