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대통령)를 위시한 청와대가 정부 부처들이 여럿 동원되는 ‘범정부 TF(태스크포스)’를 꾸리고, TF가 비선 실세들의 이익을 국익으로 포장하는 창구로 쓰인 정황이 확인됐다. 에 나오는 고사에서 비롯된 ‘농단’은 ‘가장 유리한 위치에서 이익과 권력을 독차지한다’는 뜻이다. 국정 농단으로 얻으려던 비선 실세의 이익은 궁극적으로 누구의 이익이었을까.
‘범정부 TF(태스크포스)’에서 미르재단의 이권 사업이 국가 정책으로 비약된 정황을 뒷받침하는 TF 참석자의 증언이 나왔다. 대통령을 위시한 청와대가 여러 정부 부처를 동원해 범정부 TF를 꾸리고 이를 비선 실세의 이익을 챙기는 창구로 활용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미르재단이 관여된 범정부 TF에서 오간 논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범정부 TF 논의 내용은 관련 부처가 회의록이 없다는 이유 등을 들어 일체 공개하지 않고 있다.
16일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과의 통화에서, 미르재단과 계약을 맺은 이화여대 박아무개 교수 연구팀의 쌀가공제품을 정부 예산으로 구매한 배경에 대해 “TF에 참석했을 때 미르재단으로부터 이화여대 쪽에서 개발한 시제품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시제품을 완성품으로 양산하는 ㄱ업체도 TF에서 미르재단을 통해 알게 돼 구입했다”고 말했다. 사실상 범정부 TF에서 미르재단이 재단 사업을 정부 부처들에게 알리고, 정부 부처가 이 사업을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국가 정책으로 실행하는 ‘주객전도’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해당 TF는 박근혜 대통령의 아프리카 3개국 순방(5월25일~6월1일)을 앞두고 지난 1월 꾸려진 ‘코리아에이드 TF’다. 코리아에이드 사업은 보건·음식·문화 3요소를 결합시킨 해외원조사업이다. 보건은 케이메딕(K-Medic·구급차를 이용한 이동형 보건 서비스), 음식은 케이밀(K-Meal·쌀 가공식품과 비빔밥·김치 등 한식 제공), 문화는 케이컬처(K-Culture·개도국 소녀 보건교육)로 부른다.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초기 코리아에이드 음식 분야인 ‘케이밀 사업’이 애초 미르재단의 이권을 위해 기획됐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그 근거로 △코리아에이드 TF에 이한선 미르재단 이사가 참석 △코리아에이드 TF의 아프리카 현지 답사에 미르재단 실무자가 동행 △농식품부가 미르재단과 계약한 이화여대 연구팀과 쌀가공제품 개발 계약을 체결한 사실 등을 들었다.
농식품부는 이화여대 연구팀과는 계약을 체결한 적이 없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정부 부처가 공식 계약도 하지 않고 민간재단인 미르재단의 사업 파트너에 불과한 연구팀 개발 제품을 정부 예산으로 구입한 것이 더 큰 문제다. ‘범정부 TF’가 정상적인 행정 절차 없이 미르재단의 사업을 정부 부처에 할당하는 통로로 악용된 셈이기 때문이다.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입수한 외교부 TF 운영 자료를 보면, 이한선 미르재단 상임이사는 1월21일 코리아에이드 TF 첫 회의 때 참석했다.
특히 미르재단은 이화여대 연구팀과 계약한 케이밀 시제품 개발 비용까지 정부 예산으로 처리하려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미르재단 쪽에서 시제품 개발 비용까지 부담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는데 그건 안 된다고 거부했다”고 말했다.
