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당에 들어선 행자가 부처를 향해 침을 뱉었다. 이 행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한 엄마는 일곱 명의 자식을 강물에 던지면서까지 깨우침을 구한다. 과연 깨우침은 자식의 생명과 맞바꿀 만큼 가치가 있을까? 질문이 황당한가? 답은 더 황당하다. 는 황당한 질문과 황당한 답을 가능하게 하는 선사들의 말과 생활에 관한 이야기다.
선사의 어록이나 일화는 너무 많고 깊은 뜻이 있어 오히려 황당무계하고 알쏭달쏭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1천 년 이상이라는 세월의 저편에서 벌어진 이야기들이니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저자 원철 스님은 “선사들의 독특한 세계관과 현실관과 그 안에 담긴 생명력”이야말로 철학과 사조를 잃어 방황하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약이라 말한다. 더 나아가 이 책이 명상 수행의 길을 안내하고 일상의 종교로서 선을 회복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바람도 서문에 적고 있다.
종교인이 제 종교를 널리 알리고 신도를 모으기 위해 강연을 하거나 책을 쓰는 일은 흔한 일이다. 또 대부분 제 종교의 틀을 벗어나기 어려운 게 종교 관련 서적의 한계다. 적어도 를 읽을 때는 이런 한계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77개 일화는 불교적 세계관을 말하고 있지만, 산다는 것의 본질에 대해 의심을 가져본 이들에게는 삶에 좌표가 될 만한 것들이다. 게다가 ‘부처님을 믿어야 극락 간다’라는 문장은 한 줄도 없으니 종교적 문제로 책의 선택을 주저할 이유도 없다.
책에 소개되는 ‘깨우친 사람’ 선사들의 이야기도 깨우침보다는 사람에 방점을 두었다. 우리네 범인들을 주눅 들게 만드는 칼날 같은 엄격함이나 고행에 가까운 수행법 대신에 고뇌하고 고통스러워하면서 인정에 흔들리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정겹고 오히려 안쓰러워 때로는 책 속으로 뛰어들어 손을 잡아주고 싶게 하기도 한다.
이미 한국 불교의 글쟁이로 소문이 난 저자의 글솜씨에 자신을 서울에 사는 ‘수도’승(首都僧)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준비된 재치가 더해진 글은 경쾌하게 읽힌다. 현대의 젊은이들이 자주 쓰는 시쳇말은 물론이고 유행가 가사까지 넘나들며 선사들의 일화에 현대의 생활을 접목해놓아 ‘촌철살인의 묘와 배꼽 잡는 해학’이라고 달아놓은 표지의 문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과 ‘노빈손 시리즈’ 등으로 이름을 날린 만화가 이우일의 삽화는 어려운 부분에 대한 이해를 돕고 승가의 눈이 아닌 세상의 눈으로 본 선사들의 모습은 어떠한 것인지도 함께 알려준다.
책이 소개하는 77개 이야기는 수평적으로 나열된 듯하면서도 책을 펴낸 목적을 다하기 위한 상관관계를 갖는다. ‘부처는 선사다’라는 과감한 선언으로 달마와 혜능으로 이어지는 33조사의 법맥과 계보를 소개하면서 불교 선종의 배경과 의미가 무엇인지를 간결하게 정리해준다. 이어지는 일화 역시 어렵기로 알려진 간화선이 무엇인지, 화두가 무엇인지, 법거량은 또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를 일러주려는 방편들이다.
일반인들은 좀처럼 알기 어려운 선가의 생활을 글 곳곳에서 드러내는 것도 독자들이 책장을 덮지 못하게 만드는 방편 중 하나다. 선가에서 화장실을 이르는 말인 정랑은 ‘가장 깨끗해야 할 집’을 뜻한다는 이야기를 비롯해 공동생활을 위한 규칙 등 책 곳곳에서 읽히는 선방의 풍경과 생활상은 독자의 호기심을 채워줄 뿐 아니라 현대 생활에서도 응용할 수 있는 귀한 정보이기도 하다.
“신화는 우리의 현재다”
는 ‘불경’(두 가지 뜻 모두를 이해하시라)스러운 책이다. 불조 석가모니 부처를 선사라고 정의 내리고 선사를 ‘무서운 아줌마 선지식’에게 무참하게 깨지는 번민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그려놓고도 모자라 “선종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금인 선을 팔기보다는 잡화를 판다”는 비유와 함께 “잡종으로 선종을 표방한다면 양두구육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국 불교와 수행자들에게 할을 외치고 방을 든다. 그럼에도 한국 불교의 대표 율사로 손꼽히는 무비 스님은 추천의 글을 쓰고 ‘비단 위에 꽃을 보태는 일이로다’라는 극찬의 제목을 붙였다. 왜일까? “가치관의 혼란으로 갈팡질팡하는 이 시대 사조를 올바로 세울 대안으로서 특히 선불교가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를 위해 “앞선 감각과 표현으로 대중에게 쉽고 친절하게 나누어줘야 한다”는 무비 스님의 생각에 한국 불교뿐 아니라 시대가 동의하기 때문일 것이다.
윤승일 기획위원 nagne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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