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한번 머릿속으로 들어온 생각이 나사못처럼 파고든다. 지웠다고 여겼는데, 다른 생각으로 이어져 질기게 살아남는다. 부끄러운 기억, 극단적인 생각일수록 더 그렇다. 번뇌, 우울이 되어 삶을 괴롭히거나 편견이 되어 아주 깊이 박혀버린다. 꼼짝하지 않는다. 비워지지 않으니 채워질 수 없다. 떨쳐버리고 싶다. 새로운 생각을 담고 싶다.
큰스님은 비운다. 고정관념을 돌려 빼낸다. 마당을 살그머니 걸어가는 바람 소리만 듣고도 그게 가능하다. 자아를 덜어내 무아에 이른다. 오장육부를 태운다. ‘나’라고 부르던 것들을 재로 만든다. 들숨으로 배를 부풀려 날숨으로 욕망의 찌꺼기를 내보내는 동안 온몸의 에너지를 모두 끌어와 쓴다. 토방에 가만히 앉아 미시와 거시를 넘나든다. 면벽과 명상에 자신이 쓸 기운을 빼앗긴 채 스님의 뇌가 순간 텅, 비로소 쉼의 시간을 갖는다. 이제 뭐든 받아들일 때가 됐다.
도봉산 신선대를 지나서부터 달리기가 쉽지 않다. 진이 빠져 어렵게 발밑에 집중한다. 음악이 풍경과 따로 논다. 리듬이 발걸음과 엇박자를 낸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빼 주머니에 넣었다. 진작에 알던 것들이 다르게 느껴진다. 어느 순간 산길만 아득하고 생각이 사라진다. 오직 완주하겠다는 의지만 마음으로 내려왔다가 이내 허벅지에 머문다. 북한산 대동문으로 가는 오르막길에서 결국 의식이 더는 가지 못하겠다고 호소한다. 허벅지 경련으로 표현한다. 몸의 모든 에너지가 허벅지로 쏠린다. 모자조차 무겁다는 걸 처음 경험한다. 포기할 것인가, 계속 올라갈 것인가, 그마저 떠올릴 기운이 없다. 다리만 저절로 가파른 길을 오른다. 내리막길 자갈들의 미세한 불만을 발바닥만 기억한다. 살아가는 것인가, 살아내는 것인가. 몸은 움직이는데 뇌는 정지돼 있다. 과연 고민할 일이 있기나 했던 것일까.
오월 중순, 산길 45㎞를 달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달리다가 걸었고 끝내 다시 달리지 못하고 걸어 완주했다. ‘불수사도북’ 산악마라톤 대회였다. ‘불수사도북’은 서울의 지붕이라 할 수 있는 불암산과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을 이른다. 산꾼들에게는 일찍부터 다섯 개 산을 하루 동안 오르내리는 일이 명예처럼 여겨졌다. 나 역시 십수 년 전 조심스레 해보고 싶었던 일, 지친 몸과 마음으로 수락산 자락으로 이사 와 주제넘은 목표로 삼아왔던 일이다.
새벽 4시 공릉동 백세문을 출발한다. 불광동 장미공원까지 12시간 내에 도착해야 한다. 어둠 속에서 앞사람의 숨소리를 쫓아 불암산 정상에 도착. 어슴푸레 날이 밝는다. 분위기에 휩쓸려 너무 힘을 뺀 것 같다. 덕릉고개로 가는 하산길에 몸 상태를 조절해본다. 잘 안된다. 착각이 밀려온다. 선두권은 벌써 수락산 정상을 향해 달리고 있을 터, 마치 쫓아갈 수 있을 것처럼 빨리 달리라고 속삭인다. 의정부 회룡역 앞을 혼자 가고 있다. 사패산 호암사에 이르는 아스팔트 길에서는 아예 걷는다. 점점 자신을 제대로 보기 시작하고, 점점 자신조차 잊기 시작한다. 오르고 달리고 걷는 중에 텅, 머리와 마음이 비어가는 것을 절감한다.
뇌는 쉴 틈이 없다. 잠들어 몸이 쉴 때도 뇌는 꿈꾸느라 바쁘다. 아무 짓도 안 하고 멍하니 있는데 뇌는 에너지의 40%를 쓴다. 감각을 유지하고, 생존에 유리한 선택을 위해 긴장을 놓지 않는다. 대부분은 좋은 일이다. 그것이 오히려 자신을 괴롭히기 전까지는 말이다. 장거리달리기는 역설적이게도 뇌를 쉬게 한다. 뇌가 쓰던 힘까지 다리에 몰아주면서 할 수 없이 뇌가 기억의 의무에서 벗어나고 선택의 갈등에서 해방된다. 몸은 최악으로 치닫는데 마음은 단순해진다. 잠시 느긋해진 뇌로 인해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혜안을 덤으로 얻기도 한다. 큰스님의 깨달음에 다가가기는 어렵다. 그래도 달리기는 할 수 있다. 힘이 드는 만큼 무언가 표현할 수 없는 벅참이 느껴질 때 어쩌면 뇌가 몸에게 고맙다,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2021년 6월 어느 새벽, 영국 콘월의 바닷가를 달리고 있다. 대서양 파도로 집을 짓고 정어리로 옷을 기워 입고 사는 곳이다.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처럼 영국이지만 영국이 아닌, 다른 냄새를 풍기며 살고 싶어 하는 곳이다. 자동차들의 절반 가까이가 우리 기아자동차다. 신기하다. 파도가 푸른 듯 투명하다. 그린란드의 찬 바람이 대서양을 따라 섞인 듯하다. 코로나19의 폭풍 속에서도 새벽부터 서프보드를 든 젊은이들이 바닷가로 향한다. 자신들의 총리 보리스 존슨의 한 일주일 내버려둔 것 같은, 무질서한 머리칼에 무심한 이유를 알 것 같다.
