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처럼 샘솟는 ‘쇼핑 욕구’를 잘 다독이며 구비해야 할 필수 아이템…여자는 울트라 미니 스커트에 메탈릭 핸드백, 남자는 반바지에 빅백을
▣ 심정희
몇 달 전, 옷장을 정리하다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한동안 입지 않았고, 앞으로도 입을 일 없을 것 같은 옷들을 한쪽으로 골라놓고 보니 그중 70% 이상이 봄 옷이었던 것. 낡았거나 불어난 체중 탓에 못 입게 된 옷들은 그렇다 쳐도, 알록달록한 꽃무늬 트렌치코트나 발레대회에 입고 나가도 될 것 같은 노란색 풀 스커트는 어느 봄날 들뜬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사들인 것이 틀림없었다.

거금을 들였음이 분명한, 그래놓고 한두 번밖에 입지 않았던 그 옷들을 큰 봉투에 쓸어담으며 올봄에는 절대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더랬다. 사람들은 여자들의 옷차림에서 봄이 왔다는 걸 느낀다는데, 내 경우 불현듯 싹트는 쇼핑의 욕구를 통해 봄이 왔음을 깨닫는다(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참 희한한 일이다. 겨울잠에서 막 깨어난 것도 아니면서 봄이 오면 갑자기 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그리고 이 옷, 저 옷 막 사고 싶어진다. 지난봄, 마치 영원히 함께할 것처럼 애정을 쏟았던 옷들이 다 시들하게만 느껴지고, 얼마간 무리를 해서 옷에 투자를 해도 어떤 식으로든, 언젠가는 해결이 될 것 같은 착각까지 생겨난다. 그러나 ‘봄바람’의 유혹에 넘어가 사들인, 실은 쓸모없었던 옷들을 자루에 쓸어담으며 ‘먹을 수 있는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다시금 하지 않기 위해서, 잠깐의 충동구매로 몇 달간 울며 겨자 먹기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 올봄에는 마음의 빗장을 단단히 채웠다. ‘안 입을 옷은 사지 말자.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한의 효과를 낼 수 있는 것만 고르고 고르자’고 굳게 결심한 2007년의 봄, 그럼에도 이것들은 꼭 있어야만 할 것 같다.
스타트랙형 코드보다는 메탈릭 슈즈와 핸드백

골드나 실버 컬러 슈즈나 핸드백은 반드시 필요하다. 올봄과 여름, 가장 눈에 띄는 트렌드는 복고적인 성향의 퓨처리즘(1960∼70년대 사람들이 상상하고 꿈꾸었던 미래의 우주 세계)인데, 발렌시아가의 니콜라 게스키에르를 비롯한 대다수 디자이너들이 날렵하고 직선적인 실루엣, PVC로 대변되는 미래적인 느낌의 소재, 메탈릭하고 광택 있는 컬러감을 활용해 자신의 모델들을 우주 전사로 탈바꿈시켰다. 어깨가 좁고 어깨 끝이 치켜올라간 코트나 PVC 소재로 만들어진 시프트 드레스 한 벌이면 누구나 퓨처리즘 트렌드에 쉽게 보조를 맞출 수 있지만, 트렌드를 좇자고 활용도가 별반 높지 않은 PVC 소재 드레스와 ‘스타트렉’형 트렌치코트에 거금을 들일 수는 없는 일. 다행히 메탈릭 슈즈나 핸드백을 활용하면 우리 옷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평범한 옷들로도 스타트랙적인 분위기를 한껏 발산할 수 있다(고로, 올봄 멋쟁이가 되고 싶지만 아직 메탈릭 슈즈와 핸드백을 갖고 있지 않다면 ‘빚을 내서라도’ 그것들을 사야만 한다). 골드나 실버 컬러의 슈즈나 핸드백은 스키니 팬츠나 날렵한 실루엣의 재킷이나 트렌치코트와 짝을 이뤄 퓨처리즘의 분위기를 물씬 낼 수 있게 해주는 한편, 그 자체로도 옷차림의 포인트가 돼주어 착용한 사람을 멋스러워 보이게 만들어준다. 몇 시즌째 유행이 아니라는 이유로 한쪽에 밀쳐두었던 고글형 선글라스- 얼굴을 덮을 정도로 큰, 직선적인 형태의 선글라스가 좋다- 를 꺼내서 끼면 금상첨화.
하의는 어디로 간 거지? 울트라 미니스커트

