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을 일으킨 헌법재판을 통해 법의 정신을 살피는 <그 순간 대한민국…>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법이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선다는 것은 분명 진보다. 그러나 온갖 난해한 법률용어의 족쇄를 풀고 법을 대중에게 이해시키는 작업은 무척 힘든 일이다. 특히 법률의 실용적인 적용이 아니라 ‘법의 정신’을 논하는 일은 더욱 그렇다. <그 순간 대한민국이 바뀌었다>(김욱 지음, 개마고원 펴냄)는 형식부터 높이 사줄 만하다. 이 책은 그동안 대한민국을 흔들었던 헌법재판소(헌재)의 ‘뜨거운 판결’을 통해, 헌법의 정신을 논하고 있다.
지은이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국민에게 입혔던” 독재의 시대가 지나면서 “공권력도 헌법에 맞게 행사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왔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헌법재판은 민주주의의 산물이다. 책은 우리의 일상을 바꾼 헌법재판, 사회의 흐름을 바꾼 헌법재판, 나라의 근간을 바꾼 헌법재판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 헌재의 판결을 분석하고 있다. 단순한 분석에 그치지 않고 판결의 오류 등을 꼼꼼히 짚어나가며 ‘헌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토론을 유도하고 있다.
중요하고 재밌는 판결을 따라가 보자. 1988년 7월18일 김아무개씨는 <여성동아> 기사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사죄광고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동아일보사는 민법이 사죄광고를 명할 수 있다면 헌법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헌재는 동아일보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법이 형벌이나 배상이 아니라 반성을 강요할 수 없다는 판결이다. 이 판결이 중요한 이유는 ‘양심의 자유’가 우리나라에서 실효권이 되는 계기였기 때문이다. 즉, 옳고 그름에 대한 ‘내심’의 판단에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동성동본 결혼에 대한 판결을 보자. 1997년 헌재는 동성동본의 결혼을 금지하는 민법 제809조 1항에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 재판을 통해 우리가 생각해야 할 점은 우리 고유의 전통과 관습이라 할지라도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경우 이를 폐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호주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지은이는 토지공개념 3법 중에 위헌 결정이 내려진 택지상한법과 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토지초과이득세법에 대한 세간의 ‘오해’도 따지고 든다. 헌재는 토지공개념을 기반으로 한 법의 목적은 정당하다고 봤다. 다만 시행 과정에서 기본권 침해 요소가 있는 부분을 문제 삼았던 것이다. 토지공개념 자체가 위헌이라는 것은 가진 자의 선동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지은이는 나라의 근간을 흔들었던 탄핵 심판을 살핀다. 탄핵은 헌법에서 거의 사문화된 조항이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입법이 마련돼 있지도 않았다. 헌재는 ‘중대한 법 위반’을 엄격하게 해석해 탄핵 사유의 구체적 예를 명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어쩌면 뜨거웠던 탄핵 정국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대통령의 중대한 법 위반에 대한 판단도 국민들의 몫이라는 점일지 모른다. 지은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헌법재판이 법과 정치의 절묘한 조화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그 조화 속에서 헌법의 ‘해석 투쟁’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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