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전진식·허윤희·신윤동욱·정환봉 기자, 편집 허윤희 기자, 디자인 장광석
다급하고 놀란 목소리. “형! 형!” “왜?”
거듭 부른다. 후다닥 신발을 챙겨 신는다. “잠깐 나와봐, 얼른.” “왜? 뭐가 있어?”
천막 밖. 깜깜한 밤하늘. 서쪽 산봉우리에 밝은 불빛이 보인다. “저거 뭐야?” “뭐가?” “저기 산 위에….”
모두 산을 응시한다. “어, 저거 달 넘어가는 건데. 에이, 난 또 뭐라고.”
산 정상의 불빛이 감시의 서치라이트 아닌가 하는 착각이었다. ‘형’을 찾은 사람은 정수 아빠 최태신(51)씨. ‘형’은 승현 아빠 백용성(53)씨. 두 사람의 두 아들은 경기도 안산 단원고 2학년8반 친구다. 이날은 음력 섣달 엿새. 손톱을 잘라놓은 듯한 초승달이 산 너머로 이울고 있었다. 밤바람이 두 사람의 굳은 얼굴을 간질이고 지나갔다. 모두 허허 웃고 만다.
1월3일 동거차도. 해발 100m를 조금 넘는 산마루. 천을 다섯 겹 둘러친 움막 하나, 돔 모양 텐트가 둘.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들이 바다를 응시하는 곳. 참사 현장과 가장 가까운 땅이다. 1.6km 거리, 크레인 작업선과 보급선이 종일 떠 있다.
참사 1천 일이 코앞. 해가 바뀌었다. 세월호는 바다 밑 44m에 있다. 수온은 섭씨 10도 안팎. 참사 994일째 밤이 지나갔다. 승현 아빠가 말했다. “여기 올 때마다 울어. 혼자 많이 울어. 반별로 와서 일주일씩 있는데, 일단 울고 시작하는 거야.”
팽목의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전날인 1월2일 오후 4시30분.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세월호 팽목 분향소’. 희생자들 영정이 빼곡하게 놓인 제단. 과자, 컵라면, 콜라, 케이크, 과일, 그리고 세월호 책들이 가득하다.
분향소를 ㄱ자로 넓게 둘러싼 철제 담장에는 사시사철 ‘노란빛 개나리’가 펄럭인다. 이곳의 계절은 4월에 멈춰 있다. 멀리서 보면 개나리 같은 리본들에는 인간의 언어가 박혀 있다. “은화야 보고 싶다.” “현철아 보고 싶다.” “수사권. 기소권. 세월호. 특별법.” “온전한 세월호 인양.” “애들아 집에 가자.” “인양이 시작입니다.”
분향소 옆 가건물에는 아직 주검조차 찾지 못한 9명의 가족들 일부가 지내고 있다. 쇠로 만든 촛불 조형물의 심지에 노을이 붉었다. 그 옆으로 미수습자 9명을 기다리는 등대가 더 붉게 서 있다. 등대 앞 ‘하늘나라 우체통’을 한 시민이 유심히 본다. 2학년2반 양온유양이 생전에 쓴 글.
“겁내지 마라.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다. 기죽지 마라. 끝난 것 아무것도 없다. 걱정하지 마라. 아무에게도 뒤처지지 않는다. 슬퍼하지 마라.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조급해하지 마라. 멈추기엔 이르다. 울지 마라. 너는 아직 어리다.” 부모와 가족들은 ‘너는 아직 어리다’는 문장에서 가슴을 쳤다. 눈물을 쏟았다.
정부의 기만은 끈질기고 집요했다. 정부가 1천 일 동안 보인 행태는 눈물 닦아주는 손수건이 아니었다. 눈물을 멈출 수 없게 하는 ‘기만의 최루제’였다.사고 직후인 2014년 4월28일 해경 123정장 김경일은 기자회견을 했다. 탈출방송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해 8월 열린 재판에서 김경일의 말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5월19일 대국민담화에서 대통령 박근혜는 구조 실패의 책임을 묻는다며 ‘해경 해체’를 선언했다.
