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작가 곰브로비치의 에로틱한 철학소설
최건영/ 연세대 교수 · 슬라브 문학
세계문학 수용의 역사를 보면 그동안 전문가 부족으로 무시돼온 지역이 많았다. 차페크의 대표작 이 체코어에서, 브루노 슐츠의 저작이 폴란드어에서 번역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하는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의 교육 현장에서 권장되는 서구의 대표적인 작품들이 결코 그 문화권이나 특정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 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독서는 분명 다다익선이지만 자라나는 청소년의 독서는 권장도서나 세계문학전집에 많이 좌우될 수밖에 없는데, 강대국의 이기적인 식민지 정책을 정당화하는 문학을 경전처럼 받들어 수험공부를 한다면 이는 딱한 노릇이다. 과장일지는 모르지만 몽매한 색깔론,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 태도, 단일민족이라는 허구(화교든 혼혈이든 그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 서구 중심주의 등을 조장하는 데 한몫할 수도 있기에 세계문학전집의 작품 리스트는 매우 신중하게 고안해야 하고, 작품 선정에서도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제는 문화권별로 전문가가 많아진 만큼 여러 출판사에서 각각의 이름을 걸고 권위 있는 세계문학전집을 경쟁적으로 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뒤늦게 번역된 세계 현대소설의 대표작
현재 가장 널리 알려진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는 최근에 100권을 넘기면서 이번에 폴란드의 작가인 곰브로비치 소설 두권을 추가했다. 차페크, 슐츠, 나보코프, 보르헤스 등과 함께 세계문학전집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20세기 소설가 곰브로비치를 이번에 한국말로 읽게 되는 독자들이나 작가들은 왜 이런 중요한 작가가 이제서야 소개되는가 하고 흥분할지도 모를 일이다. 소설이라는 언어예술 공간에서 불가능한 것은 없음을 보여준 이 언어 마술사의 1930년대 대표작 를 접하면서 독자들은 ‘타자와 자아’ ‘욕망과 관계’와 같은 철학적 명제와 ‘에로스와 시선’과 같은 일상의 현실이 종이 위의 검은 문자들을 통해서 생생히 전개되는 감각적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폴란드의 소설가 비톨트 곰브로비치(Witold Gombrowicz·1904∼69)는 인간의 영혼과 육체, 무의식과 의식을 하나의 지면 위에 동시에 재현해내는 산문을 꿈꾸었던 작가이다. 러시아혁명을 전후한 시기의 유럽에서는 의식의 흐름이나 육체의 노동이라는 양극단의 회오리와 함께 언어실험에 가까운 많은 소설이 난무했으며, 바로 그러한 실험소설들을 접하면서 자란 곰브로비치는 처음부터 이들과는 전혀 다른 소설을 구상하고 있었다. 매 순간 우리 일상에서, 머리에서 발끝까지 인간의 전 육체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감각작용을 언어로 재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것이다. 처절한 폴란드 독립운동의 시련 속에도 그로테스크한 타자의 시선과 음밀한 내면은 상주하고 있다는 이 실존의 본질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언어로 재현할 것인가. 타자의 시선이 만드는 ‘형식’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 그 형식 없이는 타자를 접할 수 없으며, 이 조건을 벗어나서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인간 조건을 그려내는 그로테스크하고 환상적인 그 문장들. 곰브로비치가 세계문학에 이식한 것은 바로 언어로 완벽하게 재현된 그 ‘개체화된 욕망’이며 ‘에로틱한 철학’이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장편 는, 당시 폴란드 사회에 가장 만연하고 있던 세 가지 가치관들을 통렬하게 패러디하면서 작가가 평생 매달린 철학적 화두를 녹여낸 소설이다. 자기 자신의 에고와 타자의 시선에 의해 결정되는 자아에 대한 고찰이라는 철학적 명제를 표명하는 듯한 이 소설에는, 기존 폴란드 고전의 애국적 낭만주의를 철저하게 거부한다는 작가의 선언 또한 담겨 있다. 곰브로비치는 전후 폴란드의 전통적인 애국주의 중심의 학교교육, 신세대의 진보적 계층, 농촌을 미화하는 폴란드 지식인층 등을 차례로 도마 위에 올려, ‘미성숙’ ‘낯짝’ ‘형식’ 등의 철학적인 상징 체계를 그로테스크하게 풀어낸다. 뿐만 아니라 소설 중간 중간에는 소설의 흐름과는 무관한 철학적 단편을 삽입하여 이 소설의 독자, 비평가, 연구가 등에게 독설을 퍼붓는 형식의 파괴도 실험하고 있다. 전위소설이면서 동시에 환상적인 그로테스크와 전복적인 웃음을 겸비한 세계관을 녹여 붓는 곰브로비치의 연금술사적 솜씨가 한껏 발휘된 이 소설은, 이 화려한 영상의 시대에도 소설이라는 언어예술의 세계가 얼마나 무궁무진한지를 잘 보여준다.
철학적 상징 체계를 그로테스크하게 풀어
초기 단편집과 를 낸 뒤 즉각 문단의 주목을 받은 곰브로비치는, 폴란드 1930년대 문학의 전위 3총사(곰브로비치·슐츠·비트키에비치)로 불리며 전성기를 맞이한다. 1939년 문화계 명사들과 함께 여객선에 초대된 작가는 아르헨티나에 도착한 뒤 독일군의 폴란드 침공 소식을 접한다. 졸지에 아르헨티나에서 실향민이 된 곰브로비치는 현지 폴란드 교민 세계의 문단에서 제2의 데뷔를 한다. 그러나 이후 그가 발표하는 작품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그나마 존재하는 폴란드 교민 사회와도 고립되어 작가는 정신적·경제적으로 매우 고독하고 불행한 세월을 보낸다. 미국으로 건너간 러시아 작가 나보코프의 영어 소설 가 1955년 프랑스에서, 러시아 작가 파스테르나크의 가 1957년 이탈리아에서 나와야 했던 복잡하고도 화려한 시절 1950년대 후반에 곰브로비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카페를 전전하며 고독하게 야심작 를 쓰고 있었다.
그의 명성은 말년에야 슬며시 찾아온다. 1958년 완성된 의 프랑스어판이 1962년에 나오면서 폴란드어권을 벗어나 사실상 처음으로 세계 독자를 만나게 됨으로써 곰브로비치의 제3의 데뷔가 이루어진 것이다. 말년을 대표하는 이 소설 속에 그는 자신이 탐구한 ‘미성숙’의 철학, 에로스의 미학을 모두 집대성한다. 이번에 출간된 민음사 번역판은 이 프랑스어판을 번역한 것이다. 프랑스어판은 폴란드어 원서와는 달리 ‘서문’이 포함돼 있는데 여기서 작가는 마치 신인작가라도 되는 양 정중하게 자기소개를 하고, 이전 작품을 직접 해설하는가 하면, 독자의 몰이해에 얼마나 자신이 지쳐 있는지를 토로하며 말을 맺고 있다. 그 이후 작가의 여러 소설들이 프랑스어에서 영어로 번역될 정도로 즉각 세계적 명성은 얻었지만, 마지막 소설 의 프랑스어판으로 자그마한 문학상을 거머쥔 직후인 1969년 곰브로비치는 64년의 길지 않은 생을 마친다. 60살에 만난 동반자 리타와 결혼식을 올린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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