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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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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남은 갈대의 인생론을 들으라

등록 2006-11-24 00:00 수정 2020-05-03 04:24

커버린 아이들과 ‘무선 카팩’으로 교신하며 찾아간 금강하구 신성리…논을 넓히느라 제방에 밀려난 1km 갈대밭, 밀어낸 벼들도 위태롭기만…

▣ 글·사진 김선미 〈아이들은 길 위에서 자란다〉 저자·월간〈MOUNTAIN〉기자

겨울로 가는 길목, 에서 이야기하던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원시적 우정”이 그리워진다. 메마르고 가녀린 풀들마저 서로 몸 비비며 무리지어 있는 광경만으로도 애틋한 정서를 이끌어내는 계절이다. 추운 강물과 장엄한 노을을 배경으로 둥지를 찾아 깃을 치는 철새들마저 허공에 뜨면 마음은 더욱 황망해진다.

곁에 있는 누군가와 아무 중요하지도 않은 말들을 두런두런 나누며 고개를 끄덕이고 싶어진다. ‘못난 놈들은 서로의 얼굴만 보아도 흥겹다’고 했던가. 금강 하구에는 사람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쓸쓸함이 있다.

지역 축제를 피해가는 이유

아이들과 함께 갈대밭을 찾아갔다. 갈대 축제가 열린다는 순천만과 서해안 쪽을 두고 저울질하다 금강 하구를 떠올리며 ‘축제’를 포기했다. 순천에 가면 인근에 있는 낙안읍성 초가집에서 민박을 하고 그곳에서 열리는 음식문화축제도 덤으로 즐기면서 만추의 ‘남도 축제 2종세트’를 한 번에 섭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축제를 피해가라’는 말은 어느새 나의 여행 지침같이 되어 있다. 계절의 기운이 절정에 오른 곳에 가면 물오른 자연과 생명의 합일 같은 짜릿한 전율이 있다. 김동리가 ‘아무리 걸어도 길 멀미가 나지 않는다’고 묘사했던 화개동천의 벚꽃길이나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치며 걸어야 하는 선자령, 신록이 돋아나는 월정사 전나무숲길 같은 곳을 걷다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이 왜 자연의 일부인지를 비로소 깨닫는 것 같은 기분이 된다. 그런데 자연과 은밀하게 만나는 그런 자리에 지방자치단체에서 주관하는 축제의 현수막이라도 내걸리면 으레 마라톤 대회나 노래자랑, 딱히 그 지역과 특별한 인연도 없는 향토음식장터 같은 게 옵션처럼 따라붙으며 스타일을 구기곤 한다. 이 정도가 지역 축제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다.

충남 서천군 금강 하구 신성리 갈대밭. 북한의 핵실험 여파로 나라 안팎이 떠들썩한 뒤라 영화 의 촬영지였던 그곳이 좀더 각별하게 느껴졌다. 핵실험 뒤에 더욱 난처해진 남북의 처지를 떠올리자니 지뢰를 밟은 채 오도 가도 못하던 그 가련한 병사들에게 감정이입되어 눈물을 찔끔대던 기억이 떠올랐다.

집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거쳐 서천까지는 자동차로 족히 3시간도 넘게 걸리는 거리다. 그 시간을 위해 남편은 ‘무선 카팩’이라는 생소한 물건을 준비했다. 그것은 딸아이의 MP3 플레이어를 카오디오 FM라디오 주파수에 맞춰 스피커로 함께 들을 수 있게 해주는 장치였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한 해가 다르게 ‘거리’가 느껴진다. 길을 나설 때면 초등학교 6학년인 큰아이는 여행가방 꾸리듯 MP3플레이어에 제가 듣고 싶은 음악들을 담아가곤 한다. 아이는 이어폰을 꽂고 혼자 물끄러미 창밖을 응시한 채 속생각에 몰두해 있는 일이 많아졌다. 오가는 길에 나누는 이야기는 점점 줄어들고 대화를 나눠도 밀도가 낮아져 건성이 되기 십상이었다.

“벌써부터 대화의 단절이네….” 못내 아쉬워하던 남편이 대세를 거슬러보겠다는 양 야심차게 준비한 공유 장치를 통해 우리는 노래를 함께 들었다. 더러 외계같이 생소한 소리들을 듣자니 남편과 나에게는 노력이 필요했다. 요즘 딸의 혼을 쏙 빼놓은 그룹 SS501을 ‘에스에스오백일?’ 하고 읽었다가 딸아이로부터 ‘더블에스 오공일!’이라고 교정을 당하기도 했다. 이렇게 뒷물결은 끝없이 앞 세대를 밀어내고 있다.

