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햇볕이 한여름이다. 심장 박동을 부추긴다. 일찌감치 완주에 만족하기로 하고, 풍경에 나를 맡긴다. 남한강 변이 초록이다. 나무 그늘이 대청마루다. 젊은 남성 주자가 부산 말로 여성 주자에게 말을 건다. 답변은 정읍 사투리다. 곤충들도 꽃잎 뒤로 몰래 숨는다. 은밀한 연애질이다. 착착 리듬을 맞춘 둘을 따라 잠시 헉헉 쫓아가본다. 이젠 틀렸다. 속도를 늦추고 남한강 바람에 등을 기댄다.
남한강은 부드럽다. 남한강의 시인, 신경림 선생도 부드럽다. 2024년 6월2일 열린 ‘양평이봉주마라톤대회’는 남한강을 따라 달린다. 부드러운 루트다. 열흘 전 선생이 타계하셨다. 부고를 접하고,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고 했던 ‘파장’의 첫 구절을 생각했다. 유신의 가혹한 시절이었다. 그때 누구든 맞짱 뜰 수 있다고 선생의 시가 알려줬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가난한 사랑 노래’). 선생은 가난한 삶도 아낄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적어주셨다.
시는 더러운 곳에서 소중한 것을 끄집어냈다. 한 사람이, 하나하나의 감정이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우주라 일렀다. 시를 가슴으로 받아들인 이들은 자신을 아끼게 됐다. 자신의 감정을 과감히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시인보다 더 용감하게 시대와 호흡하고, 목소리를 냈다. 그동안 시가 해왔던 일을 노래가, 영화가 하게 됐다. 굳이 시를 읽지 않아도 시적 감성이 넘쳤고, 시인이 아니어도 새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그렇게 시의 시대는 권위주의, 독재, 차별에 쐐기를 박아 쪼개고 장렬하게 저물었다. 시가 진정으로 원하던 일이다. 이제 선생의 죽음으로 그걸 재차 확인할 뿐이다.
달리면서 ‘나’ 자신을 느낀다. 소소한 부상이 원래 일상의 일부였음을 깨달아간다. 애초에 기록이 우선이었다면 문예부가 아니라 육상부에 들었어야 한다. 호흡이 가빠질 때 심장을 건드리는 기분, 바람이 귓가를 스칠 때 지나가는 감정, 이런 것들은 시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지만 달리고 나서 화산처럼 샘솟는 마음에는 그 어떤 것도 이르지 못한다. 그것은 자신을 아끼는 마음, 자존감의 생성이다. 자신이 하고픈 일을, 자신의 속도에 맞춰 집중할 수 있다면 누구나 자신을 존중하게 된다. 그런 개개인의 자존감으로부터 민주주의도 온다.
정치와 권력은 능선에 서 있다. 정상을 바로 앞둔 능선이다. 눈에 잘 띄는 까닭에 표적이 되기 쉽다. 공격하고 본다. 공격당한 이들도 가만있지 않는다. 치고받고, 그러다보면 서로가 닮아간다. 자신의 리듬을 잃는다. 정치권의 문법, 기득권의 문법이 고착된다. 여의도와 청와대까지 8년여, 시인임을 잊지 않으려 애썼다. 권력이 특별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려 몸부림쳤다.
산 정상에 오른 이는 반드시 내려와야 한다. 기득권이 되지 않기 위해 외로워야 했다. 다른 이야기를 하기 위해 달려야 했다. 새벽마다 달리면서 되뇌었다. ‘너희들과 달라, 기득권이 되지 않을 거야.’ 외로움과 달리기만이 권력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게 했다. ‘못난 놈들’ 곁에서 떠나지 않게 했다. 대통령의 말 앞에 용감해질 수 있었다.
에밀 자토페크는 ‘인간 기관차’란 별명으로 유명하다.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5천m, 1만m, 마라톤까지 세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다. 지금까지 누구도 단일 올림픽에서 이룬 자토페크의 성과를 쫓아가지 못한다. 정작 ‘인간 기관차’란 별명은 1948년 런던 올림픽 5천m 경기, 4위로 달리던 그가 60여m를 쫓아가는 장면에서 얻었다. 비록 2위에 머물렀지만 사람들은 마치 죽을 각오로 달리는 듯한 자토페크의 얼굴에서 불굴의 의지를 봤다.
자토페크는 예전 체코슬로바키아의 작은 마을 코프르지브니체 출신이다. 체코를 합병한 독일 치하에서 자토페크는 노동자였다. 아버지는 신발을 닳게 한다는 이유로 달리는 자토페크를 야단쳤다. 그는 좋아서 달렸다. 공장으로 가는 길목, 여기 포플러에서 다음 포플러 나무까지 가는 동안 숨을 참았다. 그렇게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넣는 인터벌 트레이닝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자신의 호흡과 자신의 리듬. 1968년 육군 대령 자토페크가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에 저항할 수 있었던 이유다. ‘프라하의 봄’ 가담으로 그는 감옥살이하고 우라늄 탄광으로 유배된다. ‘벨벳 혁명’으로 제자리를 찾기까지 냉대는 1989년까지 이어졌다.
체코 프라하. 2018년 11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가 열리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길목에 이 고색창연한 도시에 들렀다. 해가 지는 방향을 따라 아르헨티나로 가는 먼 길, 체코에서 비행기는 연료를 채우고 문재인 전 대통령은 묵혀둔 외교 일정을 수행했다.
