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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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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를 합법화하라”

등록 2004-05-05 00:00 수정 2020-05-03 04:23

변신 거듭하며 ‘땅 밑’을 헤매온 한 성인사이트 운영자가 일본 AV 심의 결과에 촉각 곤두세우는 사연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지난 4월27일 국내의 한 성인 커뮤니티 사이트가 일본 ‘성인 비디오’(AV·Adult Video) 스타 3인방을 국내에 초청했다. 일본의 AV 제작사가 국내 제휴사와 손잡고 국내 성인 영상물 시장 공략을 본격적으로 선언한 셈이다. 일본 성인 영상물이라면 근친상간이나 원조교제, 음란야동 등 음습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상황에서 국내에 안정적으로 연착륙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아무리 모자이크 처리로 수위를 조절했을지라도 1차 배급분 30여편에 대한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사후 심의를 통과하는 것은 간단치 않다. 일본 성인 영상물의 국내 인터넷 정식 서비스를 바라보는 음지의 보안 솔루션 개발자 김현동(32·가명)씨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하다.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도 ‘땅 밑’을 헤매는 ‘인터넷의 독버섯’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도의 범죄행위로 짭짤하게 챙기다

4년여 전에 “포르노도 문화로 대접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성인 영상물 업계에 뛰어든 김씨가 인터넷의 독버섯으로 자리잡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학원을 수료한 그는 각종 건강식품을 인터넷으로 판매하려고 했다. 많은 투자금도 필요하지 않았다. 석사 논문을 포기하고 구입한 컴퓨터 서버 두대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었다. 처음엔 ‘스팸봇’으로 각종 사이트의 게시판과 커뮤니티 등을 돌아다니며 주소를 긁어모았다. 그렇게 모은 주소가 수백만개가 됐을 때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이메일 주소가 필요한 사람들을 수소문해 일정액을 받고 그럴듯한 제목의 상업성 광고메일을 보냈다. 나름대로 수익이 생기기 시작할 무렵 그는 새로운 결단을 했다. 스팸메일의 폐해가 극심해지면서 광고 효과도 신통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대량 상업메일 발송의 어려움을 기술력으로 돌파하기로 했다. 그것은 바로 악성 애드웨어(광고용 소프트웨어)였다. 각종 게시물에 악성 애드웨어를 숨겨 포털사이트에 올렸다. 누군가 악성 애드웨어가 숨겨진 게시물을 열면 애드웨어가 자동으로 설치돼 컴퓨터를 멋대로 조작하도록 한 것이다. 감염된 컴퓨터는 인터넷 시작화면이 애드웨어의 ‘술수’에 따라 광고 내용 홈페이지로 고정돼 맘대로 변경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렇게 무작위로 수천만통의 메일로 성인 사이트 가입을 권유하며 운영자에게 광고 대행비를 받았다. 그는 고도의 범죄 행위인 만큼 위험 부담이 만만치 않았지만 짭짤한 ‘부당이득’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의 활동이 강화되면서 위험수당이 치솟기까지 했다. 그렇게 얼굴 없는 성인 사이트 전파자로 활동하던 그는 ‘벗기면 돈이 되는 포르노의 신화’에 빠져들었다.

그는 성인 사이트 콘텐츠를 제작해 ‘뭉칫돈’을 챙기기로 했다. 이 즈음에 성인 사이트 운영자에게서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포르노 제작과 유포가 불법인 국내에서 노골적인 성인 사이트를 운영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캐나다에 근거지를 둔 동업자와 함께 성인 방송사를 개설해 확실하게 벗기는 콘텐츠를 마련해 파일전송 프로그램으로 국내에 전송하기로 했다. 누가 보더라도 돈이 되는 ‘사업’이었다. 그는 국내에서 회원을 확보하는 일을 맡았고 동업자는 컨텐츠를 제공하는 일을 책임졌다. 불법이라는 ‘꼬리표’만 붙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투자자를 모을 수도 있었다. 성인 사이트는 기술력과 마케팅 능력이 어우려져 ‘뭉칫돈’을 안겨주었다.