6만여 평의 규모가 놀라운가

신성리 갈대밭을 향해 금강 하굿둑에서부터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을 택했다. 길은 드넓은 서천들을 가로질러 뻗어 있다. 서천군 장항읍과 군산을 직선으로 이어붙인 금강 하굿둑은 407.5km에 이르는 금강의 물줄기를 벌써 16년째 수문 안에 가두어놓고 있다. 바다와 자유롭게 통하지 않는 강은 죽은 듯 고요하다. 갈꽃이 시들해질 무렵이면 검은머리물떼새 같은 겨울 철새들이 새까맣게 몰려들어 늙은 강의 정적을 깨뜨릴 것이다. 신성리에는 강줄기를 따라 200여m 폭의 갈대밭이 1km 넘게 펼쳐져 있다. 외지 사람들은 6만여 평 갈대밭의 규모에 놀라워하지만 사실 지금 남아 있는 갈대밭은 농토를 넓히기 위해 제방을 쌓으면서 밖으로 밀려나 겨우 살아남은 일부분일 뿐이다. 그전에는 물이 차면 잠기고 빠지면 드러나는 뻘 위에 갈대들이 쓰러질 듯 일어서서 서로에게 몸 비비며 흘러가는 세월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신산스런 세월을 버텨낸 것은 참나무나 대나무가 아니라 속빈 갈대들뿐이었다. 애잔한 생각에 갈대밭을 걷다 보니 왜 신경림 시인이 그런 시를 썼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갈대나 억새 모두 볏과의 식물인 것은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배를 불려주지도 못하는 풀에게까지 너그러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억새는 말이나 소의 여물로라도 쓰지만 단단한 갈대는 발이나 빗자루를 엮는 데 말고는 쓸모가 없어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결국 벼에게 밀려나 둑비탈 아래서 옹색하게 강기슭을 움켜쥐고 살아남아 있다. 우리가 굳이 구경 삼아 보러 가는 신성리 갈대밭은 그렇게 ‘겨우’ 남아 있는 곳이다. 그러나 갈대를 밀어낸 벼들의 안전도 이제는 위태로워 보인다. 남아도는데도 억지로 들여와야 하는 수입쌀, 그리고 20대의 절반이 아침을 안 먹는다는 통계가 말해주듯 해마다 줄어드는 쌀 소비량이 논농사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인당 쌀 소비 1kg이 줄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논 3천만 평, 농가 1만 호가 농업을 포기해야 한다는데 1980년부터 올해까지 거의 매년 일인당 쌀 소비가 5kg씩 줄어온 형편이라고 한다. 매년 5만 가구씩 농사를 포기한 셈일 테니, 마을마다 괴괴한 정적에 휩싸여 을씨년스런 풍경이 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신성리에서 돌아 나오는 길가에는 폐교와 퇴락한 이발소가 갈대밭만큼이나 쓸쓸한 광경으로 오래도록 우리를 붙잡았다. 칠이 벗겨진 교문에 녹슨 자물쇠가 단단히 채워져 있던 연봉초등학교, 딸들은 기어코 학교 담장을 넘어 들어가 깨진 유리창 너머 빈 교실들을 보고 오겠다고 했다.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 시들고 있는 운동장에는 아이러니하게도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1970년대에 동창들이 모여 세웠다는 비석이 어색함을 견디며 서 있었다.

산업단지가 장항갯벌까지 덮고 나면…

금강 하굿둑 바깥쪽은 제2의 새만금이 될 것으로 염려되는 장항갯벌이다. 이곳에도 예의 개발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이 때문인지 거리마다 ‘군장산업단지’ 개발을 촉구하는 플래카드가 철새들의 날갯짓보다 힘차게 휘날리고 있었다. 갈대나 노을을 보겠다고 찾아오는 우리 같은 관광객이 이 지역 사람들의 먹고사는 형편을 개선하는 데는 별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부가 선전하는 것처럼 2021년까지 갯벌과 해안이 산업단지로 뒤덮이고 나면, 이제 금강변의 갈대밭을 헤매거나 서해 바다 위로 애간장을 녹이며 사위어가는 저녁 해를 보면서 쓸쓸함에 대해 이야기할 일은 없어질 것이다.

우리는 금강 하굿둑에서부터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 신성리의 갈대밭 사이를 오래도록 함께 거닐었다. 해가 저문 뒤에는 이내가 짙게 깔린 장항의 도선장과 인적이 드문 항구의 거리를 걸었다. 여행의 목적이 쓸쓸함과 깊이 만나는 것인 양 침묵하며 걸었다.

잠은 희리산 자연휴양림 솔숲 사이 산막에서 모처럼 온 가족이 한 이불을 덮고 잤다. 잠자리에서 문득 내 몸 안의 세포 하나가 빠져나와 이제 안아주기에도 버겁게 자라버린 딸아이를 보았다. 무슨 즐거운 꿈이라도 꾸는지 빙긋이 웃음을 머금고 있는 얼굴을 바라보자니 우리 몸을 빌려 세상에 나왔다 뿐이지 아이의 존재는 이미 오래전부터 세상을 몇 번씩 윤회하고 있는 독립된 인격이라는 유의 말들이 실감 있게 느껴졌다.

