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거침없는 특검 칼날의 끝은?

‘블랙리스트·대통령 뇌물 혐의’ 수사 양 날개로 속도전 벌이는 특검

점점 드러나는 최순실의 국정 영향력 행사와 김기춘의 ‘좌파 척결’
등록 2017-01-17 09:12 수정 2020-05-02 19:28
박영수 특별검사가 1월12일 서울 대치동 특별검사팀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박영수 특별검사가 1월12일 서울 대치동 특별검사팀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과감한 압수수색과 거침없는 피의자 소환으로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수사가 거듭될수록 최순실씨가 나라 곳곳에 대통령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행사한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이와 별도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을 중심으로 군부독재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좌파 척결’이 진행됐다는 내용이 새로 드러나고 있다.

특검의 쾌속 수사

특검은 모두 4개의 수사팀으로 구성됐다. 1팀은 청와대가 최순실씨에게 각종 내부 문서를 유출한 경위와 최씨의 딸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부정 입학 등 최씨 일가와 관련한 의혹을 수사한다. 2팀은 문화·체육계의 국정 농단 사건을 수사 중이다. 3팀은 ‘세월호 7시간’ 의혹과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의료 정황 등을 수사 중이며, 4팀은 박 대통령의 뇌물죄 입증을 위해 대기업들에 칼을 겨누고 있다.

70일의 전체 수사 기간 중 3분의 1가량이 지난 상황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2팀의 문화·체육계 수사와 4팀의 박 대통령 뇌물 혐의 수사다.

2팀의 문화·체육계 수사는 ‘블랙리스트’로 대표된다. 박근혜 정부가 1만 명에 가까운 문화계 인사들을 지정해 각종 지원을 중단했다는 언론 보도가 시작점이었다. 이 의혹을 수사로 이어간 특검은 청와대 차원에서 블랙리스트를 관리한 증거를 찾기 위해, 2016년 12월26일 김기춘 전 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집 등을 압수수색했다.

특검은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청와대 정무수석실 주도로 블랙리스트가 작성됐고 문체부와 그 산하기관 업무에 적용된 것으로 본다. 조 장관은 당시 대통령실 정무수석으로 일했다. 이 밖에도 특검은 블랙리스트의 실물과 문체부 직원의 진술 등 여러 증거를 확보해 1월12일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등으로 구속했다. 이들이 구속되는 날에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것으로 추정되는 전 청와대 행정관의 집 등 7곳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특검 수사는 블랙리스트에만 머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는 1월9일 보수 성향 문화예술인 중에서도 박 대통령을 비판한 이력이 있는 이른바 ‘배신자’의 명단을 모아 ‘적군리스트’를 작성해 관리한 정황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특검은 이런 ‘리스트’를 활용한 관리가 문화계뿐 아니라 다른 여러 분야에 적용된 정황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특검 대변인인 이규철 특검보는 1월10일 “(문화계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약간 정황이 있다”고 말했다. 이미 교육계에선 박근혜 정부 들어 석연치 않은 국공립대 총장 인선이 잇따라 일어난 배경에 ‘블루리스트’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최태원 회장 사면 관련 녹음파일 확보

블랙리스트 수사가 중요한 이유는 김기춘 전 실장 때문이다. 숨진 김영한 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의 업무수첩 등을 보면, 김 전 실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최순실씨와 함께 국정을 운영한 양대 축으로 볼 수 있다. 최씨가 문화체육, 정무, 대통령 메시지 등을 관리했다면 김 전 실장은 검찰 등 사정 라인과 공안 등을 총괄해온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특검 역시 두 사람이 종속적 관계가 아니라 대등하게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했다고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최씨를 중심으로 하는 수사는 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반쪽만 드러내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특검이 블랙리스트를 고리로 김 전 실장을 궁지로 몬 뒤 김 전 민정수석의 업무수첩에 담긴 세월호 수사 개입, 보수단체를 활용한 야당 정치인 고발 등 숱한 의혹들까지 수사를 확대할 수 있을지가 주목되는 이유다. 특검은 이미 김 전 수석의 업무수첩을 입수한 상황이다.

4팀이 맡은 대기업 수사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박 대통령의 범죄 혐의 중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뇌물 혐의의 윤곽이 점점 더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사실 박 대통령의 뇌물 혐의 수사는 검찰 단계에서도 상당히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블랙리스트 수사가 중요한 이유는 김기춘 전 실장 때문이다. 숨진 김영한 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의 업무수첩 등을 보면, 김 전 실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최순실씨와 함께 국정을 운영한 양대 축으로 볼 수 있다.

