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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전망대에 낭만뿐이랴

5개 다리에 9개의 조망 공간,
단절된 공간에 이제야 공공적 접근 방식이 시도되는구나
등록 2009-07-10 16:32 수정 2020-05-03 04:25
건축가 황두진씨가 설계한 한남대교 전망대 겸용 통로. 사진 박영채

건축가 황두진씨가 설계한 한남대교 전망대 겸용 통로. 사진 박영채

다리처럼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건축물도 없다. 헤어진 연인들이 다시 만나는 곳은 왠지 다리여야만 할 것 같고, 도시의 낭만과 해질 녘 정경을 즐기려면 홀로 다리 난간에 기대야만 할 것 같지 않은가.

그럼 서울에선 어떤 다리에서 그렇게 해볼 수 있을까? 그럴 곳이 있기나 한가 싶어 후보를 꼽기가 어려운데, 역으로 후보에서 빼야 할 다리부터 꼽기는 아주 쉽다. 스물 몇 개나 되는 한강다리들 말이다. 한강다리를 걸어 건너본 사람들은 안다. 어쩌다 한번 건너는 것은 분명 해볼 만한 경험이겠지만, 자주 할 경험은 절대 못 된다는 것을. 운명의 약속 장소를 정해야 한다면 30분 넘게 걸어야 할 한강다리보다는 차라리 3초면 건널 청계천 징검다리가 더 낫다.

왜 그럴까? 한강다리들에는 ‘휴먼 스케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 구조가 사람 위주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처음부터 차들을 위한 다리로 설계된 다리들이다.

그렇다고 이게 이렇게 살풍경하게 설계를 한 공학자들이나, 그런 다리를 추진한 공무원들의 전적인 잘못만은 아니다. 한강다리들이 비인간적이 된 가장 ‘큰’ 이유는 한강이란 강이 애초부터 너무 ‘큰’ 탓이다.

세계 주요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들 중에서 한강처럼 큰 강은 실로 드물다. 강폭이 km 단위가 되다 보니 애초부터 아기자기하고 인간적인 크기의 다리를 세우기는 불가능하다. 연인들이 만나는 파리의 퐁뇌프 다리나 절로 철학을 하게 될 것 같은 하이델베르크 다리가 왜 우리나라에는 없냐고 따질 수는 있어도 왜 한강에는 그런 다리가 없냐고 따져선 안 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한강둔치라는 공간과 한강다리라는 구조물을 시민들의 발걸음으로부터 떨어뜨려놓은 것은 분명 관의 잘못이자 무지이자 실수였다. 거대한 다리라도 사람들이 건너다닐 수 있게 되면 애정이 생기고, 이야기가 나오고, 그 결과 의미 없는 ‘공간’에서 감정이 융합된 ‘장소’로 승화될 수 있다. 그런 가능성을 잘라버린 것이 한강과 한강다리 양쪽 모두의 접근을 어렵게 만들어버린 군사독재 시절의 한강정비 사업이었다.

최근 한강다리와 한강둔치로 가는 새로운 통로가 생겼다. 7월1일 한남대교에 문을 연 전망쉼터를 시작으로 앞으로 5개 한강다리에 9개의 새로운 건축물이 들어선다. 다리 중간에 작은 전망 공간이 있고, 그 아래로는 한강변으로 걸어 내려가는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이어진다. 잠실대교와 한남대교는 건축가 황두진씨, 마포대교와 한강대교는 최욱씨, 양화대교는 권문성씨가 맡았다. 그리고 그 앞에는 버스정류장이 생긴다. 이제 모험하듯 다리까지 접근해 걸어가지 않고 버스로 다리 중간에 내려 한강을 즐기고 한강둔치로 내려갈 수 있게 됐다.

이 새로운 건축물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한결같이 낭만적으로 강을 바라보며 커피 한잔 즐길 수 있는 쉼터나 카페, 전망대로 소개하고 있다. 보도자료를 내는 서울시 역시 전망대라고 강조한다.

물론 그런 측면이 있지만 그 본질은 우리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사업의 목적이자 의미는 사업 기획안 제목 그대로 ‘한강 교량 보행 환경 개선 사업’이란 점이다. 군사독재 시절의 한강 프로젝트는 한강둔치라는 서울에서 가장 거대한 단일 외부 공간을 낳았다. 이 단절된 공공 공간에 시민들이 접근할 수 있는 공공적 방식을 이제야 시도한 점, 그게 저 전망대로 보이는 건축물의 진정한 기능이자 의의다.

새로 등장한 저 통로 겸 전망대 구조물들이 시민들에게 얼마나 한강과 낭만을 이어줄지는 아직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공공적인 의미 이상으로 저 시설물의 건축적 특성도 흥미롭다. 외국 도시에는 한강처럼 큰 강이 없어 한강다리처럼 큰 다리도 없고, 당연히 저런 연결통로가 없다. 저 독특한 시설물은 그래서 너무나 한강적인, 그리고 한국적인 프로젝트다. 한강이 있어 생겨난, 한강다리에만 있을 수 있는 새로운 건축 유형이다. 그 규모는 작아도 그 속에 담긴 인문지리국토환경건축공학적인 함수는 참으로 복합적이고 한강적이다.

구본준 한겨레 기획취재팀장 blog.hani.co.kr/bon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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