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세상의 부엌에서는 셀 수 없는 달걀 껍질이 깨졌을 것이다. 달걀프라이, 달걀찜, 프렌치 토스트, 오믈렛, 샌드위치, 삶은 달걀을 넣은 샐러드…. 수많은 메뉴들로 응용되며 닭이 될 뻔한 달걀은 인간을 위해 제 한 몸을 희생했다. 그런데 우리, 오늘 아침 식탁에 오른 한 알의 달걀이 어떤 과정을 통해 우리 주방에 도달하는지 생각해본 적 있는지?
닭고기는 어떻게 도시에 도달하나9·11을 9살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소설 으로 전세계 문학팬을 놀라게 했던 미국의 소설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가 자신의 첫 번째 논픽션 (민음사 펴냄) 한국어 번역판을 발간했다. 글을 만지는 것을 업으로 삼은 작가의 차진 문장은 비슷한 주제로 쓰인 여타의 책과 나란히 놓고 보면 장점이다. 육식 문제에 관심은 있었지만 연구서 같은 글들에 엄두를 내지 못했던 독자라면 을 기점으로 육식 문화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해봐도 되겠다.
양계업은 가장 비극적이고 처참한 공장식 축산 시스템의 결정체다. 포어가 제시한 사례들을 통해 달걀의 ‘불편한 진실’을 더듬어보자. 우선 지금 보는 이 페이지를 덮어보자. 그리고 A4용지 사이즈보다 조금 작은 의 책 크기를 가늠해보자. 크기보다 몸피가 훨씬 더 큰 닭 한 마리가 그 위에 서 있다고 떠올려보자. 그 좁은 공간에 몸을 밀어넣은 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는 닭이 수천~수만 마리, 창문도 없는 헛간에 층층이 세워진 닭장 안에서 켁켁 소리를 질러댄다고 상상해보자.
양계업자들은 우리가 방금 상상한 빼곡한 양계장에, 태어난 지 16~20주가 된 암탉들을 집어넣고 조명을 어둡게 한다. 그런 다음 저단백질의 사료만 먹인다.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만. 이런 식으로 2~3주를 보내고 그다음부터는 하루 16~20시간 불을 켜준다. 사료는 고단백질로 준다. 닭들은 봄이 온 줄 알고 곧장 알을 낳기 시작한다. 닭장 속, 조작된 계절 속에서 닭들은 1년에 알 300개가량을 낳는다. 자연 상태에서보다 2~3배 많은 양이다. 그렇게 첫해를 보내고 다음해에 그만큼 알을 낳지 못하면 닭은 도축당한다(자연 상태에서 닭은 길게는 25년까지 살 수 있다). 그렇다면 알을 낳지 못하는 수평아리들의 운명은? 대부분 전기가 흐르는 판이 잇대어진 공간으로 보내져 폐기된다. 산 채로 거대한 플라스틱 컨테이너 속에 던져져 천천히 질식사하거나, 혹은 톱니가 잔인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펄프 제조기 안에 던져지기도 한다.
포어는 어린 시절 막연한 도덕심으로 채식을 실천해봤지만 ‘고기의 맛’을 끊지 못해 여러 번 포기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첫아이를 낳고 아버지가 돼 아이에게 무엇을 먹여야 할지 본격적으로 고민하며 인간이 다른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고기란 무엇인가? 고기는 어디에서 왔는가? 고기는 어떻게 생산되는가? 동물은 어떻게 다루어지는가? 그로 인한 인간의 경제·사회·환경적 영향은 무엇인가?”
다시 양계농장으로 돌아가 이번엔 날 때부터 고기가 되기 위해 태어난 닭의 생을 들여다보자. 육계를 기르는 업자들은 되도록 적게 먹고 빨리 자라는 닭을 찾는다. 포어의 조사에 따르면, 근육과 지방 조직이 뼈보다 훨씬 빨리 자라도록 조작된 육계들은 걷는 데 심각한 장애를 가지거나 늘 통증에 시달린다. 이뿐만 아니다. 비좁은 닭장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내출혈, 빈혈, 다리와 목의 뒤틀림, 호흡기 질병, 척추 탈골, 시력 상실 등에 시달리고, 박테리아·대장균·살모넬라균·캄피로박터균 등에 노출·감염돼 양계업자로부터 염소 소독제로 목욕 ‘당한다’.
육계로 쓰이는 닭들은 한달 반가량 사육된다. 한 달 반의 생을 보낸 닭들에게 남은 삶은 처리·가공의 단계다. 포어가 조사한 미국의 육계 가공 방식은 다음과 같다. 한 손에 5마리씩 닭의 다리를 잡아 거꾸로 들고 운송용 나무 상자에 쑤셔넣는다. 트럭에 상자를 싣는다. 공장에 도착하면 노동자들은 닭의 발목에 금속 족쇄를 채워 컨베이어 시스템에 거꾸로 매단다. 컨베이어 시스템은 전기가 통하는 물통 속으로 새들을 끌고 간다. 여기서 닭의 숨이 끊긴다면 차라리 마음이 편하련만 공장은 ‘인도적 도축’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움직일 수는 없지만 의식은 살아남은 닭들이 눈동자를 굴리거나 마치 비명을 지르려는 듯 천천히 부리를 벌리는 등 몸을 움직인다. 이들을 기다리는 다음 단계는 자동화된 목 절단기다. 여기서도 운이 나쁜 닭들은 바로 죽지 못하고 기계의 ‘오류’를 처리하는 사람 손에 목을 꺾이거나, 또 여기서도 운이 나빠 죽지 못한 닭들은 다음 단계인 열탕처리기에 숨이 붙은 채로 몸을 담가야 한다. 비극이 이뿐일까. 이들이 살아서 배출하는 물질은 도시 하수보다 160배 이상 환경을 오염시키고, 농장의 동물들은 자동차 등을 비롯한 운송수단보다 약 40%나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는 사실 등은 이미 잘 알려진 내용이다.
풍요로워진 식탁의 비극
닭들의 비극은 ‘고기’가 되는 대부분의 동물에 적용된다. 그들은 ‘효율’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하나의 생명체가 아닌 상품으로 다뤄진다. 이쯤 되면 혹자는 이렇게 물을지 모른다. 그러면 무얼 먹고 살아야 하느냐고. 인류는 조상 대대로 수렵 생활을 통해 육식을 해오지 않았느냐고. 채식주의자인 포어는 독자에게 극단적 채식을 권하진 않는다. 문제는 한 마리의 동물을 먹으려고 한 마리의 동물만 죽일 수 없는 현재의 공장식 축산업이다. 그는 작금의 현실에서 우리의 음식 선택이 지구 생태와 동물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라고 말한다. “고문당하고 오염된 동물의 살이 우리의 살이 되어가고 있는” 과정을 외면한 채 외연만 풍요로워진 우리의 식탁에 감탄하는 건 모순이 아닌가 묻는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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