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검술 장인의 이야기
▣ 이다혜/ 자유기고가 dahyeh@naver.com
19세기의 스페인. 온 나라가 혁명으로 흔들리는 세상 현실에는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고 구식 검법을 연마하는 데에만 몰두하는 ‘검의 대가’ 돈 하이메에게 어느 날 한 여인이 찾아온다. 아델라 데 오테로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이 여인은, 치명적인 검법인 ‘200 에스쿠도’를 가르쳐달라고 하이메에게 부탁한다. 그리고 아델라의 부탁으로 어떤 후작과 그녀의 대련을 소개해준 하이메는, 며칠 뒤 후작이 ‘200 에스쿠도’ 검범으로 목이 베여 숨진 것을 발견한다.

작가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는 (열린책들 펴냄, 1999)에서 움베르코 에코의 지적 미스터리와 존 그리샴의 속도감 있고 극적인 사건 전개 방식을 혼합한 방식으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검술 장인의 모습을 그려낸다. “명예로운 삶, 존경받을 수 있는 삶, 어원학 사전에서 ‘명예’를 찾으면 함께 찾을 수 있는 그 온갖 단어들로 점철된 삶을 위해서 말입니다”라는 하이메의 말마따나, ‘검술학 사전’에나 있을 법한 원론적이고 고지식한 삶을 원하는 하이메는 단순한 ‘검술 기술자’가 아니라,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스승이며 아버지로 그려진다. 스스로를 소외시킨 아버지이자 고삐를 늦출 줄 모르는 스승으로. 규칙이 필요 없는 권총과 같은 무기가 보급되면서 ‘스포츠’로 전락해버린 검술을 하이메는 버릴 수 없다. 그에게 검술은 지켜야 할 ‘예술’이다. 아델라가 하이메를 보며 탄식같이 내뱉는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당신은 너무 뒤늦게 태어난 것 같군요, 돈 하이메. 아니면… 제때 죽지 못했던가요.”
하이메는 마치 감각기관이 퇴화하고 검 끝만 살아 있는 것 같은 사람이다. 입을 열면 검술 용어만 줄줄 튀어나오는 그에게, 정작 날카롭게 신경이 살아 있는 부분은 바로 몸의 일부와 같이 되어버린 검 끝이다. “칼끝이 여인의 육체와 접촉하면서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손가락으로 감싸쥐고 있는 검을 통해 그녀의 육체가 만져지는 것 같았다.” 성적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과정을 검술로 집요하게 묘사하는 레베르테의 문장은 검법이 갖고 있는 엄격함이 금기시하는 흥분을 이끌어낸다. 이야기 전개가 익숙하지 않은 검술 용어들에 치이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레베르테는 검술의 특수한 기술적 요소를 시공간을 따지지 않는 정치와 사랑, 욕망에 연결짓기 때문이다. “검을 다루다 보면 누구든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드러내기 마련이지요”라는 하이메의 말은 그 자신을 위한 설명이다.
는 스페인 소설가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의 장편 데뷔작이다. 스페인 현대 작가 중 가장 많이 번역 소개된 작가로, 그의 작품 중 이미 7편이 영화화되었다( 영화판은 1992년 오스카상 본선에도 진출했다). 19세기 마드리드를 무대로 펼쳐지는 정치적 배신과 권모술수, 모험과 유혹의 세계를 그리는 이 작품에서는, 젊은 시절, 종군기자로 활동한 바 있는 작가의 이력을 반영하듯 풍부한 상상력과 해박한 지식, 정교한 구조가 눈에 띈다. 말미에 첨부되어 있는 검술 용어를 먼저 읽으면, 당황스러울 정도로 자주 등장하는 ‘앙 가르드’ ‘아타크 포스’ ‘티에르스’와 전문용어에 지쳐 나가떨어지는 일은 없을 듯하다. 는 지금은 여기 없(어 보이)는 가치를 위해 살아온 한 남자의 이야기를 살인과 미스터리, 그리고 검술 경기와 혼합한 읽기 편한 대중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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