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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로부터 969일, 탄핵 이렇게 됐다

[탄핵 르포] 5명의 기자가 108시간동안 들여다 본 탄핵 막전막후
등록 2016-12-13 17:21 수정 2020-05-03 04:28
3부_정치의 시간
12월5일 아침 8시부터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인 9일 저녁 8시까지 각 정당, 국회 곳곳, 그리고 본회의장을 5명의 기자가 취재했다. 기자들이 직접 보고 들은 것을 기록으로 남긴다. 한국 사회 전체가 번뇌한 108시간의 기록이다.
D-4
추미애 대표를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의원, 당직자들이 12월5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계단에서 촛불로 ‘탄핵’이란 글자를 만들어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추미애 대표를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의원, 당직자들이 12월5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계단에서 촛불로 ‘탄핵’이란 글자를 만들어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 5일 오전 8시, 새누리당사

“혹시… 누가 무슨 말씀 하실 분….”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들 마네킹처럼 굳은 얼굴로 정면만 바라보았다. 평소 기자들 앞에서 장광설을 늘어놓던 최고위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정현 대표의 방은 당사 6층에 있다. 1시간여 뒤 회의를 마친 이 대표가 김밥으로 아침을 먹으며 어딘가로 전화하는 모습이 대표실 문틈으로 보였다. 이윽고 대표실을 나서는 그에게 기자들이 물었다. “탄핵되면 장을 지지겠다고 하셨죠?” 이 대표의 몸이 홱 돌았다. 기자들이 지어낸 말이라고 얼굴을 구기며 한참을 말했다. 기자들끼리 수군댔다. “흐흐, 내가 분명히 들었는데.”

오전 11시께, 이 대표는 검은색 카니발을 타고 당사를 나서 어디론가 향했다. 당사 벽 곳곳에 누런 얼룩이 졌다. 전날 밤, 시민들이 던진 달걀이 흐르다 굳었다. “시위대가 달걀 다섯 판을 던졌다”고 당사 경비원이 말했다. 그 자국을 지우던 청소 아주머니가 말했다. “이 달걀, 나나 주지.”

# 오전 11시, 국회 의원회관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들어서자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국민의당 국회의원과 중앙위원 등 300여 명이 의원회관 대회의실을 가득 채웠다. 박 원내대표는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옆자리에 앉았다. 누군가 안 전 대표에게 다가가 이름표를 바로잡아줬다.

이날 오전, 박 원내대표는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마지막 회의를 주재했다. 회의장에서 누군가와 이야기하던 그는 웃었다. 말없이 있을 때, 그의 낯빛은 어두워졌다. 이윽고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로서 160일 동안 수행하던 비대위원장직을 물러납니다.” 박수가 터져나왔다. “물러난다는데 박수를 치네요.” 참석자들이 ‘와’ 하며 웃었다.

당직자 한 사람이 기자를 조용히 불렀다. 그는 며칠 사이의 상전벽해를 설명했다. ‘탄핵 반대하는 당신이 사람이냐’는 문자가 이젠 ‘탄핵 가결에 총력을 기울이라’는 내용으로 바뀌었다고, 처음엔 질책했지만 지금은 격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후, 국민의당은 국회 본관 출입구 앞에 텐트를 쳤다. ‘탄핵열차 300’이라는 명패가 붙었다. 의원들이 돌아가며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

“박원순 시장과 저는 2인3각 경기 중입니다. 박원순 시장이 넘어지면 제가 넘어지고 제가 넘어지면 박원순 시장도 넘어집니다.” 핑크색 재킷을 입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톤 높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주최한 ‘국민권력시대, 어떻게 열 것인가?’ 토론회는 민주당 의원 77명이 공동 주최자로 이름을 올렸다. 박 시장은 민주당 의원들보다 앞서 ‘탄핵’을 요구했다. 이날도 의원들보다 한발 앞서갔다. “탄핵으로 국민권력시대의 포문을 열어야 합니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토론회 자료집은 시작 전에 이미 동났다. 토론회장 바깥을 지키던 한 민주당 당직자가 중얼거렸다. “물 들어온 게 확인되네. 서울시장 주최 토론회에 이렇게 기자가 많이 온 걸 보면….”

# 오후 2시30분, 국회 의원회관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사무실은 책과 보고서로 항상 어지러웠다. “지난 주말에 치우느라 한참 걸렸다”며 유 의원은 웃었다. 묵은 책은 정돈했지만, 모든 일이 정리된 것은 아니었다. 1~2분 간격으로 휴대전화가 울렸다.

“사흘 동안 문자메시지만 4천 개가 왔다”고 그는 말했다. 대다수는 탄핵을 종용하는 내용이었다. 전날인 4일 새누리당 비주류 모임인 비상시국회의는 촛불 민심에 따라 ‘무조건 탄핵’에 합의했다. ‘4월 퇴진-6월 대선’이라는 당론에 배치되는 결정이었다. 유 의원은 ‘무난한 탄핵’을 예상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그 전에 어떤 말씀을 하시느냐가 변수”라며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는 평소에도 말수가 적다. 탄핵 정국에선 모든 언론의 인터뷰를 거절하고 있다. 외부 일정도 취소했다. 국회에 머물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탄핵 찬성표’를 점검하지는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전면에 나서긴 좀 그래.”

D-3# 6일 오전 7시, 국회 의원회관 제7간담회실

까만 코트를 걸친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이 들어섰다. “오늘은 어느 방에서 준비한 거야?” 책상마다 샌드위치와 따듯한 커피가 놓여 있었다. 비박계가 주축이 된 비상시국회의 소속 의원 40여 명은 회의를 열 때마다 돌아가며 아침을 준비했다.