왜 끊임없이 근거지를 옮겨다녀야 하나

성인 사이트는 인터넷의 최대 수혜자였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영화와 음반처럼 엄청난 초기 자본이 필요하지도 않다. 온라인에서 나름의 수익모델을 만든 성인 사이트 파일 공유로 죽을 쑬 일도 없었다. 아무리 법적으로 강경한 대응도 성인 영상물의 활로를 막지 못했다. 첨단기술로 무장해 막힌 길을 뚫어가는 노하우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성인 사이트 업체들은 놀라운 상술을 발휘하기도 한다. 웬만큼 유료회원을 확보한 사이트는 자사의 콘텐츠 일부를 군소 성인 사이트에 ‘맛보기’로 제공해 ‘눈맛’을 길들이는 것이다. 성인 콘텐츠물은 제작비용도 저렴하다. 한 성인 방송사 관계자는 “숙련된 배우가 아니어도 간단한 연기 지도를 받으면 손쉽게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작품의 질적 수준도 외국을 따라가는 추세에 있다. 하지만 제작능력이 있어도 시장에 진입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김씨는 성인 영상물의 폭발적 성장에 따라 제작자로 나서고 싶은 바람을 떨치기 힘들었다. 포르노가 국내에서 독버섯 신세를 면치 못해도 미국 등지에서는 산업적으로 할리우드를 맞설 정도로 성장한 영향도 컸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포르노 영화와 성인 사이트 등을 합해 100억달러 이상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이는 미프로축구리그(NFL)나 미프로농구(NBA), 메이저리그 등을 모두 합친 것보다 훨씬 큰 규모다. 그는 때때로 세계 최대의 포르노 영화 전문 제작사로 (Bad Wives), (Women In Uniform) 등을 성공시킨 ‘비비드 엔터테인먼트’의 경쟁상대가 되고 싶었다. 세계 최대의 음반기업인 ‘유니버설 뮤직 그룹’마저 포르노 산업에 뛰어들려고 위성방송인 디렉TV와 비비드 엔터테인먼트 등과 협력관계를 구축한 마당에 ‘근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언젠가는 성인 영상물 관련 법적 규제가 풀릴 것이라는 기대는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아무리 성인 사이트 운영에 대한 기술·마케팅 능력을 키워놓아도 쓸모가 없었다. 그렇다고 기껏해야 500여장 팔리는 ‘에로 비디오’에서 활로를 찾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모바일 서비스를 위해 연예인 누드를 제작하는 것은 꿈같은 일이었다. 불법 경쟁을 벌이며 나름대로 사업성을 키웠을지라도 영세한 성인 사이트 운영자로서는 수억원의 제작 비용을 ‘올인’하는 것이 무리였다. 포르노 사이트 접속률 세계 5, 6위권의 나라에서 근거지를 끊임없이 옮겨다녀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했다. 게다가 성인 사이트들이 노출 수위 높이기 경쟁으로 치달으면서 김씨는 사이버 수사대의 감시망을 피하는 것도 만만치 않게 됐다. 결국 김씨는 성인 영상물 시장의 외곽에서 ‘공식 서비스’에 대비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성인용 사이트는 서로 연결된 경우가 많아 한 군데만 찾아 들어가면 세계 곳곳을 순식간에 누빌 수 있다. 바로 여기에서 포르노 산업의 경쟁력이 나온다. 섹스가 국경과 언어의 장벽이 없는 전 세계인의 공통된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익명의 공간에서 성적 욕구를 해소하려는 성직자들이 포르노에 중독돼 치료를 받는 사례도 적지 않다. 외국의 대형 호텔의 경우 객실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70% 이상이 성인용 페이지뷰 서비스라는 말에도 우리는 귀를 막고 있어야 한다. 여전히 국내의 성인 영상물은 음지에서 불법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해외로 빠져나가지 않은 성인 사이트는 기껏해야 밀폐된 공간에서 콘텐츠를 만들어 일본 등지에 넘기거나 유명 포르노 사이트의 한국어 서비스를 위해 ‘교성’을 녹음하는 데 만족해야 한다.

요즘 김씨는 정통위의 일본 성인 비디오 심의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성인 영상물이 정식으로 서비스되면 그에게 또 다른 기회가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그동안 성인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골머리를 앓았던 결제와 보안 관련 프로그램으로 언제든 시장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국내 사이트에서 AV가 정식으로 서비스되면 미국과 일본의 거대자본이 잇따라 상륙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어쩌면 음지에서 갈고닦은 김씨의 기술력만으로 거대자본의 공세에 맞서기는 힘들 것이다. 불법의 그늘을 벗어난 김씨는 이렇게 말한다. “언제까지 문화적 충격 운운하면서 시장을 송두리째 내줄 것인가. 이제는 충격을 흡수할 장치를 만들고 경제적 관점에서 포르노 산업을 바라볼 때가 됐다. 이대로 나가면 국내 인력을 범죄자로 만들면서 성인물 천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인터넷 독버섯, 확실하게 제거할 방법 찾자

