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컵커피의 고급스런 유혹과 차 음료 광고의 날씬한 모델들, 소비자를 흔드네</font>
▣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찬 음료 한 잔이 생각나 근처 편의점을 찾는다. 냉장 진열대를 열어 눈으로 제품들을 쭉 훑어본다. 카페라떼, 프렌치카페, 스타벅스 디스커버리즈, 17차, 참옥수수수염차, 보성 여린잎 녹차, 블랙빈테라피, 두번째 우려낸 녹차만 담았다, 건강미인차, 부드러운 L녹차…. 이름도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면서도 비슷한 제품들. 최근 냉장 컵커피와 차 음료 시장의 경쟁이 거세지면서 편의점이나 할인마트 음료 진열대에는 이런 제품들이 즐비하다. TV를 켜면 경쟁은 더 후끈하게 다가온다.
마시자마자 날씬해질 것 같은 느낌의 차 음료부터 분위기 있는 남자를 만나게 될 것 같은 컵커피 광고까지 많기도 참 많다. 이 ‘차디찬’ 마실거리들의 유혹은 소비자의 마음을 흔들었다. 소비자의 지갑을 열면서 컵커피와 차 음료, 두 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지하철 안에서 500원짜리 커피 우유가 아닌 1천원짜리 컵커피를 빨대로 쪽쪽 빨아먹고 있으면 뭔가 더 있어 보이는 것 같다는 남미경(25)씨. 몇 달만에 지하철 매점에 들른 그녀, 컵커피 생각이 나 ‘카페라떼’에 손을 뻗었다. 당당히 1천원을 내자 주인 아주머니 왈, “1700원인데요”. 헉! 다시 보니 손에 든 카페라떼는 고급스럽게 검붉은빛을 내뿜으며 ‘바리스타’라는 금빛 이름을 반짝였다. ‘그냥’ 까페라떼를 사려니 그것도 이젠 1200원이란다. 기왕 집어 든 것을 사기로 하고 떨리는 손으로 1천원을 더 꺼낸 미경씨. 오늘 아침에 사먹은 토스트보다 더 비싸단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테이크아웃의 고급 취향을 슈퍼로
최근 컵커피 생산업체들이 기존 컵커피의 프리미엄 제품을 내놓고 스타벅스까지 컵커피 시장에 가세하면서 ‘고급’ 컵커피 바람이 불고 있다. 이미 지난해에 남양유업이 ‘프렌치카페 골드라벨’을 1200원에 선보였다. 살짝 올랐던 컵커피 가격은 곧 상승 기류에 확실히 휩싸였다. 매일유업은 기존 ‘카페라떼’에 비해 양이 약 35% 늘어난 250㎖짜리 ‘카페라떼 바리스타’를 1700원에 내놨다. 스타벅스가 내놓은 컵커피인 ‘스타벅스 디스커버리즈’(200㎖)도 이에 뒤질세라 1800원이란 가격으로 판매를 시작했다. 롯데칠성도 아라비카산 원두를 사용한 ‘칸타타’의 컵제품을 1200원에 선보이겠다며 프리미엄 컵커피 시장 진입을 알렸다.
