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출현한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동화적이었다. 사람을 원통형으로 그리는 남미의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의 인물들처럼 낙천적인 몸통의 동상이었다. 특별할 건 없지만 나는 이 사나이들이 가진 응시의 표정이 좋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서 좋았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과 세종대왕 동상은 같은 공기를 마시기엔 너무 높은 데 있다. 왼손으로 칼을 뽑아들려는 위험한 포즈나, 한글 반포 직후의 ‘홀리’(holy)한, 결정적이고도 역사적인 순간은 교과서 한 장짜리 이미지의 반복이다.
그냥 맹하게 서거나 앉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자세가 신선했다. 같이 앉아 세계의 비슷한 부분을 함께 바라보는 게 이 둘의 시작이었을 테니까. 1842년이었다고 한다. “광기에 휩싸인 젊은 편집인(라인신문)이 있으니 조심하라.” 훗날 동지가 될 청년 마르크스를 만나러 가는 길에 엥겔스가 들은 말이다. 1844년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집에서 며칠을 묵었고, 1848년 을 함께 썼다. 지그재그 걸음을 걸어가며 각자 살았던 두 남자가 함께 만들어낸 실제 순간들은, 책에 쓰인 ‘우정’ ‘혁명’ ‘투쟁’이라는 단어와 엮인 문장보다 몇 배는 더 경이로웠을 것이다.
2011년 여름, 독일 베를린에 사는 친구의 소개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동상을 처음 봤다. 비가 내렸고 저들의 이름을 딴 광장에는 우산을 쓴 소수의 관광객들만이 있었다. 1986년 ‘마르스크·엥겔스 광장(Forum)’이 생겼고, 2010년 울타리 공사 때문에 동상은 100m 정도 동쪽으로 옮겨졌다. 나와 동행한 이는 한때 그를 ‘형님’이라 불렀다며 마르크스 동상 주위를 배회했다. 나는 마르크스의 빛바랜 무릎 위에 올라앉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했다. 적당히 큰 사람(동상)을 보면 응석 부리고 싶어지나. 마르크스의 무릎은 이미 맥도널드 할아버지의 특정 부위처럼 닳아 있었다. 곁에 꼭 붙어 서 있는 엥겔스의 왼쪽 손가락은 변색돼 마디만 노란 빛이었다. 얼마나 많은 세계인들이 엥겔스의 손마디를 쓰다듬었을까. 동행자는 언제 짙은 사색에 잠겼느냐는 듯 미끌미끌한 동상 좌대에 올라가 마르크스의 오른쪽 귓불을 만졌다며 뿌듯해했다.
왜 하필 귓불이었지? 묻지는 않았지만 마르크스·엥겔스 동상은 딱 만져보기에 좋은 크기이며 디자인이다. 찔릴까 걱정할 뾰족한 부분도 없다. 2인조 동상은 서로의 존재를 보호한다. 죽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내 ‘눈앞에 출현한 방식’은 낯설거나 새로운 기술이 아니다. 을 쓴 레지스 드브레의 말을 응용해보면, 북한 주민들이 찾아가 눈물 흘리는 김정일의 초상 사진은 에드푸 신전의 이집트 여신 이시스의 원형 부조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자기 앞에서 행해지고 이야기되는 것을 주시하며 감시한다. 그 이미지들은 영토와 영역을 나타낸다.” 그만큼 오래 지속됐다.
눈앞에 출현하는 기술이 성행하는 건 다 암행어사 때문인가. 척하면 누군지 알아볼 수 있는 수염을 단 마르크스와 엥겔스도 ‘나야 나’ 않고 침묵하고 있건만, “나 김문수요. 도지사요. 당신 이름 뭐요” 했다는 말에 웃음이 난다. 어쨌든 베를린의 우정은 영원히.
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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