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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종말이 온다는 상상

미증유의 재난이 닥쳤을 때 인간은 어떻게 되는가… <일본침몰> <브레이크다운> 등 종말의 공포 혹은 생존기를 그린 만화들
등록 2011-11-18 20:30 수정 2020-05-03 04:26

20세기 말 수많은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1999년 종말론이 무사히 넘어가자 이번에는 2012년 종말론이 득세하고 있다. 마야의 달력, 노스트라다무스의 새로운 예언, 주역과 웹봇의 예측까지 동원해 종말의 공포를 안겨준다. 개인의 가장 큰 공포가 죽음인 것처럼, 인류에게는 종말이 가장 큰 공포인 걸까. 지구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공룡을 비롯해 하나의 종이 멸종한 경우는 다반사였고, 인간의 역사에서도 사라진 민족과 국가는 무수하게 많다. 모든 생명체는 언젠가 사라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종말’에 대한 공포가 단지 논리가 아니라 현실이다. 언젠가는 종말이 올 수도 있지, 의 수준이 아니라 당장 내일 세상이 무너져도 납득할 수 있는 정도로. 일본열도는 유라시아, 필리핀, 태평양, 북아메리카 4개의 판이 만나는 곳에 위치해 있다. 4개의 판이 움직이고 충돌하며 만들어진 일본열도이기에 화산과 지진은 잦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여름에는 바로 태풍이 지나가는 길목이다. 엄청난 자연재해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지역에 살고 있으면, 신과 죽음에 대한 생각도 바뀌게 된다. 자연을 신으로 모시고, 재해와 죽음에 대해 순응하는 경향이 커지는 것이다.

» 소설에서 출발해 영화와 만화로 각색된 <일본 침몰>은 종말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그리며 여기서 정부와 과학의 역할은 무엇인가 고민한다.

» 소설에서 출발해 영화와 만화로 각색된 <일본 침몰>은 종말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그리며 여기서 정부와 과학의 역할은 무엇인가 고민한다.

게다가 일본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폭탄을 경험한 나라이고, 지난 동북 대지진 때 핵발전소가 타격을 입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 것을 보면 운명이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자연재해는 한순간의 악몽이지만, 방사능의 공포는 유전자를 타고 이후 세대까지도 연결된다. 이처럼 일본은 화산, 지진, 태풍에 방사능까지 종말의 조건을 상시적으로 갖춘 곳이다. 그러니 대중문화에도 종말의 기운이 강하게 드리워질 수밖에 없다. 핵실험의 영향으로 돌연변이가 된 괴수 고지라는 불을 뿜으며 일본열도를 초토화하는 파괴의 신이었다. 기쿠치 히데유키는 에서 신주쿠를 마치 방사능 오염으로 격리된 도시처럼 묘사하며 기괴한 상상력을 펼쳤다.

종말의 공포는, 단지 상상력에서 끝나지 않는다. 1973년 고마쓰 사쿄가 발표한 소설 은 당시 400만 부가 팔리고, 영화로도 만들어지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2006년 다시 영화로 리메이크되었다. 영화는 범작이지만, 만화로 각색된 은 종말을 그린 만화 중에서 가장 리얼하고 압권인 작품이다. 그동안 축적된 이론과 증거들에 기반해 일본열도가 침몰하게 되는 구체적인 과정을 시뮬레이션해 보여준다. 정부의 임무를 재검토하는 한편 과학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인 논의도 전개한다. 그리고 미증유의 재난이 닥쳤을 때 인간이 어떻게 되는가, 에 대한 잔인하면서도 날카로운 전망을 제시한다. 이 똑같이 미증유의 재난을 묘사한 만화 이나 애니메이션 을 능가하는 이유다.

은 거의 공포영화 수준으로 인간의 몰락을 예견한다. 을 보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보다 보면 암울해지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 란 질문을 계속 던지게 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거기에 대한 현실적인 답을 제시하는 작품들도 있다. 의 작가 사이토 다카오는 일찌감치 재난에서 살아남는 인간의 모습을 작품으로 그려왔다. 과 은 지극히 현실적인 관점에서, 현재의 문명이 종말을 맞은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그린 서바이벌 만화다. 종의 최후를 맞는다 해도, 개인은 살아남을 수도 있다. 처럼, 과거의 전설로만 남는다 할지라도.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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