같은 해 6월30일~7월11일. 세월호 국정조사특별위원회의 기관보고가 12일간 이어졌다. 참사 당시 청와대를 비롯해 해경 등의 초동대응 부실, 대통령의 당일 행적, 구조·수습 컨트롤타워 부재 등이 쟁점이었지만, 청문회 한 번 열지 못한 채 기관보고는 끝났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피해 가족들에게 막말을 하고 회의장에서 쫓아냈다.
같은 해 7월12일, 피해 가족들은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앞두고 의견 반영과 진상 조사를 촉구했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 앞에서 단식농성도 벌였다. 세월호 특별법은 2014년 11월19일 제정됐다. 퇴선 신호: 30초 연속음
1월3일 오전 9시30분 팽목항. 동거차도로 향하는 한림페리3호에 올랐다. 여객 30여 명과 차량 11대를 싣고 배는 항구를 떠났다. 팽목항에서 동거차도까지는 2시간40분 거리. 2층 객실 안. 서너 살 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뛰어놀고 그 뒤를 아이의 오빠가 따르며 장난을 친다. 객실 구석마다 누운 사람이 많다. 섬으로 우편물을 갖고 가는 우체부는 피곤을 베고 잠이 들었다. 1997년 진수, 20년 된 여객선은 많이 떨었다.
창가에 쭈그리고 앉아 ‘운항관리규정’을 펼쳐 보았다. 여객선 객실에 반드시 비치하도록 돼 있는 문서다. 선박 도면, 안전관리 조직도, 선장의 책임과 권한, 차량 및 화물의 고박 방법, 비상상황 연락기관, 비상대응훈련 시나리오…. 퇴선 신호를 읽다가 그만 덮고 말았다. ‘퇴선 신호: 연속음 약 30초’. 세월호에서 들을 수 없었던 소리.
진실은 1천 일이 되도록 표류하고 있다. 정부는 진실을 확인할 ‘부표’ 하나 제대로 세상에 띄우지 않았다.
2014년 10월6일 검찰은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해경·선원·선사에만 책임을 몰았을 뿐, 총체적 구조 실패 책임과 국가정보원, 정·관계 로비 의혹 따위는 누락됐다. 11월11일, 정부는 수중수색을 종료하고 일주일 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도 해체해버렸다.
참사의 해를 넘긴 2015년 6월19일, 유가족들은 세월호 지원 특별법과 시행령 일부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도 냈다. 배상금·위로지원금 지급에 동의한 뒤에는 정부에 손해배상 소송을 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지금껏 결론을 내지 않고 있다.
1월3일 오후 동거차도 이옥영(50)씨 집. 산으로 오르는 길목에 있다. 이씨의 어머니 차부심(77) 할머니가 막 바다에서 가져온 주낙을 손질 중이다. 할머니 곁에서 정수 아빠와 승현 아빠가 일손을 돕는다. 할머니와 함께 사는 아들 이씨는 참사 때 사고 해역을 떠다니던 한 학생의 주검을 수습했다. 세월호와 인연이 그렇게 닿았다. 승현 아빠가 말했다. “이 집이 우리 유가족들의 베이스캠프야. 산에서는 씻을 수가 없어서 가끔 여기로 와.” 빨랫줄에 널린 우럭·노래미·장어가 햇살과 해풍에 꾸덕꾸덕 마르고 있었다.
이씨 집에서 산마루 초소까지는 어른 둘이 나란히 오를 수 없다. 그만큼 산길이 좁다. 10여 분 걸으니 울창한 대나무숲이 길을 가로막는다. 바람이 휙 분다. 대나무들이 서로 부딪쳐 손벽을 친다. 어둡고 축축한 대나무숲. 초소에 가려면 이곳을 반드시 지나야 한다. 환한 진실에 가닿으려면 어둠의 터널을 지나야 한다는 듯.