그동안 컵커피 시장 규모는 1100억∼1200억원대로 매일유업의 ‘카페라떼’와 남양유업의 ‘프렌치카페’가 양분하고 있는 구조였다. 올해로 출시 10년을 맞았다는 ‘카페라떼’의 경우 매일 30만~40만 개가 팔려 그동안 팔린 제품 수만도 5억 개를 넘어섰다고 한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는 컵커피가 2억2천만 개 정도 팔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는 제품 한 개당 소비자가를 1천원으로만 가정해도 약 2200억원 규모가 된다. 여기에 ‘프리미엄’의 이름을 달고 컵커피들이 저마다 가격을 올리고 있으니 시장 규모는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가격은 어떻게 책정된 것일까. 컵커피 시장에서 가장 비싼 ‘스타벅스 디스커버리즈’를 내놓은 동서식품은 “원료와 포장 디자인·재질 면에서 기존 제품에 비해 뛰어난 프리미엄 제품인데다 유통기한을 2주로 잡아 유통비용도 더 소요된다. 이러한 점들을 반영해 판매가격을 책정했다”고 설명한다. 기존 컵커피 제품의 가격대가 1200~1700원까지 다양하게 형성되어 있는 것을 감안하면 적정한 수준이라는 얘기다. 다른 업체들도 고급 원료 사용을 통한 품질 향상을 가격 상승의 이유로 든다. 하지만 일부에선 “컵커피 업체들이 슬그머니 가격을 올리고 ‘프리미엄’이란 이름으로 포장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불만도 제기되고 있다. 네티즌들이 인터넷에서 “새로나온 00 컵커피 맛이 어떠냐, 비싼 값을 하냐”는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날씬한 몸매? 차 음료에게 물어봐
강의실에 들어갈 때 생수 한 병씩을 사들고 가던 민은정(21)씨에겐 요새 차 음료수가 ‘상비품’이 됐다. 날씬한 여대생의 이미지에 잘 맞는 예쁜 모양의 페트병과 마시고 나면 깔끔한 차의 느낌이 좋아서란다. 차 음료를 입에 달고 사는 민씨는 “마시는 것만으로 살도 빠지고 건강해지니 더운 날엔 시원한 차 음료로 1석3조의 효과를 보는 것 아니냐”고 되묻는다. 그동안 광고가 마음에 들고 입맛에도 맞던 한 혼합차 음료를 마셔왔는데 얼마 전부터는 얼굴을 갸름하게 해준다는 옥수수차 음료에 빠져 있다.
지난 2006년 차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60%가량 커진 1600억원대. 올해는 이보다 50% 늘어난 2400억원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자리싸움도 치열했다. 재작년까지 동원F&B의 ‘보성녹차’가 은근하게 1위를 지켜오다가 지난해에 남양유업의 ‘17차’에 그 자리를 빼앗겼다. 올해는 이름을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신제품이 출시돼 업계 관계자들도 “피 튀기는 자리잡기 싸움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최근 차 음료 시장의 트렌드는 ‘웰빙’과 ‘기능성’이다. 최근 동원F&B가 출시한 ‘부드러운 L녹차’도 다이어트 효과를 강조했고, 코카콜라의 ‘맑은 하루녹차’는 스트레스를 진정시키는 알로에 베라 기능을, 해태음료의 ‘까만콩차’는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효과를 강조했다. 이외에도 광고 이미지만으로도 V라인의 갸름한 얼굴이 된다며 다이어트 효과를 강조하는 광동 ‘옥수수 수염차’나 여전히 전지현의 날씬한 몸매를 내세우는 ‘17차’ 등이 ‘기능성’의 느낌을 준다. 동아오츠카의 ‘블랙빈테라피’의 경우엔 아예 ‘노화방지·변비개선·모발건강·탈모방지’ 등 주재료인 콩의 모든 장점을 음료의 ‘기능’으로 설명하고 있다. 날씬한 몸매는 기본이다.
고급? 다이어트? “그냥 물 마셔”
이렇게 광고에서 보여주는 컵커피와 차 음료의 이미지는 얼마나 현실적일까. 우선 ‘고급스러운’ 컵커피를 보면, 액상 커피의 경우 커피 추출액과 파우더를 첨가하게 된다. 원두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는 ‘스타벅스 디스커버리즈’의 경우 커피 추출액이 14.81%, 커피 파우더가 0.2%다. 나머지는 우유(33%)와 백설탕, 유크림, 유화제 등으로 채운다. 매일유업 ‘카페라떼 바리스타’도 원유(42%)에 커피추출액(16.25%)을 넣은 뒤 커피향 합성착향료, 천연바닐라향 등의 향료를 넣어 맛과 향을 냈다. 의 저자 안병수씨는 “따로 향료를 첨가하지 않은 상태에서 우유에 커피 추출액을 이정도로 적게 섞었을 때 원두만 바뀌었다고 일반인 중 그 맛의 차이를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며 “결국 맛을 내기 위해 커피 가루(파우더)도 섞고 향료를 첨가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설탕, 유화제, 유크림 등을 우유·커피 추출액 등과 대량으로 섞는 과정에서 공기 접촉이 많을 수밖에 없어 균질화가 일어난다. 이는 신선한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닌 이상 액상 커피 제품의 한계일 수도 있고 ‘고급’이라 부른다고 별 차이는 없다”고 덧붙였다.
