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만화는 불온했고, 그들은 모든 만화를 불온하다고 생각했다. 1909년 6월2일 창간한 근대신문 에 실린 이도영의 만화는 풍자와 계몽이라는 시대정신을 담았다. 독자는 통쾌했다. 6월26일, 신문 1면의 만화를 기대한 독자들은 깜짝 놀랐다. 만화가 있어야 할 자리에 시커멓게 먹칠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만화의 공식 역사가 시작된 지 불과 한 달이 지나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만화는 심의에 난도질당했다. 해방이 되어도 형편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의 작가 김성환은 1958년 1월23일치 만화에서 이승만 정권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박정희 정권에서 윤영옥은 1972년 6월19일치 에서 정부의 농업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쫓겨나야 했다. 1980년대 신군부는 사전 검열을 통해 만화의 행간에 숨은 내용까지 걸러냈다. 예를 들어 1979년 12월26일치 은 송년회를 다룬 네칸만화였다. 이 만화에서 수정 지시를 받은 내용은 트리 맨 위에 별 2개가 있고 그 밑에 별 4개가 있는 칸과 안주로 문어가 그려진 칸이었다. 앞의 내용은 소장인 전두환이 정승화 참모총장을 몰아낸 12·12 쿠데타를 암시한 것이고, 문어는 ‘전두환’을 그린 것이다. 풍자와 계몽의 매체인 시사만화는 오랜 세월 권력과 불화했다.
1961년 5월17일 소장 박정희는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했다. 기존에 있던 만화작가 단체를 강제로 해체한 뒤, 그해 12월 만화작가와 출판사 등을 모아 한국아동만화자율회를 결성해 사전 심의를 시작했다. 여기서 통과한 만화만 심의필증을 받아 인쇄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1967년 만화는 6대 사회악의 하나로 지목당했다. 1968년 8월31일 정부는 한국아동만화윤리위원회를 조직해 9월9일부터 심의를 시작했다. 윤리위원회는 한국아동만화윤리강령, 한국아동만화실천요강 등을 법으로 제정했다. 이 법에 따라 무제한으로 펴낼 수 있던 만화가 각 권 130쪽 이상 상·중·하 3권으로 규제됐다. 수십 권의 시리즈를 이어나가며 장편화할 수 있던 1960년대의 상황에 비해 1970년대 만화는 불과 390쪽에서 모든 이야기를 마쳐야 하는 기형적 구조를 갖게 되었다. 작가를 답답하게 한 것은 분량 제약만이 아니었다. 성적인 표현, 폭력적이거나 잔인한 표현, 범죄행위 묘사, 저속한 대사나 유행어, 아동이나 청소년 만화에 걸맞지 않은 소재나 비도덕적·반인륜적인 것, 맞춤법까지 심의 기준은 광범위했고 자의적이었다. 만화가들은 심의에 걸리지 않을 만화만 그릴 수밖에 없었다.
1972년 2월1일 국민학교 6학년이던 정아무개군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벌어졌다. 정부와 언론은 대대적인 마녀사냥에 나섰다. 사건이 일어난 다음날인 2월2일치 모든 신문이 불량만화와 저질만화의 발본색원을 주문했다. 정부는 만화작가 69명을 고발하고, 58개 만화출판사 중 절반가량의 등록을 취소했으며, 만화 2만 권을 압수했고, 만화방 업주 70여 명을 즉심에 회부했다. 유사한 일은 계속 반복됐다. 1996년 정부는 청소년 보호를 위한 유해매체물 규제 등에 관한 법률안을 제정하려 했다. ‘청소년 보호’라는 대의를 내세워 창작의 자유를 가로막으려 했다. 이후 이 법은 청소년보호법으로 이름을 바꿔 통과됐다. 1997년 5월 검찰은 스포츠신문 연재 작가를 음란성·폭력성을 들어 기소했고, 1998년 2월 이현세를 미성년자보호법 위반으로 기소하기도 했다.
1968년부터 그들은 만화가 불온하다고 판단해 지우고, 불태우고, 숨겨놓으려 했다. 모두 어린이와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어린이와 청소년은 세상에서 가장 순결한 상태여야 한다. 그런데 알다시피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21세기 들어 또 청소년을 보호한다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23개 웹툰을 유해매체물로 지정한다는 통보를 보냈다. 지겨워! 죽지도 않고 또 왔네! 모든 걸 만화 탓으로 돌리는 당신들이 진짜 문제라는 걸, 우리는 똑똑히 알고 있다. 그러니 이제 그만해라!
박인하 만화평론가·청강문화산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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