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에 등장하는 영원한 재롱둥이 라이너스는 언제나 담요와 동행한다. “담요는 쟁취하는 거야. 자유처럼 싸워서 뺏고 지켜야 하는 거라고”라고 말하는 꼬마의 손에는 늘 파란 담요가 들려 있다. 담요는 그에게 없어선 안 되는 무엇, 2011년의 단어 ‘멘토’를 활용해보면 사물-멘토다. 포근하게 덮을 수 있는 부드러운 감촉의 담요는 라이너스에게 옆에 ‘같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안이 된다. 라이너스는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담요가 미래에도 항상 함께하리라고 믿을 것이다.
사람에게만 담요가 필요할까. 건물에도 때로 ‘덮을 것’이 필요하다. 건물은 아프거나 추울 순 없지만 부서지거나 망가질 수 있다. 철근 구조가 괴팍하게 드러난 공사장에는 흙이 파헤쳐지고 파편들이 나뒹군다. 왕의 최후를 그린 들라크루아의 에 담긴 파국의 장면과 비슷하다. ‘가림막’ 또는 ‘보온덮개’라고 불리는 도구들이 헐벗은 건물의 상태를 가려준다. 근래 예술과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가림막이 앞다퉈 소개됐지만, 한국의 거리에서 자주 보게 되는 건물 담요는 뭐니뭐니 해도 무지개 줄무늬의 가림천이다. 줄무늬 덮개는 의도를 궁금해할 새도 없이 단번에 ‘공사 중’임을 대변한다. 이런 패턴으로 잠옷이나 목도리를 만들어 둘러도 꽤 괜찮을 색 조합이다. 정식 명칭은 ‘컬러 보온 덮개’. 하늘빛과 살굿빛의 파스텔 톤이 ‘컬러’, 부직포 천이 공사 현장에서 나오는 먼지와 외부를 차단하는 ‘덮개’인 셈이다. 가로 13m, 세로 1.8m에 1만8천원 정도의 가격으로 공사 용품을 판매하는 인터넷 사이트와 가게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며칠 전부터 내가 사는 동네는 갑자기 ‘무지개’ 극장이 됐다. 줄무늬 천막으로 덮인 건물이 경쟁하듯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아담한 크기의 한옥이 옹기종기 모인 골목에 한옥 네 채가 한꺼번에 리노베이션을 하다 보니 생긴 일이다. 철사로 얼기설기 엮은 컬러 보온 덮개가 한옥 전체를 덮었고, 덮개 사이로 까만 전깃줄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누군가 손으로 뚫은 듯한 둥근 구멍 틈으로는 사람들이 남기고 간 물건들도 보인다. 까치발로 안을 들여다보니 공사장이 아니라 무대 현장 같은 느낌이다.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무대, 하지만 완벽히 차단되거나 가려진 상태가 아니라 덮개 사이와 너머로 무엇인가 움직이고 올라가는 것이 비치는 무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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덮개의 열린 틈 사이로 들어가던 노동자나 어릴 때부터 공사장 근처를 걸어다닌 나에게나 줄무늬 덮개가 별반 새로울 것은 없다. 공사 중인 건물, 학교, 다리까지 ‘쉬거나’ ‘노는’ 땅이 없는 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공사판을 벌이는 도시에서 컬러 덮개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굳이 관심을 둘 이유가 없는 대상이다. 라이너스의 담요가 늘 곁에 있는 것과 달리, 건물 담요는 건물 곁에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만 그곳의 가림막이자 덮개로 존재할 뿐 이후에는 단숨에 사라진다. 알싸한 초겨울 아침, 무지개 덮개는 하늘과 맞닿을 듯 높다.
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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