휴어스 오두막(Huer’s Hut)을 지난다. 어머니가 매일매일 쓸고 닦은 방바닥을 닮았다. 검색 전에는 이름조차 몰랐다. 사순절 단식 기간에 고기를 먹을 수 없었던 가톨릭 신자들이 콘월에서 잡은 생선을 먹었다. 돌무더기로 만들어진 휴어스 오두막이 어선들의 도착을 알리는 망루였다. 휴어라 알려진 늙은 어부의 눈은 아주 멀리까지 날아간 갈매기를 보았음이 분명하다. 장거리를 견뎌낸 것들만 서사를 남긴다.
G7 정상회담이 이곳에서 열리지 않았다면, 한국이 처음으로 확대회의에 초대되지 않았다면, 평생 갈 수 없었을 곳이다. 하긴 놀랄 일이다. 한국이 서방 선진국, 경제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코로나19의 폭풍 안에서 어찌 방역에 성공하고, 어찌 가파르게 경제를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인지 궁금했을 터다.
국민의 피땀이 한국을 G7으로 불렀다. ‘내가 좀 고생하면 다음 세대는 잘살 수 있을 거야’ 하는 마음. 이따금 행복이 저 멀리 먼저 달아나도 묵묵히 쫓아갔다. 하얀 꽃들이 시들어 아버지의 저승길에 뚝뚝 떨어져도 멈추지 않았다. 대서양 파도 위에서 손바닥이 터지도록 노를 저었던 바이킹들, 허리가 끊어질 듯 팽팽한 돛의 밧줄을 잡았던 넬슨 함대의 선원들, 제국주의에 취해 그동안 잊고 지냈던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한 행동을 G7은 한국을 통해 되새긴다. 팬데믹 속에서 서구의 자유가 파르르 떨었다. 한국 국민은 ‘모두를 위한 자유’를 일깨웠다. 그 경외감으로 G7의 초청이 이뤄졌다.
한국은 아직 달리고 있다. 약 120년 전, 을사늑약으로 나라를 빼앗겼을 때 우리는 세계와 같은 출발선에 서지 못했다. 일제 강점과 비극적인 전쟁을 겪으며 우리의 출발은 한동안 더 늦춰져야 했다. 연습도 못했다. 변변한 운동화, 헤드라이트도 없었다. 그래도 국민은 야간에도 산업화의 봉우리를 향해 내달렸다. 넘어져도 툭툭 털고 일어났다. 민주화의 봉우리도 아주 빠르게 넘어섰다. 서로 밀고 당기고 격려했다. 아이티(IT)와 케이(K)-컬처같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선진화의 봉우리에도 끝내 도달했다. 배워온 대로, 익숙한 대로 그럭저럭 길을 잃지 않고 달려왔다.
격세지감이다. 1907년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려고 네덜란드 헤이그에 간 우리 특사들은 회의장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일제 침략에 대한 부당성을 꺼내놓지 못했다. 미국과 프랑스의 외면이 있었지만 일본과 영일동맹으로 맺어진 영국은 군대까지 동원해 방해했다. 의정부참찬 이상설, 평리원검사 이준, 러시아 한국공사관 참사관 이위종 세 분 특사는 하는 수 없이 비공식 경로로 한국의 입장을 각국 대표에게 보낸다. 일본은 제멋대로 이분들께 종신 징역형을 선고한다. 콘월 바닷가에서 자꾸 이준 열사의 순국이 떠올랐다. 달려온 길을 감각하는 역사의 발바닥 때문이다.
이제 우리 앞에 놓인 봉우리들은 앞서 달려야 할 길이다. 표시도 없는 산길이다. 탄소중립, 평화, 공유, 지속가능 같은 새로운 봉우리들이다. 부지런히 가다보면 갈등에 쓰던 에너지를 두 다리에 보내야 할 시간이 온다. 이념으로 채워졌던 뇌를 텅, 비울 시간이 온다. 새로운 것이 그 자리에 들어온다. 오직 자신에게 익숙한 호흡과 리듬, 두 다리를 믿고 달려야 한다.
북한산 탕춘대 능선을 비틀대며 내려온다. 끝났다 싶을 때, 구기동에서 불광동으로 넘어가는 둘레길이 버티고 있다. 쉬운 길이 때로 가장 어려운 고비가 된다. 잘 닦인 길에서는 긴장을 놓치기 십상이다. 마음은 내달리고 싶은데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처음으로 겪는 먼 길, 힘을 제대로 분배하지 못한 탓이다. 다시는 안 할 거야, 다짐한다. 모퉁이를 두 개 돌면 마지막 내리막 계단일 것 같다. 동네 어른들이 살살 올라오고 계신다.
겨우 완주하고 메달을 받는다. 경쟁자들이 모두 벗이 된다. 고통은 재산이 되고,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이 다시 자신을 주장한다. 나이가 들어도 생각이 바뀔 수 있다. 물론 오랜 친구들은 당혹스럽겠지만 말이다. 나도 나 자신을 잘 모르겠다. 어디까지 달리게 될지 가늠하지 못하겠다. 그새, 다음엔 더 잘 달리고 싶어진다.
신동호 시인·전 대통령 연설비서관
*연재 소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58번의 순방으로 40개 나라를 방문했다. 신동호 시인은 연설비서관으로 참모 가운데 유일하게 모든 순방 일정을 보좌했고, 새벽 시간을 활용해 낯선 나라를 달렸다. 그때 보고 느낀 감정은 문 전 대통령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떠나며’ 시리즈에 고스란히 담기기도 했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시인의 달리기에 대한 생각과 함께 묵혀놓았던 순방지의 새벽 이야기들을 4주마다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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