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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 천만백반 셰프 난리난 진짜 밥맛 …새벽 5시마다 하는 것은 ○○ 준비

66살 안경숙 셰프의 요리 루틴·장사 루틴…“양심껏 하는 삶은 안 넘어져”
등록 2024-10-11 17:56 수정 2024-10-13 08:17
푸른 산에 둘러싸인 밥집 건물 앞에 선 안경숙 요리사. “많이 알아봐요. 그거 뭐 그렇게 난리고”라며 웃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푸른 산에 둘러싸인 밥집 건물 앞에 선 안경숙 요리사. “많이 알아봐요. 그거 뭐 그렇게 난리고”라며 웃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30여 년 전 대구에서 월세 40만원짜리 조그만 백반집으로 장사를 시작했다가, 이제는 6개 지점을 가진 ‘엄마밥상’ 대표가 된 안경숙(66) 요리사. 그는 요즘 가장 뜨거운 예능 프로그램인 ‘흑백요리사’에서 ‘밥 없어서 떨어진 천만백반 셰프’로 유명하다. 안 대표는 굴전, 매생잇국, 굴김치 등을 방송에서 차렸는데, 심사위원인 안성재 셰프는 “서울에서 먹을 수 없는 섬세한 맛”이라면서도 ‘밥이 없어서 어떤 건 짜고 어떤 건 싱겁게 느껴진다’며 탈락 평가를 내렸다. 방송에서 미처 다 보여주지 못한 ‘60대 여성 셰프’의 이야기가 궁금해, 2024년 10월8일 경북 칠곡군에 있는 ‘엄마밥상’ 본점을 찾아갔다. 점심시간 동안 푸른 산에 둘러싸인 밥집 건물로 차가 80여 대 밀려들었다.

건강하고 깨끗하고 맛있고 귀한 ‘집밥’

—흑백요리사 방송이 워낙 인기 많아서, 알아보는 사람이 많겠습니다.

“많이 알아봐요. 그거 뭐 그렇게 난리고.(웃음) 손님이 많이 늘었어. 원래가(보통 오는 손님 수가) 우리한테 딱 맞았는데 지금 배로 많아졌어요. 직원들이 많이 지쳤어요. 원래는 평일에 하루 300~350인분, 주말에는 하루 700~800인분 팔았는데(팔공산 본점 기준), 그 배가 되니 여기저기 신경을 써야 되니까.” 

—안성재 셰프가 탈락 평가를 하는 모습이 화제가 됐는데, 침착하게 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는 나간 것만 해도 ‘감사합니다’ 생각하지, 내가 20등 안에 들어가겠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어요. 그렇게 요리 잘하는 사람이 많은데 내가 이 산골짜기에서 장사해가지고 거기 갔다는 자체만 해도 감사하지. 방송 보면 셰프님들이 위로 쭉 다녔잖아. 내가 요리하는 위에 셰프님이 한 6명 있었는데, 그분들이 응원을 많이 해줬어요.”

—방송 보고 온 손님들이 와서 뭐라고 얘기합니까?

“방송 보고 온 사람들이 ‘하나도 짜도 안 하구만 짭다 해요. 한 개도 안 짠데 왜 떨어트리노’ 그러지.(웃음) 몰라. 우리 나이 많은 사람들은 좀 짭짤한 걸 좋아하고 요새 젊은 사람들은 또 싱거운 걸 좋아하고. 근데 방송에서 긴장이 돼가지고 있잖아. 내가 아무리 긴장을 안 하려 해도 손도 빨리 안되고. 또 굴이 우리 집에 맨날 오는 굴이라면 더 괜찮았을 텐데, 그날 내가 맨날 받는 칠성시장 굴집(경남 통영 굴을 파는 가게)이 아니라 통영 산지에서 바로 굴을 받았는데 굴이 너무 굵고 뻗는 거예요. 너무 굵으면 오히려 맛이 없거든. 전 할 때 좀 잘아야 더 맛있어.”

