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속화를 읽는 즐거운 작업 <그림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역사>
▣ 이다혜/ 자유기고가
한옥집에서 살거나 한복을 입지는 않아도 하루 한끼 정도 쌀밥에 국을 곁들여 김치 반찬에 먹는 일은 일상적이기 때문에, 전통적인 식생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를테면 신부가 신랑 집에 갈 때 마련해야 하는 ‘큰상’인 ‘이바지’ 풍습이 한국의 전통적인 풍습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지 않다”고 <그림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역사>(사계절 펴냄)는 잘라 말한다. 17세기까지만 해도 조선의 신부들은 친정에 그대로 머물면서 아이까지 낳았다고. 시집 온 새색시가 ‘큰상’을 받는 조선 말기의 그림 한점을 통해 <그림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역사>의 저자 주영하는 식생활뿐 아니라 결혼 풍습과 부계 혈통 중심으로 바뀐 가부장제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조선시대 식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썼다고 해서 딱딱한 인문서라고 생각하면 큰 오해다. 저자가 잡지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엮은 이 책은, 풍속화를 중심으로 ‘그림 읽기’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홍도나 신윤복처럼 잘 알려진 풍속화가들의 그림에 나타난 음식들은 어떤 때 먹는 것일까? 금주령에도 몰래 숨어 술을 마시던 관리들에 대해 화가는 어떤 풍자를 하고 있는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한국적’ 풍습에 오롯이 숨어 있는 우리 문화는 어떤 게 있을까? 뜻밖에도, 김치가 등장하는 조선의 그림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과 풍속화 속의 조선, 그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우리가 알게 모르게 ‘근대’라는 거울에 비쳐 편집한 조선이 현대인의 상식 속에 남은 것은 아닌가, 하고 저자는 묻는다. 매번,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조선시대 풍속화와 그 속에 숨은 사연과 함께 말이다. TV 시대극의 ‘잘못된’ 식문화 상식을 꼬집는 대목도 많이 만날 수 있다. 조선 조정에서 청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을 통해, 사실 만한전석이 차려진 경우는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식이다.
김홍도가 그린 ‘조기잡이’ 그림은 그림 읽는 재미를 톡톡히 느끼게 해주는 작품 중 하나. 나무로 만든 어살이 촘촘히 박혀 있는데, 어살 위에 앉아 있던 갈매기떼 한 무리가 무언가에 놀라 하늘 위로 날아오른다. 그림 가장 아래쪽에 있는 납작한 배 한척의 아궁이에는 솥이 두개나 걸렸다. 벌써 무슨 음식을 앉혔는지, 꽁무니에 앉은 어린아이가 불을 지피고 있다. 푸레독에 두 팔을 기댄 사내는 솥에서 나는 구수한 냄새에 음식이 다 되기를 기다리는 눈치. 어살을 이용해 고기를 잡는 방식은 자연의 힘을 빌려서 물고기를 잡는 방식으로, 이른바 원시적인 방식을 차용한 것이지만, 더 자라야 할 치어보다는 거의 성장한 생선이 어살에 걸리기 때문에 그야말로 자연친화적이다. 오늘날의 기계적인 고기잡이에 비할 수 없는 한산하고 평화로운 느낌이 그림 가득히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일지 모르겠다. 한편, 조기가 정확하게 때를 맞추어 모이는 생선이라는 이유로,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 ‘조구만도 못한 놈’이라는 욕을 했다는 대목에 이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책을 읽고 나면, 그림들을 찾아나서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유럽 여행길에 ‘미술 기행’이라는 이름이 붙은 책을 바리바리 싸가는 정성이나 돈의 10분의 1도 들지 않는 일이니 말이다. 이 책을 들고 봄꽃 만발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나들이를 가는 것, 대단한 공부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더라도 즐겁기 그지없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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