유승민 의원실에서 준비한 이날의 샌드위치를 의원들은 잘 먹지 못했다. 이틀 전 회의에서 ‘조건 없는 탄핵’에 뜻을 모았지만 긴장을 놓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무거운 분위기를 깨려는 듯 권 의원은 휴대전화 이야기를 꺼냈다. 비박계 의원들은 탄핵소추안 표결의 캐스팅보트다. 시민들은 그들에게 전화와 문자를 집중적으로 보내고 있다.

“지역에서 어르신들 전화가 많이 와. 왜 (탄핵) 찬성하냐고.”

“나도 메시지, 전화 많이 와.”

“문자, 이거는 심하다 못해서 아주 일을 못해. (전화번호 유출한 사람을) 손해배상 청구하든지 해야지. 짜증스러운 정도가 아니라 문자 옥석을 가릴 수 없다니까.”

“나는 전화번호를 바꿨어!”

“나는 착신 금지!”

비공개 회의 직후, 비상시국회의 대변인 황영철 의원이 기자들 앞에 섰다. “흔들림 없이 탄핵안이 가결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모든 준비가 돼 있습니다.”

# 오전 8시, 국회 정문 앞
정의당은 국회 정문 앞에서 ‘풍찬노숙 끝장농성’을 벌였다. 12월7일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왼쪽 세 번째)와 의원, 당직자들이 ‘즉각 탄핵’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정의당은 국회 정문 앞에서 ‘풍찬노숙 끝장농성’을 벌였다. 12월7일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왼쪽 세 번째)와 의원, 당직자들이 ‘즉각 탄핵’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체감 기온 영하 9℃라고 기상청은 발표했다. 정의당 국회의원들은 국회 정문 앞 바닥에 앉았다. 심상정 당대표가 당원들에게 보내는 인터넷 방송을 시작했다. 낡은 기득권 카르텔을 대체하는 게 정의당의 존재 이유이니, 젖 먹던 힘을 다해 국면을 주도하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정의당은 최전선인 국회 담벼락 앞에서 농성하고 있습니다.” 국회로 향하는 촛불 시민이 다가갈 수 있는 ‘최전선’인 국회 정문 앞은 추웠다. 심 대표는 노란 점퍼를 입고 담요를 덮고 농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본관 로텐더홀에서, 국민의당은 국회 본관 계단 위에서 농성 중이었다.

최전선의 노숙농성에는 장점도 있다. 시민을 직접 대면할 수 있다. 잠시 정차 중이던 버스 기사가 차 안에서 인사를 건네거나 지나가던 시민들이 힘내라고 주먹을 불끈 쥐어 흔들어준다.

길바닥에 앉은 정의당 의원들이 의원총회를 시작했다. “풍찬노숙 의원총회를 시작한다”고 노회찬 의원이 개회를 알렸다. 8일에는 나머지 법안을 미리 처리하고, 9일에는 탄핵만 처리하겠다는 ‘계획’을 전했다. 9일 자정을 넘기진 않을 거라고 했다.

# 오전 11시, 국회 본관 귀빈식당 1호실

야 3당 대표가 모였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먼저 와서 기다렸다. 박지원 원내대표에게서 바통을 받은 김동철 국민의당 신임 비상대책위원장이 두 번째로 들어왔다. 이어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도착했다. 비공개 회동 직후, 그 결과가 브리핑됐다. 야 3당은 탄핵 가결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김기춘·우병우 구속 수사가 절대 필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하며, 탄핵 이후에도 야권 공조를 굳건히 이어나간다는 내용이었다.

# 오후 4시, 국회 본청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

의원총회 장소에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들어왔다. 표정이 무거웠다.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55분간 면담한 내용을 설명했다. “탄핵이 가결되더라도 헌법재판소 과정을 보면서 차분하고 담담하게,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는 대통령의 말을 전했다.

줄곧 힘이 없던 정 대표의 목소리가 마지막 대목에서 높아졌다. “탄핵이 가결되더라도 하야 투쟁하겠다는 야당의 주장을 국민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문재인 대표에게 엄중히 경고하는데, 군중의 함성에 올라타서 헌법 파괴하지 마십시오.”

# 오후 5시, 국회 본관 로텐더홀

국민의당은 국회 본회의장 앞 로비 로텐더홀 앞에서 촛불시위를 시작했다. 원래는 본관 앞 계단에서 벌이려 했지만, 같은 장소에서 오후 6시부터 더불어민주당이 촛불시위를 할 예정이란 걸 뒤늦게 알았다.

“아니, 그럼 우린 어디서 해?” 국민의당 당직자들 사이에서 볼멘소리가 나왔다. 한참 의논 끝에 장소를 로텐더홀로 바꾸었다.

덕분에 손쉬워진 일이 생겼다. ‘탄핵장미’ 150송이를 준비해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전달하는 행사를 준비했는데, 때마침 로텐더홀 앞을 오가는 새누리당 의원이 적지 않았다. 머쓱한 표정의 새누리당 의원들은 장미를 건네는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촛불을 든 박지원 원내대표가 말했다. “탄핵이 부결되면 모두가 죽습니다. 새누리당만 죽는 게 아닙니다. 국회 전체가 다 죽을 겁니다.”