정말로 우리는 성인 영상물의 합법화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 무엇보다 합법적 테두리에서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 포르노가 합법화된 미국만 해도 높은 웹호스팅 비용에다 접속 수가 많아지면 호스팅 비용을 높이는 방식 등을 도입해 성인 사이트의 무차별적 범람을 제한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도 인터넷의 독버섯을 확실하게 제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음지의 사회는 독버섯이 자라는 좋은 토양이다. 아무리 화려한 색상을 자랑하는 독버섯일지라도 음지를 벗어나면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포르노를 음지에서 키우며 독버섯으로 만들었다. 포르노라면 무조건 불법의 굴레를 씌워 가두기만 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반 기업들도 관심을 기울이는 포르노 산업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에로 시장 ‘부익부 빈익빈’


[국내 성인 영상물 산업 현황]
이명구/ 기자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한국 에로 업계의 주도 세력은 단연 에로 비디오였다. 이것은 어디서 불쑥 솟아난 것이 아니라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붐을 이뤘던 이른바 ‘호스티스 영화’의 명맥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1995년 진도희가 주연한 는 에로 비디오 전성시대의 상징이다. 잠시 주춤하던 에로 비디오는 1990년대 후반 유리, 이규영 같은 신세대 에로스타를 탄생시키며 제2의 중흥기를 맞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비디오라는 매체의 힘은 이미 종언을 고하고 있었다. 에로도 인터넷 혁명이라는 거대한 파도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2000년을 전후로 초창기 성인 사이트와 에로 비디오 업계는 짧은 기간 동안 밀월관계를 유지했다. 성인 웹사이트는 콘텐츠가 빈약했고, 에로 비디오 업계는 새로운 수입원이 생겼다는 점에서 윈윈전략이 가능했다.
하지만 상황은 곧 역전됐다. 이유는 에로 데이터베이스와 노하우를 축적한 성인 웹사이트들이 직접 에로 영상물 제작에 뛰어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O양과 B양 등 연예인 섹스비디오 사건은 아날로그적 에로시장을 완전히 디지털 시대로 단번에 바꿔놓았다. 연예인 섹스비디오는 그동안 암묵적으로 법적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았던 인터넷 에로 업계에 ‘포르노는 곧 대박’이라는 꿈을 심어주었다. 불과 몇년 만에 국내 인터넷 성인 사이트가 포화 상태에 이르자 해외로 진출하는 불법 포르노 사이트들이 하나둘 늘어갔다.
지하 시장을 중심으로 제작되던 몰카류의 한국산 포르노가 세상 밖으로 나온 것도 이 시기다. 해외에서 아예 인터넷 성인 방송사를 개설한 이들은 포르노자키란 이름의 여성을 앞세워 매일같이 생생한 포르노를 만들어냈다. 막대한 수익을 올린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불법 해외 사이트간의 생존경쟁도 치열해졌다. 그것은 곧 노출경쟁을 의미했다. 노출수위는 음모에서 자위행위를 이어 실제 성행위로 숨가쁘게 넘어갔다. 더 이상 포르노를 찍는 여성도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 평범한 섹스는 애널섹스와 그룹섹스, 검샷(얼굴에 사정을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더는 갈 곳 없는 수위까지 치달았다.
2003년부터는 모바일 성인시장이 자리를 잡으면서 연예인 누드가 본격화됐다. 더 이상 에로는 뒷골목에 숨어 있는 영세하고 조잡한 업종이 아니었다. 억대를 넘는 프로젝트들이 잇따라 추진됐고 10억대를 넘나드는 매출을 기록했다. 여성 연예인들은 기꺼이 알몸의 이미지를 팔아 돈을 챙겼고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기회로 삼았다.
현재 에로업계는 두개의 축이 주도하고 있다. 하나는 성인 사이트나 불법 포르노 사이트로 탄탄한 자본을 마련한 인터넷 업체다. 또 다른 하나는 연예인 누드를 중심으로 비대해진 성인 모바일 업체다. 물론 웹과 모바일 양쪽 모두를 기반으로 하는 업체도 있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에로 비디오 시장은 완전히 고사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최근 에로 업계에서는 비디오용 에로영화 촬영이 급격하게 줄었다. 대신 모바일과 인터넷용에 맞는 5분 안팎의 짧은 에피소드류 에로 영상물 촬영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포르노는 가장 자본주의적인 사업이라는 말과 같이 에로 업계 역시 전형적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보이고 있다.
모바일과 인터넷 성인시장은 이제 신규로 진입해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구조로 굳어지고 있다. 반면, 선점과 독점 효과를 톡톡히 누리는 업체들은 갈수록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다. 국내 시장과 해외 시장은 위험수위를 넘지 않는 에로와 성 표현의 제한이 없는 포르노로 명확히 구분됐다. 한국의 에로 업계는 올 초 일본문화 전면 개방 방침에 따라 내부 경쟁에서 이젠 해외파와 맞서야 하는 입장에 처해 있다. 앞으로 에로 업계의 주도권이 또 어떻게 변화해갈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에로 업계가 무시하기엔 너무나 큰 규모의 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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