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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손바닥 부문 당선작 전구현
등록 2011-11-30 19:32 수정 2020-05-03 04:26
전구현

전구현

1.

무릎이 뜨겁다.

“타다다닥.”

노트북 배터리가 없어서 필기를 하지 못했다. 휴대전화로 녹음한 강의를 입력한다. ‘CEO 특강’이라는, 매주 유명 기업의 오너나 임원이 나오는 강의다. 그냥 시간표는 비는데 딱히 넣을 과목이 없어서, 라기보다는 시험도 없고 그래서 학점도 상관없는, 매주 강의 내용을 요약한 보고서만 제출하면 통과되는 과목이어서 그랬다.

지금 내 책상은 학교 안의 커피숍이다. ‘오늘의 커피’가 3800원인 유명 체인 커피숍이다. 아메리카노가 1500원인 다른 카페를 가고 싶은데, 그곳은 늘 자리가 없다. 그냥 이곳에 몇 시간씩 눌러앉아 있기로 했다.

여기 오기 전 내 책상은 J관 311호(1,4)였다. 그보다 1시간30분 전에는 D관 B101호(13,8)였고, 3시간 전에는 다시 J관 307호(1,7)였다. 그전에는 도서관 열람실 113호, 노트북 열람실의 창가 맨 구석 자리였다.

더 앉아 있고 싶었는데, 담배가 떨어졌다. 학교 멀티미디어실에서 내일 제출해야 할 리포트를 출력하고 집으로 갔다.

2.

유난히 피곤해져서 씻고 누웠다. 남문 앞의 고깃집 2층, 월세 20만원의 ‘잠만 자는 방’이 지금 내 집이다. 말 그대로 매트리스와 옷장, 책꽂이 하나만 놓인 잠만 잘 수 있는 방이다. 고기 냄새에 섞여 사람들 떠드는 소리가 바닥을 울린다. 이어폰을 꽂고 조용한 노래를 틀고 오늘 강의를 기억해보기로 했다.

강의의 부제는, ‘전국 모든 곳이 와이파이 존’이었다. 홍보팀장인지 전략기획실장인지가 자신을 장황하게 설명해놓고는, ‘디지털 노마드족’이라는 단어를 아느냐고 신나게 떠들어댔다. 그리고 이 위대한 진화에 감사하라는 식으로 말했다. 그의 프레젠테이션은, 지금 너희들의 삶과 사회가 다 기술발전 때문이라는 말로 대충 요약이 가능했다.

얼마 전 장학금 신청을 했다. 부모님의 재산세 내역, 건강보험료 납부 확인서, 주민등록등본과 그 외 가계 곤란을 확인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서류가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부모님의 부채증명서를 냈다. 나랑 같은 장학금을 신청한 한 동기는, 이렇게 나와 우리 집의 가난을 증명하면서, 가장 숨기고 싶은 부모님의 수치심까지 증빙 자료로 제출해가면서 학교를 다녀야 하는지 고민스럽다고, 우울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빚에, 더 우울하다고 말했다.

나는 우리 집에 빚이 얼마나 있는지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외려 나를 웃게 한 사실은, 23년 동안 우리 집이 이사를 14번 다녔다는 것이다. 그렇게나 바뀌었는데, 내 방을 가져본 기억이 없다는 게 더 우스웠다. 지금 누운 곳이 내 방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내 방은 와이파이도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그 강의가 수긍이 가지 않았다. 그 부제에 따르면, 내 방은 전국 어디에도 없는 곳이다. 그럼 이곳에 누워 있는 나는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노마드’라면, 대학 1학년 때, 그러니까 2008년 중핵 강의에서 들어본 적이 있다. 꽤 유명하다는 그 교수는 ‘광장’을 읽고 그날의 강의 내용에 맞춰 리포트를 제출하라 했다. 수능 공부를 하면서 읽은 그 책을 도서관에서 다시 읽었다. ‘광장’의 내용도, 교수가 말하는 광장과 노마드족의 의미도, 다 알 수 있었다. 근데 그게 현대 정치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래서 촛불집회가 그렇게 찬양할 만한 일인지에는 도저히 수긍이 가지 않았다. 아니 그 사람들은 애초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잖아. 자기 연구실이 있는 정교수가 도서관을 찾아다니는 시간강사들을 보고 저 사람들은 위대한 사회적 진화의 발걸음을 내디뎠다느니 하는 고상한 언어를 써가면서 말하는 이유가 도대체 뭔지, 정말로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 과목은 결국 B0로 마무리되었다.