# 오후 5시30분, 국회 정문 앞

빨간 점퍼를 입은 키 큰 남자가 혼자 태극기를 흔들었다. 온몸에 팻말을 걸었다. 여러 팻말에 여러 문구를 적었다. ‘탄핵 반대’ ‘대통령님 힘내세요’ ‘헌법을 지키자’ ‘대통령님 하야하시면 베트남골(꼴) 됩니다’. 그의 곁에 키 작은 중년 남자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 문구는 간단했다. ‘이게 나라냐, 박근혜 즉각 퇴진’.

D-2# 7일 오전 7시30분, 국회 의원회관 제7간담회실

새누리당 비주류 모임인 비상시국회의 ‘아지트’로 의원들이 모여들었다. 전날 얼굴을 비추지 않았던 초·재선 의원들도 새로 합류했다. “새벽에 일찍 나오셨네. 이제 다 끝났는데 뭘 새벽에 와.” (강석호 의원) “참여 인원이 많이 늘었네.”(심재철 의원)

비공개로 진행된 회의를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회의장 밖으로 종종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한 보좌관이 눈을 찡긋거렸다. “이제 (친박이나 애매한 입장의 의원들을) 설득할 필요가 없어. (그들이) 줄을 서서 오고 있어. 대세가 기울었다고 보는 거지.”

#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 엘리베이터

회색 트렌치코트 주머니에 손을 찌른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엘리베이터 안이 울릴 정도로 목소리를 높였다. “세월호 7시간을 (탄핵소추안에서) 안 빼면 (본회의장에) 안 들어갈 거다!”

기자를 따로 만난 그는 성큼성큼 사무실로 들어가 코트를 벗으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우리가 (대통령 탄핵 때문에) 얼마나 괴로운지 아나. 그런데 왜 우리가 비굴해야 하나. 7시간 포함된 탄핵안에 찬성하면 그걸 인정하는 건데…. 다시 협상하라고 지시했어.” ‘세월호 7시간’을 놓고 새누리당 비주류가 다시 흔들리고 있었다.

# 오후 2시30분, 국회 본청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실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는 사흘째 검은 터틀넥을 입고 있다. 목소리는 자주 갈라졌다. 며칠째 원내대표실에서 자는 그는 자꾸 물을 마셨다. “탄핵 가결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세월호 7시간도 유연하게 논의할 수 있지만…” 말끝을 흐렸다. “(비박계로부터 세월호 7시간 대목을 탄핵소추안에서 빼달라는) 전화를 받긴 했습니다. 가결 200명 선을 넘긴다면 왜 고민하겠어요.” 곁에 있던 기동민 민주당 원내대변인이 말했다. “탄핵까지 이제 채 50시간도 남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 오후 3시, 국회 본청 앞 계단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야 3당은 탄핵 과정에서 긴밀하게 공조했다. 12월 7일 야 3당 의원과 당직자들이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위한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야 3당은 탄핵 과정에서 긴밀하게 공조했다. 12월 7일 야 3당 의원과 당직자들이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위한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좌로 세 발자국만 이동해주십시오. 사진 구도가 잘 나와야 하니까 좀 협조해주십시오.” 국회 본청 앞 계단을 가득 메운 야 3당 의원들과 당직자들은 좌로, 좌로 이동했다. 23명씩 15줄로 늘어선 이들은 ‘박근혜 퇴진하라’ ‘즉각 탄핵’ 같은 손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사회자가 말했다. “옆 사람과 아는 척 좀 하세요. 우리는 하나입니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세월호 참사 당일 올림머리를 했다’는 보도를 언급하며 “평범한 어머니의 마음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동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새누리당과의 물밑 연대설 등으로 곤란을 겪은 일을 의식한 듯 “국민의당이 박근혜 탄핵을 가장 먼저 주장했고 주도해왔다”고 말했다. 너스레는 역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몫이었다. “평소엔 ‘존경하는 선배·동료…’ 이렇게 시작하는데, 오늘은 제대로 하겠습니다. 진심으로 존경하는 선배, 동료, 그리고 당직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 오후 4시, 국회 의원회관 519호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국회의원 회관에 혼자 있었다. 자주 안경을 벗고 눈을 비볐다. “갑갑해서 화성이나 목성으로 날아가버리고 싶어.”

그의 책상 앞에는 ‘세종처럼’이라는 종이 표어가 붙어 있다. 세종대왕처럼 당대표를 하겠다는 각오를 다진 것이겠지만 취임 5개월 만에 물러나는 단명 대표가 될 운명이었다. 그는 오는 12월21일에 사퇴하겠다고 이미 공언했다.

1시간여 그와 이야기하는 동안, 의원들의 전화나 방문은 없었다. ‘비박계 의원들에게 탄핵 불참을 설득하지 않느냐’고 묻자, 지친 표정으로 답했다. “그렇게 하면 더 역효과만 날 뿐이야.”

# 오후 5시, 국회 의원회관 복도

의원실마다 틀어놓은 텔레비전 소리가 의원회관 복도에 울렸다. 본청에선 청문회가 진행 중이었다. 몇몇 새누리당 보좌진은 텔레비전 앞에 서서 미간을 찌푸렸다. 증인으로 출석한 김기춘·고영태·차은택 등을 노려봤다. 야당 의원실은 복도에 알록달록 포스터를 내걸었다. ‘#그런데 비선 실세들은?’ ‘박근혜 퇴진, 박근혜 교과서 폐기’ ‘지옥~같은 정권! 박근hell 법정으로!’