대나무숲을 지나면 옛 우물이 있고 경사가 급해진다. 숨을 고르고 발걸음을 다시 떼면, 동백이 좌우로 손님을 맞이한다. 군데군데 붉은 꽃도 피었다. 20분쯤 지났을까, 땀이 등골로 한두 방울 흐를 때쯤 산마루에 겨우 닿는다. 이 길을 2015년 9월부터 유가족들은 숱하게 오르내렸다. 먹을거리와 생필품을 등짐에 지고 아버지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걸어 올라간 길이다. “지난 금요일에 세 번을 지게 지고 올라왔더니 쭉 뻗어버렸어. 숨을 못 쉬겠는 거야.”(승현 아빠)
승현 아빠와 정수 아빠는 다른 피해 유가족 및 시민 40여 명과 새해 첫 새벽, 미수습자 9명을 위한 차례상을 산마루에 차렸다. 떡국 아홉 그릇에 과일, 떡, 생선, 치킨, 피자…. “나를 잊으셨나요?” “기억하지 않으면 반복됩니다” 문구를 적은 노란 풍선들이 섬 하늘로 날았다. 고깃배를 얻어 탄 가족들은 참사 해역으로 다가가 국화를 던졌다. 이들의 새해 소망은 단 하나. “조속한 세월호 인양, 그리고 진상 규명.”
터널 지나면 해가 나올까 참사의 어두운 터널이 1천 일 이어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정부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발목을 사사건건 잡았다. 2015년 2월 특조위에서 낸 직제·예산안을 한 달 넘게 깔아뭉갰다. 조대환 특조위 부위원장(새누리당 추천)은 ‘이석태 위원장 사퇴, 특조위 해체’라는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세월호는 기울어진 운동장. 전리품 잔치를 하는 곳이다.” 대통령 박근혜는 탄핵소추안이 지난해 12월9일 국회에서 의결돼 직무정지가 되기 직전 조대환을 청와대 민정수석에 임명했다.반면 세월호 집회는 눈엣가시 취급을 당했다. 집회를 이끈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박래군·김혜진은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집행유예형을 선고받았다.
두 아빠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제 초소로 다시 올라갈까요?” 진돌이가 꼬리를 흔들며 앞장섰다. 진돌이가 동거차도에 온 지는 7개월쯤. 유가족 가운데 한 분이 ‘족보’ 있는 진돗개를 분양받아 데려다놓았다. 정수 아빠의 말.
“초소에 혼자 있으면 진짜 힘든 자리야. 저 개가 있으니까 나은 거야. 개 없으면 여기서 진짜 힘들어. 섬에 고양이가 얼마나 많은데. 앵앵 우는 소리에 잠도 못 자. 먹을거리도 다 헤집어놓고. 진돌이가 고양이들을 다 쫓아냈어. 이제는 고양이들이 초소까지 안 올라와. 우리 살게 만든 게 저 개야.”
초소가 있는 산마루에 오르니 바다가 두 눈에 쏟아져 들어온다. 중국 상하이샐비지 소속 크레인 작업선과 예인선, 보급선 따위가 정물처럼 바다에 박혀 있다. 손에 잡힐 만큼 선명하게 보인다. 그러나 실제 무슨 작업을 하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궁궁궁… 배들의 엔진 소리만 들려온다.
산마루에서 바다 쪽 좁고 가파른 길을 20분쯤 헤치고 걸어갔다. 바지선과 가장 가까운 절벽에 닿는다. “거기서 ‘뛰어내리면 진짜 편하겠다’ 그런 충동을 느꼈어. 처음 한두 번 왔을 때는 정말 힘들었어.” 정수 아빠의 말이다.
절벽으로 가는 길 곳곳에 글귀를 적은 노란 천조각들이 나뭇가지에 달려 있다. 고개를 돌려 초소 쪽을 바라보면, 바다 쪽 능선 전체에 수백 수천 그루의 고사목이 우뚝하다. 비바람에 가지가 꺾이고 잎 하나 없이 죽은 나무들이 장승처럼 섬을 지키고 있다.
돌아보면, 피해 유가족들의 1천 일 시간 자체가 절벽이었다. 사고 1천 일을 맞는 두 아빠의 마음은 착잡했다. 동거차도 초소에 온 게 승현 아빠는 네 번째, 정수 아빠는 여섯 번째. 지난해 여름 끔찍한 더위에 정수 아빠는 이곳에서 혼자 일주일을 지내기도 했다.
