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두 사람의 운명 특검의 운명

검찰 재직 시절 습득한 지식을 법망 피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김기춘·우병우

두 사람 수사에서 특검의 능력과 역할 드러날 것
등록 2016-12-14 17:30 수정 2020-05-03 04:28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지난 12월7일 최순실 국정조사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했다. 김 전 실장은 이날 국정 농단 의혹과 관련한 대부분의 질문에 “모르는 일”이란 답변으로 일관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지난 12월7일 최순실 국정조사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했다. 김 전 실장은 이날 국정 농단 의혹과 관련한 대부분의 질문에 “모르는 일”이란 답변으로 일관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커튼 뒤에 숨어 있던 실력자 최순실씨와 ‘문고리 권력’을 움켜쥐었던 정호성 전 대통령비서실 부속비서관이 구속됐다. 수사는 박근혜 대통령 턱밑까지 치닫고 있다. 이 와중에도 빠져나가려 애쓰는 이들이 있다. 김기춘(77)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우병우(49) 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이다.

김기춘 전 실장은 12월7일 국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특별조사위원회(최순실 특위)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각종 국정 농단 의혹에 대해 ‘몰랐다’는 말만 반복했다. 특히 최순실씨와의 관계를 극구 부인했다.

도의적 책임 있어도 법적 책임은 없다?

이종구 새누리당 의원이 “(2014년 말 정윤회 비선 실세 의혹 당시 문건에) 정윤회도 나오고 최순실이도 나오고 다 나오잖아요?”라고 묻자 “그 문건에 최순실 이름은 안 나옵니다. 정윤회만 나오고요. 정윤회 이름은 나오지만 최순실 이름은 안 나왔고”라고 답변한다. 또 “그 문서에는 이런 것이 나오지 않아서 저는 그때까지도 사실 최순실 존재는 몰랐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최순실씨 존재 자체를 2014년 말까지 몰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정윤회 의혹 문건에는 최순실씨 이름이 담겨 있었다. 결국 김 전 실장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청문회 중 2007년 7월19일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최씨 이름이 언급되는 동영상을 보여주자 말을 바꿨다. 이 영상에는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참석했고, 박근혜 캠프 법률지원단장을 맡은 김 전 실장도 자리했다.

이어진 질의에서 김 전 실장은 “제가 최순실의 이름을 최근에 알았다고 말씀드렸는데, 그것은 아까 박영선 위원님이 제시한 여러 가지 자료에 의해서 ‘아, 내가 착각했구나’ ‘잘못 기억이 됐구나’ 하고 바로잡습니다. 아마 지금 그 자료를 보니까 2007년 또는 2014년에 최순실 이름은 들은 것 같습니다마는 제가 최순실을 모른다는 것은 전화를 하거나 또는 면담을 하거나 만나거나 하는 이런 지인, 아는 관계가 아니라는 뜻으로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해명했다.

김 전 실장이 이처럼 최순실씨를 몰랐다고 주장하는 것은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한 도의적 책임은 있지만 법적 책임은 없다는 걸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궁지에서 쉽게 빠져나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김 전 실장은 이미 피의자다.

검찰은 김 전 실장이 2014년 10월 당시 김희범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에게 1급 공무원 6명의 사표를 받아내라고 지시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를 두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이 수사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별검사에서 이어질 전망이다. 이미 특검은 김 전 실장을 수사 대상에 올려놓고 있다. 다만 수사가 녹록지는 않아 보인다. 박영수 특별검사는 12월2일 기자들을 만나 “(수사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김기춘 전 실장일 것이다. 그분의 논리가 보통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영한 업무수첩’으로 김기춘 혐의 늘어날 가능성

김 전 실장을 공격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무기는 숨진 김영한 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이 남긴 업무수첩이다. 이 입수한 업무수첩에는 김 전 수석의 청와대 재직 시절 김기춘 전 실장이 내린 지시가 빼곡하게 담겨 있다. 한자로 ‘長’(장)이라고 쓴 뒤 김 전 수석이 적어 내려간 업무수첩 내용을 보면, 김 전 실장에게 범죄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 대목이 여럿 나온다.

업무수첩에는 대선 여론 조작 의혹을 받던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에 대해 ‘지록위마’라고 비판했던 김동진 부장판사를 지목해 ‘비위 법관의 직무배제 방안 강구’라고 적는 등 법원의 인사와 판결에 개입하려 한 정황이 여럿 드러난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의혹을 제기한 것과 관련해 보수단체의 고발을 유도하거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원을 상대로 한 범무부와 검찰의 징계 추진을 직접 지시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도 곳곳에 나온다. 직권남용죄를 물을 수 있는 부분이다.

