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두 타이구리와 위린시제 등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인증샷 여행객’들의 성지라 매일매일이 ‘성수기’다. 언젠가 본 <내셔널지오그래픽> 잡지는 청두를 ‘인공위성으로 관찰한 중국 도시 중 유일하게 24시간 내내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라고 소개했다. 불이 꺼지지 않는 것은 밤새도록 사람들이 바글거리며 돌아다닌다는 뜻이다.
타이구리에는 중국 최고의 명품 매장과 ‘미슐랭’ 고급 식당이 밀집했고, 중국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서점으로 유명한 팡쒀(方所)가 입점했다. 주말이면 서점에 서 있을 자리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독서객과 여행객, 쇼핑객이 몰려 극심한 혼잡이 빚어진다. 하필 방문한 날이 주말이라 책 구경보다는 사람 구경만 하고 올지도 모른다는 염려를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큰 팡쒀 서점에 사람이 보이질 않는다. 썰렁하다 못해 ‘혹시 망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서점 안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갈 때마다 앉을 자리를 찾기 힘들었던 서점 내부 카페도 죄다 빈자리다. 여기저기서 인증샷을 찍어대는 관광객도 드물었다.
서점을 나와 타이구리 한복판을 둘러봤지만 역시나 한산했다. 한창 점심시간이었지만 식당가에는 빈자리가 가득했고, 명품 매장에도 손님이 거의 없었다. <신화사>와 <인민일보> 등 관방매체는 2023년 초 코로나19 방역이 전면 해제된 뒤 중국 경제가 점차 되살아난다고 쉴 새 없이 보도했지만, 연말이 가까워지는 타이구리에서 목격한 모습은 도처에 널린 ‘죽은 경제’의 흔적이었다.
청두의 또 다른 핫한 거리, 위린시제 근처에서 현지에 사는 친구들을 만났다. 위린시제는 최근 몇 년 사이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감각적인 술집과 훠궈 식당으로 유명해지며 전국 각지에서 ‘인증샷 여행객’이 구름떼처럼 몰려드는 곳이다. 타이구리보다는 붐볐지만 현지 친구들의 말에 따르면 “주말에 걸어다닐 수 있을 정도면 한산한 편”이라고 했다. 평소에는 대기 순번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인기 짱’인 유명 훠궈 식당도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마라훠궈가 펄펄 끓어오르자, 친구들 입에서도 펄펄 끓어오르는 분노가 튀어나왔다.
“주변 사람 중 절반 이상이 실직 상태거나 곧 잘릴 예정이야. 지금 중국 경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아? 언론에서 떠드는 말은 다 거짓이야. 당장 길거리만 돌아다녀도 눈에 보이잖아. 청두가 베이징이나 상하이에 비해 물가나 집값 등 모든 면에서 싸고 살기 좋은 도시라 늘 관광객으로 붐볐거든. 판다 기지도 있어서 옛날에는 우스갯소리로 길거리에서 관광객에게 판다 인형이나 관련 상품만 팔아도 굶어 죽지는 않을 거라고 했어. 근데 요즘 길거리에는 실업자와 구직자가 판다 인형보다 더 많이 쏟아져나와. 나도 30대 중반이라 언제 잘릴지 몰라. 회사에서는 특출한 실적이나 기술 보유자가 아니면 35살 이상을 일순위로 정리해고 대상자로 삼거든. 요즘 같은 불경기에 그 나이에 잘리면 재취업도 힘들어. 그러니까 다들 택배기사나 음식배달원을 하는 거라고. 그게 가장 취업하기 쉽고 적어도 당장 굶어 죽을 염려는 없으니까. 경제가 이렇게 죽을 쑤는데도 그놈의 이념 타령이나 하고 제로코로나 한다고 지방정부 재정을 바닥내지 않나. 올 3월에 새로 구성된 정치국 상무위원들 면면을 보라고. 어디 제대로 된 경제 전문가가 있어? 다 그놈의…!”
광둥 지역에서 프랜차이즈 음식점 사업을 하던 중국 친구가 ‘사업차’ 베이징에 왔다며 만나자고 연락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친구는 모든 자산과 노력을 다 쏟아부은 덕분에 사업을 제법 성공적으로 일궈냈다. 2020년 초 코로나19만 터지지 않았어도 지금쯤 전국 각지로 사업을 확장해 ‘큰 사장님’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방역 3년 동안 사업이 쫄딱 망한 것은 물론이고 산더미 같은 빚도 한 아름 떠안고 길거리에 나앉을 처지가 됐다.
그동안 ‘풍문으로만’ 소식을 전해 듣던 이 친구가 얼마 전 난데없이 베이징에 나타나 다시 ‘큰 사업’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망했다는 말은 까마득한 옛날 일이었다는 듯이 친구는 “이번 일만 잘되면 다시 크게 재기할 밑천이 생길 것 같다”고 했다.
작은 만두가게에서 늦은 점심으로 만두를 먹으며 친구는 한참 신나서 ‘새 사업’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아무리 듣고 또 들어도 좀체 이해되지 않는 말뿐이었다. 새 사업은 이른바 ‘인맥 장사’였다. 자본금은 한 푼도 필요 없고 오직 정·관계에 ‘통하는’ 인맥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친구는 자신이 ‘관리하는’ 정·관계 인맥이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한참 동안 장황하게 떠벌렸다. 나중에는 듣다가 지쳐, 단도직입으로 “사업의 핵심이 뭐냐”고 물었다.
