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숙의 얼굴은 뽀얗다. 키는 작고 몸집은 말랐다. 범죄형 생김새가 따로 있다 한들, 경숙은 그런 외양과 상관없다. 그날 오후, 여중생들의 수다가 돌연 비명으로 바뀌기 전까지, 경숙이 그런 일을 저지를 것이라 짐작한 사람은 없었다. 뽀얗고 작고 마른 소녀 경숙은 수업을 마치고 학교 앞 횡단보도를 건너던 반 친구의 얼굴을 문구용 칼로 여러 차례 그었다. 그날 오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경숙은 다른 학교로 전학했다. 학부모들이 경숙의 전학을 요구했다. 옮겨간 학교에서도 경숙은 혼자 지냈다. “걸레”라고 놀림받았다. 전학 간 학교의 교사들은 경숙의 ‘재범’을 두려워했다. 중3 여름방학이 끝나자, 경숙은 더 이상 학교에 나갈 수 없었다. 그것은 폭력에 대한 정당한 징벌일 수도 있다. 다만 죄의 뿌리는 간단하지 않다.
가난과 폭력이 학업중단의 뿌리
공장에서 일하던 경숙의 아빠는 노동이 힘들어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니 빚이 쌓였다. 빚이 쌓이니 부부 싸움이 많아졌다. 싸우면 엄마를 때렸다. 엄마는 집을 나가버렸다. 어린 경숙은 혼자 집에 남겨져 울었다. “비 오는 날이면 물이 새는 지하방에 벌레가 기어다니는데, 나는 시장에서 산 3천원짜리 옷을 입고 혼자 있었다”고 경숙은 상담센터에서 울면서 말했다. 10대가 된 경숙은 무시당하는 일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친구를 사귀지 않았다. 말 없는 경숙은 따돌림당했다. 따돌림이 시작되면 경숙은 마음을 더욱 닫았다. 교사들은 경숙의 두려움을 내버려뒀다. 두려움은 폭발해 폭력이 됐다.
그날 오후의 잘못에 책임질 어른들이 있지만, 지금은 경숙만 축출됐다. 재작년 학교를 그만둔 경숙은 매년 6만~7만 명에 이르는 ‘학업중단자’ 대열에 합류했다. 좁은 의미의 학업중단자는 입학 뒤 학교를 그만두는 경우다. 초·중·고 학업중단자 통계의 틀이 잡힌 게 1998년 무렵인데, 2005년을 기점으로 학업중단자가 늘고 있다. 중학생보다 고등학생이, 일반계보다 전문계 학생이 더 많이 학교를 그만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학교를 다니다 자퇴·퇴학하는 수를 30만여 명으로 추정한다. 넓은 의미의 학업중단자는 상급 학교에 입학하지 않는 ‘비진학자’를 포함한다. 취학할 나이에도 초·중·고교에 입학하지 않는 청소년 역시 30만 명에 이른다. 양쪽 모두에 해당되는 수를 감안해도 적게는 40만 명, 많게는 60만 명이 ‘학교 밖 아이들’이다.
학업 중단의 대열에는 푸르고 맑은 청춘의 기운이 없다. 경기도청소년상담지원센터 박경자 상담원은 “학업중단자 가운데는 공격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는 아이가 많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분노를 키우고 폭력을 배우는 곳은 가정이다. 24명의 학업 중단 청소년 대부분은 부모의 불화·폭력·폭언·이혼을 기억하고 있다. 폭력적인 부모는 가난을 짊어지고 있다.
혜진의 아빠는 개인택시를 도박으로 날렸다. 아빠는 의처증이 있었고, 혜진을 때렸다. 혜진은 폭력사건에 휘말려 소년원에 다녀왔으며, 중학교를 그만뒀다. 진숙의 아빠는 도시가스 설비 기사로 일했다. 아빠는 진숙이 5살 되던 해, 엄마와 이혼했다. 아빠는 곧잘 울컥해 폭언하며 화를 냈다. 진숙은 본드를 흡입하고 또래를 때리고 물건을 훔쳐 소년원에 다녀왔으며, 중학교를 그만뒀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2009년 발행한 연구보고서 ‘빈곤 아동·청소년 생활실태 연구’를 보면, “경제적 어려움은 주변 환경을 통제할 수 없고 필요할 때 재화를 가질 수 없다는 불안감·무력감·수치심”을 일으켜 “부모의 우울증과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우울한 어른은 가족 간 갈등을 자초한다. 스트레스를 받은 부모는 가족 갈등 상황을 “가혹한 대우와 거부적 훈육”으로 해결하려 든다. 가혹하게 대접받은 자녀는 자존감을 잃는다. 10대가 된 아이들은 부모를 포함해 “모든 상대방의 신호(의사표현)를 적대적인 것으로 단정”하는 성향을 갖게 된다. 부모-자녀, 교사-학생, 또래 관계의 갈등에서 이들은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이해와 설득이 아닌 강압과 폭력으로 해결하려 든다”.