그 팀장인지 실장인지는, 랜선이 없어도 와이파이 존을 찾아가면 된다. 그래서 하드디스크가 없으면 웹디스크를 쓰면 된다고 말했다. 데스크톱 컴퓨터의 매출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소비자가 노트북을 더 선호하게 된 것도,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시대도, 이런 기술들의 영향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요즘 젊은이들의 자유로운 삶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데스크톱 컴퓨터가 필요하지 않은 게 아니라, 그냥 데스크가 없는 것일 뿐인데, 뭘 그리 오버를 하나 싶었다. 내 방에 책상이 없다고, 언제 학교가 나 때문에 도서관을 만들었나.

그때, 교수에게 좀 상처를 준 리포트를 썼나 보다. 교수는 리포트를 제출하고 바로 다음 수업 시간에, 내가 쓴 리포트의 내용을 다른 학생들에게 요약해주었다. 그리고 ‘88만원 세대’ ‘20대 개새끼론’이라는 두 이론에 75분을 소비했다. 졸지에 88만원이나 버는 개새끼가 되었다. 그 교수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임이 틀림없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해졌다.



“밀실이 깨어져 광장의 시대가 온 것이 아니라, 애초에 밀실이 주어지지 않은 사람들의 시대가 온 것이다. 그들은 타의적 노마드일 뿐이다. 지금 해야 할 일은 광장을 찬양하는 일이 아니라 광장에 모였던 이들이 돌아갈 밀실이 사라진 것에 슬퍼하는 일이다….”

3.

나는 일어나 신발을 신고 노트북을 들고 내려갔다. 고기 냄새와 술 냄새가 더 진해진다.

편의점 앞 테이블에 앉으니 감사하게도 학교 와이파이가 잡힌다. 몇 년 전 웹디스크에 올려놓은 리포트를 다시 읽어보았다.

내 리포트는 별게 아니었다.

“광장을 보고 싶은 이들은 광장만 본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만 본다. 그들이 애초에 그곳에 거주하고 있던 사람들이라는 것은 보지 못한다. 그 벌판에 살아야만 했던 이들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밀실이 깨어져 광장의 시대가 온 것이 아니라, 애초에 밀실이 주어지지 않은 사람들의 시대가 온 것이다. 그들은 타의적 노마드일 뿐이다. 지금 해야 할 일은 광장을 찬양하는 일이 아니라 광장에 모였던 이들이 돌아갈 밀실이 사라진 것에 슬퍼하는 일이다….”

노트북을 덮고, 내일 할 일을 잠시 생각했다. 리포트 제출과 퀴즈 하나, 점심 약속 등은 오늘과 다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일도 나는 내 무릎 위에서 내 삶을 써내려 갈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잠옷 차림이던 나는 쌀쌀해져 다시 올라갔다. 밤이 추워졌다. 무릎이 시리다.



수상 소감
계속 부끄러워하기 위해

일러스트 박정은

일러스트 박정은

얼떨떨하게 전화를 받았다. 수상 소감을 써달라는데 생각이 나지 않아 지난 회의 소감문을 검색해보았다. 이분들도 나와 같은 부끄러움으로 이런 글을 쓰셨을까. 이런 글을 쓴다는 게 내 글을 다시 읽는 것보다 더한 부끄러움이다. 과분한 상에 감사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부끄럽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부끄러움을 느끼고자 글을 쓰기도 한다. 나는 내 생각을 어질러놓는다. 그리고 그것들을 다시 살펴보면서 내가 사는 방법과의 괴리를 느낀다. 나의 생각들이 온전히 내 삶을 책임지지 못하는 부끄러움. 그 부끄러움이 내가 나를 다잡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그래서 나는 내 글 중 부끄러워 이불을 덮어쓰게 만드는 글들에 가장 애착이 간다. 내가 가진 손바닥은 내 뺨을 후려치는 손바닥이다. 그렇게 피하지 말고, 사는 대로 생각하지 말고, 세상을 똑바로 응시하라고 나를 다그치는 손바닥이다. 하루에 한 번씩 이불을 덮어써도 다음날 같은 이유로 이불 속에 숨어 있지 않기 위해, 계속 부끄러워하고 그것을 무서워하지 않으며 살겠다. 부끄러워할 기회를 주신 것에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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