업무수첩에는 민간인 사찰 정황도 포함돼 있다. 2014년 8월7일 업무수첩에는 ‘허수아비 그림(광주), 애국단체 명예훼손 고발’ ‘신부-뒷조사. 경찰, 국정원팀 구성→6국 국장급’이라고 적혀 있다. 허수아비 그림은 2014년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에서 홍성담 작가 등이 그려 전시하려던 이란 작품이다. 이 그림에는 김 전 실장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 닭 모양의 허수아비로 그려진 박근혜 대통령을 조정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이 작품은 결국 전시에서 제외됐다. 이 과정에 김 전 실장 등이 부당하게 개입했다면 업무방해 혐의를 물을 수 있다.

2014년 11월25일에는 ‘조계사-황선 장소 제공-경위 조사 후 조치(자승)’ 등 종교계에 개입하려 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도 나온다. 김 전 수석의 업무수첩을 바탕으로 특검이 수사를 진행한다면 김 전 실장의 혐의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게 된다.

청문회도 무시하는 우병우
우병우 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이 11월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했다(왼쪽). 우 전 수석은 최순실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 출석요구서를 받지 않기 위해 최근 자신의 집을 떠나 장모 김장자 삼남개발 회장 집에 머물렀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회 입법조사관은 12월6일 우 전 수석을 만나기 위해 김 회장의 서울 논현동 빌라를 찾았지만 끝내 출석요구서를 전달하지 못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정용일 기자

우병우 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이 11월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했다(왼쪽). 우 전 수석은 최순실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 출석요구서를 받지 않기 위해 최근 자신의 집을 떠나 장모 김장자 삼남개발 회장 집에 머물렀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회 입법조사관은 12월6일 우 전 수석을 만나기 위해 김 회장의 서울 논현동 빌라를 찾았지만 끝내 출석요구서를 전달하지 못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정용일 기자

모르쇠로 일관하는 김 전 실장보다 더 노골적으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책임을 피하려는 인물도 있다. 우병우 전 수석이다. 김 전 실장처럼 우 전 수석도 최순실씨 국정 농단 행위를 알면서도 이를 바로잡지 않은 혐의(직무유기)로 검찰에 입건됐다.

특히 우 전 수석은 특검법에 수사 대상으로도 명시돼 있다.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 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에는 총 14개의 수사 대상이 정리돼 있다. 이 중 우 수석이 관련된 대목은 2개다.

하나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민정비서관 및 민정수석비서관 재임기간 중 최순실 등의 비리 행위 등에 대하여 제대로 감찰·예방하지 못한 직무유기 또는 그 비리 행위에 직접 관여하거나 이를 방조 또는 비호하였다는 의혹 사건’이다. 다른 하나는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재단법인 미르와 재단법인 K스포츠의 모금 및 최순실 등의 비리 행위 등을 내사하는 과정에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영향력을 행사하여 해임되도록 하였다는 의혹 사건’이다. 각각 직무유기와 직권남용에 해당하는 범죄행위다.

김 전 실장보다 더 뚜렷한 범죄 혐의를 받는 수사 대상이지만, 그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청문회에 얼굴조차 비추지 않았다.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2월7일 청문회에서 “오늘 우병우 민정수석이 출석에 불응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묻자 김 전 실장은 “저도 사실 고령이고 건강이 매우 안 좋은 상태입니다. 지금 제 심장에 스텐트도 7개 박혀 있고, 어젯밤에도 제가 좀 통증이 와서 입원할까 했지만 국회의 권위나 또 국회가 부르는 것은 국민이 부르는 것이다 해서 제가 제백사하고 여기에 힘든 몸을 이끌고 나왔습니다. 국회가 부르면 당연히 와서 진술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변했다.

우 전 수석이 국정조사 청문회 증인 출석을 피한 방법은 ‘도망’이다. 최순실 특위는 우 전 수석에게 12월7일 국정조사 청문회에 참석하라며 그의 집인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로 출석요구서를 여러 차례 보냈다. 하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우 전 수석의 이런 행동은 의도적으로 출석요구서를 받지 않아 처벌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국정조사 증인이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하지 않으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출석요구서 자체를 받지 않으면 처벌받지 않는다.