출생 신고도 안돼 학교에 가본 적 없는 아이
갈등 상황을 그렇게 푸는 것은 아이들만이 아니다. 경수는 오토바이를 훔쳤다가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다. 보호관찰 처분에는 사회봉사 명령도 포함됐다. “네가 사회봉사하는 날은 무단결석 처리할 수밖에 없어.” 어느 날, 학생주임이 경수에게 말했다. “평생 따라다니는 생활기록부에 엄청 나쁜 평가가 남겨지는 거지.” 고개 숙인 경수에게 학생주임이 제안했다. “다른 학교로 전학 가면 괜찮아. 생활기록부가 깨끗해질 거야.” 미성년자의 소년원 입소 기록은 전과로 남지 않는다. 사회봉사 시간만큼 무단결석으로 처리된다는 것도 거짓이다. 다니던 학교의 교사가 기록한 생활기록부 내용이 전학 뒤 ‘깨끗해진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하지만 경수는 학생주임의 ‘권고’대로 학교를 옮겼다. 중학 과정은 겨우 마쳤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진 않았다.
민정은 중학교 3학년 때, “이제 학교 나오지 마라”는 교사의 말을 들었다. 초·중학교는 의무교육과정이므로 공식적으로는 ‘퇴학’이 불가능하다. 학부모의 요청으로 ‘(학업) 유예 또는 면제’만 가능하다. 교사는 민정에게 ‘전학’을 권고했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민정은 강원도 할머니댁으로 주소를 옮겨 전학했다. 전학 간 학교의 담임은 폭력교사로 유명했다. 교탁 앞으로 학생을 불러내 머리채를 잡았다. 머리채를 끌고 복도에 내동댕이쳤다. 쓰러진 학생이 일어나 교실로 들어오면 뺨을 때렸다. 학생들이 동영상을 찍어 교육청에 신고했지만, 교사는 아무 징계도 받지 않았다. 나중에 민정은 “입방정 떠는 친구”를 때린 게 화근이 되어 전학 간 학교마저 그만뒀다. 폭력학생 민정은 폭력교사의 권고를 받아 ‘학업 유예’를 신청했다. 이런 일이 퇴학과 무엇이 다른지를 설명하는 것은 일종의 말장난이다.
“사회의 야수성을 학교 밖 아이들이 온통 짊어지고 있다”고 학벌없는사회 채효정 활동가는 말했다. 그는 서울시교육청 학업중단 연구팀에서 조사 활동을 하고 있다. 학교 밖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봉인을 여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야수성을 꽁꽁 막아둔 봉인 아래서 어떤 아이들은 무기력으로 침잠한다.
고등학교를 자퇴한 혁철은 하루 종일 인터넷으로 판타지 소설을 읽는다. 허리가 아파 일을 못하는 어머니는 기초생활수급권자다. 판타지 소설에서 혁철은 정의를 구현하는 영웅과 함께 현실을 잊는다. 시골 할머니 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기호는 지난해부터 집에 틀어박혔다. 모든 과목 교과서를 외우려는 강박증에 시달리다, 고등학교 진학을 접었다. 요즘은 하루 8시간 이상 컴퓨터 게임을 하고, 12시간 이상 잔다. 누군가 게임을 말리면 집에 있는 물건을 부숴버린다.
지난해 가을까지만 해도, 민수는 밤 12시에 일어나 오후 2시까지 인터넷 게임을 했다. 부모는 민수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고, 학교에도 보내지 않았다. 아빠는 “나중에 검정고시 치면 된다”고만 했다. 그렇다고 학원에 보내지도 않았다. 부모는 이혼했고, 함께 사는 아빠는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낮에 깨어 있어도 의미가 없으니” 밤에 일어나 인터넷에 몰입했다. 길게는 몇 달 동안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 친구는 사귄 적이 없다. 함께 게임하는 네티즌과 ‘온라인 대화’를 나누는 게, 또래 관계의 전부였다.
