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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우는 대마? 키우는 대마!

등록 2004-12-16 00:00 수정 2020-05-03 04:23

알뜰한 생활작물 대마와 친해지기… 이웃나라의 활용제품, 화장품·국수·집 우리도 가져볼까

▣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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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초 전선’이 뜨겁다. 지난 10월 배우 김부선씨가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한 뒤 개인의 자유와 국가의 개입, 대마초의 유해성 여부 등을 놓고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전인권·신해철씨 등이 김부선씨에 대한 개인적 지지를 보낸 데 이어 12월9일엔 문화연대를 주축으로 박찬욱·김동원씨 등 113명의 문화예술인이 동참한 ‘대마 합법화 및 문화적 권리 확대를 위한 문화예술인 선언’이 발표됐다. 이튿날인 10일 김부선씨의 항소심을 담당하고 있는 수원지검 강력부는 ‘맞불 간담회’를 열어 대마의 유해성을 거듭 주장했으며, 이날 오후엔 한국마약범죄학회가 주최한 마약정책 토론회가 열려 대마 흡연 합법화가 도마 위에 올랐다.

흡연 논란에 잊혀진 자연의 미덕

여기까지 보자면, 논란의 초점은 ‘흡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마초 핀다고 나쁜 사람 아니다. 김부선씨는 성실한 배우다. 개인이 좀 느슨해지는 것뿐이고 담배만큼 중독성도 없다는데 왜 대마만 탄압하냐”(박찬욱 영화감독)는 동정론적 시각부터 “사회적 금기에 저항한다는 점에서 대마 합법화 논쟁은 보안법 폐지 투쟁과 같은 맥락”(이동연 문화사회연구소 소장)이라는 적극적인 가치 부여까지 모두 ‘피우는 행위’를 막지 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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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마는 담배와 달리 ‘피우는 것’만은 아니다. 말려서 피우는 잎 말고도 줄기로는 섬유(베)를 만들고 씨앗은 그대로 먹거나 기름을 짤 수 있다. 그래서 전선은 다른 지점에서도 열려 있다. 말을 무기로 법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합법적 공간에서 노동으로써 전개되는 전선이다. ‘대마를 많이 많이 기르자!’

지난 10월부터 뜻을 모으기 시작한 대마살리기운동본부(준비위원장 유재현·이하 운동본부)는 대마의 자연적 지위를 되돌리자는 취지에서 생겨났다. “우리나라에서 마약이란 단어는 마약(魔藥)을 연상시키지만, 사실 ’마’는 대마 또는 마취에서와 같이 삼(대마)을 가리키는 마(麻)를 쓴다. 하지만 대마는 ‘魔’가 아니라 ‘麻’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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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가 그저 ‘麻’이던 시절, 우리 조상들은 대마를 중요한 생활작물로 재배해 요모조모 알뜰하게 이용해왔다. 줄기를 이용해 삼베를 짜 옷을 지어 입었고, 세찬 비바람 너끈히 견디는 돛을 만들었고, 밧줄을 꼬아 특유의 질김을 충분히 활용했으며, 종이를 만들어 유익함을 더했다. 단백질이 풍부하고(전체 성분의 29%) 필수아미노산 함량이 높은 대마 씨앗을 먹으며 기근을 견디기도 했고, 변비를 치료하기도 했다. 그래서 운동본부는 이렇게 외친다. “이처럼 유익한 대마를 마약 취급하지 말고 널리 널리 활용하자.”

현재 우리나라에선 정부로부터 ‘허가증’을 얻은 농가에서 주로 섬유 채취용으로 대마를 재배하고 있다. 농가당 평균 100평가량의 소규모 영세농이 대부분이며, 재배자도 주로 60대 중·후반의 여성들로 이들은 대마를 수확해 포를 짜고 베옷을 지어내는 일련의 과정을 혼자서 담당한다. 우리나라 대마 농업이 이처럼 쇠잔해진 것은 화학섬유의 득세 때문이기도 하지만 박정희 정권의 대마초 탄압정책 탓도 크다. 1970년대 중반 대마초 연예인 파동 이후 1976년 대마관리법이 신설되면서 재배 면적도 급격히 축소됐다. 유재현씨는 점점 노령화되는 대마 재배자들이 세상을 뜨고 나면 우리나라의 대마 농업은 종지부를 찍을 것으로 예상한다.