이처럼 자신의 집에 피해 있던 우 전 수석이 장모인 김장자 삼남개발 회장 집에 머물고 있다는 단서가 확인됐다. 우 전 수석의 한 지인은 에 “우 전 수석이 장모 집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같은 제보를 확보한 은 12월6일 오전부터 김 회장 소유의 서울 논현동 고급 빌라를 찾아 우 전 수석의 소재 파악에 나섰다.

은 김 회장 집 앞에서 우 전 수석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았다. 집 안에는 인기척이 들렸으나, 김 회장 옆집 인테리어 시공업체 관계자가 공사 동의를 받기 위해 벨을 눌렀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우 전 수석과 계속 전화 통화를 시도하던 중 한 50대 중반 남성이 김 회장 집 앞으로 온 뒤 상황을 파악하고 돌아갔다. 그 뒤 빌라 경비원이 올라와 “기자들 어디 있냐”며 “이곳에 있으면 안 된다”고 기자를 밖으로 내보냈다. 그 뒤 우 전 수석의 전화기 전원이 꺼졌다.

우병우의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도 수사해야

우 전 수석과 함께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된 김 회장은 12월6일 충북 제천의 지인 집으로 이동했다. 은 이날 오전 자신의 벤츠 차량을 이용해 서울 논현동 빌라에서 출발한 김 회장을 뒤따랐다. 김 회장의 차는 제천의 한 농가주택에 도착했다. 은 농가주택 앞에 주차된 벤츠 차량을 확인한 뒤 김 회장을 만나려고 했다. 그는 최순실씨와의 친분을 활용해 우 전 수석이 2014년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발탁될 때 영향을 미쳤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하지만 김 회장의 운전기사인 남성과 가족으로 보이는 여성은 “김 회장이 지금 이곳에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김 회장 역시 우 전 수석과 마찬가지로 출석요구서를 받지 않는 방식으로 국정조사 증인 출석을 피하는 상황이었다. 이 과정에 우 전 수석의 조언이 있었던 것으로 의심된다.

결국 최순실 특위의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2월6일 청문회 도중 “우병우 전 수석이 장모의 집에 머물고 있다는 제보가 있다”며 동행명령장 발부를 요청했다. 이에 최순실 특위 위원장인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은 “국회 입법조사관 등이 우 전 수석의 거소를 확인해달라”고 밝혔다.

국회 입법조사관은 이날 오후 6시께 김 회장 집을 찾아 출석요구서를 전달하려 했지만 결국 우 전 수석을 만나는 데 실패했다. 우 전 수석이 머물고 있는 김 회장 집을 강제로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12월7일 청문회에서는 우 전 수석과 김 회장에 대한 동행명령장이 발부됐고 입법조사관이 서울 논현동 빌라, 충북 제천의 농가주택, 경기도 기흥 골프장 내 김 회장의 별장 등을 찾았지만 허탕이었다.

하지만 도망에도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 전 수석이 구속 등 강제 수사를 할 수 있는 특검마저 피하긴 어렵다. 우 전 수석처럼 소재가 불명확해 도주 우려가 있으면 구속영장 발부가 더 쉽다. 국정조사 청문회를 피하려다 특검에 구속 수사를 당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우 전 수석은 이미 입건된 직무유기 혐의뿐 아니라 민정수석 시절 각종 수사 정보를 최순실씨 쪽에 흘렸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롯데그룹의 재단 지원금 반환 사건이다. 롯데그룹은 최순실씨가 사실상 좌지우지한 K스포츠재단에 지난 5월 70억원을 지원했다. 하지만 K스포츠재단은 이 돈을 검찰의 롯데그룹 압수수색이 있기 하루 전부터 몇 차례에 나눠 돌려줬다. 검찰의 압수수색 정보가 실시간으로 샜다고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수사정보 유출에 당시 청와대에서 검찰 등 사정 당국을 총괄한 우 전 수석이 관여했을 거란 의심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면 우 전 수석에게는 공무상 비밀누설죄 등을 적용할 수 있다.

법을 잘 아는 사람들

김 전 실장과 우 전 수석의 운명은 결국 특검에 달렸다. 두 사람 모두 검찰 재직 시절 알게 된 법률과 수사 지식을 법망을 피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어디까지 죄가 되고 어디까지 도덕적 책임에 불과한지 잘 아는 사람들이다. 이미 오랜 시간 대비해왔을 것이다. 특검은 이 모든 것을 뚫고 두 사람에게 마땅한 죄를 물어야 할 책임이 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