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경쟁과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 독버섯처럼 자라나는 직장인 스트레스, 당신을 갉아먹고 있다 </font>
<table width="480"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r><td colspan="5"></td></tr><tr><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bgcolor="F6f6f6" width="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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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지난해 공기업체에서 부장으로 승진한 김아무개(50·여)씨한테 갑자기 질병이 찾아왔다. 언제부턴가 눈앞이 자꾸만 침침해지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피곤해서 그런가? 왜 그러지?’ 약국에 가서 약도 사먹어봤지만 증세는 갈수록 심해졌다. 결국 병원을 찾았다. 진단서에 적힌 병명은 ‘심인성 스트레스’였다. 심리적 스트레스 때문에 시력이 나빠지고 있다는 진단이었다. 김씨의 증세는 더 악화돼 실명 위기까지 닥쳤다. 무엇이, 멀쩡했던 사람을 느닷없이 실명 위기에 빠뜨린 것일까?
96년 조사 “한국 1위, 홍콩 2위, 대만 3위”
나중에 알고 보니 김씨의 질환은 ‘업무상 질병’이었다. 김씨는 부장으로 승진한 뒤 부하 직원들과 사사건건 부닥치는 일이 잦아졌다. “저건 원래 내 자리인데…”라며 남자 부하직원들이 여성 간부인 김씨를 인정하려 들지 않아 심한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직장에서의 원만하지 못한 인간관계 때문에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실명 위기에까지 이른 것이다.
직장인 스트레스에 관한 흥미로운 조사결과가 최근 미국에서 발표됐다. 는 지난 9월5일 미국스트레스연구소(AIS)의 추정치를 인용해 미국 직장인들의 스트레스로 인한 사회적 손실(스트레스 해소비용 및 작업손실 비용)이 매년 3천억달러(약 340조원)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주요 스트레스 요인으로는 집단해고·인력 아웃소싱 등 고용불안을 유발하는 것들이 꼽혔고, 사무직 노동자일수록 스트레스에 더 많이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가상 족쇄’로 불리는 컴퓨터·휴대전화 등으로 업무시간과 비업무시간의 구별이 희미해진데다,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은 업무를 집에까지 가져가 처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영국 등지에서 스트레스로 인한 경제적 총손실은 국내총생산(GDP)의 10% 정도로 추정된다.
세계 최장 노동시간을 기록하고 노동시장 유연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한국 직장인들의 스트레스는 과연 얼마나 될까? 김씨의 경우는 스트레스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외환위기 이후 감원 공포에다 경쟁 격화로 노동강도가 강화되고 고용불안이 일상화되면서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스트레스도 증가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직장인스트레스연구소 전현두 소장은 “우리나라에서 직장 상사 또는 동료와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큰데, 요즘에는 미래에 대한 고용불안이 가장 큰 스트레스로 부각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직장 분위기가 외환위기 이후 일 중심으로 바뀌고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면서 직장인들의 마음이 피폐해지고 있다”며 “인력감축으로 세명이 하던 일을 혼자 감당해야 하고 노동강도가 강화되면서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가 지난 1996년 아시아 10개국 직장인들의 스트레스를 조사한 결과 한국 1위, 홍콩 2위, 대만 3위로 나타났다. 흡연인구와 음주량이 세계 1, 2위를 다투는 것만 봐도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받는 스트레스의 정도를 알 수 있다. 흡연은 직무 스트레스가 방아쇠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한국은 퇴근 후 가족과 함께 보내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근 후에 실질적인 비즈니스 문화가 이뤄져 스트레스를 받는 절대 시간이 연장되는 사회”라며 “한국의 40대 남성 사망률이 세계 최고인데다 남성 수명이 여성보다 8년 정도 짧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큰 격차를 보이는 것도 고(高)스트레스형 사회 구조를 보여준다”고 밝혔다.
뇌심혈관계 질환을 부른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직무 스트레스 실태를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조사한 연구는 아직 없다. 그러나 업무상 질병 가운데 대표적인 직무 스트레스 관련 질환으로 알려진 ‘뇌심혈관계 질환’을 통해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 박정선 팀장은 “열받으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이것이 지속되면 심혈관계 기능이 나빠져 심근경색이 오는 등 심혈관 기능이 스트레스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한다”며 “스트레스가 많은 업무일수록 심혈관계 질환 발병률이 높다”고 말했다. 노동부에 따르면, 작업관련성 뇌심혈관계 질환자는 2000년 1950명에서 2003년 2358명으로 늘었다.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도 1998년 236명에서 2000년 658명, 2003년 820명으로 크게 늘고 있다. 산업재해가 진폐증이나 중금속 중독 등 ‘직업병’에서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작업관련성 질환’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는 것이다(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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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민이 어느 정도 섭취하면 몸에 좋지만 과도하게 섭취하면 인체에 유해한 것처럼, 스트레스도 적당한 수준까지는 긴장감을 불어넣어 심신의 활력을 제공하고 성취동기를 부여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 점에서 노동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삶의 악센트’일 수도 있지만 과도한 스트레스는 ‘죽음의 키스’가 된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직무 스트레스에 대한 전국적 조사는 2001년 연세대 원주의대 장세진 교수(예방의학교실)팀에 의해 이뤄졌다. 전국의 공단 밀집지역에 위치한 총 245개 업체 종사자 6977명을 조사했다. 대상자는 사원이 59%, 대리·계장·주임과 과장·팀장·차·부·실장 등 중간 관리자가 각각 15%, 고위관리자는 3%였고, 고용 형태로는 정규직이 93%, 비교대 근무자가 82%였다. 이 조사에서 장 교수는 직무 스트레스를 △직무 요구도(직무의 객관적 또는 심리적 압박감이나 부담, 일의 과부하 등) △직무 자율성(노동자가 지닌 업무관련 정책결정 권한이나 재량권) △직무 불안정(회사가 도산하거나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으로 나눠 측정했다. 조사 결과 전체적으로 건강군이 331명(5%), 잠재적 스트레스군은 4541명(73%), 고위험 스트레스군은 1346명(22%)으로 나타났다. 장 교수는 “응답자의 약 3분의 2는 위험 수준은 아니지만 스트레스로부터 위협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에 노출돼 있었다”며 “스트레스 고위험군은 장기화될 경우 심혈관계 질환이나 탈진, 극단적으로 과로사로 진행될 위험성이 있다”고 말했다.
