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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엉뚱한 철학자들 이야기

등록 2005-03-16 00:00 수정 2020-05-03 04:24

철학하는 즐거움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유쾌한 철학자들>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헤겔을 죽은 개 취급한다.” 헤겔의 전복자 마르크스는 자신의 철학적 스승을 홀대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투덜거렸지만, 그 말이 곧 자신에게 돌아올 줄은, 그리고 철학 자체에 돌아올 줄은 몰랐을 것이다. 미네르바(지혜)의 올빼미는 황혼이 돼도 날아오르지 않는다. 지구를 몇번이나 바스러뜨리고도 남을 핵폭탄을 키우고, 한나 아렌트가 “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꼬집은 기술관료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미래학과 경제학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에, 제 아무리 지혜의 여신이라도 날개가 부러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철학의 복원을 외치는 야심찬 책이라도 보여주겠다는 거냐, 라고 묻는 독자에게 다소 엉뚱한 책을 소개하려 한다. <유쾌한 철학자들>(프레데릭 파제스 지음, 최경란 옮김, 열대림 펴냄)은 서양 철학자들의 텍스트가 아니라 연애담, 복장, 게으름, 강의 방식 등을 다소 산만하게 들춰낸다. 지은이는 “철학이라는 물건은 종이 위에 말라붙은 사상의 컬렉션이기 이전에, 하나의 삶의 방식”이라며 호기롭게 “일화들! 철학의 일화들!”을 외친다. ‘저자의 죽음’이 선언된 시대에 철학자의 때묻은 턱수염과 그의 철학을 연결시키는 건 무슨 생뚱맞은 짓인지 의아해할 수도 있지만, 이거 참 ‘재밌는 짓’이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 달착지근한 부분은 뭐니뭐니 해도 4장 ‘철학자와 연인들’이다. 마르크스는 그리도 애지중지한 변증법을 자기 삶에는 적용하지 못했다. <자본론>을 집필하기 위해 대영박물관의 도서관에 가려고 나서던 마르크스는 그날 집을 나설 수 없었다. 이유인즉, 그가 가진 단 한 켤레의 신발을 하녀 헬렌이 전당포에 잡혔던 것이다. 헬렌은 “책이나 파고드는 대신 당신 가족이나 돌보세요”라는 메시지를 전했던 것이다. 이 당돌한 하녀는 무책임한 마르크스의 정부로 최후의 순간까지 가족을 돌봤다. 이상적인 교육을 다룬 <에밀>의 지은이 루소는 다섯명의 자식을 모두 고아원에 버렸다. 비천한 집안 출신으로 아이들의 어머니가 된 테레즈는 평생 루소의 업신여김을 받으면서 그의 곁에 있었다. 테레즈는 ‘자유의 기수’ 루소에게 영원한 족쇄였을까. 지은이는 철학자가 영위하는 삶의 이중성과 함께 그들의 연인을 복원하고 싶어한다. 그러고는 이렇게 외치는 것이다. “아가씨들이여, 철학자를 경계하라!”

철학자들의 뒷모습을 헤집으면서 지은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근대 이전의 철학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간단한 교훈이다. 철학자들이 대학이라는 근대적 온실 속에 안주하기 이전에 철학은 모험이었다. 철학자들은 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세계를 떠돌아다녔으며, 방대한 텍스트가 아니라 격언과 계시로 자신을 알렸다. 이것은 좀 낭만적인 해석이긴 하지만, 철학하는 즐거움에 대한 통찰로 볼 수 있다.

도서관 서가 속에 박제된 철학을 세상 속으로 끌어온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마오쩌둥은 그 험난한 대장정 기간에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선물받고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며 천막 속에서 밤새워 읽었다고 한다. 그런 즐거움을 우리는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일단은 낄낄대며 철학자들의 엉뚱한 뒷이야기들을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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