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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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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에 동의했지만…

블링컨 국무장관 방중해 시진핑 주석 만나, 미-중 5년 만의 35분 만남… 양국 입장 차이 확인, 대화는 시작돼도 갈등 여전해
등록 2023-06-23 22:38 수정 2023-06-24 18:02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2023년 6월18일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친강 외교부장과 회담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REUTERS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2023년 6월18일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친강 외교부장과 회담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REUTERS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의 중국 방문(2023년 6월18~19일)에 대해 미-중 양쪽 모두 “솔직하고 깊이 있는 건설적 소통”이 이뤄졌다고 발표했다. 미국도, 중국도, 하고 싶은 말 다 했다는 뜻이다. 결과는 어떤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블링컨 장관을 만났으니 예우는 충분했다. 양국 고위급 대화를 이어가기로 합의한 것도 의미를 둘 만하다. 하지만 미국의 강력한 요구에도 중국은 우발 충돌을 피하기 위한 군사 당국 간 소통 채널 마련에는 확답을 주지 않았다. 5년여 만에 이뤄진 미 국무장관의 방중을 통해 미-중 양국은 서로 상대방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에 동의’한 것으로 보인다. 대화는 이어질 테지만, 갈등과 반목도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소통 채널 마련’ 강조, 성과 없을 때 하는 말

“미-중 관계는 불안정한 상태였다. 양쪽 모두 이를 안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서로 오해와 오판을 막고, 경쟁이 갈등으로 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소통 채널 마련이 중요하다.”

블링컨 장관은 6월19일 오후 시 주석 면담을 마친 뒤 베이징 주재 미국대사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외교가에선 통상 별다른 성과가 없을 때 ‘소통 채널 마련’을 강조한다. 블링컨 장관은 미 공영라디오 <엔피아르>(NPR)와 한 인터뷰에서도 “고위급에서 지속적으로 직접 소통하는 것이야말로 양국 관계를 책임 있게 관리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양국 간 극심한 차이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경쟁이 충돌로 나아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블링컨 장관은 중국 쪽과 “우크라이나 전쟁과 북한 도발 등 국제적 문제를 논의하고, 대만해협과 동·남중국해 관련 중국의 도발적 행동에 대한 미국과 주변국의 우려도 전달했다”고 말했다. 또 “미국과 국제사회가 신장, 티베트, 홍콩 등과 관련한 중국의 인권침해에 깊이 우려한다는 점도 밝혔다”고 했다. 이어 △기후변화 △거시경제적 안정 △공중보건 △식량안보 등의 분야를 양국이 협력할 수 있는 ‘공동의 이익’으로 규정하고, 이를 위한 후속 회담이 진행될 것임을 예고했다. 블링컨 장관은 친강 중국 외교부장을 미국으로 초청했고, 친 부장은 “서로 적절한 시점”에 방문하겠다고 화답했다. 회견 내용을 종합하면, 핵심은 두 가지로 모아진다.

첫째, 대만 문제다. 블링컨 장관은 중국 쪽에 이른바 ‘하나의 중국’ 원칙이 유지될 것이며, 미국은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 쪽이 미국 정책에 변화가 없음을 이해하는 게 차이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블링컨 장관은 “최근 몇 년 새 중국이 무모한 행태를 보이면서 대만해협 문제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대만 문제에 대한 미-중 차이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이며, 양쪽 모두 현상에 변경을 가할 수 있는 일방적인 행동을 취해선 안 된다는 점을 중국 쪽에 반복적으로 강조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쪽의 우려를 세계 각국이 공유한다는 점도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블링컨 장관은 이렇게 강조했다.

미국이 원하는 ‘위험 완화’ ‘다변화’

“세계 상업 컨테이너 물동량의 약 50%가 매일 대만해협을 지난다. 또 세계 고사양 반도체의 70% 이상이 대만에서 생산된다. 대만해협 위기로 해상교통이나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빚어진다면, 세계경제에 치명적 타격을 줄 것이다. 대만해협의 현상을 변경시킬 수 있는 행동에 세계 각국의 우려가 갈수록 커지는 이유다. 이것도 중국 쪽에 자세히 설명했다. 중국 쪽과 대만에 대해 분명하고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중국 쪽과 매우 직접적이고, 자세하고,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 적어도 양쪽 모두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더 분명하게 이해하게 됐다.”

둘째, 2023년 5월 일본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전후로 미국 쪽이 ‘디커플링’(공급망 분리) 대신 부쩍 강조하는 이른바 ‘디리스킹’(위험 완화)이다. 특정국(중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에 따른 위험을 줄이기 위해 공급망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뜻을 지닌 이 용어는, 3월30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처음 사용했다. 블링컨 장관은 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디리스킹’과 ‘디커플링’ 사이엔 근본적 차이가 있다. 2022년 미-중 교역액은 약 7천억달러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건강하고 강력한 경제관계는 미-중 양쪽 모두에 도움이 된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최근 의회에서 증언한 것처럼, ‘중국과 디커플링하고 모든 무역과 투자를 끊는다면 미국에 재난이 될 것’이다. 이번 방문길에 미국이 자국을 경제적으로 봉쇄하려 한다는 중국 쪽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으려 노력했다. 미국은 중국을 경제적으로 봉쇄하려 하지 않는다.

