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소설집 <강산무진>의 인물들은 어떻게 삶을 견뎌내는가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난 잘 지내. 겨우 견디지. 다들 견디니까.”(‘배웅’)
김훈의 첫 소설집 <강산무진>(문학동네 펴냄)이 나왔다. <칼의 노래>는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이라는 카피만큼이나 느닷없었다. <강산무진>에서 독자들은 최초로, 온몸에 긴장감을 지니고, 그만큼의 예의를 갖추고, 소설가 김훈의 세계와 대결해야 한다. 때가 되었다.
<강산무진>의 인물들은 ‘불가역의 시간’에 지배당한다. 시간의 끝은 죽음이고, 완전한 소멸이다. 기독교적 구원은 거부된다. 따라서 삶은 예정된 패배 속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경영하던 식품회사를 말아먹고 택시를 운전하는 김장수(‘배웅’), 요도염으로 막힌 방광에서 오줌을 뽑고 아내를 화장하는 화장품 회사 중역(‘화장’), 비행기 사고로 남편을 잃은 뒤 폐경을 맞는 여자(‘언니의 폐경’),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남자(‘강산무진’). 이 허무, 이 무기력. 다시, 기독교적 구원은 거부된다. 인간은 출발할 수 없는 곳에서 출발하고 끝날 수 없는 곳에서 끝난다.
삶은 늘 아귀다툼이다. 식품회사의 하청계약과 화장품 회사의 매체별 광고효과 보고서와 전자회사의 분식회계 등의 ‘헛것’들이 인간을 조종한다. 김훈은 레이먼드 카버처럼 쓸쓸하지만, 그처럼 비관적이진 않다. 그는 “겨우 견뎌낸다.” 어떻게?
‘날것’들의 냄새와 촉감과 소리들이 있다. ‘화장’에서 아내의 장례식을 마치고 남자는 짝사랑하는 여자의 빗장뼈와 푸른 정맥과 향기를 떠올린다. 그것은 화장품 광고용으로 분석되는 여성의 육체 같은 ‘거짓’의 질감이 아니다. ‘언니의 폐경’에서 여자는 소멸하는 자신의 육체를 끊임없이 생리혈로 확인한다. ‘강산무진’에서 간암에 걸린 남자는 (아마도 삶에서 최초로) 저녁빛에 반짝이는 연못의 물과 펄떡이는 고기들을 발견한다. “어째서 닿을 수 없는 것들이 그토록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인지요.” 그리고 인간은 육체를 통해 과거와 이어진다. 아이의 얼굴에서 한때 몸을 섞었던 여자를 발견하는 그 경이감. 1600여 년 전 여인의 골반뼈(‘항로표지’)나 조선시대 화가의 그림(‘강산무진’)과 현재의 내가 만나는 순간. 살아 있는 것들은 이렇게 시간의 힘을 거역하고 역사를 창조한다. 이것이 김훈의 현상학, 김훈의 실존주의다.
김훈은 <강산무진>을 통해 여기에 이르렀다. <강산무진>은 그의 절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다. ‘작가의 말’에서 그는 왜 “벗들아 이제 헤어지자”고 말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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