“천 일이라는 개념이 없어져버렸어. 날짜 따지는 게 싫어. 그냥 평상시대로, 1주년 되면 행사하고… 그게 제일 낫겠더라고. 아이의 그날 잊지 않고. 생색내기하는 것 같아서 그래.”(승현 아빠)
“지상에서 천 일이 하늘에선 일 년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 천 일 행사 하는 거 다 우리 마음이잖아. 사람 사는 게 모두 마음이야. 우리 마음이 안 따라주면 절대 안 되는 거거든. 이번 천 일도 우리가 그냥 믿는 거야.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이거밖에 없는 거야.”(정수 아빠)
우울한 마음도 잠시. 해가 지니 저녁밥을 차려야 한다.
민물낚시 즐기는 정수 아빠가 요리 솜씨를 냈다. 주민들에게서 얻은 우럭·노래미·장어가 10여 마리. 간장, 참기름, 고춧가루, 대파, 깨소금으로 양념장 끝. 설탕이 없다며 아쉬워한다. 프라이팬에 솔가지를 깔고 물을 부은 다음 그 위에 생선을 한 마리씩 담는다. 양념장을 생선살에 잘 바른다. 산 중턱 길섶에서 캔 달래도 한 줌씩 넣는다. 마늘도 으깨어서 던져넣는다. 뚜껑을 덮고 푹 끓인다. 솔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저녁이 뚝딱 차려졌다.
가로세로 1m가 채 안 되는 탁자가 식탁이다. 구석에 ‘4·16 희망목공방’이라는 글자가 파여 있다. 스티로폼 상자를 덧대어 네 사람 자리를 갖췄다. 정수 아빠가 손수 생선을 그릇에 담아 건넨다. 종이컵에 소주도 따라준다. 소주 안 마시면 밤에 잠을 잘 수 없는 곳이란다. “많이 먹어요.” ‘유가족들의 벗’ 진돌이가 천막 틈으로 빼꼼하게 고개를 들이밀었다.
2015년 8월19일 인양업체 상하이샐비지의 수중수색이 시작됐다. 참사 490일 만이다. 유가족들은 동거차도 산마루에 감시초소를 설치하기 시작했고 9월부터 인양작업 감시에 들어갔다.그달 초 정부는 특조위 예산 요청액의 절반을 깎아버렸다. 상하이샐비지는 선체 조사에 협조해달라는 특조위의 요청도 거부했다. 인양작업은 수차례 기한을 넘기며 지금까지 갈팡질팡했다. 지난해 11월 해양수산부는 ‘연내 인양 실패’를 공식 인정했다. 유가족들은 정부가 인양 자체에 의지가 없다고 믿는다.
2015년 11월12일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세월호 이준석 선장 무기징역. 선원 14명에게는 징역 1년6개월~12년이 선고됐다. 그다음 달 특조위 1차 청문회가 곡절 끝에 사흘간 열렸다. 사고 초기 대응에서 적극적 구조 지휘·작업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과 재난 대응·구조 시스템의 문제점을 일부 확인할 수 있었다.
밤 9시. 크레인 작업선 불빛은 하얗게, 그 옆 보급선 불빛은 노랗게 빛났다. 더 멀리 오징어잡이 배들의 집어등이 보였다. 물살 세기로 유명한 곳, 파도들이 부딪쳐 뒤척이는 소리가 밤새 이어졌다. 궁궁궁, 쿵쿵쿵… 엔진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작업 소리는 아닌 듯했다. “쟤네들 작업 안 해. 그냥 저러고 있는 거야.” 승현 아빠가 혀를 찼다.
12월31~1월1일 해맞이 행사를 취재하러 온 취재진은 썰물처럼 돌아가고 없었다. 초소 오른편으로 천막 쪼가리가 밤바람에 펄럭였다. 사고 초기 방송사에서 취재를 왔다가 버리고 간 것들이란다.
