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선생님.
선생님의 새 책 (창비 펴냄)을 읽고 이렇게 편지를 올립니다. 하느님의 왼쪽에 앉아 계실 선생님. 선생님이 계신 그곳에도 누런 해가 뜨는지요? 평생 당신을 괴롭혀온 병마를 털고 자유롭게 안식을 누리고 계신지요? 제 생각에 선생님은 지옥 같은 이승에 남겨놓은 가난하고 약한 이들 걱정에 여전히 뒤척이고 계실 것 같습니다.
흘러간 세월에도 더 아프게 읽히다
“왜 책을 냈느냐?” 벌써부터 선생님의 나무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선생님은 생전에 두 권의 산문집( )을 냈지만, 모두 남의 뜻이었습니다. 절판된 책에서 일부를 가져오고 새로운 글을 찾아 묶은 이 책도 선생님의 뜻과는 무관할 터입니다. 1부는 자전적인 산문이고, 2~3부는 1970~2000년대 사회와 삶을 성찰한 글로 엮었습니다. 흘러간 세월에도 이 글들은 무뎌지지 않고 더 아프게 읽힙니다. 세상이 늘 같은 자리에서 넘어지고 있는 까닭입니다.
선생님은 ‘1967년부터 경북 안동군 일직면 조탑리 일직교회 문간방에서 종지기로 살다가 1983년 이 마을 빌뱅이 언덕 밑에 오두막을 짓고 여기서 2007년 작고’할 때까지 사셨습니다. 의 계약금으로 지은 집이었죠. 한낮에도 컴컴하고 누추한 빌뱅이 언덕 그 오두막집이 “한갓져서 조용하고 마음껏 외로울 수 있는, 신음 소리를 내면서 마음대로 아플 수도 있고 하염없이 생각에 젖어들어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 곳이어서 좋다”고 하셨지요. 이 책의 제목만은 그런 선생의 뜻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선생님을 잊고 살아온 탓일까요? 새 책을 읽는 내내 눈이 아팠습니다. 모진 가난과 고통으로 가시밭길이던 선생님의 유년 시절을 마주하는 일은, 철없이 자란 제게 여전히 버겁습니다. 1937년 일본 도쿄 빈민가의 뒷골목 셋방에서 청소부 아버지와 삯바느질하는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선생은 평생 가난과 폐결핵, 그리고 외로움을 이고 살았습니다. 14살 때부터 객지 생활을 했던 선생은 재봉기상회 점원으로 일하던 부산에서 전쟁고아 기훈이와 명자와 짧은 우정을 나누지만, 기훈이는 자살을 하고, 명자는 윤락가에서 웃음을 파는 아가씨가 되었습니다. 폐결핵에 걸려 집으로 돌아왔으나 병세는 더욱 악화돼 신장, 방광으로 결핵이 번졌습니다. 돌봐주던 어머니마저 돌아가셨습니다. 이대로는 집이 망할 것 같다며 집안을 생각해서 나가 살다 오라는 아버지의 당부에 겨우 집을 나서 아픈 몸으로 기도원에 갔습니다. 모두가 피하는 나병 환자와 같이 지내다 그에게 남은 돈을 쥐어준 뒤 헤어져 결국 거지 생활을 하게 됩니다. 선생은 이때를 시로 남겼습니다. “새빨간 딸기밭이/ 보였습니다/ 고꾸라지듯 달려가 보니/ 딸기밭은 벌써/ 거둠이 끝난 다음이었습니다/ 알맹이보다 더 새빨간/ 딸기 꼭지들이 나를 비웃고 있었습니다 (…)/ 건넛산/ 바위 벼랑 위로/ 흘러가는 구름이/ 자꾸 눈앞을 어지럽힙니다/ 어머니/ 배가 고픕니다”(‘산딸기’)
내가 지닌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자신의 동화책 인세를 아이들에게 돌려주라던 선생은 일체의 명예도 거절했습니다. 문학상을 비롯해 자신에게 주는 어떤 상도 마다했습니다. 아동문학가 윤석중 선생이 빌뱅이 언덕까지 찾아와 ‘새싹문학상’을 전해주자, 다음날 상패와 상금을 소포로 부치셨지요. 어릴 적 신은 짝짝이 장화 때문에 동네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은 일로 장화만 보면 사고 싶었다던 가엾은 당신, 선생의 이름값으로 춥고 배고프지 않아도 될 때도 스스로 자발적 가난을 택한 바보 같은 당신, TV 프로그램 책 선정과 훈장을 받은 일로 평생지기 전우익·이오덕 선생에게 실망했다 한 꼬장꼬장한 당신이 오늘도 우리에게 묻습니다.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옷과 오늘 아침에 먹은 음식과 그리고 무엇을 지니고 있는가 모두가 정당한 것인지 생각해보셨나요? 무엇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를 부당하다고 생각하신 부처님이나 예수님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것으로 우리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선생의 잠언 같은 말씀처럼, 당신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예수의 삶으로 그렇게 우리를 가르쳤습니다.
5월17일. 선생님이 가신 지 5주기가 됐지만, 세상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은 벼랑 끝으로 밀려 죽어가고 있고, 권세 있는 자들의 성채는 더욱 견고해지고 있습니다. 탐욕에 눈먼 인간들은 포클레인으로 4대강을 파헤치고, 제주 구럼비 바위를 부수었습니다. 줄세우기의 미친 교육에 내몰린 학생들은 서로를 괴롭히다가 자살하고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차를 끌고,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누리고 싶어 하는, 너무도 많은 것을 가진 제가 선생님을 존경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선생님이 없는 이곳에서, 선생의 가르침을 따르지 못하는 우리는 다만 부끄러울 뿐입니다. 이렇게라도 선생님의 빈자리를 기억하려는 미욱한 우리를 용서하십시오. 전쟁도 아픔도 없는 그곳에서 당신이 사랑하는 가난한 벗들과 더불어 평안하시길 빕니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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