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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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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등록 2004-09-10 00:00 수정 2020-05-03 04:23

▣ 배경록/ 한겨레21 편집장 peace@hani.co.kr

노무현 대통령이 또 화를 냈다. 행정수도 이전과 같은 정부 정책의 발목을 잡는 국회나, 국가보안법 존치를 판결한 사법부를 향해서가 아니다. 자신의 ‘수족’인 행정부의 공직자들이 그 대상이다. 이유는 정부 혁신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행정서비스로 과연 국민의 신뢰를 받고 국민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가에 의문이 든다”는 강한 어조의 질책이 터져나온 것은 지난 4일의 차관급 정부혁신 토론회에서였다.

취임 초기 “이제 막가자는 거지요”라는 살벌하면서도 코믹한 말을 남겼던 ‘검사와의 대화’ 이후 노 대통령은 각종 연찬회, 토론회 등 공직자들을 접하는 자리에서는 예외 없이 질책과 질타를 쏟아내곤 한다. 횟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쌓여가고 수위 또한 점차 높아지고 있다. 과연 왜 그럴까? 제 식솔의 허물을 덮어줄만도 한데 노 대통령은 왜 틈만 나면 그들을 혼내는가? 그 답은 공직사회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느 정도 찾을 수 있다.

늘 그렇듯이 공직사회는 변화에 익숙하지 않다. ‘철밥통’ 근성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찾아서 일하기보다는 맡겨진 업무영역 안에서 위로부터 지시받아 일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국민에 대한 행정서비스보다는 조직 보호가 우선하고, 조직의 발전보다는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일반적인 공직사회의 악습들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게 참여정부의 현실이다. 덧붙여 김영삼 정부나 김대중 정부 때 노골화됐던 지역주의가 아직도 살아 꿈틀거리고 있는 것도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주범이다(이 대목에서는 노 대통령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참여정부만의 독특한 현상도 공직사회로 하여금 갈지자 행보를 하게 한다. 공직사회에도 지금의 우리 사회 모습이 그대로 투영돼 ‘친노 반노’ 구도가 형성돼 있다는 점이다. 요즘 사석에서 공직자들을 만나면 그 사람의 성향이 ‘친노’인지, ‘반노’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 두 가지 타입의 질문을 받게 된다. 하나는 “노 대통령의 진정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이고, 또 다른 질문은 “지금 이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이다. 혈연, 학연, 지연을 떠나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에 지지를 보내기도 하고, 거부의 몸짓으로 복지부동하며 3년 후를 기다리기도 한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Peter F. Drucker)는 자신의 저서 <next society>를 통해 지식사회와 정보혁명 시대로 상징되는 21세기에서 살아남기 위한 한 가지 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모든 조직은 살아남거나 성공하기 위해서 스스로 ‘변화 중개인’으로 변신해야만 한다. 변화를 성공적으로 관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변화를 창조하는 것이다. …‘변화 중개인’이 되는 목적은 조직 전체의 의식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변화를 위협으로 인식하지 않는 대신에 사람들은 변화를 기회로 간주하게 될 것”이라며 변화를 주문하고 있다.
참여연대로 상징되는 시민운동은 이제 성공적으로 21세기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된다. 공직사회가 이대로 멈춰 있다가는 비정부기구인 NGO들에게 망신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공직사회는 더 늦기 전에 시민단체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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