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명찰을 달지 않고 머리에 빨강·파랑 띠로 구별하지 않아도 아는 사람은 안다. 누가 누구를 무시하고, 누가 누구와 팀인지. 좌우상하를 가르는 차별의 지표들은 위성항법장치(GPS) 없이도 감지된다. 디자인은 이때 불평등에 저항하거나, 때론 무마할 수 있을까. 불평등에 휘발유를 뿌리는 일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지난주 한 일간지에는 푸른색 작업복 사진 두 장이 나란히 실렸다.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나란히 놓인 두 장의 푸른색 상의를 왼쪽 오른쪽 번갈아 바라보았다. 언뜻 보면 비슷한 푸른 작업복이지만, 한쪽 어깨선에는 흰 줄의 선이 나 있고 다른 쪽에는 없었다. 질감마저 상이한 느낌은 왠지 어느 한쪽을 진품으로 선택해야 할 것 같았다. 기사는 올가을 비정규직에게 정규직과 조금 다른 ‘디자인’의 작업복을 지급한 자동차 제조업체 한국 GM의 이야기였다. 회사 쪽은 단순한 실수라고 말했다지만, 왼쪽 가슴에 있는 ‘지엠 코리아’라는 마크가 비정규직에게 지급된 푸른 옷에는 빠져 있었다. 실수로 빠뜨렸다는 그 마크는, 이제 적혈구 크기 정도(넓이 0.000024인치)를 가리는 데 성공했다는 투명 망토로 가리기라도 한 걸까. 왼쪽 가슴이면 심장이 있는 중요 부위인데 말이다.
이 푸른 작업복은 유니폼일까 아닐까.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특정 집단의 옷이라는 점에서 단연 유니폼이 맞다. 유사한 블루 계열에 어깨선과 목 부분의 형태가 유사하니 더 그렇다. 라틴어 ‘우누스’(unus·하나의)와 ‘포르마’(forma·형태)가 만난 ‘유니폼’(uniform)은 여러 사람의 개성을 잠시 집에다 놓고 일터에서는 하나의 ‘직원·노동자’가 돼라는 질서의 의복이다. 지금은 도처에 널린 ‘멤버십’을 기르는 게 20세기 초반 군대와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수용된 유니폼의 목적이었다. 집단 정체성을 내세우는 게 목표라면 이 파란 작업복들은 유니폼이 아니다. 멤버십을 정규직과 비정규직 틀로 나눠 은연중에 ‘분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내 편, 네 편이 있어야 청팀·백팀의 운동회를 할 수 있고 어딘지 스릴 있게 사는 것처럼 살맛이 나기도 하지만, 이런 디자인으로는 아니다.
하나의 형태를 바라는 유니폼은 어원과 달리 완벽히 똑같은 형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직급·권력·성별에 따라 동일한 집단 내에서도 디자인 차이가 있다. 1920년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 대한적십자회 응급구호반의 단체사진을 봐도 간호사와 의사로 추정되는 남녀의 유니폼은 다르다. 이들을 묶어주는 아이콘은 물론 ‘십자가’(+) 문양이지만 ‘하나’(uni)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유니폼에 호출되는 건 ‘배제의 미학’이다. 유니폼이 아닌 유니폼을 만들어내고 입는 우리는 비정규직 차별과 배제가 어느 때보다 극심한 오늘을 산다.
하루 종일 내가 만나는 작업복을 세보니 손이 모자란다. 초록색 앞치마를 입은 이에게서 커피를 건네받고, 하늘색 셔츠를 입은 마을버스 운전사가 모는 차를 타고, 밤에는 형광 연두색 옷을 입은 청소노동자를 본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그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작업복을 본다. “어른들은 참 이상하다”고 말하는 ‘어린왕자’라면 믿지 않을, 눈에 보이는 무수히 많은 옷을 말이다.
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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