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 여행하기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한국 문화의 오늘과 내일을 키워드로 들여다보는 책이 나왔다. (김기봉 외 지음,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펴냄, 1만6천원)는 격주간 출판전문지 200호 특집을 다시 편집한 책이다. 책의 만듦새가 깔끔해서 손해본다는 느낌은 들지 않을 것 같다. 29명의 각계 전문가가 키워드를 하나씩 맡아서 역사적·사회적 맥락, 변천사, 미래 전망 등을 썼다. 비언어 퍼포먼스부터 저작권까지 책에 실린 키워드들은 그리 기발한 것들은 아니다. 그러나 선별해서 모아놓으니 한국 문화의 지도와 청사진을 동시에 보는 듯한 느낌이다. 실은 그 맛이 꽤 쏠쏠하다. 다만, 선별의 기준과 방법이 무엇인지 궁금할 뿐이다.
필자들이 각개약진하다 보니 글의 재미와 수준이 들쭉날쭉하다. 순서대로 읽을 필요가 전혀 없는 책이다. 두서없이 주요 키워드들을 살펴보자.
김봉석씨는 마니아 현상을 문화 수용자의 각성뿐 아니라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통하여 문화산업의 재편이 이루어지는 현상“으로 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마니아는 ‘외톨이’라는 비극적 존재이기도 한데, 이 폐쇄성을 돌파하는 한 가지 방법은 수용자의 틀을 깨고 나와 직접 생산자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다양한 비주류 문화를 만들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일본의 이나 한국의 ‘시완레코드’, 일본 문학 열풍 등이 그 사례다. 21세기에 주류문화는 가볍고 스피디해지는 반면, 마니아들이 주도하는 비주류 문화는 더 치밀해진다.
‘종교’라는 키워드를 맡은 김종락씨는 통계청의 ‘2005 인구주택 총조사’에서 천주교 인구가 크게 증가하고 기독교 인구가 감소한 사실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물질에서 벗어나 영성을 추구하는 천주교의 이미지가 기독교보다 매력적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21세기는 영성의 시대다. 불교계뿐 아니라 최근 개신교도 수행 프로그램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명상, 요가, 단전호흡 같은 심신 수련법이 주목을 받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는 물론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수행이 소비로 전락하고 개인적인 행복 찾기에만 매달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들려온다.
“여기는 드라마 왕국. 24시간 드라마에 점령당한 국가, 대한민국이다.” ‘드라마’를 맡은 백은하씨의 분석이다. 그는 한국 드라마의 전환점으로 1990년대 말 로 ‘컬트 드라마’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노희경을 든다. 노희경 이후 마니아 드라마와 의 성공으로 ‘드라마 폐인’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된다. 한편으로 한국 드라마를 히트 상품으로 만든 건 였다. 그러나 2000년이 넘어가면서 신파 일변도의 드라마는 다양성의 옷을 입게 되는 데, 그 신호탄이 다. 백은하씨는 이제 원하는 드라마를 원하는 장소에서 ‘다시보기’하는 세대가 등장한 만큼 시청률이라는 낡은 잣대를 버리고 새로운 형태의 ‘시청집중도’ 단위를 만들 것을 제안한다.
익스트림 스포츠의 인기를 분석한 김화성씨의 글도 재미있다. 2000년대의 아이들은 도시에서 스릴을 즐긴다. ‘야마카시’라는 신종 스포츠가 프랑스에서 건너와 신도들을 모으고 있다. 아이들은 맨몸으로 고층 건물을 기어오르고 뛰어넘는 고수들을 보며 자지러진다. 어른들도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기 바쁘다. 마라톤에 싫증 나면 울트라 마라톤이나 철인 3종 경기에 빠진다. 그도 시시해지면 본격적으로 극한 마라톤에 도전한다. 이 여정의 종착역은 역시나 히말라야다. 요즘 아이들은 ‘더 짜릿짜릿, 더 아찔아찔한’ 것을 즐기고, 어른들은 ‘더 힘들고 더 자극적인 것’을 찾는다. “10년 후엔 더!더!더! 그럴 것이다.”
위에 언급되지 않는 키워드들을 쭉 펼쳐놓으면 이렇다. 비언어 퍼포먼스, 미술품 쇼핑, 신화, 독립영화, 현대사진, 인터넷 만화, 공공디자인, 놀이, 탈민족, 노장, 양성평등 문화, 미래의 가족, 먹을거리, 잘 죽음, 미래의 문학, 집, 행복산업, 뇌, 1인 미디어, UCC, 탈학교, 외국어 권력, 미디어 컨버전스, 저작권. 익숙하지만 짧은 분량에 구겨넣기엔 만만치 않은 주제들이다. 그래서 좀 무리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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