어느 날, 일본의 ‘히키코모리’(은둔자)를 다룬 방송 프로그램을 보았다. “저건 내 이야기”라고 민수는 생각했다. 다만 “저들은 스스로 집에 처박혔지만, 나는 환경이 그렇게 만든 것”이라 생각했다. 게임을 하다 화장실에 가면 그제야 거울을 봤다. ‘크면 달라지겠지. 어떻게든 먹고살겠지.’ 민수는 혼자 생각하다 다시 게임에 몰입했다. 지난해 가을, 주민센터·청소년상담원지원센터 등의 도움을 받아 민수는 주민등록을 하고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고 있다. 조만간 초졸 검정고시를 치를 예정이다.
성관계, 손쉬운 탈출구외부를 향한 폭력과 내부를 향한 은둔 사이를 오가는 학교 밖 아이들에게 성은 거의 유일한 놀이고 언어다. 경기도청소년상담지원센터 면담실 벽에는 아이들이 적어둔 낙서가 있다. “왜 나만 혼자야!” 그 옆에 무수히 많은 하트 모양이 새겨져 있다. “박○○, 사랑해.” “김○○ ♥ 이○○.” 외로운 아이들은 쉽게 사귀고 깊게 빠져든다. 이엘리야 상담원은 “사람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칭찬해주면 매우 좋아한다”고 아이들의 정서를 설명했다. 그들은 성을 통해 타인에게 애착한다. 다만 그 언어는 서툴고 거칠다.
2년 전, 혜진은 보호관찰 기간 중에 20대 피자 배달원과 사귀어 임신했다. 임신 기간 동안, “야단맞을까 무서워서” 반드시 출석해야 하는 보호관찰소에 나가지 못했다. 그 탓에 아이를 낳은 뒤 소년원에 들어갔다. 아이는 입양을 보냈다. 은경은 2년 전, 매독에 걸렸다. 치료를 받고 나았는데, 지난해에 다시 임신했고 결국 낙태했다. 할머니가 키운 혜리는 2년 전부터 남자친구와 동거했고, 지금은 만삭이 되어 미혼모 시설에서 출산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이 네 번째 임신이다. 첫 임신은 중학교 때 했다. 지난해 봄, 세 번째 낙태 수술을 받았다. 네 번째 낙태 대신 출산을 결정한 것이 그나마 변화다. 아이의 아빠는 20대 중반이고, 공장에서 일한다. 두 사람은 월세 30만원짜리 단칸방에서 동거해왔다. 이들 모두 중학교를 그만뒀고, 지금은 남들같으면 한창 고등학교에 적응할 나이다.
학교 밖 아이들에게 연애와 폭행의 경계는 희미하다. 은희는 노래방에서 또래 남자들과 어울려 놀다가 성폭행을 당했다. 영희는 친구네 집에서 친구의 남자친구, 그 남자친구의 친구 등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쓰러진 뒤 성폭행을 당했다. 진아는 동생들의 성매매를 알선하다 적발돼 소년원에 다녀왔다. 한 명당 5만원을 받았다. 학교 밖에 나오면 학교 친구들은 모두 연락이 끊긴다. 비슷한 처지끼리 새로 만난다. 이들에겐 돈이 없으므로 혼자 사는 ‘친구네 집’에 모인다. 술을 마시다 사달이 난다. 이엘리야 상담원은 “그런 일이 무서워 어울리지 않으면 그나마 또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된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학교 밖 친구’는 마지막 대인 관계다. 그게 끊어질까 아이들은 두렵다.
이런 일에 대한 죄의식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서울 신림역 근처에서 만난 종훈은 처음엔 껄렁대기만 했다. 조만간 소년원에 들어갈 거라고 했다. 무용담처럼 “강간하다 걸렸다”고 말했다. ‘나는 이 정도로 센 놈’이라며 우쭐대는 듯했다. 종훈 앞에 앉은 채효정 활동가가 조용히 말했다. “괜찮아, 누구나 잘못할 수 있어. 어른들도 그래. 중요한 건 그게 잘못이라는 걸 아는 거지.” 당당하던 종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때는… 왜 그랬나면… 나도 몰라요….” 종훈은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괜찮으니 앞으로 그러지 마라”는 어른의 말을 종훈은 처음 들었다. 그 말은 보호관찰과 소년원보다 강력했다.