D-1# 8일 오전 10시, 국회 본청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는 금방 끝났다. “국회의원직을 버리고 탄핵안을 가결시켜야 한다”는 우상호 원내대표의 제안에 모두 동의했다. 의원 전원이 국회의원직 사퇴서를 작성해 지도부에 제출하기로 했다. ‘세월호 7시간’과 관련해서도 “더 이상은 협상도 수정 용의도 없다”고 못 박았다. 의원들은 자필 서명한 사직서를 페이스북 등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 오전 10시30분, 국회 본청 국회의장 집무실

여야 3당 원내대표 회동에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굳은 표정으로 가장 먼저 들어섰다. 손에 둘둘 말고 있던 A4용지를 쫙쫙 펴서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들이밀었다. “조국 교수가 올린 이거 보세요.” 조국 서울대 교수가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퇴진행동’의 국회 압박 계획 포스터였다.

“이런 식으로 의회민주주의를 광장민주주의로 대체해도 됩니까? 의장님께서 국회 질서 유지를 의무할 책무를 지켜주십시오!” 격앙된 정 원내대표는 야당 의원들의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 농성 철회, 국회 본관 앞 텐트 철거 등을 주장했다.

발언 중간에 들어온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는 굳은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았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싫은 내색을 했다. “저는 아직 안 왔습니다. 내가 와야 이야기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모두 모이지 않았는데 먼저 발언을 시작한 정 원내대표에 대한 항의였다.

세 원내대표는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기자들을 내보내고 진행된 비공개 회동의 결과를 김영수 국회 대변인이 발표했다. 12월9일 국회 안 집회는 불허됐다. 다만 국회 경계 100m 이내에서의 집회는 허용됐다.

# 오전 11시, 국회 본청 옥상

국회 사무처 직원들이 옥상 하늘정원에 삼삼오오 모였다. 한 고참 직원이 말했다. “부결이 되면 큰일이죠.” 탄핵소추안이 부결되면 서울 광화문광장의 분노한 촛불이 국회로 몰려올 것이라고 했다. “부결되면 국회가 끝장납니다. 의원들은 아무도 국회 밖으로 나가지 못할 것 같아요.”

# 오후 12시30분, 국회 본청 7층 복도

복도 구석 의자에 청소노동자 6명이 귤과 인스턴트커피를 두고 빙 둘러앉았다. 구내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빨리 마치고 모처럼 허리를 펴는 순간이었다. 이들은 아직 용역업체가 지급한 자주색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지난 12월5일 국회가 이들을 직접 고용하기로 했지만, 정규직이 되려면 한 달 정도 남았다.

“아휴, 말도 마. (이번주에) 본청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와. 청문회도 있으니까 보좌관들, 기자들 다 여기로 몰려와서 그래. 일이 두 배야.” 가장 힘든 청소는 본청 흡연실이라고 한 노동자가 말했다. 담배도 늘고 가래침도 늘어서 아주 더럽다고, 배운 사람들도 똑같다고 푸념했다.

얼굴을 찌푸린 본청 근무자들 사이에 앉은 의원회관 담당 노동자는 빙그레 웃었다. “회관엔 사람이 없어서 별로 안 바쁜데….”

# 오후 1시30분, 국회 본청 246호
새누리당은 탄핵을 앞두고 찬성하는 비박계와 반대하는 친박계로 갈려 내홍을 겪었다. 12월8일 이정현 대표(왼쪽)와 정진석 원내대표가 의원총회를 앞두고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

새누리당은 탄핵을 앞두고 찬성하는 비박계와 반대하는 친박계로 갈려 내홍을 겪었다. 12월8일 이정현 대표(왼쪽)와 정진석 원내대표가 의원총회를 앞두고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

“너무 많이 안 오셨는데….” 새누리당 의원총회 발언석에 선 정진석 원내대표가 힘없는 목소리로 한탄했다. 의총장에는 의원보다 기자와 당직자가 더 많았다. 자리에 앉은 의원들도 별말 없이 멍하니 정면만 응시했다. 서로 악수하고 안부를 묻느라 시끌벅적했던 평소 의총 분위기와는 달랐다.

“의원들이 물리적 외압이나 심리적 압박을 당해 자유로운 의사결정에 지장이 초래된다면 여당 원내 사령탑으로 결코 좌시하지 않겠습니다.” 정 의장이 발언을 마쳤는데도 누구 하나 박수 치지 않았다.

가장 앞줄에 나란히 앉은 친박 지도부는 유난히 침울했다. 무릎 위에 양손을 다소곳이 모은 이정현 대표는 입을 꾹 다물었고 그 오른쪽의 조원진 최고위원은 아예 눈을 감고 있었다. 친박 핵심인 서청원·최경환·윤상현 의원은 이날도 모습을 감췄다. 친박과 거리가 먼 비주류 핵심 유승민 의원은 가장 뒷줄에 홀로 앉았다.

# 오후 2시30분, 본회의장 방청석

본회의장 방청석에는 한 무리의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경기도 광주의 대안학교 푸른숲발도르프학교 학생들이다. 기다림이 지루한 듯 의자에 몸을 파묻고 있다. 김진영 교사가 아이들을 데려왔다. “학교에서 민주주의 역사를 공부 중인데, 바로 여기가 교육 현장 아닙니까. 1987년 6월항쟁을 겪은 제가 30년 뒤 학생들과 다시 역사적 현장에서 함께하고 있네요.”

# 오후 2시45분, 국회 본회의장

“제17차 본회의를 개회하겠습니다. 의사국장으로부터 보고가 있겠습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의사봉을 세 번 내리쳤다. 새누리당 의원총회가 길어지면서 예정보다 45분 늦게 본회의가 시작됐다. 야당 의원들의 자리엔 ‘즉각 탄핵’이라 적힌 팻말이 놓여 있었다.

