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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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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혼’

등록 2007-05-04 00:00 수정 2020-05-03 04:24

▣ 안병수 지은이 baseahn@korea.com

“제 취미요? 요리예요. 저의 ‘필살 메뉴’는 김치찌개와 된장찌개죠.” 한 연예인의 음식 솜씨가 언론에 소개된 적이 있다. 주인공은 인기 정상의 남성 MC. 팬 서비스 차원의 의례적인 발언이겠거니 했는데 이어지는 대목에서 그의 요리 실력이 범상치 않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찌개에선 육수가 중요해요. 저는 늘 남해안의 죽방멸치를 우려내어 육수를 만들죠. 또 요리는 순발력뿐 아니라 지구력이 필요해요. 한소끔 끓으면 중불로 30분 정도 뭉근히 익히는 게 제 노하웁니다.”

음식의 맛을 내는 데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일본 도쿄의 하토리영양학교 교장인 하토리 유키오 박사는 ‘간·국물·가열방법’을 기본 3요소로 정의한다. 이 세 요소가 이상적으로 조화를 이루어야만 최상의 맛이 나온다는 것이다. 육수가 아무리 훌륭해도 소금이 덜 들어갔거나 불 조절이 잘못된 경우, 또는 불 조절이 비록 잘됐어도 육수에 문제가 있든가 간이 안 맞으면 제 맛이 나지 않는다는 게 하토리 박사의 설명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소금은 종류가 중요하다. 바다의 미네랄이 살아 있는 천연염이어야 한다.

이 이론에 비춰보면 앞에서 언론이 소개한 인기 MC의 노하우 속에는 두 가지 키워드가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죽방멸치 육수’와 ‘중불로 30분’이 그것. 여기에 간을 맞추는 소금을 추가하면 3요소가 완성된다. 국물과 가열방법의 중요성을 꿰뚫고 있는 그인 만큼, 소금의 역할 역시 섭렵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가장 훌륭한 조미료는 소금.’ 요리책의 첫 장에 나오는 상식 아닌가.

간·국물·가열방법이 만드는 ‘요리 3중주’는 비단 찌개에서만 요구되는 덕목이 아니다. 전세계의 빵 마니아들을 매료시키고 있는 프랑스의 푸알란(Poilane)빵을 보자. 사용되는 원료는 오직 세 가지, 밀가루·누룩·소금뿐이다. 하지만 빵 맛은 기막히다. 비결이 무엇일까. 첫 번째 특징이 누룩이다. 대대로 내려오는 천연누룩으로 자연발효를 시킨다. 두 번째 특징은 독특한 오븐. 흙으로 만든 화덕에서 장작불로 열을 만든다. 세 번째 특징이 바로 소금이다. 프랑스 서해안에서 생산되는 전통 천일염만을 고집한다.

이와 같은 푸알란빵의 세 가지 특징은 ‘요리 3요소’라는 캔버스 위에 펼치면 정확히 일치한다. 천연누룩은 ‘국물’의 노하우에, 장작불 화덕은 독특한 ‘가열방법’에, 전통 천일염은 ‘간’을 맞추는 재료에 각각 해당하지 않는가. 결국 찌개나 빵이나 맛을 내는 원천 기술은 통한다는 이야기다.

맛은 음식의 혼이다. 문제는 오늘날 그 ‘음식의 혼’이 요리 이론으로부터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백사장의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가공식품들, 그 다양한 식품들의 ‘혼’은 태생부터 전혀 다른 엉뚱한 곳에서 나온다. 첨가물 창고가 그곳이다. 그곳에는 인공조미료나 향료, 단백가수분해물 같은 이상한 물질들이 보관되어 있다.

일본의 맛 전문가가 제안하는 요리 3요소는 가공식품 공장에서뿐 아니라 요식업소의 주방, 각 가정의 부엌에서도 곱씹어봄직하다. 그것은 식품의 맛을 창조하는 사람들에게 이제까지와는 다른 시각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도록 주문한다. 해로운 첨가물로 맛을 낸다는 발상은 이제 박물관으로 보내라고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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