미국은 ‘디리스킹’과 ‘디버시파잉’(다변화)을 원한다. 이는 미국의 자체 능력을 위해, 또 안전하고 회복력 있는 공급망 확보를 위해 투자하겠다는 것을 뜻한다. 미국의 노동자와 기업이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공정한 시장을 추구함을 뜻한다. 미국에 해를 끼칠 수 있는 무역 관행에 맞서는 것을 뜻한다. 상대국에 넘어갔을 때 미국에 위해를 가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 핵심 첨단기술 보호를 뜻하기도 한다. 중국 쪽에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해 필요한 조치는 지속되리란 점을 분명히 전달했다.”

외교 사령탑 왕이, ‘대중국 정책 변경’ 정면으로 요구

사실상 기존 대중국 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중국 쪽 반응은 어땠을까? 블링컨 장관은 베이징 도착 당일인 6월18일 업무만찬을 포함해 친강 부장과 8시간가량 마라톤 협의에 나섰다. 이 자리에서 친 부장은 “현재 중-미 관계는 수교 이후 최악이며, 이는 양국 국민의 근본 이익과 국제사회의 공통된 기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며 “미국이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대중 인식을 바탕으로 양국 관계의 정치적 기초를 유지하고, 예상치 못한 우발적 상황을 냉정하고 전문적이며 합리적으로 처리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이 2023년 6월19일 오후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블링컨 장관 일행과 면담하고 있다. REUTERS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이 2023년 6월19일 오후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블링컨 장관 일행과 면담하고 있다. REUTERS

블링컨 장관은 이튿날 오전 중국 외교의 ‘사령탑’ 격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중앙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 주임과 3시간30분 남짓 만났다. <신화통신>은 “왕 위원은 미국 쪽에 ‘중국 위협론’ 부풀리기를 즉각 중단하고, 중국에 대한 불법적이고 일방적인 제재를 철회하고, 중국의 과학기술 발전을 압박하기를 멈추고, 중국 내정에 함부로 간섭하는 행위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고 전했다. 미국의 대중국 정책 변경을 정면으로 요구한 셈이다. 특히 왕 위원은 대만 문제와 관련해 “국가의 통일을 추구하는 것은 중국의 핵심 이익 중의 핵심이며, 모든 중국인의 운명이자 중국 공산당의 역사적 사명이다. 이 문제에 대해 중국이 타협하고 양보할 여지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같은 날 오후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블링컨 장관의 35분에 걸친 만남이 성사됐다. 미 국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해 외교부장-외교담당 정치국 위원-국가주석을 모두 만난 것은 5년 만에 처음이다. 5년 전과 이번에 시 주석이 내놓은 발언을 비교해보면, 달라진 미-중 관계의 실체를 엿볼 수 있다.

“중국과 미국이 외교관계를 수립한 뒤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양국 관계의 발전 과정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서로 상대의 전략적 의도를 정확히 바라보고, 각자의 핵심 이익과 중대 우려 사항을 배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중국은 미국과 함께 서로 존중하고, 평등하게 대우하며, 호혜 상생하는 협력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 양국 고위층 간 대화와 소통을 더욱 강화하고, 각 분야에서 협력과 교류를 확대하고, 양국 관계의 기초를 더욱 다지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미국 쪽이 대만 문제와 경제·무역 마찰 등 민감한 문제를 신중하고 적절하게 처리해, 양국 관계가 크게 교란되는 것을 방지하기를 희망한다. 양국은 주요 국제·지역 문제에 대한 소통과 협력을 강화하고, 함께 세계 평화의 건설자이자 국제 질서의 수호자가 돼야 한다.”

시 주석, ‘미국과 대등한 중국’ 새삼 각인

시진핑 주석은 2018년 6월14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만났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직후 한국을 거쳐 중국을 찾은 폼페이오 장관을 중국 쪽은 각별히 예우했다. 미-중 무역갈등이 전면전으로 번지기 직전이던 당시, 폼페이오 장관도 시 주석 면담에 앞서 왕이 외교부장과 양제츠 정치국 위원 겸 중앙외사공작위 주임을 만났다. 중국 외교부 자료를 종합하면, 시 주석은 6월19일 오후 블링컨 장관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미국과 대등한 중국’이란 인식을 새삼 각인시켰다.

“세계는 발전하고 있고, 시대는 변화하고 있다. 세계는 중·미 관계의 총체적 안정을 필요로 한다. 중·미 양국이 적절히 공존할 수 있느냐에 인류의 앞날과 운명이 걸려 있다. 지구는 중·미 양국이 각자 발전하고 또 공동으로 번영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넓다. 중국 인민은 미국인과 마찬가지로 자존감과 자신감이 강하다. 중·미 양국 인민 모두 더 나은 삶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 중국은 미국의 이익을 존중하며, 미국에 도전하거나 미국을 대체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국도 중국을 존중해야 하며, 중국의 정당한 권익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 어느 쪽도 상대방을 자기 뜻대로 만들려 해선 안 되며, 상대방의 정당한 발전 권리를 빼앗아서도 안 된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양자관계 미-중 관계를 들여다보는 칼럼입니다. 별은 미국 성조기의 별과 중국 오성홍기의 별을 의미합니다. 부정기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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