프라다가 내놓는 2007년의 봄, 여름 옷을 기다리던 전세계의 프레스들은 첫 번째 모델이 무대에 등장했을 때, 놀라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하의는 어디 간 거지?’ 모델들은 원피스라 부르기에는 너무 짧은 실크 소재 의상을 입고 유유히 무대를 걸어나왔는데 프런트 로에 앉은 누군가의 입에서 “헬퍼들이 모델에게 하의를 입히는 걸 잊은 게 아닐까?” 하는 농담이 흘러나왔을 정도. 그러나 울트라 미니 실루엣에 열렬한 지지를 보낸 건 프라다만이 아니었다. 지안 프랑코 페레나 카를 라거펠트 등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울트라 미니 실루엣의 의상을 내놓았는데 특이한 것은 그 의상들이 스커트냐 팬츠냐를 막론하고 엉덩이 바로 아래에서 딱! 끝날 만큼 지극히 짧았다는 사실. 몇 시즌째 지속되고 있는 미니 드레스 역시 길이가 더욱 짧아졌다. 다행히 레깅스나 다양한 컬러의 스타킹의 유행이 올봄에도 유효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다리를 훤히 드러내는 것이 부담스럽게 여겨지는 이라면 스타킹이나 레깅스를 활용할 수도 있다. 고로, 아직은 미니스커트와 레깅스를 옷장 깊숙한 곳으로 치워선 안 된다. 봄과 여름에 유행할 직선적인 실루엣의 울트라 미니스커트나 드레스는 빨리 사서, 자주 입을수록 이익이고, 미니스커트를 훌륭하게 소화하기 위해 운동을 시작하거나 슬리밍 젤을 구입해 바르는 노력 역시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크린 광고에 나올 듯한 선명한 컬러

노랑, 파랑, 오렌지 등 비비드한 컬러의 의상이나 액세서리 역시 한두 개쯤 필요하다. 몇 시즌 동안 블랙과 화이트의 매력에 빠져 있었던 패션계가 비비드 컬러의 매력에 조금씩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 그러나 안타깝게도 올봄에 캣워크에서 인기를 끌었던 채도 100%의 비비드 컬러 의상들은 몇 번만 입어도 싫증이 나기 쉽고, 사람들의 시선을 너무 강하게 사로잡는 나머지 “○○씨는 옷이 그것밖에 없나봐” 하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라는 취약점을 갖고 있다. 고로 비비드 컬러 아이템 역시 거금을 들여 의상을 구입하는 것보다는 작은 액세서리를 구입해 포인트 요소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 이번 시즌에도 인기를 끌 것으로 전망되는 플랫 슈즈나 페이턴트 소재의 클러치 정도면 무난할 듯.
정장과도 어울리는 스포츠 시크 룩

스포츠 룩의 유행이 돌아왔다. 그러나 이번 시즌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캐주얼하고 편안한 느낌의 스포츠 룩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번 시즌의 스포츠 룩은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의상 못지않게 정제된 느낌을 뿜어낸다. 이름하여 ‘스포츠 시크 룩’. 똑 떨어지는 실루엣의 정장 팬츠보다 훨씬 더 갖춰진 느낌으로 트레이닝 팬츠를 차려 입고, 풍성한 실루엣의 빅토리안 블라우스보다 훨씬 우아한 느낌으로 스포츠 점퍼를 활용한다고 하면 상상이 되겠는지. 스포츠 시크 룩을 즐기기 위해서는 드리스 반 노튼 쇼에 등장했던 것 같은 풍성한 실루엣의 스포츠 점퍼가 필요한데(국내 브랜드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스포츠 점퍼들이 출시됐다), 단정한 셔츠에 깔끔하게 떨어지는 정장 팬츠를 입은 다음 스포츠 점퍼를 걸쳐도 좋고, 요즘처럼 아침 저녁으로 쌀쌀할 때엔 여성스러운 카디건 위에 걸쳐 입어도 매력 만점이다. 주의해야 할 점은 트레이닝 팬츠나 네크라인이 늘어난 티셔츠 같은 아이템과 매치하면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 올봄의 스포츠 점퍼는 정제된 느낌으로 활용할수록 그 매력이 배가된다.
부부, 연인, 남매 공용 빅 백