반찬은 매일매일 정갈하게 만든다. 직원들이 아침에 나물, 무침 같은 밑반찬을 만들고 고기 볶고 고등어을 굽고, 전은 그때그때 구워 낸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반찬은 매일매일 정갈하게 만든다. 직원들이 아침에 나물, 무침 같은 밑반찬을 만들고 고기 볶고 고등어을 굽고, 전은 그때그때 구워 낸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기자도 1만6천원짜리 엄마상차림과 2만원짜리 굴밥상차림을 먹어봤다. 커다란 테이블이 반찬으로 가득 찼다. 서울에선 이 가격에 절대 맛볼 수 없는 한 상이다. 처음엔 굴솥밥과 함께 나온 김가루와 깨소금에 살짝 비벼 먹어보길 권한다. 김과 깨소금 덕에 굴과 쌀밥 맛이 한층 고소하고 깊어진다. 그 뒤엔 나물 반찬과 양념간장을 곁들여 취향껏 진하게 비벼 먹으면 된다.

다음은 반찬을 하나씩 맛볼 차례다. 노릇하게 익은 굴전을 그냥 먹어도 보고, 푸릇한 채소가 들어간 신선한 양념간장에 찍어도 먹어본다. 그리고 고소하게 버무린 브로콜리, 생선구이, 제육볶음, 편육, 양념게장, 된장찌개까지. 맛이 심심한 것부터 진한 것까지 골고루 즐길 수 있다. 막걸리가 생각나는 맛이지만, 시원한 사이다도 좋다. 특이한 맛이 아닌, 우리가 아는 그 맛. 어느 지역 출신의 누가 먹어도 맛있게 한 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집밥이다. 건강하고 깨끗하고 기본기가 탄탄한 밥상이라 ‘엄마밥상’이란 가게 이름이 꼭 어울린다.

매일 아침 나오며 “산신령님 고맙습니다”

—굴전이 그냥 먹어도 맛있는데 간장 찍어 먹으니 저는 더 맛있더라고요.

“간장 같은 게 중요해요. 근데 백반 하는 사람들이 그걸 몰라요. 양념간장 종지 안에 야채들이 다 싱싱해야 되거든. 그런 작은 게 중요한데, 어떤 식당 가보면 간장 속에 야채들이 다 색깔이 죽어가지고 푸르죽죽해. 그럼 밥맛이 다 떨어진다. 밑반찬들이 다 신선해야 해. 우리는 편육만 일주일에 한 번 삶아서 냉동하고 나머지 반찬은 다 그날그날. 직원들이 아침에 나물, 무침 같은 밑반찬 다 만들고 10시에 점심 먹고 나면 그때부턴 고기 볶고 고등어 굽고. 전은 그때그때 구워서 바로바로 내고. 사람들 역할이 다 나뉘어 있어요. 우리는 반찬 가짓수도 많고 그릇도 많으니까 다른 식당보다 훨씬 힘들어요. 그래도 직원들이 다 몇 년째 일한 분들이고, 그게 고맙지.”

—안성재 셰프가 ‘서울에서는 먹을 수 없는 맛’이라고 평가했는데, 주재료 준비는 어떻게 하시나요.

“대구 칠성시장에 굴집이 있어요. 그 집에서 통영에서 굴을 받아 우리를 갖다준다. 거기서 받아 쓴 지 한 30년 됐어요. 맨날 받는 집이 최고 싱싱하지. 우리가 굴을 살짝 데쳐보면 오래된 건 냄새가 나요.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장을 안 보는 이유가) 시장에 내놓은 굴은 그게 안 팔리면 이틀이 됐는지 얼마가 됐는지 모르거든. 얼음 채워갖고 계속 팔잖아요. 우리는 보통 굴을 하루에 4㎏짜리 10박스 정도 써왔거든요. 그렇게 싱싱한 굴이 들어와야 오늘 하루 일이 되는 거야. 그리고 굴이 들어오면 손질할 때 껍데기가 안 깨끗한 게 한 개씩 붙어 있을 때가 있는데 그걸 잘 떼야 하고. 손질이 힘들어.”

—원래 대구 팔공산에서 백반 요리를 하셨나요?

“원래 고향은 경북 의성. 결혼해서 대구 와서 시내에서 장사하다가 이 자리로 온 지는 10년 다 돼가요. 30년 전에 처음 장사할 때는 매생이굴국밥으로 시작했거든요. 친구가 식당 한번 해봐라 해가지고 한 달에 40만원 월세 내는 데서 시작했어요. 그때 내가 38살쯤이었어요. 애들 고등학교 다닐 때였나. 우리 신랑이 아파서 일찍 죽고부터 시작했거든. 내가 혼자 사니까 주위에서 ‘혼자 살면 남자 만나고 돌아다니면서 장사 잘 못한다’ 즈그끼리 그런 말 해도, 나는 일절 추한 꼴 안 보인다 생각하면서. 젊을 때는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았지. 내가 반찬 다 해가지고 공장 같은 데 배달도 다니고.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일 시작해서 오후 8시 좀 넘으면 일이 끝나요. 그럼 가게에서 자고 하루에 16시간 넘게 일하면서, 잠자는 시간 빼고는 다 일하면서. 이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쉬는 날을 만들어서 정해놨는데, 그때는 쉬는 날도 없이 살았지.”

