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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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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이제 시작이다”

[출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3월호/
아랍에 부는 시민혁명 바람이 몰고올 세계적 변화를 전망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3월호
등록 2011-03-18 11:10 수정 2020-05-03 04:26

아랍에서 불어온 바람이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재스민 혁명’으로 명명된 바람은 멀리 튀니지에서 일기 시작해 너른 사막을 건너 이집트와 리비아까지 당도했다. 한국판 4월호는 리비아에 머물고 있는 이 바람의 향방을 좇는다. 그 대답을 얻기 위해 알랭 그레슈 기자는 바람이 몰고 올 변화에 주목한다. 그는 “그동안 이집트가 이란 핵, 이스라엘-아랍 분쟁 등 미국의 대중동 전략의 중심추 역할을 해왔다”면서 “미국은 무바라크 퇴진 이후 벌어질 결과를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한다. 가령 “민주화 바람이 이슬람 사회 전체로 퍼져 여론이 연쇄 폭발한다면 미국의 세계 전략은 큰 폭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3월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3월호

노동자투쟁, 이집트혁명의 밑거름

아랍은 민주주의의 고립된 섬이자 자유를 옹립할 능력이 안 된다던 기존의 신화는 최근 몇 주 만에 박살났다. 1979년 이란혁명 이후 처음으로 우리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민중과 그들이 만들어낼 열망을 고려하지 않고는 중동의 미래를 분석할 수 없게 됐다. 가히 민중의 재발견이다. 법률가 라파엘 겜프는 그 민중 가운데 이집트 혁명 이후 새롭게 일어서기 시작한 노동자 계급을 분석한다. 이집트 봉기의 시작과 끝에는 노동자의 파업이 있었다. “지난 1월25일 투쟁을 일으킨 것은 노동자가 아니다. 노동자는 투쟁을 조직할 정도로 체계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노동자가 시위를 하고 정치적 요구뿐만 아니라 경제·사회적 요구를 하면서 이번 이집트 혁명에 중요한 토대를 마련했다.” 변호사이자 이집트 경제사회권리센터장인 칼레드 알리의 말이다. 라파엘에 따르면, 최근 몇 해 동안 모든 산업 분야에서 노동자가 정부에 비판과 요구를 하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이에 따른 노동자의 파업·집회·시위는 이집트 혁명의 밑줄기가 됐다. 특히 이집트 혁명 이후 예전에는 파업이 일어나지 않았던 분야에서도 ‘표현의 자유’를 얘기하며 목소리를 내는 노동자가 늘고 있다.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시작한 것이다.

변화는 내부에서도 감지된다. 지난 몇십 년간 지배적 통치기구로 독재국가의 주축을 이뤄온 군은 최근 이집트 사태에서 보듯 독재권력과 민중 사이에서 주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아랍개혁이니셔티브 연구소장 살람 카와키비와 사무총장 바스마 코드마니는 “(이집트의 경우) 군의 동요는 군부 안에서 증가한 체제 불만도 한 원인”이라면서, 결국 “시민사회와의 협약을 통해 완만한 민주화로 이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정치적 보복으로부터 군을 보호하기 위한 방편인 까닭이다.

한국에서 부는 빈곤 탈출의 ‘바람’

바람은 한국에서도 분다. 아랍에서 부는 바람이 변화를 향한 ‘바람’이라면, 한국에서 부는 바람은 빈곤에서 살아남으려는 ‘바람’이다.

강수돌 고려대 교수(경영학)는 청년 실업과 불안정 노동, 전문직도 취업이 안 되는 상황을 볼 때, 더는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나오면 멋진 인생이 펼쳐진다는 공식이 유효하지 않다면서 ‘신종 노예’인 비정규직과 그들에 대한 차별에 눈감는 정규직도 자본과 권력의 탐욕 앞에는 무력하다고 말한다. 대안은 실패와 좌절을 겪더라도 굴종과 예속화를 거부하는 주체화의 삶이다. 변창흠 세종대 교수(행정학)는 전세 대란으로 날아가버린 주거 안정의 꿈을 살핀다. 그에 따르면 ‘공급만능주의’와 ‘부동산 시장 팽창주의’를 기조로 한 MB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전세 대란을 불러온 주범이었다.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의 화려한 경제 성적 뒤에서 저금리·고환율·고물가로 신음하는 서민경제를 들여다봤다. 장 위원은 금융 안정을 통한 경제 안정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민주주의의 마지막 섬으로 일컬어지던 아랍과 중동 지역에 부는 이 바람의 진원지와 목적지는 어디일까? 한국판 3월호는 민중의 역량과 각성에 따라 그 바람이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갈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결국 ‘바람’의 길에 대한 답은 ‘바람’만이 알 터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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