학교 밖 아이들을 19년째 보살펴온 한빛 청소년대안센터 최연수 소장은 “바로 그런 순간에 아이들을 돕고 품어야 한다”고 말한다. 소년원에 다녀온 일은 전과로 남지 않는다. 그러나 소년원을 다녀온 청소년이 계속 범죄를 거듭하다 성인이 되면 가중처벌을 받는다. 교도소에서 4~5년을 보내기 일쑤다. “검정고시라도 준비하고 싶은데, 학원 다닐 돈은 없고, 돈을 벌려니 일자리는 마땅치 않고, 일하면서 학원 다니려니 여의치 않고, 그러다 제 풀에 포기하는 일이 생기거든요.”
그러나 돌아올 통로는 비좁다철민에게 절도는 생계형이었다. 초등학교 때 부모가 이혼했는데, 엄마는 연락이 끊겼고, 아빠만 간혹 용돈을 보냈다. 용돈은 띄엄띄엄 도착했다. 중학교 입학 때부터 혼자 하숙했는데, 월 20만원 하숙비가 300만원까지 밀린 적이 있다. 지방을 돌며 건축 노동일을 하는 아빠는 1년 이상 돈 한 푼 보내지 않았다. 철민은 외제차 앞에 달린 ‘엠블럼’을 떼어내 고물상에 팔았다. 하나에 5만원씩 받았다. 학교 밖 아이들의 검정고시 준비를 돕는 한빛 청소년대안센터가 철민의 숙소를 마련해주기 전까지, 철민은 “돈이 없어서” 하루 종일 집에서 컴퓨터로 영화만 봤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철민은 얼마 전, 자동차정비사 자격증을 땄다.
철민이 직업을 구해 착실히 생활하게 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한국에는 ‘학교 밖 아이들’을 위한 일자리가 드물다. 전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관련 직종에 취업 못하는 상황이다. 고등학교를 자퇴한 철우는 오토바이를 훔쳐 몰다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고, 보호관찰 기간 중에 자판기를 털다 소년원에 다녀왔다. 지난해 철우는 “마음 잡고” 피자 배달을 시작했는데, 가게에선 철우를 포함한 2명이 한 달 내내 휴일 없이 일했다. 시급 4600원에 배달 1건당 300원을 추가로 받았다. 배달 소년의 과속·위험 운행은 하루 12시간 노동의 피로와 1건당 300원의 수당에서 비롯됐다. “일해보면 사람이 달라진다”고 철우는 말했다. 철우는 이제 학교보다 노동 현장이 더 가혹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모험을 즐기는 철우는 국정원 직원이 되는 게 꿈이지만, 일이 잘 안풀리면 “군대 가서 말뚝 박겠다”고 말했다.
24명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경호는 최근 어느 전자부품 조립공장에 취업했다. 부모는 초등학교 때 이혼했다. 알코올중독자이던 아빠는 경호가 고등학교를 자퇴한 뒤, 세상을 떠났다. 폭력 등으로 보호관찰 2년을 받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철이 없었다”고 회고한다. 이젠 철이 들어 “다르게 살겠다”고 결심했다. 오토바이는 죽어도 안 타겠다는 결심도 했다.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게 될까봐 일부러 주유소·PC방 같은 일자리는 피했다. 아는 형들이 “힘들어서 그만뒀다”는 공장을 제 발로 찾아갔다. 익숙지 않은 일을 하루 종일 반복했다. 담배 피울 짬도 없었다. 아침 8시30분부터 밤 9시까지 일했다. 토·일요일도 일했다. 특근·야근을 안 하면 돈을 벌 수 없었다.