몇 년 전부터 멋을 아는 남자들 사이에서 필수품으로 자리잡아온 빅 백이 이번 시즌에는 하늘하늘한 드레스 차림의 여자들 어깨까지 점령할 전망이다. 특이한 점은, 이번 시즌에는 손에 들 수 있는 토트백보다 어깨에 메는 숄더백이 더 자주 눈에 띄는 것과 동시에 소재가 한결 다양해지고 고급스러워졌다는 것. 캔버스나 일반 가죽뿐 아니라 파이톤(뱀), 악어, 타조 등 특수 소재를 사용한 빅 백이 캣워크를 휩쓸었는데 크기가 큰 만큼 가격 역시 만만치가 않다. 그러나 빅 백은 여자뿐 아니라 남자에게도 꼭 필요하고, 당분간 그 인기가 지속될 전망이므로 가방을 구입할 의사가 있다면 빅 백을 구입할 것을 권하고 싶다(경제성 측면에서 빅 백 하나를 부부나 연인, 남매가 공동 구매해 번갈아 가며 사용하는 방법 역시 고려해볼 만하다).
털 깎고 반바지

여자들에게 미니스커트가 인기인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 시즌 남성복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반바지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지금껏 봄·여름 시즌마다 비치 웨어의 하의로 활약했던 반바지는 이번 시즌에는 정장으로까지 그 활동 영역을 확장했는데 말쑥한 넥타이와 화이트 셔츠, 날렵한 슈트 재킷에 매치된 반바지는 상상 이상으로 매력적이었다. 허벅지께에서 그 아래를 싹둑 잘라낸 정장 바지에 정장용 양말을 신고 레이스업 슈즈를 신는 남자들의 옷차림이 한국에서까지 유행할 리는 만무해 보이지만 반바지의 인기가 예년보다 뜨거운 것은 확실하니, 유행의 최첨단을 걷고 싶은 남성이라면 일찌감치 반바지 한 벌 장만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휴가철 리조트에서뿐만 아니라 모처럼의 휴일 나들이에도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몸에 꼭 맞는 실루엣보다는 허리에 주름을 넣어 풍성하게 디자인된 것, 무릎까지 내려오는 것보다는 허벅지 3분의 2나, 중간 정도에서 떨어지는 스타일이 대세다(그렇게 짧은 반바지를 입은 남자들을 보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해변가는 아니지만 그래픽 셔츠
이번 시즌 남성복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트렌드는 여유로운 느낌이 물씬 풍기는 리조트 룩과 우아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세미 캐주얼 룩. 대다수 디자이너들이 부유한 젊은이가 최고급 리조트에서 입을 법한 고급스러운 리조트 룩과 말쑥한 정장 아이템을 더 부드럽고 캐주얼하게 변형시킨 세미 캐주얼 룩을 내놓았는데, 화려한 프린트 셔츠는 이 두 룩 모두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펼쳤다. 은행원처럼 말쑥한 분위기를 연출해주는 스트라이프 셔츠에서부터 세련된 느낌을 주는 옵티컬 프린트, 화려한 하와이안 프린트까지 어떤 프린트를 선택해도 좋지만 중요한 것은 해변가를 어슬렁거리는 부랑아 같은 느낌이 아닌 여유롭고 편안한 귀공자 스타일을 살려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몸에 꼭 끼는 것보다는 풍성하고 여유 있는 실루엣의 셔츠를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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