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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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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에 들어선 졸업장 쇼핑몰

예·결산 허위 보고로 교육청 지원 받고 ‘졸업장 장사’해 이문 늘리는

학력인정시설의 ‘불법’ 의혹들
등록 2011-02-16 14:50 수정 2020-05-03 04:26

전국 58곳의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이하 학력인정시설)에 국가(각 지방교육청)는 빈곤층·소외층 학생의 학비, 교원 인건비(매월 60만~80만원), 교육기자재비 등을 지원한다. 지난해 규모가 384억원이다. 하지만 한국YMCA원주고처럼 눈높이 교육이 이뤄지고 ‘치유’나 ‘화해’를 이끌어내는 학교는 드물다.
58개교 가운데 48곳이 개인 소유인 탓이 크다. 다수가 부실 교육·운영, 회계 불투명 등으로 곪아 있다. 교육 당국의 관리도 소홀하기 짝이 없다. ‘경계’에 선 학생들이 마저 벼랑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학령인정시설인 전북의 ㄱ고교는 무허가 건물에서 학생들을 강제노역에 동원하기도 했다.(832호 줌인 ‘노역하라, 복의 근원이 될지라’ 참조) 이 학교는 의 보도 이후인 지난해 12월에야 설치 인가가 취소됐다.

» 지난 2월7일 경기 안산의 한 상가 3층에 있는 A고등학교에서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건물을 나서고 있다. 한겨레 류우종

» 지난 2월7일 경기 안산의 한 상가 3층에 있는 A고등학교에서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건물을 나서고 있다. 한겨레 류우종

졸업생 수 유지 위해 결석해도 ‘출석 체크’

경기 안산의 A고등학교는 개인이 소유한 학력인정시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A고교는 경기 안산시의 4층 상가 3층에 들어서 있다. 고교 과정의 학력인정시설이다. 상가 3층에는 교실·교무실·교장실 사이에 ○○치과, ○○가구점 등이 자리하고 있다. 학교가 들어선 상가 3층 대부분이 이 학교 김아무개(86) 교장의 소유다. 바로 길 건너 건물을 임대해 1988년 A고를 신설·운영해오다, 2009년 상가 3층 1600여 평 가운데 16평을 뺀 나머지를 35억원에 매입해 옮겨왔다.

지난 2월7일, 학교에서 만난 김 교장은 거액의 상가를 매입한 배경에 대해 “선친의 유산, 특히 부동산이 꽤 된다”고 말했다. A고교 다른 관계자들의 증언은 조금 다르다. “김 교장의 재산엔 이른바 ‘졸업장 장사’를 통한 이문이 포함돼 있을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다수의 학교 관계자는 “특히 성인반은 담임 교사조차 얼굴 한 번 못 보고 졸업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교사들은 자신이 맡은 학급에서 출석조차 없이 졸업에 성공한 학생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다수 교사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등록금만 내고 출석을 하지 않은 채 졸업장을 받아가는 이가 2007년부터 2011년까지 100명이 넘는다(2007년 60여 명, 2008년 30여 명, 2009년 5명 내외, 2010년 5명 내외). 올해 2월11일 졸업식에서도 수업 일수를 채우지 않았거나 아예 수업을 나오지 않은 10여 명이 졸업장을 받아간 것으로 이 학교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이 학교에선 누구든 60일 이상 결석하면 퇴학 처리가 돼야 한다. ‘무등교’ 졸업생이 탄생한 배경은 따로 있다. 이 학교 관계자는 “수업 일수를 채우지 않으면 졸업할 수 없다고 한 학생에게 통보했지만, 교장 선생님과 상의하겠다는 말만 돌아왔다”며 “이 학생도 물론 졸업했다”고 말했다. 이런 졸업생 가운데엔 목사, 사업가, 정치인 등 지역 명망가들도 포함돼 있다는 증언이 터져나온다. 그러나 김 교장은 “출석 사정을 조금 봐줬을 수 있지만, 수업 일수를 안 채운 사람이 졸업장을 받을 순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기도교육청 안선엽 평생체육건강과장은 “단 한 사람이라도 허위로 졸업장을 받아서는 안 된다”며 “졸업장 장사를 한 것인지 즉각 감사를 나가서 조치를 취하겠다”고 2월10일 말했다.