의사국장이 단상에 올랐다. “보고 사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2월3일 우상호·박지원·노회찬 의원 등 171인으로부터 대통령 박근혜 탄핵소추안이 발의됐습니다.”

1분여도 안 되는 보고 시간 동안 본회의장엔 정적만 흘렀다. 10월29일 1차 촛불집회가 시작된 지 40일 만이었다.

# 오후 5시, 국회 북문

국회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늘 활짝 열려 있던 북문의 하얀 철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이를 모르고 국회에서 밖으로 빠져나가려던 차들이 후진으로 되돌아나왔다. 조금 열린 틈으로 사람만 드나들었다. 국회로 들어서는 사람을 경찰이 제지했다. “실례지만 어떻게 오셨습니까.” 평소 직원은 물론 시민들도 편하게 드나들던 곳이었다. 국회 주차장과 연결돼 있어 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북문과 서문은 완전히 폐쇄됐다.

철문 밖 풍경은 더 살벌했다. 수십 대의 경찰버스가 한창 차벽을 쌓고 있었다. 왕복 2차선 도로에 두세 겹으로 경찰버스를 세웠다. 각 출입문은 물론이고 국회 곳곳엔 새카만 전투복과 형광색 근무복을 입은 경찰들이 무리지어 돌아다녔다.

국회 본청 1층, 시민들이 신분증을 내고 방문증을 발급받는 접수대에선 실랑이가 벌어졌다. “왜 안 들여보내는 거예요?” 민주당의 보좌관이 국회 방호원에게 따져물었다. 야당 의원들이 농성을 벌이는 본청 로텐더홀을 찾아온 교수들을 방호원들이 막아서자 보좌관이 직접 데리러 나왔다. 전화 통화로 방문 목적만 확인되면 본청 안으로 들여보내던 평소와는 확연히 달랐다.

# 오후 6시30분, 본회의장 앞-본청 앞-정문 앞
탄핵소추안 표결을 하루 앞둔 12월8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조를 나눠 철야농성을 결의했다.

탄핵소추안 표결을 하루 앞둔 12월8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조를 나눠 철야농성을 결의했다.

국회 본회의장 앞을 ‘로텐더홀’이라고 부른다. 이 공간을 민주당이 지키고 있다. 로텐더홀 바깥은 국회 전경 사진에서 자주 등장하는 본청 정문이다. 국민의당이 마련한 휴대용 텐트들이 늘어서 있다. 처음엔 하나의 텐트만 있었지만, 탄핵 표결이 임박해지자 텐트 10채가 모였다. 국회 바깥 정문은 정의당이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본회의장 1m 앞은 민주당, 10m 앞은 국민의당, 100m 앞은 정의당이 지키고 있다.

정문 앞에 자리잡은 정의당 당직자들은 공개 팟캐스트 생방송을 준비했다. 원년 멤버인 노회찬, 유시민, 진중권이 오랜만에 다시 뭉쳤다. 지나던 시민들이 그들 앞에 모여들었다.

# 오후 8시30분, 국회 본청 주변

촛불집회가 열렸다. 우산을 준비 못한 국민의당 당직자들은 그대로 차디찬 비를 맞았다. 몇몇은 촛불을 지키려 굽은 손으로 종이컵 위를 막았다. 안철수 전 대표는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라며 방심하지 말 것을 주문했고, 박지원 원내대표는 “새누리당과는 탄핵만 함께 한다”며 ‘탄핵 후’를 이야기했다.

지도부가 발언하는 사이, 당직자로 보이는 이가 고개를 돌려 주변에 물었다. “무조건 (가결)되겠지?” 1초도 안 돼 답이 돌아왔다. “(안 되면) 다들 집에 못 가지.” “다 죽자는 거지.”

그 시각, 로텐더홀에선 민주당의 ‘탄핵 릴레이’ 발언대가 열렸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살짝 몸을 앞으로 구부려 생중계 화면의 실시간 댓글 질문을 읽었다. “제가 차차기 아니냐고요? 저는 가장 깊고 넓은 더불어민주당의 후보입니다. 이제 차차기라는 말은 말아주세요.” 안 지사의 말에 몇몇은 발을 구르며 환호성을 질렀다.

민주당 당직자들은 수십 장의 깔개 뭉치와 방송장비들을 본회의장 바로 앞으로 바쁘게 날랐다. 곧 있을 로텐더홀 의총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바쁘니 묻지 마세요.” 실무자는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탄핵 전야였다.

D-Day
12월9일 한 시민이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 떨어진 장미꽃을 줍고 있다. 이날 참여연대와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들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에 동참해달라며 의원들에게 장미꽃을 나눠줬다.

12월9일 한 시민이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 떨어진 장미꽃을 줍고 있다. 이날 참여연대와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들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에 동참해달라며 의원들에게 장미꽃을 나눠줬다.

# 오전 8시, 국회 의원회관 제9간담회실

새누리당 비상시국회의는 ‘아지트’를 옮겼다. 의원 20명 안팎이 앉을 수 있던 기존 회의실보다 두 배 큰 회의실이었다. 그 회의장을 의원 33명이 금세 꽉 채웠다.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서 탄핵소추위원을 맡을 권성동 의원(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생수를 컵에 따라 벌컥벌컥 들이켰다.