이튿날, 별 기대 없이 찾아간 한산모시 기념관에서 한나절 가까이 머물게 되었다. 에도 기록이 나온다는 모시옷은 모시풀의 껍질을 째고 실을 자아 한 필을 짜는 데 5~6개월은 족히 걸릴 만큼 공이 들어간 귀한 물건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보통 단아한 아치가 깃든 게 아니었다. 풀을 저며 저토록 섬세한 실을 자아내고 천을 짜 옷을 지을 때까지 우리 어머니들을 입 안이 갈라지고 무릎이 까지는 일을 무수히 견뎌야 했다고 한다. 당연히 이렇게 품이 많이 드는 일은 이제 70대 할머니가 된 전승자들이 세상을 떠나면 맥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

모시는 너무 과했고, 팔월에 베어낸 갈대를 엮어 만든다는 갈꽃비라도 살 수 있을까 싶어 장이 서는 판교읍에도 찾아갔다. 서천장에서 8천원이나 1만원을 주면 갈꽃비를 살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쇠락한 판교장에서는 장꾼의 흔적도 찾기 힘들었다. 지역의 장날은 거개가 이런 모양이었다.

쇠락한 판교 장날, 갈꽃비는 없었네

여행에서 돌아올 때마다 책을 한 권 읽은 것 같은 느낌이다. 이번 여행은 어쩐지 흥미진진한 드라마가 아니라 잠언으로 가득 찬 인생론을 읽으며 사색한 기분이 들었다. 소음에 가까운 음악으로 우리를 불편하게 하던 딸아이에게서도 어쩐지 삶을 배운 것 같다. 몸 안의 아이가 태어나 이렇게 성장한 것처럼 아이의 깊어가는 속생각과 눈빛은 되돌릴 수 없는 자연스러운 흐름일 것이다. 거스르거나 인위적으로 돌리려고 할 때 아이도 우리도 상처를 입을지 모른다. 하굿둑 안에 갇혀 금강 기슭의 뻘밭에 살아남은 갈대들도 몸을 서걱서걱 비비며 그렇게 말하지 않던가.



철새 보러 나간다


여행 길잡이, 가는 길·주변 관광·숙박시설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신성리 갈대밭은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에 있다. 서해안고속도로 서천IC에서 갈대밭까지 약 18km 거리다. 군산IC를 이용할 경우 금강 하굿둑을 건너와 신성리로 갈 수도 있다. 11월17일부터 21일까지는 금강철새조망대와 금강호 일원에서 제3회 군산철새축제(www.gunsanbirdfestival.net)도 열린다. 스스로 설계하는 여행이 귀찮은 사람이라면 철새축제와 신성리 갈대밭 관람을 연계한 철새관광열차 상품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KTX로 익산역에 도착한 다음, 버스로 철새탐조대에 들렀다가 갈대밭으로 이동한다(문의 홍익여행사02-717-1002).



갈대밭이 있는 한산면에서는 한산모시관과 문헌서원, 월남 이상재 선생 생가터 등을 들러볼 만하다. 한산모시관에서는 모시 제작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통공방에서 시연과 함께 모시 제품 판매도 한다. 문헌서원에는 무학대사가 터를 잡았다는 목은 이색의 묘와 그의 영정(보물 1215호), 문집을 만들었던 목판 975판이 보관돼 있는 장판각 등이 있다. 두 곳 모두 관광객을 위한 문화유산해설사가 있다. 한산면에는 백제 왕실에서 담가 먹었다는 찹쌀로 빚은 한산소곡주가 유명하다. 서천군 내 가게마다 이 지역 특산물인 소곡주를 취급하는데, 브랜드 제품 외에도 일반 가정에서 빚은 저렴하고 양이 많은 소곡주를 함께 판매하고 있다.
숙박시설은 철새탐조대 주변 강변을 따라 모여 있다. 그러나 호젓한 잠자리를 원한다면 금강 하굿둑에서 14km 거리에 있는 희리산 자연휴양림(041-953-9981)을 권한다. 휴양림 산막은 주말 예약이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지만, 토요일 오전 9시 전후로 전화하면 예약이 취소된 방을 구할 수도 있다. 휴양림 내 오토캠핑장과 몽골텐트촌에서 야영도 가능하다. 울창한 해송 숲에 있는 휴양림은 겨울에도 아늑한 편이라 캠핑 마니아들이 많이 찾는다. 4인용 산막의 경우 5만5천원, 야영데크 4천원, 몽골텐트 1만원이다.
장항항과 군산항 주변에 횟집들이 모여 있는데, 장항선 열차와 연결되는 장항~군산 간 유람선을 이용해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두 항구를 왕래할 수 있다. 장항역에 도착하는 열차 시각에 맞추어 장항 도선장에서 군산행 유람선이 출발한다. 어른 1500원, 어린이 750원(문의 월명유람선 063-445-5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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