성취욕 높으면 스트레스 줄어
또 나이가 어릴수록, 여성·저학력자·미혼일수록 스트레스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 직무 요구도가 높고 직무 자율성이 낮을수록, 흡연자일수록 더 높은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흥미로운 건 직위별로 볼 때 평사원의 스트레스가 가장 높고 직위가 올라갈수록 스트레스 수준이 감소했다는 점이다. 연공서열적 직장 문화로 인해 평직원일수록 직무 요구도는 높고, 힘든 일을 하는데다 자율성과 보수가 적다 보니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 것이다. 회사 중역은 맡겨진 직무 요구가 높지만 직무 자율성이 부여돼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스트레스를 덜 받는 반면, 직무 요구도가 높고 직무 자율성이 낮은 평사원은 스트레스가 더 커진다.
물론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누구는 스트레스를 덜 받고 누구는 더 받을 수 있다. 객관적인 작업 조건 못지않게 주관적인 측면도 스트레스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장 교수는 “분석 결과 직장에서 동료나 상사로부터의 적절한 사회적 지지(지원 또는 인정)가 개인의 스트레스를 완화해주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며 “특히 성취 결과에 대해 자신의 노력이나 의지가 중요하다고 평가하는 사람일수록 스트레스가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고, 반대로 우연적인 요인에 의해 결과의 성패가 좌우된다고 믿는 성향을 보일수록 스트레스는 더 증가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대표적인 요인은 무엇일까? 충남대 김교헌 교수(심리학과)팀은 지난해 8월 대전지역의 공기업체 직장인 490명(주로 대졸 이상 30·40대 기혼 남성)을 대상으로 30개 항목(승진기회 결여·잔업 근무·상급자와의 불편한 관계·부적정한 보수·승진 경쟁·과다한 서류작업 등)에 걸쳐 스트레스를 조사했다. 평가 결과 ‘잔업 근무’와 ‘부적정한 보수’ ‘승진 기회의 결여’ 등이 가장 심각하게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하기 싫은 일에 할당됨’ ‘개인적 모욕’ 등은 스트레스 경험 강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다.
또 ‘승진 기회의 결여’ ‘인정받지 못함’ ‘책임의 증가’ 등은 ‘하기 싫은 업무에 할당됨’이라는 요인보다 더 심각한 스트레스 요인으로 나타났다. 가장 빈번하게 경험하는 직무 스트레스 원인으로는 ‘잔업 근무’ ‘책임의 증가’ ‘마감시간 임박’ ‘자신의 일을 못하는 동료’ 등이 꼽혔다. 김교헌 교수는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직무 스트레스가 높다고 응답한 집단의 50%가 무기력증과 직장 충성도가 떨어지는 이른바 ‘탈진’ 경험을 했다”며 “우리나라도 외환위기 이후 고용이 위협받고 급격한 구조조정과 성과급제 등 경쟁체제 도입으로 직무 스트레스가 더 높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대처해야
과연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받는 직무 스트레스는 서로 큰 차이가 있는 것일까? 연세대 원주의대 고상백 교수팀이 지난해 조선업종 근로자 1713명(정규직 681명·비정규직 103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비정규직의 고통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조사에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가장 큰 원인은 ‘직업 불안정성’으로 나타났다. 장래에 직장을 잃을 가능성이 스트레스를 부르는 주범이라는 것인데,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의 스트레스 강도와 경험이 훨씬 높다는 얘기다. 특히 비정규직은 고(高)긴장집단이 293명(33.5%)으로 나타난 반면 정규직은 52명(9.1%)으로 나타났다.
직업 불안정성에 뒤이어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요인으로는 ‘실업 및 이직 경험’이 꼽혔다. 실직과 이직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비정규직일수록 스트레스에 더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 교수는 “직무 요구도와 직무 자율성에 비해 직업 불안정이 더 높은 스트레스 요인으로 조사됐다는 게 특징”이라며 “따라서 더 위험한 일을 하고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경험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스트레스가 가중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스트레스 요인 가운데 미국에서는 스트레스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한국에서는 스트레스가 될 수 있고, 일본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을 한국에서는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 박정선 팀장은 “표준화된 한국판 스트레스 측정 도구를 개발해 업종별·직위별로 한국인의 스트레스 기준지표를 만들고, 이 기준에 따라 스트레스의 강도를 파악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서 어떤 요소가 직무 스트레스를 낳는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는지도 규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아직까지 “스트레스는 스스로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거나 “경제도 나쁜데 직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운이 좋은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과도한 스트레스는 당장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따라서 기업경쟁력 강화 차원에서도 스트레스에 대한 대처가 필요하다. 노동자 혼자 스트레스를 감당하도록 놔둘 것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또는 노사간 단체교섭을 통해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안을 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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