비공개 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마주한 황영철 의원은 한참 동안 회의 결과를 정리한 메모를 들여다봤다. 한숨을 길게 내쉰 황 의원이 또박또박 말했다. “오늘 참석한 의원들은 다 찬성표 던지실 분으로 보면 됩니다. 오늘 탄핵안은 반드시 가결될 겁니다.”

다만 야당이 요구하는 ‘탄핵소추안 통과 뒤 대통령 즉시 하야’ 요구에 대해선 반헌법적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단일한 목적으로 뭉쳤던 여당 비주류와 야 3당의 틈이 조금씩 벌어지고 있었다.

# 오전 9시10분, 국회 정문

간밤에 내린 비로 국회 잔디밭이 촉촉히 젖었다. 국회 정문은 출입 통제가 강화됐다. “출입증 보여주십시오.” 형광색 근무복을 입은 경찰들이 출입구에서 일일이 출입증 검사를 했다. 국회 앞 도로는 본회의 탄핵소추안 표결을 생중계하려는 방송사 차들로 꽉 들어찼다. 한 남성이 태극기를 흔든다. 의원회관 앞 잎 떨어진 모과나무엔 노란 열매가 유독 짙다.

# 오전 10시, 국회 본청 246호실

표결을 5시간 앞두고 마지막 새누리당 의원총회가 열렸다. 굳은 표정의 이정현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는 맨 앞자리에 앉았다. 의총 시작 전 3쪽짜리 유인물이 나눠졌다. 친박 핵심 최경환 의원이 돌린 것이다. 그간 의총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그는 침통한 표정이었다.

‘혼란의 끝이 아니라 시작인 탄핵은 막아야 한다’는 제목의 글에는 “박근혜 대통령은 단돈 1원도 자신을 위해 챙긴 적이 없는 지도자다. 특검을 통해 대통령의 죄가 밝혀지면 탄핵은 물론 처벌을 받을 것인데 뭐가 급해서 대통령을 빨리 끌어내리고 죽이지 못해 안달이란 말인가”라고 쓰여 있다.

단상에 오른 이정현 대표는 15분가량 장광설을 이어갔다. 이따금 주먹을 쥐고 손을 들어올렸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사유 부분은 명확한 증거나 입증된 사실이 없습니다.”

연설이 길어지자 탄핵 찬성파 김영우 의원이 제지했다. “탄핵 표결이 있는 날, 당대표가 의원들에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마세요.” 이어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친박 돌격대’로 불리는 조원진 최고위원이었다. 좌중의 비박 의원들 사이에서 고함이 터져나왔다. “이게 뭐야!” 항의 속에서도 조원진 의원은 발언했다. “국정조사와 특별검사가 진상 규명을 하는 상황에서 국회가 탄핵을 해야 합니까.”

비박계 김영우 의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최순실 게이트는 헌법 질서를 왜곡시키고 국민을 도탄에 빠뜨렸습니다. 우리 손으로 만든 새누리당 후보(대통령을 잘못 말한 것)지만 우리 손으로 국민 뜻에 따라 탄핵할 수밖에 없는 그런 입장입니다.”

이후 비공개로 전환된 의총장의 문틈으로 간간이 고성이 들려왔다.

# 오후 1시20분, 국회 본청 4층

본회의장 방청석 입구에 노트북이나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길게 늘어섰다. 국회는 전날 선착순으로 방청석 중 80석을 언론에 배정했다. 비표를 받은 기자들도 본회의장 문을 열기까지 50분간 줄을 서서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몇몇은 바닥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렸다.

오후 2시10분, 본회의장이 개방됐다. 방호원들은 비표와 출입증을 두 번씩 확인하고 기자들을 들여보냈다. 기자들이 뛰어 들어갔다. 캐스팅보트를 쥔 새누리당 의원들의 얼굴이 잘 보이는 오른쪽 방청석으로 기자들이 몰렸다. 어느 기자가 말했다. “친박이 어떤 표정 짓나 잘 봐야지.”

# 오후 2시,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

민주당이 본회의장 앞 철야농성을 끝냈다. 철야농성은 12월2일 탄핵안 발의가 미뤄진 뒤 닷새 동안 이어졌다. 우원식 의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은 역사상 가장 추악한 환부를 도려내는 날이다.” 농성 마지막 구호는 우상호 원내대표가 선창했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박근혜를 탄핵하자.”

의원들은 마지막 의원총회를 하려 맞은쪽 예결위 회의장으로 이동했다.

# 오후 2시30분, 국회 본청 입구

“담배 한 대 피우고 들어갑시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국회 본청 입구에서 발걸음을 잠시 멈췄다. 노란 물결의 사람들이 움직이고 멈출 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흠칫거렸다. 민주당의 배려로 세월호 유가족 40명이 국회를 찾았다. 닳도록 넘어본 국회 문턱이지만 유가족들은 한결같이 “오늘은 꼭 와야 하는 날”이라고 말했다. 2014년 4월16일로부터 정확히 969일 만에 세월호 유가족들은 그 참사 수습을 전혀 지휘하지 않은 대통령의 직무 정지를 목격할 수 있게 됐다.

“아직, 탄핵이 가결된 것은 아니지만 탄핵 가결이 되면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애써준 ‘촛불국민만세’를 외칩시다. 만세 삼창입니다.” “안 되면 어떡합니까.” “그럼 그냥 주저앉아버립시다, 탄핵이 될 때까지 국회에.”

