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69일 만에 마지막 광부가 땅 위로 올라왔다. 예~. 태평양 건너 칠레에서 매몰됐던 광부 33명이 한명 한명 구출되는 장면은 〈CNN〉 등을 통해 전세계에 중계돼 수백만 명이 함께 가슴 졸이고 또 환호했다. 여기 을 쓴 사상가이자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의 신작 (민음사 펴냄)가 말하려는 바가 있다. 공감하는 인간 ‘호모엠파티쿠스’의 탄생, 21세기 커뮤니케이션이 불러일으킨 ‘공감’(Empathy)의 물결이다. 경쟁과 적자생존이 아니라 공감이 인간의 1차적 본성이며, 분산 자본주의라는 3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인간이 공감의 물결을 타고 협력과 평등의 문명을 만들어야 기후변화 등 위기를 넘어 인류가 번창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1981), (1995), (2000), (2004)을 통해 새로운 시대의 비전을 제시해온 리프킨이 위기의 시대에 필요한 새 패러다임으로 제시한 게 공감이다.
바야흐로 코즈모폴리턴적 공감의 시대리프킨은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대하드라마를 펼쳐간다. 인류의 공감이 어떻게 진화해 우리 곁에 있어왔는지, 우리 운명을 어떻게 결정하는지 살펴본다. “문명사에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려는 시도”다. 인간을 본질적으로 타락한 존재로 간주한 기독교 문명과 18·19세기 이데올로기 시대, 20세기 심리학의 시대를 훑으며 우리가 믿어온 주장을 깨부순다. 대표적인 게 2천 년 동안 지속돼온, 인간이 타락한 세상에 사는 죄 많은 존재라는 주장이다. 토머스 홉스는 인간의 본성을 공격적이고 이기적이라고 보았다. 제러미 벤섬 등 공리주의자는 인간은 본래 물질적이서 쾌락을 최대화하고 고통을 줄이려는 존재라고 여겼다. 애덤 스미스는 인간은 경제적 이기심을 갖고 태어난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묻는다. “프로이트의 말대로 서로 파괴하고 죽이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면 생명이 스스로 질서 있고 복합적이며 통합적인 상태를 추구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인간은 죽고 죽이는 전쟁의 피바다가 끝나자 서로 환호하고, 어둠 속 탄광에 매몰됐던 낯선 이들의 구출에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저자가 내민 대답은 공감이다.
인간은 어린 시절 소꿉장난을 하고 엄마와 아빠 등의 역할놀이를 하면서 공감 확장을 배워간다. 인간은 공감하면서 도덕적으로 발달한다. 공감이 부족하면 다른 사람의 괴로움을 느낄 수 없다. 공감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고대 로마는 인류사에서 거대한 공감 물결의 중심지였고, 인류사 어느 시대든 공감을 넓히기 위한 흐름이 존재해왔다. 베이비붐 세대의 저항문화와 사회적 행동주의의 물결과 함께 공감적 표현은 1960∼70년대 절정을 이루었다. 이제 세계는 ‘신앙의 시대’와 ‘이성의 시대’를 넘어 ‘공감의 시대’로 가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공감의 범위는 확대되고 있다. 나와 형제에서, 이역만리 칠레 외딴 사막의 광부에까지 넓어졌다. 수동적 동정(Sympathy)과 달리 적극적 공감은 인간을 넘어 동식물과 지구 전체로 퍼져가고 있다. 북극곰과 펭귄의 생사에 공감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계적 네트워크 시대, 상호 무역 의존 등 국경을 넘나드는 세계화는 공감 인식을 보편화한다. 신종 인플루엔자가 몇 주 만에 전세계로 퍼지고, 미국 발 경제위기는 몇 시간 뒤 바로 한국 증시의 폭락으로 이어진다. 인류가 세계시민이 되면서 공감을 넓힐 기회는 그만큼 늘어났고, 살아 있는 모든 존재로 공감을 확장도록 요구받고 있다. 이런 교류는 공감의 범위를 넓히고 코즈모폴리턴적 의식을 갖게 했다.
특히 20세기 제2차 산업혁명의 시대 석유 중심의 경제체제가 한계를 드러내고, 인류는 지구온난화와 엔트로피 증가로 생물권 붕괴와 세계경제 침체라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사회경제 구조는 지구에 남아 있는 자원을 빨아들이고, 기후변화 등 치솟는 엔트로피는 우리 존재를 위협하고 있다. 이렇듯 ‘에너지-커뮤니케이션 혁명’이 제3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경제체제를 탄생시킨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제 21세기는 윈윈 전략, 투명경영, 이타적 협업, 수소에너지를 비롯한 재생 가능한 분산 에너지, 에너지 협업, 접속의 시대로 변한다는 것이다. 이제 적자생존과 부의 집중을 낳은 경제 패러다임을 넘어, 오픈 소스와 협력이 이끄는 제3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아 공감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해졌다는 주장이다. 인터넷 무료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의 성공이 대표적이다. “경제활동은 적대적 경쟁이 아니다.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게임은 빛을 잃고 윈윈 시나리오가 대세를 이룬다.”
인류 위기의 해법 될까연기파 배우 메릴 스트리프는 “인간의 가장 큰 선물은 공감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고 말했다. 공감은 갈수록 복잡해지는 사회적 교류와 인프라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접착제이자, 위기의 시대에 더 잘 살아보기 위한 공동의 노력으로 쌓여간다. 저자는 묻는다. “우리는 과연 제때 지구촌의 붕괴를 피하고, 생물권 의식과 범세계적인 공감에 이를 수 있을까?” 공감이라는 열쇳말로 인류문명사를 풀어내고 인류 위기의 해법으로 제시하는 리프킨의 설명은 도깨비방망이처럼 신통하다. 기존 학설을 뒤엎는 그의 설명이 더러 도깨비방망이처럼 미심쩍기도 하지만, 공감은 오랫동안 들어온 ‘인류애’와 닿아 있다. 838쪽의 두툼한 책은 읽는 데 인내를 요구하지만, 방대한 그의 지식 앞에 입이 벌어지고 두께에 비해 책장은 쉽게 넘어간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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