차 음료의 경우 이란 책을 통해 “녹차는 기호품이 아닌 상비품”이라는 주장을 하는 오구니 이타로와 같은 이가 있지만, 물처럼 마셔대는 차 음료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서울대 가정의학과 유태우 교수는 차 음료 광고들이 말하는 ‘효험’에 대해 ‘거짓말’이라고 지적한다. 우선 녹차에서 체중을 뺀다고 주장하는 성분만을 농축해 약을 만들어도 아직까지 체중이 빠진 사례가 없다는 점을 든다. 하물며 그런 성분이 훨씬 적게 함유된 차 음료를 통해 체중을 줄이는 효과를 보려면 얼마나 마셔야 하겠냐고 반문한다. 실제 효과가 있어서가 아니라 차 음료의 ‘이뇨 작용’, 즉 소변을 보고 싶게 하는 기능 때문에 일시적으로 몸이 가벼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는 있다고 한다. 하지만 차 음료를 통해 이런 ‘이뇨 작용’이 너무 활발해지면 방광이 민감해져 괜히 화장실만 자주 가게 되는 효과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몸속 수분만 빼앗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얘기다. 녹차 한 잔은 몸에서 물 한 잔 반 정도를, 커피 한 잔은 두 잔만큼의 물을 빼낸다고 한다. 최근 옥수수차가 더 살을 잘 빼주는 것처럼 홍보하는 까닭은 그 차가 녹차보다 이뇨제 효과가 더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 교수는 오히려 차 음료를 자주 마시는 것이 살을 찌게 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마신 뒤 아무 맛이 남지 않는 물과 달리, 차 음료나 커피 등 마신 뒤 입에 남는 맛이 있는 음료들은 입맛을 자극해 결국 뭔가를 더 먹게 만든다는 것이다. 건강을 생각하고 살을 빼고 싶다면 차라리 ‘그냥 물’을 많이 마시라고 유 교수는 조언한다. ‘기능성’을 내세운 차 음료에 대한 이런 비판에 솔직한 대답을 내놓은 업계 관계자도 있다. 최근 ‘블랙빈테라피’를 내놓은 동아오츠카 관계자는 “영양학적으로 따지는 것보다 소비자들이 날씬한 이효리의 제품 광고를 보면서 운동도 하고 건강해지는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이것이 ‘피그말리온’ 효과다”라고 설명했다니 그 한계를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스타벅스 본토 미국에도 없는 ‘컵 커피’
사실 냉장 컵커피 시장이 형성된 나라는 현재 한국 이외에 일본과 대만 정도다. 한국의 유행을 앞서 발견할 수 있다는 일본 시장에서는 지난해 연간 5억8천만 개 정도가 판매돼 약 6500억원의 시장 규모를 보였으며 대만은 한국의 3분의 1 규모인 연간 7천만 개, 700억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스타벅스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냉장 컵커피 시장은 활성화돼 있지 않다. 한국에서는 ‘커피 우유’ 정도로 머무르던 커피맛 유제품들이 순식간에 ‘고급스런’ 브랜드로 우리 곁에 다가와 컵커피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컵커피 제조사들이 타깃으로 삼는 소비자층은? 동서식품 관계자는 “‘스타벅스 디스커버리즈’의 주 소비자층은 20~30대 남녀 대학생과 직장인”이라고 말한다. 젊은 층의 소비가 컵커피 시장 형성의 주춧돌인 셈이다.
차 음료 시장 역시 일본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현재 일본인들은 70% 정도가 일주일에 1회 이상 차 음료를 구매하고 있는데 특히 30대 남성과 20대 여성의 소비가 많다고 한다. 동원F&B 홍보담당자는 “일본에서 최근 혼합차의 유행이 지나가고 다시 한 번 정통 차 종류의 트렌드가 찾아온 것으로 봐서 우리 시장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날씨가 점점 더워지고 있다. 이제 냉장 컵커피와 차 음료들은 더욱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갈 것이다. 이 순간, 슈퍼에서 무심코 컵커피나 차 음료를 집어들고 있다면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이 한 잔의 음료수에 그대가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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