‘경호들’에게 두번째 기회를
2월 말이 되면, 경호는 첫 월급을 받는다. 휴대전화부터 살 계획이다. 시급 4320원을 받으므로, 월급으로 150만원 정도 나올 것이다. 기숙사비와 난방비를 제하면 제 손에는 “100만원 정도 남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의 팔등에는 문신이 있다. 돈이 없어 직접 핀을 찔러 잉크를 밀어넣은 문신이다. 이젠 그걸 숨기려고 여름에도 긴 팔을 입는다. 지우고 싶은 과거가 경호에겐 있다. 열심히 살고 싶은 미래도 있다. 다만 그 꿈의 출발점은 시급 4천원이다. 학교 밖 아이들이 스무 살 무렵 만나게 될 가장 ‘모범적인’ 삶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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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 학업중단자 통계가 발표된 것은 1990년대 후반 이후부터다. 2000년 무렵, 학업중단자가 8만여 명에 이르렀으나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했다가 2006년부터 급속히 늘고 있다. 김성기 협성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97년 외환위기 여파로 90년대 후반 학업중단자가 늘었고, 최근에는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다시 학업중단자가 급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상급학교로 갈수록 학업중단 비율이 높아진다. 실업계고의 학업중단율은 일반계고보다 4배 정도 높다(표1·2 참조).
학업중단자는 연간 6만~7만 명으로 전체 초·중·고 재학생(724만여 명)의 1% 정도다. 김형국 미래와균형 소장은 “얼핏 보면 1%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누적된 학업중단자를 감안하면 엄청난 규모”라고 말했다. 학업중단자가 다시 복학·편입하는 비율은 14~15%에 그친다. 복학·편입해도 20~30%는 다시 학업을 중단한다. 현재 만 19살 이하 청소년 가운데 학업중단 상태인 경우가 전국적으로 30만여 명에 이를 것으로 김 소장은 추정한다.
통계에 잡히는 학업중단자는 초·중·고 재학생 가운데 학교를 그만둔 경우다. 아예 학교에 진학하지 않는다면, 학업중단자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진학연령기의 2% 정도의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과정을 마친 아이 가운데 3~4%는 중학교에 진학하지 않는다. 중학교 과정을 마친 아이 가운데 7~8%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는다. 전체 취학연령 인구(2009년 기준)를 잣대로 보면, 전국적으로 30만5천여 명(고등학교 15만5천 명·중학교 7만7천 명·초등학교 7만3천 명)이 입학해야 할 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상태다(표3 참조).
상급학교 비진학자 집단과 입학 이후 그만둔 학업중단자 집단을 더하면 적어도 40만~60만 명의 청소년이 학교 밖에서 서성대고 있는 셈이다. 2008년 보건복지가족부는 18살 미만 기초생활수급권자(36만6천여 명), 복지시설·가정위탁 청소년(3만4천여 명), 일시보호소 이용 청소년(1만4천여 명) 등을 모두 합산해 전국적으로 52만5천여 명의 ‘위기 아동·청소년’이 있다고 발표했다. 학교 밖 청소년과 위기 청소년의 수가 겹친다.
현행 교육통계에선 학업중단 이유를 자세히 가려내지 않는다. 김성기 교수가 2009년 학업중단 청소년 3545명을 대상으로 세부 조사한 결과 ‘학습부진·학업기피’(18.9%)로 인한 학업중단이 가장 많았고, ‘엄격한 교칙 등 학교생활 부적응’(18.3%)을 이유로 꼽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다음으로 질병·경제사정·가정불화·주거불안 등 개인·가정사가 원인인 경우가 15%에 이르는데, 빈곤-가족해체-학습부진-학교 부적응 등으로 이어지는 연쇄 고리를 짐작할 수 있다(표4 참조).
가난한 사람만 학업을 중단하는 것은 아니다. 유학·이민·어학연수 등을 위해 학교를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 현행 교육통계에선 학업중단자 가운데 얼마나 많은 이가 유학·이민을 택하는지 파악할 수 없다. 다만 학업중단자와 별개로 유학·이민 학생 통계를 발표하는데, 일반계 고등학교의 유학생이 전문계 고등학교 유학생의 20배가 넘는다. 더 나은 교육환경을 찾아 학교를 뛰쳐나오는 일은 중산층 이상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그나마도 최근 들어 줄고 있다(표5 참조).
2009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서울 지역 초·중학생 81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빈곤층 학생 가운데 1년에 한두 번 이상 학업중단을 고민한 경험이 있는 경우가 22~28%로 나타났다. 반면 부유층 학생이 학업중단을 고민한 비율은 10%대에 그쳤다(표6 참조). 이들이 고민을 실행에 옮긴다면, 학업중단자는 더욱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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