코리아에이드TF가 비선 실세의 이권을 대통령 해외순방의 주요 사업으로 공식화하는 창구 구실을 했다는 측면에서 청와대가 TF 구성을 진두지휘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심재정 보좌관은 “청와대 각 수석실에서 TF에 참여한 것을 보면, 청와대가 TF 구성의 주체라고 의심된다. 외교부는 ‘TF는 우리가 관여하는 문제가 아니다. 한 멤버일 뿐이다’라고만 할 뿐 누가 주체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국빈 방문(5월1~3일)을 계기로 구성된 범정부 TF인 ‘케이타워TF’에서는 아예 청와대가 관련 사업을 기획·주도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연풍문 회의’라고도 일컫는 케이타워TF는 코리아에이드TF처럼 관련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들이 다수 참여한 ‘범정부 TF’다.
당시 케이타워TF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과의 통화에서 K타워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낸 게 누구냐는 질문에 “당시 정만기 산업통상비서관(현 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이 낸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케이타워TF에서 공동으로 마련한 사업으로 알려졌다. 케이타워TF는 청와대 산업통상비서관이 주재하고 국토교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코트라, LH, 한국수출입은행 등이 참석한 범정부 회의체였다.
케이타워TF는 이란 테헤란에 케이타워라는 한류타운을 조성하는 ‘K타워 프로젝트 사업’을 위해 구성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란 국빈 방문 중이던 지난 5월2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이란 교원연기금이 ‘K타워 프로젝트’와 관련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K타워 프로젝트는 협약 당사자인 LH와 포스코 E&C 외에 ‘미르재단’이 사업 주체로 명시돼 미르재단의 이권 사업을 위해 기획된 국정 농단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 국가 사업이다.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LH에서 받은 K타워 프로젝트 관련 공문서 곳곳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개입한 정황을 뒷받침하는 것도 많다. LH 담당자가 작성한 ‘이란 출장 업무 성과 보고’에는 “VIP 관심사로서 한-이란 공동선언문에 포함되어 있어 적극적인 추진이 불가피”하다는 표현이 있다. 지난 9월 방한한 이란 외교부 부장에게 LH 관계자가 “K타워 프로젝트는 한국 LH에 중요한 프로젝트로 정부 및 대통령의 관심사항”이라고 말했다는 기록도 있다.
특히 5월 이후 추진 상황을 보면 당시 K타워 프로젝트 사업 자체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부풀려진 대목이 많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란 대통령과 발표한 공동성명에는 ‘이란 테헤란에 K타워를 설치하고, 서울에는 같은 개념의 I-타워 건립을 추진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지난 9월 방한한 이란 외교부 실무자는 I타워 추진 상황을 묻는 LH 관계자에게 “ I타워는 현재 전혀 추진 사항이 없으며 가까운 미래에도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양국 정상의 공동성명에 사실상 한국 정부의 ‘희망사항’이 일방적으로 반영된 것이다.
케이타워TF에 참석한 기관이나 프로젝트 참여 기업의 사업 참여 의사를 과장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도 있다. LH의 사업계획(검토)안에 5월 순방 당시 ‘투자 의향이 있다’며 재원 투자 기관으로 명시된 한국수출입은행은 6월2일 ‘이란 K타워의 본격 추진을 위한 관련 기관 협의’ 회의에서 “본 프로젝트에 대한 내부 협의된 사항 없다”는 입장을 전달한 사실이 회의록에 기록돼 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코오롱(“사업진행상 컨설팅 등의 협조는 가능하나 투자는 어려움”)과 포스코(“EPC로서만 참여하고자 함”) 역시 투자에 난색을 표했다.
K타워 프로젝트는 현재 답보 상태다. 교원연기금과의 MOU 체결 이후 LH 담당자가 작성한 ‘이란 K타워 사업 검토안’에는 2016년 7월 ‘대상지 협의 및 사업계획안 수립’을 완료하고 2017년 10월 준공 및 입주가 목표다. 하지만 11월 현재 부지 확보조차 안 됐다.
LH 관계자는 “애초 일정대로 가기 힘든 것으로 보고 있다. 좋은 위치에 저렴한 가격으로 토지를 확보할 수 있어야 이 프로젝트가 의미 있는 것이다. 이란 테헤란 땅값이 의외로 비싸고, 이란 정부가 국공유지를 저렴하게 줘야 하는데 그게 쉬운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되고 있다”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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