조작된 학교 예·결산 보고서

은 A고교가 교육청에 제출한 2009·2010년 학교 회계 예·결산 보고서를 확보해 분석했다. 이를 학교 관계자들의 증언과 견줬다. 2009년 결산보고서엔 연구장학비 260만원, 입시관리비 400만원, 학생복리비 400만원(학교 축제비 등의 재원)이 나간 것으로 돼 있다. 6명 이상의 학교 관계자는 “연구장학비는 교사들에게 지급된 바 없고, 입시와 관련해서는 A4 1장짜리 입시원서 말고는 추가 지출되는 비용이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2008년치도 마찬가지다.

김 교장은 교원 수를 허위로 신고해 지방정부에서 지원하는 교원 인건비도 챙겨온 것으로 확인된다. 도교육청은 교원 1인당 매월 80만원씩 지원한다. 하지만 시간강사는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A고교는 2010년 임시고용된 미술·음악강사의 인건비도 국가 세금으로 충당했다. 김 교장은 “인건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간제 강사”라고 밝혔지만, 이들은 기간제 강사에게 지급되는 퇴직금을 받지 않는 조건으로 계약돼 있다. 기간제 강사로 신고했으나 실제로는 시간 강사라는 뜻이다.

교사들은 자신이 맡은 학급에서 출석조차 없이 졸업에 성공한 학생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다수 교사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등록금만 내고 출석을 하지 않은 채 졸업장을
받아가는 이가 2007년부터 2011년까지 100명을 넘는다

A고교는 1·2학년 8학급(2년 6학기제)으로 운영된다. 380여 명 학생들이 학기당 67만원의 수업료를 낸다. 10명 가운데 7명 정도의 수업료가 국고에서 지원된다. 수업료가 이 학교 세입 가운데 가장 크다. 2009년 도교육청 감사 때, 김 교장은 2006년 3월부터 2009년 5월까지 자퇴하거나 제적된 학생 45명의 수업료를 돌려주지 않아 문제가 되기도 했다.

2010년 결산(2010년 3월~2011년 2월)은 아직 도교육청에 보고되지 않았다. 다만 예산보고서를 보면, 학교는 14명 교사 전원에게 4200만원의 업무추진비(1년 300만원씩)를 지급하겠다고 책정했다. 하지만 지난 한 해 동안 업무추진비를 받은 이는 교장을 포함한 5명의 교사에 불과했다.

일·숙직비 등도 2400만원을 책정했지만, 이 학교엔 아예 일·숙직이 없다. 교원연수 비용도 900만원(18명·50만원씩)을 쓰겠다고 보고했지만, 한 학교 관계자는 “2007년쯤 중국에 한 번 다녀온 게 유일하다”며 “당시도 1인당 비용 54만원 가운데 교사 각자가 27만원씩 부담했다”고 말했다. 실제 사용되지 않은 예산이 다음 회계연도에 이월된 것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2009년에서 2010년 회계연도로 넘어온 돈은 2만8009원이었다.

» A고등학교가 위치한 상가 3층. 이곳에서 8학급의 수업이 이뤄진다. 교실 옆에 이벤트 회사와 가구점이 있다. 한겨레 류우종

» A고등학교가 위치한 상가 3층. 이곳에서 8학급의 수업이 이뤄진다. 교실 옆에 이벤트 회사와 가구점이 있다. 한겨레 류우종

경기도교육청은 2600만원의 기자재 구입비(2010년치)도 A고교에 지원했다. 한 관계자는 “가령 컴퓨터 10대를 산다 치면, 10대의 돈을 지급하고 8대는 되팔아 따로 돈을 남기는 방법도 취한다”고 말했다. 학교용으로 구입한 컴퓨터 중 1대는 교장이 소유한 건물에 세들어 있는 교회에 가 있다. 교사가 가서 직접 설치까지 해줬다. 수업료 등이 관리되는 학교 명의의 통장엔 김 교장의 병원비(300만원), 인터넷 쇼핑 결제 등의 흔적도 남아 있다.

도교육청 실무자는 “예·결산 보고서에 회계 조작이 있을 경우, 경고 이상의 처분, 평생교육법에 의거한 설치 인가 및 등록 취소, 교육과정 정지명령 등의 행정처분이 이뤄지도록 돼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학교는 지금까지 이에 준하는 행정처분을 받은 적이 없다. 도교육청은 학력인정시설에 대해 3년에 한 차례 감사를, 1년에 한 차례 지도점검을 한다. 형식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교실이라 부를 수 없는 곳”

현재 A고교는 엄밀히 따지면 ‘불법’일 가능성이 크다. 학력인정시설은 위치 변경은 물론 증축만 해도 인가를 위한 새 지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 2007년 평생교육법 개정 뒤부턴 법인만 학력인정시설을 설치할 수 있다. 하지만 교육 당국은 이전한 지 1년이 넘은 지난해 말에야 ‘재지정 작업’에 착수했다. A고교는 이제 법인화를 추진 중이다. 학교를 이전한 뒤 1년여 동안 교육시설로 적절한지 전혀 관리·감독되지 않은 셈이다.