줄 맞춰 입장을 기다리면서 유족들은 다시 웅성거렸다. “가결 외엔 생각하지 마. 당연히 가결돼야지.” 자신들을 촬영하던 KBS 카메라 기자에게 한 유족이 말을 건넸다. “KBS가 지금 파업 중이죠? 공영방송이 국민의 방송이어야 하는데 이렇게 지탄받고…. 앞으로 좀더 아픔의 현장들에 함께해주세요.”

# 오후 2시50분, 국회 본청 앞 계단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12월9일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시민단체 회원이 건네는 장미꽃을 뿌리치고 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12월9일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시민단체 회원이 건네는 장미꽃을 뿌리치고 있다.

참여연대와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들 회원 30여 명이 국회 본청 출입구에 빨간 장미꽃을 들고 섰다. 본회의장에 들어서는 국회의원들에게 장미꽃을 나눠줬다. 장미꽃엔 노란 리본이 달려 있다. 리본엔 ‘촛불을 기억하세요’ ‘국민 목소리를 대변하세요’라고 쓰여 있다. 의원들이 꽃을 받을 때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고 외쳤다.

그 앞으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들어섰다. 시민단체 회원들이 다가가 장미꽃을 건넸다. 이 대표는 거칠게 손을 흔들어 뿌리쳤다. 눈길 한번 돌리지 않았다. 잰걸음을 옮겼다. 금방이라도 화를 터뜨릴 듯 얼굴엔 불쾌함이 역력하다. 친박계 조원진 의원은 얼결에 꽃 두 송이를 받았다. 그러나 이내 보좌관에게 넘겨줬다.

# 오후 2시50분, 국회 본회의장

“잠시 후 3시부터 본회의가 개의됩니다. 의원들은 본회의에 참석해주시기 바랍니다.” 국회사무처가 알림 방송을 내보냈다.

국민의당 의원들이 본회의장 왼쪽으로 웃으며 입장했다. 가까이 앉은 정동영·주승용·박선숙 등 국민의당 의원들이 도란도란 대화를 나눴다.

본회의장 오른쪽으로 밝은 표정의 민주당 의원들이 무리지어 들어왔다. 두꺼운 패딩 점퍼를 의자에 걸친 박주민 의원이 방청석부터 뒤돌아봤다. 세월호 엄마·아빠를 본 박 의원은 빙그레 웃으며 방청석 쪽으로 다가가 인사했다. 자리에 돌아와서도 박 의원은 몇 번이나 고개를 돌려 가족들과 눈을 맞췄다. 우원식 의원도 휴대전화로 가족의 사진을 찍었다.

오후 2시55분, 새누리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으로 들어왔다. 비주류인 이진복·홍일표·권성동·황영철 의원도 뒤이어 들어섰다. 친박 지도부는 본회의 시작 직전 입장했다. 이정현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 조원진·이장우·최연혜 최고위원 등은 가장 뒷줄에 무표정하게 앉았다. 민경욱·지상욱 등 친박 의원들은 지도부에 다가가 인사한 뒤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의원들이 차곡차곡 자리를 채우는 사이, 고요하던 방청석에선 박수가 터졌다. 직접 찾아와 악수를 건네는 김현권(민주당)·윤소하(정의당) 의원에게 세월호 가족들은 “고맙다”고 했다. 그사이 본회의장엔 빈자리가 거의 사라졌다.

# 오후 3시1분, 국회 본회의장

의장석 주변 책상에 앉아 있던 국회사무처 직원들이 모두 일어나 정세균 국회의장을 맞았다. “대통령 박근혜 탄핵소추안을 상정합니다.” 정 의장이 의사봉을 세 차례 내리쳤다.

본회의장은 다시 고요해졌다. 본회의장 왼쪽과 오른쪽에 설치된 8개 투표소에 동시에 불이 켜졌다. 국회 직원들은 투표소를 가리고 있던 갈색 가림막을 걷었다.

야당 대표로 탄핵소추안 제안 설명을 맡은 국민의당 김관영 의원이 단상에서 박 대통령의 헌법·법률 위반 행위를 15분 동안 조목조목 읽어 내려갔다. “오늘 국회는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탄핵하는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대단히 안타까운 순간을 맞았습니다.”

가까이 모여 앉은 친박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양손을 무릎 위에 모은 이정현 대표는 정면만 쳐다보다 한 번씩 크게 한숨을 쉬었다. 얼굴이 붉어진 최경환 의원은 미동도 없이 노트북 화면만 응시했다. 비주류 탄핵 찬성 여론을 주도해온 유승민 의원도 입술을 깨물곤 했다. 김무성 의원은 천장을 바라봤다가 이윽고 고개를 푹 숙였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7시간의 위기관리를 제대로 못했고 아직도 그 행적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김관영 의원이 세월호 7시간 이야기를 꺼내자, 담담하게 본회의를 지켜보던 엄마들이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몇몇 가족은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찍거나 수첩에 메모를 했다.

“사사로운 인연이 아닌 헌법과 양심, 역사와 정의라는 기준으로만 판단하셔서 부디 원안대로 가결해주실 것을 간곡하게 호소드립니다.” 김관영 의원의 마지막 발언에도 박수는 나오지 않았다. 몇몇 야당 의원만 짧게 말했다. “잘했어!” “고생했어!”

# 오후 3시32분, 국회 본회의장

“무기명 투표 방식으로 표결하겠습니다.” 정세균 의장의 선언과 함께 의원들이 투표소를 향해 줄지어 나갔다. 명패와 투표용지를 쥔 의원들이 한 명씩 투표소 안으로 들어서면 가림막이 쳐졌다. 왼쪽 투표소에선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오른쪽에선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가장 먼저 투표를 마쳤다. 김세연·황영철·장제원·정양석·김종석 의원 등 새누리당 비주류도 뒤이어 명패와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각각 넣었다.