한국 농부들 ‘1만평 농사 운동’ 나섰다

운동본부에는 유재현씨를 비롯해 의 지은이 황대권씨, 농민운동가 김원일씨를 비롯해 당진·예산·함평·곡성·화순 등의 농부 14명이 함께하고 있다. ‘생태환경농업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이들은 우선 2005년에 전국 50농가가 1만평 대마 농사를 짓는 것을 1차 과제로 삼고 종자를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이들이 꾸는 꿈은 야무지다. 운동본부가 그동안 수집한 자료와 일본 견학 등을 통해 구상한 계획은 ‘대마로 살아보자’는 말로 요약된다. 대마로 옷을 만들어 입고, 대마로 만든 음식을 먹으며, 대마로 지은 집에서 살면서 대마 기름으로 자동차까지 타자. 즉, 대마로 일상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본래 대마 제품이란 것은 우리들의 편견과 달리 그다지 낯선 것이 아니어서 세계적인 목욕 제품 기업인 ‘바디샵’은 대마를 원료로 한 헴프 풋 크림, 핸드 크림, 립스틱 등을 이미 선보인 바 있다.

우선 대마 식품부터. 일본의 유기농 매장에선 대마 국수, 대마 오일, 대마 씨앗이 판매 중이다. 특히 씨앗은 껍질을 벗겨 너트로 만들거나 껍질을 통째로 볶은 것, 갈아서 만든 것 등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이것들로는 두부, 빵, 두유 등을 만들어 먹는다. 도쿄엔 아예 대마로만 만든 음식을 내놓는 레스토랑도 있다.

대마로 지은 집은 어떨까. 영국 하버빌의 주택협회는 최근 대마 건축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나무로 집의 골격을 짠 뒤 대마 줄기 찌꺼기와 자연 석회를 섞어 만든 재료로 벽체를 만들어 완성했고 일반인들에게 분양까지 마쳤다. 대마집은 다른 자연 재료에 비해 내구성이 뛰어나고 콘크리트와 비교해 통기성과 열효율이 뛰어난 장점이 있다. 방수액을 덧입혀 발라주면 물이 샐 염려도 없다. 공사 현장에서 타설하는 것뿐 아니라 대마 줄기는 블록, 단열재, MDF(Medium Density Fiber Board) 등 가공품으로 만들어 사용이 가능하다.

가장 당찬 계획은 대마 오일이다. 현재 화석 연료의 고갈을 걱정하고 있는 세계 각국에선 바이오디젤 연구가 진행 중이다. 바이오디젤이란 유채꽃, 다 쓴 식용유, 콩, 쌀겨 등에서 뽑아낸 식물성 기름과 메탄올을 혼합해 만들어낸 물질인데 자동차 연료인 경유를 대신할 수 있는 ‘식물성 자동차 연료’다. 운동본부는 이 바이오디젤을 대마로 만들어보자고 제안한다. 대마 씨앗에서 짜낸 기름으로 움직이는 대마차(헴프카·hemp car)는 이미 2002년 일본에서 선보여 1만2천km를 종단하는 실력을 보여준 바 있다. 대마는 씨앗 무게의 4분의 1이 기름이다. 만약 한라산에서 판문점까지 대마차를 타고 가려면 기름 500ℓ 정도가 필요한데, 여기엔 2t가량의 씨앗이 들어간다. 이 정도를 생산하려면 1500평 정도의 대마밭이 있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재 전국 대마 재배 면적은 100ha(30만평) 정도. 대마차 상용화는 아직 ‘꿈’일 뿐이지만 운동본부는 ‘상징적 차원’에서 헴프카를 굴려볼 계획이다.

씨앗 기름으로 자동차도 씽

사악한 식물로서 국가로부터 구박을 받아온 대마가 과연 콩이나 보리, 대나무처럼 그 유익함을 떳떳하게 인정받고 사랑받을 날이 올까. 대마초 하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 널브러져 침 흘리는 낙오자들의 모습이 떠오르는가. 그렇다면 자연의 에너지를 한 몸에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나는 푸르른 대마밭은 어떠한가. 운동본부는 대마를 ‘음지 아닌 양지에서 보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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