‘시그니처 메뉴’인 굴전을 부치고 있는 안경숙 요리사. “전 구울 때 사람들 누르는데 굴전 구울 땐 누르면 안 된다”고 말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시그니처 메뉴’인 굴전을 부치고 있는 안경숙 요리사. “전 구울 때 사람들 누르는데 굴전 구울 땐 누르면 안 된다”고 말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혼자 요리조리 머리 써가며 요리 익혔지

—언제부터 장사가 잘됐나요?

“장사를 시작하니까 진짜로 하는 것마다 그렇게 잘되대예. 하느님이 진짜로 희한하다 싶어. 영감 복은 안 줘도 장사 복은 준 거 보면 희한하다. 그래서 나는 지금 식당 2층에 사는데, 맨날 아침에 밖에 나올 때마다 ‘산신령님 고맙습니다’ 카면서 나온다. 힘들어도 장사 잘되는 게 복이지. 처음에 한 식당이 보증금이 900만원인 거야. 돈이 300만원밖에 없는데. 지인 할머니가 600만원 빌려준다 해서 900만원을 만들어서 시작했거든. 근데 거기서 딱 3년을 하고 나니까, 그 길 바로 건너편에 한 200m 떨어진 공장 식당 사장님이 한번 와보라 하는 거야. ‘바쁜데 왜요?’ 하니까 자기 식당을 한번 해보라는 거야. ‘나는 돈이 없어서 여기서 못합니다’ 하니까 외상으로 주겠대. 그래서 ‘그럼 돈은 언제 주는데요’ 하니까 ‘원래 하던 식당 팔리면 그 돈 받아가 갖다주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그걸 또 10년 하게 됐어. 근처에 지상철 공사장이 있었거든. 공사 밥 다 해주고.”

—그렇게 장사가 잘되기까지 제일 중요한 게 뭐였던 것 같으세요. 이것만큼은 지금도 내가 챙기려 한다는 게 있다면.

“최고 중요한 게 뭐냐 하면 나 자신을 똑바로 하는 거. 자기 자신에게 눈속임 없이. 모든 물건은 이건 아니다 싶으면 아까워하지 말고 버리고. 또 손님 상에서 손님이 ‘이 반찬은 안 먹습니다, 가져가세요’ 해도 그것도 다 버린다. 열심히 하는 것밖에 없다. 지금도 새벽 5시에 일어나 내려와서 반찬 준비를 시작해. 야채 다듬어서 씻어주고 건져주고. 누구나 볶고 이런 건 다 할 수 있지만, 깨끗하게 씻고 재료 준비하는 건 오히려 (사람들이 소홀하게 생각한다). 나는 내가 씻어가 봐야 (마음이 놓인다.)”

—위생이나 재료 준비도 중요하지만 셰프에겐 요리 실력이 중요하지 않나요. 대표님 어머니에게 배운 요리 실력인가요.

“우리 엄마는 내가 7살 때 돌아가셨어. 다른 사람한테 음식 배운 건 없고 나 혼자 했다. 할머니가 어릴 때 밥을 해주셨는데, 그 옛날 시골에서 요리라고 할 수도 없지. 다 가난했던 시절이라 보리밥 먹고 국수 같은 거 먹고 자랐으니까. 요리 방송 이런 건 볼 줄도 모르고 없었고. (그런데 공사장 백반 장사 할 때) 밤에 자려고 누우면 내일은 또 뭐를 해갖고 어떻게 요리해야 하나, 그런 걱정만 해. 그런 밥집은 맨날 먹는 사람들이 오는 거라 메뉴를 계속 바꿔줘야 되거든. 요리를 그렇게 배운 거야. ‘오늘은 콩나물국 했으니, 내일은 미역국을 줘야겠다. 또 그다음 날은 소고깃국을 줘야겠다. 반찬은 두부조림, 오징어볶음, 돼지불고기… 머릿속에 이런 게 다 짜여 있어야 되니까 그런 생각밖에 없어. 그런 백반 하면서 굴국밥, 굴전 시키는 일반 손님도 따로 받았고.”