그사이 핵심 친박인 최경환·홍문종·조원진·이장우 의원 등은 본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최경환 나갔어?” “서청원 들어왔어?” 방청석에 앉은 기자들이 눈으로 친박들을 쫓았다. 그 와중에도 이정현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는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야당 의원들은 여유로웠다. 박영선 의원은 옆에 앉은 김부겸 의원과 대화했고 송영길·표창원 의원은 개표 장면을 휴대전화로 생중계했다.

투표가 끝나가던 오후 3시34분, 친박 최다선인 서청원 의원이 조용히 일어나 투표하고는 터벅터벅 본회의장을 나섰다. 이정현·정진석·이장우·조원진·유기준·홍문표·김태흠 의원 등도 천천히 함께 투표소로 향했다.

투표를 마치고 돌아오는 이정현 대표를 향해 세월호 가족이 소리를 질렀다. “이제, 장 지집시다!” 최경환 의원은 끝내 본회의장에 돌아오지 않았다. 최 의원은 이날 유일하게 투표하지 않았다. 그들보다 더 늦게, 거의 마지막 차례로 유승민 의원이 명패와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었다.

# 오후 3시40분, 국회 본회의장 앞

탄핵소추안 투표가 채 끝나기도 전에 최경환 의원이 가장 먼저 본회의장에서 나왔다. 최 의원은 기자들과 마추치기 부담스러웠는지, 옆문으로 황급히 빠져나갔다.

10여 분 뒤, 친박계의 좌장 서청원 의원이 본회의장에서 나왔다.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탄핵 결과 어떻게 보십니까?” 끝내 서청원 의원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한 시민이 외쳤다. “박근혜 부역자, 서청원 의원! 왜 말을 못해!”

# 오후 3시53분, 국회 본회의장

개표가 시작됐다. 명패와 투표용지를 점검하는 여야 8명의 감표위원과 국회 직원들이 투표함을 빙 둘러싸고 표를 세기 시작했다. 명패는 총 299개라고 정 의장이 먼저 발표했다. 국회의원 300명 중 299명이 투표에 참여했다는 뜻이다.

이어 투표용지를 찬반으로 나누는 작업이 시작됐다. 7분여 뒤, 감표위원인 오영훈 민주당 의원이 뒤를 돌아 추미애 대표를 바라보더니 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이윽고 국민의당 소속 채이배 감표위원도 당을 향해 ‘2, 3, 4’의 숫자를 손가락으로 만들어 보였다. 멀리 앉아 있던 박지원 원내대표가 ‘어이!’ 짧게 소리 지르며 책상을 쾅 쳤다. 바로 옆 안철수 전 대표도 환하게 웃었다. “감표를 자꾸 그렇게 하면 돼?” 본회의 내내 조용하던 새누리당 의원들이 날카롭게 항의했다.

# 오후 4시9분, 국회 본회의장

감표위원에게서 전달된 쪽지가 의사국장을 통해 정세균 의장 손에 쥐어졌다. 정 의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투표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찬성 234표, 반대 56표, 무효 7표, 기권 2표라고 정 의장은 발표했다.

의원들 누구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대신 방청석에서 박수가 터졌다. 숨죽여 지켜보던 세월호 유족들이 주먹을 쥐며 환호성을 질렀다. “엄마가 이겼다”며 몇몇 엄마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아빠들은 울부짖었다. “다음번엔 새누리당이다!” “촛불이 활활 타오를 것이다!” 엄마와 아빠들의 울부짖음을 들으며 의원들은 본회의장을 빠져나갔다.

# 오후 4시10분, 국회 로텐더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2월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투표를 마치고 국회 본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2월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투표를 마치고 국회 본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탄핵안이 통과됐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던 야당 당직자들이 “와” 함성을 터뜨렸다. 국회 본청 유리 출입문 사이로 보이는 국회 밖 풍경도 일순 변화했다. 깃발들이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 오후 4시40분, 국회 본청 새누리당 대표실

탄핵 가결 뒤 대표실에 들어가 문을 잠갔던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기자들 앞에 섰다. “전적으로 제 책임이며 당연히 책임을 지겠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정말 죄송하고 용서를 구합니다. 12월21일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는데 훨씬 앞당겨질 수도 있습니다.”

기자회견 뒤 다시 대표실에 머무른 그는 10여 분 뒤 굳은 표정으로 본청을 나서, 대기하고 있던 검은색 카니발 승용차에 올랐다. 회한이 있었던 것일까, 차는 곧장 밖으로 나가지 않고 국회 본청을 천천히 한 바퀴 돈 뒤 어디론가 사라졌다.

# 오후 8시, 국회 본청

온종일 국민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던 국회 본회의장 문이 굳게 닫혔다. 의원 300명을 비롯해 수백 명의 취재진이 웅성대던 로텐더홀에는 빈 플라스틱 커피잔 몇 개만 남았다. 각 정당 대표 및 원내대표 사무실도 주인 없이 텅 비었다. 사무처 당직자들 몇몇이 남았지만, 그들도 퇴근을 서둘렀다.

돌아갈 생각이 없는 것은 촛불과 깃발이었다. 국회 앞에 모여든 시민들은 해가 저물어도 떠나지 않았다. “내일부터는 헌법재판소로 가자”고 그들은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은 좀 웃자”는 이야기도 했다. 탄핵의 날, 서울 여의도를 끝까지 지킨 이는 그들, 시민이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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