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락산을 강아지와 달리다 캔버라의 캥거루를 떠올렸다뒷산으로 충분하다. 떡갈나무가 2월의 외투를 벗고, 지빠귀 울음에는 3월이 들어 있다. 밤은 두더지가 파낸 흙더미를 무언극처럼 남긴다. 아침은 입김과 능선에 비스듬하게 걸린 안개, 희지만 희지 않은 것들의 풍경으로 온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 호수의 소박함에 대해...2025-03-08 20:39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을 달리다, 저 잔물결처럼오스트리아 순방을 준비하는 동안 한 사람이 가슴에 묵직하게 자리잡는다. 몽양 여운형 선생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오스트리아는 분단의 숙명을 좌우를 뛰어넘는 연립정부 구성으로 돌파한다. 해방 후, 몽양만 고고히 좌우합작으로 38선을 지워내려 했다. 1947년 7...2025-02-08 20:35
서울의 밤은 시민들의 밤이다서울의 밤에는 눈 대신 시민들이 거리에 내린다. 함박눈처럼 수북이, 추악한 음모를 점령한다. 오늘 아침 엄마들은 카레를 한솥 끓이고, 전화를 걸어 아들 걱정을 수다로 풀고, 모자를 챙겨 거리로 나온다. 하학길의 고등학생이 묻는다. “엄마는 어디야?” 이태원에서 친구를 ...2025-01-11 21:32
과속 ‘부상’의 처방전, 멈춤과 성찰가을이 되면 바람이, 길과 운동화 사이 박음질을 푼다. 여름내 꿰매놓았던 것들이다. 올이 풀리자 몸이 날아갈 듯하다. 중랑천 왜가리들처럼 보폭을 넓혀 달려본다. 기록을 낼 수도 있겠는데? 앞선 러너를 추월하는 기분이 짜릿하다. 6분대였던 1㎞ 기록이 5분대가 되고, 기...2024-11-23 20:11
독재자는 홀로 번쩍인다전라북도 장수의 산길을 달린다. 팔공산, 신무산을 지나는 38㎞의 낯선 길이다. 동쪽 아침이 서북쪽 안개에 산 아래 마을 길을 알려준다. 밤사이 경상남도 함양에서 육십령 고개를 넘어 읍내까지 왔다가 길을 잃은 안개들이다. 구름재를 넘으면 진안, 말치고개를 넘으면 임실이...2024-10-27 07:36
핑계를 밀어내고, 괴테의 마음으로괴테가 이탈리아 로마에 도착한 건 1786년 11월1일이다. 그날, ‘티롤 산맥을 도망치다시피 넘었다’고 일기에 적었다. 괴테는 바이마르 공국의 고위 관료를 지냈지만 저지대가 그립다. 높이 솟은 것들은 비바람에 깎이고, 낮은 곳에서는 이것들이 퇴적하여 화석이 된다. 1...2024-09-28 20:19
장거리 달리기, 인류가 최상위 포식자 된 이유마지막 나무의 가지 하나가 뜨거운 한낮으로 부서진다. 메뚜기떼처럼, 건조한 바람이 사바나의 수분을 모조리 데려간다. 눈물을 잃고, 마지막 열매는 울지 못한다. 마른 풀이 지평선 너머까지 일렁이는데, 그 위에서 태양이 신나게 춤춘다. 루시(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발바닥에 ...2024-08-31 19:00
“자연의 무서움을 아셔야…” 화석연료 포기한 덴마크그늘이 달아난 땅을 달린다. 해는 종일 민망하다. 자갈이 나무들의 비명을 움켜쥐고 있다. 자갈이 발에 차일 때마다 비명이 다리를 따라 귓전까지, 째질 듯 온다. 나무들의 머리는 하늘에 닿을 듯 붉게 치솟아 사라졌다. 까맣고 앙상하게 타고 있는 아랫도리를 볼 겨를이 없었...2024-08-03 20:30
“달려보자, ‘나’를 아끼게 된다”유월의 햇볕이 한여름이다. 심장 박동을 부추긴다. 일찌감치 완주에 만족하기로 하고, 풍경에 나를 맡긴다. 남한강 변이 초록이다. 나무 그늘이 대청마루다. 젊은 남성 주자가 부산 말로 여성 주자에게 말을 건다. 답변은 정읍 사투리다. 곤충들도 꽃잎 뒤로 몰래 숨는다. 은...2024-07-06 20:58
견뎌낸 것들만 서사를 남긴다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한번 머릿속으로 들어온 생각이 나사못처럼 파고든다. 지웠다고 여겼는데, 다른 생각으로 이어져 질기게 살아남는다. 부끄러운 기억, 극단적인 생각일수록 더 그렇다. 번뇌, 우울이 되어 삶을 괴롭히거나 편견이 되어 아주 깊이 박혀버린다. 꼼짝하지 않...2024-06-08 20:24
자존심 누르고 장거리달리기하는 정치숲을 달린다. 나뭇잎 사이로 해가 순간 커진다. 떡갈나무가 이제 막 고사리손 같은 잎을 피웠다. 그 잎이 힘겹게 해를 가려주어 생긴 그늘을 지난다. 해가 번쩍 점멸, 멋진 아침 조명이다. 흙길에는 솔잎이 가득하다. 손바닥만 한 떡갈나무 잎이 묵은 잎 위로 쌓여 비탈은 ...2024-04-21 13:06
1970년대 말 평균수명이 16살이었던 나라다리가 말을 건다. 이제 더 속도를 내봐. 심장은 속삭인다. 나중을 생각해서 지금은 참을 때야. 코끝이 찡하다. 등에 내려앉은 꽃샘추위를 따라 으스스한 기운의 발걸음 소리가 계속 쫓아온다. 올 첫 대회는 3·1절을 기념하는 마라톤 대회다. 하프를 신청하고 설렘 반, 후...2024-03-16 2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