김 교장은 2009년 학교 전체를 옮기기에 앞서 2007년 상반기 상가 3층의 일부를 임대해 4학급을 먼저 옮겨놓았다. 당시 이마트 건물은 통째 판매상업시설이었다. 용도변경이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입주 자체가 불가능하다. 김 교장 쪽은 “시설 용도변경은 2010년 3~4월에 이뤄졌다”고 말했다. 상가 3층을 매입하고 나머지 학급을 이주한 뒤로부터도 한참 지난 다음에 시설 용도변경이 이뤄진 셈이다. 도교육청은 2009년 5월 이 학교를 감사했지만, 이런 내용을 다 밝혀내지 못했다.

이런 부실 감사로 피해를 보는 건 당연히 학생들이다. 2007년 일부 이전 때, 학생들이 학교 기자재를 옮기고 수리도 도맡다시피 했다. 당시 근무했던 학교 관계자는 “교실이라고 부를 수 없는 곳이었다”고 말했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감사는 주로 예산 관련 부분에 대해 중점적으로 진행한다”며 “(최초 이전한 사실, 용도변경 문제 등에 대해) 어떤 사유가 있었는지, 혹시 학생 수를 (부당하게) 늘리는 것과 관련이 되었는지도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A고교만의 ‘결함’이 아니란 사실이다. 교육과학기술부, 각 지방교육청 등에 이 정보공개를 청구해 얻은 자료를 보면, 2008년~2010년 전국 58곳의 학력인정시설 가운데 24개교가 학적관리·회계관리 부정, 교원 인건비 횡령, 무자격 교사 채용 등으로 적발됐다. 문제가 된 학교가 모두 적발됐다고 볼 수도 없다. A고교만 해도 관련 감사에서 주의만 받았을 뿐이고, 학생 노역으로 논란이 된 전북의 ㄱ고교도 적발 대상에서 빠져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각 지방교육청 등에 이 정보공개를 청구해 얻은 자료를 보면,
2008~2010년 전국 58곳의 학력인정시설 가운데 24개교가 학적관리·회계관리 부정,
교원 인건비 횡령, 무자격 교사 채용 등으로 적발됐다.

교과부 관계자는 “학력인정시설도 각종 학교의 설립·운영 기준과 같은 수준 이상으로 재무회계 규칙을 적용하고 있지만, 학교장 등의 예산 횡령·유용의 경우 개인 재산이고 법적 근거가 없어 형사처벌에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엄연히 지정 취소 권한은 교육 당국에 있다. 솜방망이 감사·처벌은 부정·비리의 학력인정시설을 존치시키는 구실을 하고 있다.

현재 ‘전국 학력인정시설 협의회’는 생활수준과 관계없이 모든 학생에게 학비 전액을 지원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경우, 학력인정시설에 대해 120억~130억원이 매년 추가 지원된다. 교과부는 “투명성과 책무성이 담보되지 않는 한, 추가 국고 지원은 말이 안 된다”는 입장이다. 투명성·책무성을 보장할 최소 기준이 학력인정시설의 법인화에 있다고 교과부는 보고 있다.

법인화만으론 근본적 개선 안 돼

그러나 법인화만으로 경계에 선 아이들이 온전히 품어질 수 없다. A고교 김 교장은 “나는 50여 년을 교장 했던 사람”이라며 “학생들을 포기할 수 없어 이제 내 재산 45억원가량을 들여 장학재단(법인)을 만들고, 학교를 계속 운영하려 한다”고 말했다. 교육부의 잣대에 따르면 A고교는 추가 국고 지원까지 욕심낼 수 있다. 법인의 허울 너머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살펴보지 않으면, 투명성·책무성이 없는 학력인정시설을 솎아낼 수 없다. 법인화를 넘어 ‘소외자’를 위한 교육이 실제 이뤄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학교’의 책무다.

안산=글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하어영 기자 haha@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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