파도마저 전전반측하는 바다 유가족들의 질긴 호소에도 메아리 없는 정부였다.2016년 3월, 4·16가족협의회는 국회에서 삭발 단식농성을 했다.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과 특별검사 임명 요청안을 서둘러 통과시켜달라는 것. 단식농성은 80시간 계속됐다. 특별법 개정안은 새누리당의 반대에 가로막혔다. 19대 국회가 종료되면서 자동 폐기됐다.
6월17일, 희생자 수습에 앞장섰던 민간잠수사 김관홍(43)씨가 세상을 떠났다. 동거차도 초소 안에는 ‘김관홍님은 진정한 세월호의 은인이십니다’라는 글자와 생전 잠수복을 입은 그를 새긴 목판이 매달려 있다.
기자는 2015년 4월 그를 만나 인터뷰한 적이 있다. “잠을 자려고 하면 수색 작업 때의 기억이 머리를 가득 채운다. 술도 마시고 약도 먹지만 좀처럼 벗어날 수가 없다.”(제1057호 표지이야기 ‘아직도 세월호 안에 갇힌 것 같아요’ 참조)
김씨 사망 나흘 뒤, 정부는 특조위 종료(6월 말)를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11월 특조위 조사관들은 강제 폐쇄된 사무실을 떠나 새 둥지를 차렸다. 진상 규명 활동을 계속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12월3일 유가족들이 청와대 100m 앞까지 행진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점화된 촛불집회 여섯 번째 날. 참사 963일 만이었다.
동거차도의 밤은 깊어갔다. 자정 가까운 시각에도 두 아빠들과 대화는 멈추지 않았다. 정용일 기자가 말했다. “눈에 안 보이니까 아들이 못났던 것보다, 살면서 가장 살갑게 대했던 것만 생각나더라고요.” 정 기자의 아들은 군에 간 지 1년쯤 되었다. 승현 아빠가 받았다. “자기 자식 나빴다는 사람 하나도 없어. 좋은 거만 생각나. 희한해.”
다음날 새벽. 물안개 사이로 크레인 작업선이 전날보다 좀 멀어져 있었다. 이상했다. 작업 소리는 여전히 들리지 않았다. 육안으로도 크레인은 요지부동이었다. 전날 밤 두 아빠의 말이 떠올랐다. “자식은 묻는 게 아니라 평생 갖고 있는 거야. 묻는 거하고 달라. 지금도 불뚝불뚝 순간 생각나는데….”(정수 아빠) “갖고 있는 게 묻는 거고, 가슴에 품고 있다는 거야. 마찬가지야.”(승현 아빠)
정수는 5월4일 바다에서 뭍으로 나왔고 이틀 뒤 승현이도 부모와 만났다. 동물을 좋아한 승현이는 모델이나 동물조련사가 되고파 했다. 영화·연극을 즐겼던 정수는 방송사 PD가 꿈이었다. 승현 아빠는 안산을 떠나 고향(강원도 양구군)으로 돌아가 살고 싶다고 했고, 정수 아빠는 눈시울이 붉어져 말을 잇지 못했다.
금요일에 만나요1월4일 낮 12시50분. 팽목행 한림페리3호가 동거차도에 닿았다. 두 아빠와 악수를 나눴다. 언제 이 섬에 다시 올지, 두 아빠를 여기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 없는 이별이었다. 두 아빠는 다시 이옥영씨 집으로 향했다. 섬 주민들과 잘 지내야만 산마루 초소를 영원히 지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승현 아빠의 말이다. “섬 주민들이 막으면 우리가 어떻게 초소에 올라갈 수 있겠어요. 우리는 오르기 위해서 내려가는 거예요.”
두 아빠는 다시 좁고 가파르고 구부러진 산길을 올라 초소에서 바다를 내려다볼 것이다. 거기에 진실이 가라앉아 있기 때문이고, 거기에 자식의 마지막 숨결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사람 아홉이 아직도 있기 때문이다.
단원고 학생들은 제주 수학여행을 마치고 금요일 귀가 예정이었다. 동거차도 감시초소의 교대일은 금요일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불금’은 없다.
동거차도·팽목항(진도)=글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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