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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프렌들리는 ‘재벌만’ 프렌들리

곽정수 기자의 <재벌들의 밥그릇>…정부·대기업의 ‘짜고치는 고스톱’에 관한 통쾌하고도 서글픈 통찰
등록 2012-02-04 10:31 수정 2020-05-03 04:26

“내가 어릴 때부터 기업가 집안에서 자랐고 학교(일본 와세다대학 상학부)에서 경제학 공부를 계속해왔는데 그런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이익공유제를 누가 만들어낸 말인지, 사회주의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자본주의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공산주의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모르겠다.”

이건희 한마디에 ‘듣보잡’ 된 이익공유제

지난해 3월10일 서울 한남동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가 열렸다. 이날 회의장을 찾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입으로 마이크가 모였다. 당시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제안한 협력사 이익공유제에 대한 의견을 묻기 위해서였다. 이 회장은 거침이 없었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서도 “낙제 점수는 아니지 않겠느냐”며 대놓고 비아냥거렸다. 당시 정부가 제시한 대·중소기업 동반성장론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었다. 정부가 제시한 초과이익공유제는 이 회장의 말에 따라 ‘족보 없는 정책’으로 간단히 격하됐다.

두 달 뒤인 5월26일, 이건희 회장은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으로 롤스로이스를 타고 출근했다. 1907년 영국에서 설립된 롤스로이스사는 1970년대에 채산성 악화로 고전하기 시작했다. 미국 GE 등과 경쟁하려면 신형 항공기 엔진 개발을 서둘러야 하는 처지였다. 10억달러에 이르는 ‘실탄’이 문제였다. 이때 묘수가 나왔다. 롤스로이스와 협력사들은 ‘위험 및 판매 수입 공유 파트너 계약’을 맺었다. 항공기 엔진 개발에 공동투자해서 성공하면 투자 비율에 따라 판매 수입을 나누기로 한 것이었다. 롤스로이스의 협력모델은 전 산업 영역에 걸쳐 자리를 잡았다. 이를테면 인터넷 쇼핑몰과 포털 사이트 사이의 ‘제휴마케팅’도 이익공유제의 한 종류로 분류된다.

지난해 8월 이명박 대통령과의 환담을 앞두고 국내 대기업 총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환담을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해 8월 이명박 대통령과의 환담을 앞두고 국내 대기업 총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환담을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재벌 “동반성장하면 기업 위축” 으름장

(홍익출판사 펴냄)을 읽는 일은 통쾌하고 서글프다. 필자인 곽정수 기자는 지난 2~3년 사이 우리 사회에서 불거진 재벌 문제들의 맥을 하나씩 짚었다. 정부와 대기업이 함께, 혹은 대기업만 따로 우리를 향해 퍼트린 말과 논리들을 필자는 뒤집어보고, 모로 보고, 반대의 이야기로 풀어보았다. 2010년 5월부터 에 연재된 ‘곽정수의 경제 뒤집어보기’와 대기업 관련 기사들을 단행본의 틀에 맞춰 갈무리한 결과다. 그의 말은 통쾌하게 이치에 닿았고, ‘그들’의 거짓말은 적나라해서 서글펐다. 이 속에서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시장 프렌들리이고, 이는 서민 프렌들리와 일치한다”(이명박 대통령, 2009년 9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유치 특별 기자회견)는 정권의 논리가 어떻게 대기업들에 일방적인 특혜로 이어졌는지 드러난다. 정부의 노골적인 대기업 밀어주기와 대기업의 약탈적 하도급 거래의 결과인 ‘승자독식’의 현황도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와 협력업체 사이의 영업이익률은 2007~2010년 2.9%포인트에서 9.8%포인트로 3배 이상 벌어진다. 또한 이 과정에서 “중소기업을 돕는 것이 대기업에도 도움이 된다”(이건희 회장, 2011년 1월 신년 하례식)는 대기업들이 실제로는 “동반성장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기업이 위축되고, 지나친 규제는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에도 해가 된다”(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 2011년 6월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공청회)라고 으름장을 놓게 되는 것도 거슬러 올라가 살펴볼 수 있다.

한 가지 질문. 우리 사회가 ‘잘나가는’ 대기업의 발목을 굳이 잡아가며 까칠하게 문제 삼을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의 말이다.

“재벌 문제가 곧 중소기업의 문제이고, 동반성장 문제이며, 이것은 한국 경제의 양극화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가 재벌이라는 새장에 갇혀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은 물론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도 불가능하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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