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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들의 삶, 전쟁의 폭력이 짓누른 60년

잊혀진 역사를 들춰낸 45인의 구술, <전쟁미망인, 한국현대사의 침묵을 깨다>
등록 2010-06-23 19:26 수정 2020-05-03 04:26
〈전쟁미망인, 한국현대사의 침묵을 깨다〉

〈전쟁미망인, 한국현대사의 침묵을 깨다〉

한국전쟁은 3년 동안이었다. 그 전쟁이 발발한 지 올해로 60년이다. 전후 세대에게는 까마득하기만 한 시절의 3년 전쟁이지만 1920년대 후반에서 1930년대 전반 즈음에 태어난 이들은 전쟁으로 청춘을 닳아 없앴다. 그들은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 초반인 전시체제 시기에 10대를 보내고 1950년대 20대에 한국전쟁을 겪어”야 했다. (책과함께 펴냄)는 이들 세대 중 남편을 따라 ‘미처 죽지 못하고’ 전쟁의 잔혹함, 전후의 고단함, 정부의 외면, 생을 지배하는 트라우마를 고스란히 짊어진 채 살아온 전쟁미망인들의 목소리를 담은 구술집이다.

언제 돌아오나, 담배 사러 간 내 남편

“‘어디 가요?’ 이카니께네 ‘성공하러 가요’ 이케.” 마지막 대화였다. 친정에 다녀오던 이경순씨는 징집돼 끌려가는 남자들의 무리에서 남편을 만났다. “어디 가요?”라고 물은 것을 끝으로 남편을 영영 만나지 못했다.

이런 식이다. 전쟁미망인들은 예정에도 없이 남편을 떠나보내야 했고, 절망할 겨를 없이 전쟁을 피해 먼 길을 나서야 했고, 피난을 가다 아비 없는 아이도 낳아야 했다. 정신이 들어 남편을 그릴 때에는 기약 없이 기다려야 했다. 생존을 위해 밥벌이를 해야 했고, 그러다 보면 남편의 전사통지서가 날아오거나 누군가에게 남편의 사망 소식을 전해듣기도 했다.

한국전쟁은 20세기 어떤 전쟁보다 민간인 사망률이 높았다. 200만 명으로 추정되는 민간인 사망자는 남녀노소 할 것이 없었지만 출정과 강제징집, 잦은 학살은 “남성 부재의 현실”을 낳았다. 이로 인해 가부장 사회를 당혹하게 하는, 여성이 중심이 된 가족의 수도 급격하게 늘어났다. 이를테면 1952년 4월30일치 에는 그해 3월 전국적으로 실시한 난민 등록 결과 당시 전쟁미망인이 10만1895명이라고 쓰여 있다.

군경미망인, 피학살자미망인, 상이군인미망인 등 이들이 전쟁미망인이 된 경로는 다양하다. 그런 만큼 여러 이야기들이 가슴에 맺혀 있지만, 우리는 이제까지 “국군 장병과 유엔군을 추모하는 것 이외에 ‘전쟁을 겪은 국가’로서의 전쟁 피해자와 희생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한 국가의 폭력은 전쟁을 겪지 않은 이들이 짐작하는 이상으로 일상적이었다. 책에는 이런 구술도 있다. “담배 사러 나갔대요. 양키 시장에. 그날 노니께 담배 사러 나가니께, 그때 붙드는 사람이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고, 그때 붙들어가 막 전쟁터 갖다 넣는기라. …3일 돼도 사람이 안 오는 기요, 담배 사러 간 사람이… 그래 닷새가 있어도 안 와, 열흘이 있어도 안 와.” 양희선씨의 남편은 담배를 사러 갔다가 전쟁터에 끌려갔다. 양씨는 전쟁통에 휩쓸려간 남편에게 편지 한 통 못 받고 이듬해(1951년) 정월 초사흗날 전사통지서를 받았다. 시장이나 길거리를 막고 한 곳에서 하루에 몇천 명씩 붙잡아갔던 강제징집은 전국적으로 행해졌다. 휴일을 맞아 거리를 나선 이들에게도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숨결은 빈틈없이 배어들었던 것이다.

한 가지 욕심, 전쟁은 없어야 돼

일상을 침범한 전쟁의 폭력성은 전후에도 끝없이 재생산됐다. 전쟁미망인은 오랜 세월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이를 억누르고만 지냈다. 억누르고 지내서, 누구도 묻지 않아서 드러나지 않았던 전후 여성들의 삶을 주목했다는 점에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날것 그대로 담았다는 점에 이 책은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다. 책에 등장한 이들은 아직 녹슬지 않은 이야기로 ‘국가적 차원의 전쟁’이 ‘개인의 일상’에 어떤 작용을 일으켜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했고 트라우마를 남겼”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참전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받았던 전쟁미망인들의 삶은 아직까지 단단하게 응어리져 있다. 하지만 참 욕심 없게도 전쟁의 경험을 구술하며 뭉친 한을 쏟아내는 게 다다. 국가로부터 어떤 혜택이나 보상을 바라지도 않는다. 한 가지 욕심이 보였다면, 전국에서 따로 모은 구술인데 결론은 한 지점으로 통하고 있었다. 입을 모아 말했다. “전쟁은 없어야 돼.”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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