이 사건 초기부터 박 대통령에게 제3자 뇌물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법조계 안팎의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법원은 제3자 뇌물죄처럼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취하게 하는 경우 일반 뇌물죄보다 구체적인 대가성이 있었는지를 더 엄격하게 본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의 뇌물죄를 입증하려면 각 기업이 어떤 구체적 대가를 바라고 미르·K스포츠 재단 등 최순실씨 쪽에 돈을 냈는지 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대목이었다.

특검은 삼성의 경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지배권 확보, 롯데와 한화는 면세점 사업자 선정, SK와 CJ는 각각 최태원 회장과 이재현 회장의 사면 등 구체적 현안이 있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르·K스포츠 재단에 거액을 출연한 것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SK의 경우 특검은 2015년 광복절 특별사면 직전 청와대가 최 회장 쪽에 특정한 요구를 전달한 것으로 보이는 녹음파일을 확보했다.

는 1월12일 회장이 사면되기 나흘 전인 2015년 8월10일 김영태 SK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위원장이 서울 영등포 교도소에 수감된 최 회장을 찾아가 “박 대통령이 사면을 하기로 하며 경제 살리기 등을 명시적으로 요구했다. 사면으로 출소하면 회장님이 해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며 이같은 접견 녹음파일을 특검이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광복절 특사에 포함된 대기업 총수는 최 회장이 유일했다. SK는 최 회장이 사면된 지 두 달 만에 미르재단에 68억원을, 2016년 1월 K스포츠재단에 43억원을 냈다. 이 밖에도 특검은 수사 선상에 오른 여러 대기업 총수가 박 대통령과 독대하면서 구체적인 민원을 전달하고, 두 재단 출연을 비롯한 청와대의 요구사항을 들어준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국회 위증 혐의 고발 적극 활용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 비서실장이 2016년 12월 7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 비서실장이 2016년 12월 7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특검은 정유라씨의 부정 입학 및 학점 특혜 의혹과 관련해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 류철균(필명 이인화) 이화여대 교수 등을 구속했다. 또한 최순실씨의 조카인 장시호씨에게서 최씨가 2015년 7월부터 11월까지 사용한 태블릿PC를 확보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태블릿PC 사용자 연락처 명의는 최씨의 개명 뒤 이름인 최서원이며, 정유라씨 지원 등을 위해 삼성 쪽과 주고받은 전자우편과 각종 자료가 저장돼 있다. 태블릿PC에 담긴 내용이 무엇이냐에 따라 수사는 더 확대될 수 있다.

특검은 이처럼 광범위한 수사를 하면서 ‘위증 고발 요청’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한 증인들의 진술을 분석해 수사 내용과 다를 경우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국조특위)에 위증 혐의로 고발을 요청하는 것이다.

특검이 국조특위에 청문회 위증 혐의로 고발을 요청한 사람은 조윤선 문체부 장관,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 등이다. 김기춘 전 실장, 우병우 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 등은 국조특위가 나서서 특검에 위증 혐의 등으로 수사 의뢰했다.

국회 청문회에서 위증한 죄는 법정에서 위증한 것보다 형량이 무겁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을 보면 “이 법에 의하여 선서한 증인 또는 감정인이 허위의 진술(서면 답변을 포함한다)이나 감정을 한 때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돼 있다. 벌금형 없이 징역형뿐이다. 형법 제152조에는 법원 등에서 위증한 이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보다 형량이 더 높은 것이다.

특히 위증은 증거인멸과도 연결되기 때문에 법원에서 구속영장을 발부받는 데도 유리하게 작용한다. 법원은 구속영장 발부의 주요 요건 중 하나를 증거인멸 우려로 보고 있다. 수사 대상으로 삼은 영역이 워낙 광범위하기 때문에 특검은 비교적 입증이 쉬운 위증 혐의를 적용해 피의자들의 신병을 확보한 뒤 추가로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이는 것으로 보인다.

비리 규모 견줘 너무 짧은 70일 수사 기간

현재까지 특검은 다양한 돌파구를 마련하며 수사를 순조롭게 이끌고 있다. 하지만 난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70일로 정해진 짧은 수사 기간에 비해 밝혀야 할 의혹이 너무 많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관련한 각종 의혹과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행적 등에 대해서는 수사 진도가 좀처럼 나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최순실씨 일가가 수천억원대 재산을 형성한 과정을 밝히는 것도 쉽지 않다. 특히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검찰 수사부터 법원 인사 및 징계, 각종 보수단체 관리를 한 의혹까지 밝혀내기에는 수사 기간이 너무 짧다.

바꿔 말하면, 박근혜 정부 4년 동안 불법과 비리가 그만큼 거대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특검 수사 기간은 30일 연장이 가능하지만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고 있는 황교안 국무총리가 이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갈 길은 먼데 해가 짧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