프라하. ‘프라하의 봄’을 배경으로 쓴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생각한다. “한 번 추락하기 시작한 운명은 바닥에 닿기 전까지 바뀌지 않는다. 그런 운명을 선택한 사람들의 무거움, 혹은 가벼움 그것이 잊혀질 수 있을까.” 딜레마다. 민주화와 침공, 좌절과 희망. 결국 무거움과 가벼움, 다른 두 삶이 함께해야 이겨낼 수 있다는 쿤데라의 철학에 살짝 다가가본다. 안토닌 드보르자크를 생각한다. 그의 교향곡 9번 <신세계>를 2006년 거친 드레이크해협을 건너는 칠레 공군기 안에서 내내 들었다. 남극 세종기지로 가는 가슴 벅찬 여정이었다. 흰 눈이 덮인 남극의 벌판에서 야생의 삶 속으로 달리고픈 욕망이 생겨났다.
또 프라하. 슬로바키아와 분리한 체코공화국의 초대 대통령 바츨라프 하벨을 생각한다. 그는 희곡 작가였다. ‘프라하의 봄’부터 ‘벨벳 혁명’에 이르는 골목골목 정치적 탄압에 맞섰다. 권모술수 없이 도덕적으로 정치할 수 있음을 끈질기게 강조했다. 민주주의의 전통은 19세기 말 제1차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 시대부터 있었다. 대통령 토마시 가리구에 마사리크는 철학자였다. 여성 평등, 외국인 평등을 주장하고 실천했다. 그때 ‘민주주의의 섬’으로 불렸다. 프라하가 자신을 아낄 이유는 너무나 많다. 체코에서 공산주의와 독재는 뿌리내릴 곳이 마땅치 않다.
새벽 프라하에서 나는 움베르토 에코를 쫓아 달린다. 이탈리아인 에코는 <장미의 이름> 도입부에서 프라하의 고서점을 등장시킨다. 주인공 아드소의 수기를 이곳에서 구했다는 능청을 부린다. <프라하의 묘지>에서는 유대인 공동묘지가 음모론의 중요한 근거지가 된다.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랍비들이 이곳에 모여 사악한 음모를 꾸민다는 것, 날조다. 유대인을 적으로 만들어 민중의 증오를 권력에 이용한다. ‘시온 장로 의정서’는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근거로 이용된다. 에코는 이 가짜 문서에 살을 입혔다. 정보가 넘칠수록 음모를 이기기란 쉽지 않다. 진실과 거짓에 대한 통찰력이 필요하다. 천하의 악당이며 위조범 시모니니를 주인공으로 삼은 에코가 이해된다. 날조는 지금도 횡행한다.
프라하는 유대인 문화의 보고다. 히틀러를 피해 중부 유럽의 유대인 유물이 프라하에 모였다. 프라하의 유대인 회당, 시너고그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됐다. 유대인들이 우물에 독약을 풀었다는 누명을 쓸 때 피난처가 됐다. 새벽 유대인 묘지는 문이 굳게 닫혀 있다. 묘지 위에 묘지를 쓴 겹겹의 묘지를 보지는 못했지만, 프라하에 대한 에코의 애정을 어둠 속에서 느껴본다.
프란츠 카프카 역시 유대인이다. 아버지는 먹성이 좋았고 돈을 좇았다. 카프카는 노동자 사고에 대비한 보험회사에 다니며 독재자 같은 아버지를 피해 글을 썼다. <변신>에서 벌레가 된 그레고리는 가족들에게 고립되고, 존재감을 잃어간다. 열악한 노동자의 삶. 어떻게든 일하러 가야 한다는 그레고리. 카프카는 이들이 소외와 무력감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했다. 개개인이 자존감을 갖게 되기를 부조리극으로 열망했다.
프라하 황금소로 22번지는 카프카가 글을 쓰던 누이동생의 집이다. 유럽 30년 전쟁의 정전협정이 맺어졌던 카렐 다리를 지나 그곳까지 달린다. 너무 아름다운 영혼은 일찍 사라진다. 카렐 다리만은 아름답지만 견고하다. 멈춰 서성여본다. 법과 정의는 카프카의 <심판>에서 지금까지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새벽 안개만으로 카프카의 우울증을 눈치챈다.
‘양평이봉주마라톤대회’ 하프달리기는 2시간을 넘겼다. 분위기에 들떠 초반에 내 리듬을 놓쳤다. 뒤처진 사람들끼리 걷다가 뛰다가 서로 파이팅을 외친다. 742명 중 582등이다. 애썼다. 자신을 아껴줄 이유가 한 가지 더 늘었다. 남한강이 도닥여준다. 상류로 단양에 가면 목계장터가 있을 것,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목계장터’) 할 것. 신경림 선생을 그리워할 이유가 더 생겼다. 요즘 들어 자주 가난이 두려웠다. 강물에 흘려보내고 온다.
신동호 시인·전 대통령 연설비서관
*연재 소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58번의 순방으로 40개 나라를 방문했다. 신동호 시인은 연설비서관으로 참모 가운데 유일하게 모든 순방 일정을 보좌했고, 새벽 시간을 활용해 낯선 나라를 달렸다. 그때 보고 느낀 감정은 문 전 대통령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떠나며’ 시리즈에 고스란히 담기기도 했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시인의 달리기에 대한 생각과 함께 묵혀놓았던 순방지의 새벽 이야기들을 4주마다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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