그제야 친구는 우물거리던 만두를 꿀꺽 삼킨 뒤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입을 떼었다. “매관매직 사업이야. 내가 지방에 영향력 있는 관료를 많이 알거든. 그 사람들을 통해 필요한 사람들에게 관직을 사주거나 더 높은 직위로 승진시켜주는 거지. 공무원 공채 시험도 이들을 통하면 뒷문으로 들어갈 방법이 생겨. 지금 나에게 승진을 부탁한 지방 관료가 있어. 베이징에 있는 내 관시(關係·인맥)를 통해 그를 승진시켜주면 후한 보상을 한다고 약속했거든. 혹시 같이할 생각 없니?”
중국 소셜미디어에서 한 경제 전문 블로거는 코로나19 이후 경제 불황이 심화하고 실업자가 넘쳐나면서 사회 곳곳에 각종 사기꾼이 다시 판치고 있다고 했다. 갈수록 지능화하는 보이스피싱 등 금융사기 범죄가 예년보다 대폭 늘어나고,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으로 몰려들자 이를 이용해 ‘공무원이 되게 해주겠다’는 사기 행위도 증가한다는 것이다.
한때 잘나가는 사업가이던 그 친구도 이제 거의 사기꾼으로 돌변해 있었다. “그러다 언젠가 큰일 난다”며 강력하게 ‘새 사업’을 접으라고 만류했지만 친구는 “이미 벼랑 끝까지 갔다”는 묘한 말을 남기고 서둘러 만두가게를 나와 작별을 고했다. 베이징에서 만나야 할 ‘고관’이 아직 많아서 시간이 없다고 했다.
알리바바그룹 베이징 지사가 있는 차오양구 왕징 일대에서는 11월 이후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알리바바그룹이 창사 이래 가장 큰 규모의 정리해고를 할 것이라는 소문이었다. 대략 2만5천 명 이상이 ‘잘릴 것’이라고 했다. 이 소문은 곧바로 샤오훙수 등 중국 내 유명 소셜미디어를 타고 광범위하게 퍼졌고, 인터넷에서는 중국 경기 침체에 대한 민심이 들끓기 시작했다.
알리바바그룹은 즉각 이 소문을 부정하며 ‘허위 사실’이라고 했다. 하지만 왕징 일대의 부동산중개 업체에는 11월 이후 인근 아파트의 월세 물건이 쏟아졌다. ‘소문에 따르면’ 알리바바의 대량 해고로 인근 아파트에 세 들어 살던 직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월세 물건이 쏟아졌다는 것이다. 그 여파인지는 몰라도 알리바바 인근 가장 큰 쇼핑몰의 식당도 최근 들어 절반 정도가 문을 닫았다. 소문의 ‘진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2023년 4월 국가통계국은 16~24살 청년 실업률이 20.4%라고 발표했다. 유명 경제 전문 블로거인 우샤오보는 이 통계를 인용하며 6월 소셜미디어 매체에 “현재 중국 경제가 당면한 가장 큰 난제는 취업”이며 이렇게 취업 문제가 심각해진 가장 중요한 이유는 “유례없는 경제 불황으로 민영기업들이 집단으로 투자 의지를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구직 인구의 상당 부분을 흡수해온 제조업과 인터넷 업계, 부동산 업계가 깊은 침체에 빠지면서 더는 새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글을 발표한 뒤 그의 소셜미디어 계정은 곧바로 “관련 법률 위반으로 이 계정을 금언(禁言) 상태에 처한다”며 폐쇄됐다. 국가통계국도 이후 더 이상 청년 실업률 통계를 발표하지 않는다.
‘사기꾼들의 도시’가 된 베이징의 언론매체에서는 ‘경제 침체’라는 용어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11월2일 <신화사>를 비롯해 모든 관방매체는 ‘2023년 3분기 거시경제정책과 재정정책 분석 보고’ 관련해 이구동성으로 “1~3분기 중국 경제는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한 경기 쇠퇴 압력을 견뎌냈고, 전반적으로 지속적인 회복과 상승세를 보여왔다. 중국의 경제 회복과 활력은 불확실한 세계경제에 귀중한 확실성을 제공했고 전세계 비즈니스 업계에 폭넓은 기회를 제공했다”고 보도했다. 11월28일치 보도에서는 경제전문가들의 희망적인 분석을 통해 “우리나라 경제는 현재, 경제 활력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세 요소인 수출과 투자, 소비가 모두 양호한 회복과 상승세를 보인다”고 대대적으로 알렸다.
반면 유명 외신들은 2023년 상반기 이후 끊임없이 ‘중국 경제 위기설’을 보도한다. 경제잡지 <이코노미스트>는 2023년 5월 발행한 글에서 ‘중국 경제의 피크 시대는 갔다’며 다양한 시각에서 현재 중국 경제가 처한 어려움을 분석했다. 중국에서도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중국 경제 침체에 대한 불안이 확산하고 있다.
최근 샤오훙수 등 젊은층이 많이 이용하는 소셜미디어에서는 ‘특공대식 저축법’ 등이 큰 인기를 끌었다. 경기가 장기 불황으로 빠져들 위험에 직면하자, 어떻게든 소비를 줄이고 최대한 이자가 높은 은행을 찾아 저축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다. 이자가 높은 전국 각지의 은행을 특공대식으로 찾아다니며 모집 기한 내에 적금 들기에 성공해야 한다는 뜻이다. 시간과 돈을 아끼기 위해 새벽부터 저녁까지 여기저기 부지런히 발 도장을 찍고 돌아다니는 일명 ‘특공대식 여행’이 유행하는 것도 경제 불황의 한 단면이다. 사람들은 미래가 불안해서 더는 돈을 펑펑 쓸 여유가 없다.
11월1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을 만난 시진핑 주석은 그동안의 으르렁거리던 표정 대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가 왜 샌프란시스코까지 날아가서 미국 대통령과 손잡고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는지는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다’.
베이징·청두(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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