1만6천원짜리 ‘엄마상차림’과 2만원짜리 ‘굴밥상차림’을 먹어봤다. 커다란 테이블이 반찬으로 가득 찼다. 서울에선 이 가격에 절대 맛볼 수 없는 한 상이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1만6천원짜리 ‘엄마상차림’과 2만원짜리 ‘굴밥상차림’을 먹어봤다. 커다란 테이블이 반찬으로 가득 찼다. 서울에선 이 가격에 절대 맛볼 수 없는 한 상이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30년 했어도 장사란 건, 산다는 건 참 힘들어

—30년이나 요리했으면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을 것 같은데요.

“기억에 남는 게 미국에서 편지가 온 적이 있어. 밥을 너무 잘 먹고 갔다고. 세상에 이렇게나 감사할 데가 있나 했지. 그런 편지를 액자에 담아서 걸어놨어야 하는데.(웃음) 그리고 며칠 전에 어떤 엄마가 왔는데,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딸이 전화가 와가지고 “엄마, 배고프면 팔공산 거기 가서 밥 먹어라. 흑백요리사 나왔는데 맛있겠더라” 하면서 보냈다는 거예요. 그 먼 나라에도 내가 알려진 게 좀 흐뭇하고 그렇지. 이제는 방송 이런 거 안 하고 싶지만.(웃음) 이제 늙어서 안 해야 해.”

—집에서 요리 초보도 할 수 있는 굴전 레시피가 궁금합니다.

“밀가루, 부침가루를 한 컵씩 부어서 반반 섞어. 소금을 ‘맛소금’ 넣으면 안 돼. 굵은 소금을 넣든가 일반 소금을 넣어서 간을 맞춰. 그 가루에 물을 넣어서 개어서 씻어놓은 부추를 넣는데 또 너무 디게(되게) 하면 안 돼. 적당히 뭉쳐지도록 반죽을 해. 그다음에 프라이팬에 얇게 싹 깔아. 그리고 굴을 살짝 데쳐서 건져놓은 걸 반죽 밀가루 해놓은 데 묻혀. 그다음 부추 깔아놓은 데다 굴을 툭툭 놓으면 안 되고 눌러도 안 되고 삥 둘러가면서 예쁘게 놓아. 살짝 놔가지고 고대로 구워야 해. 불에 올리면 쭉 굽히잖아. 그때 싹 뒤집어. 근데 누르면 안 돼. 전 구울 때 사람들 누르는데 안 돼. 기름은 처음 할 때 약간만 두르고, 프라이팬을 흔들어서 구우면 다 구워지면 태가 난다.”

—요리사를 꿈꾸거나, 장사를 시작하려는 젊은 사람들에게 조언해주실 수 있나요.

“열심히만 하면 된다. 깔끔하게 하고 친절하게 하고. 그건 다 알아. (시장에서 백반집 차렸을 때) 내가 하면 주위에 따라올 사람이 없었어. 그건 다른 백반집보다 깨끗했기 때문이고 믿을 수 있었기 때문이야. ‘저 집은 (더러워서) 못 먹겠다’ 그러면서 왔으니까. 맛은 간이 제일 중요하고. 수백 명 입맛에 간을 다 맞출 수는 없어. 근데 음식 할 때 있잖아. 미원은 안 써. 그걸 안 넣어야 깊은 맛이 나. 소금 간, 깨소금, 마늘, 액젓 넣고. 재료가 신선해야 하고. 별게 없다니까. 조언 뭐 할 게 있노. 그런데…, 산다는 게 참 힘들어. 지금도 (이 가게를) 치울 수도 없고 너무 커져서. 잘돼도 힘들고 잘 안돼도 힘들고. 나는 장사를 하면 다 잘됐어. 근데 잘돼도 늙으면 서글픈 생각도 들고, 진짜로 돈이 다가 아니란 생각이 들고. 여행도 다녀요. 다니는데 그래도 돈이 다가 아니다, 진짜. 암만 내가 돈 욕심이 있다고 벌리나. 열심히 하면 되는 거야. 양심껏 하는 사람은 안 넘어져요.”

칠곡(경북)=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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