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베팅’ 발언으로 한-중 관계가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본격적으로 대화를 재개할 모양새다. 그럼에도 전세계를 무대로 한 미-중의 극한 대결은 지속된다. 외교·안보를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할 만큼 한가한 시절이 아니다.
“현재 중-한 관계는 많은 어려움에 부딪혀 있다. 솔직히 그 책임은 중국 쪽에 있지 않다. 중국은 한국의 핵심 관심 사항을 시종일관 존중하고, 한국은 중국의 핵심 관심 사항을 존중해야 한다. 대만 문제는 중국 핵심 이익 중의 핵심이고, 중-한 관계의 기초와 관계돼 있다. 우리는 한국 쪽이 대만 문제 등에서 중국의 핵심 우려를 확실히 존중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싱하이밍 대사는 2023년 6월8일 오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서울 성북구 중국대사관저로 초청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날 회동에서 싱 대사는 한-중 관계와 관련해 세 가지 논점을 강조했다. 첫손에 꼽은 건, 중국 쪽이 “떼어낼 수 없는 중국의 일부분”이라고 표현하는 대만 문제였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결국 이것(대만해협 긴장 고조)은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시도 때문에 벌어진 일이고,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절대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 국빈 방문을 앞둔 2023년 4월19일 <로이터> 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어 “대만 문제는 단순히 중국과 대만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북한 간의 문제처럼 역내를 넘어선 전세계적 문제로 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중국은 대만 문제를 ‘내정’으로 규정한다. 윤 대통령은 이를 ‘전세계적 문제’라고 표현했다. 미국을 비롯한 주변 및 관련 당사국의 ‘개입’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니, 중국으로선 ‘내정간섭’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쑨웨이둥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이튿날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를 불러 항의(초치)하며 “엄중한 우려와 강한 불만”을 표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쑨 부부장은 “세계에는 오직 하나의 중국만 있고, 대만은 중국 영토의 분할할 수 없는 일부분이다. 대만 문제는 순전히 중국의 내정이고 중국의 핵심 이익 중 핵심이다. 대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중국 자신의 일로 어떤 외부 세력의 개입이나 간섭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가 대만 문제를 언급할 때마다 사용하는 틀에 박힌 표현이다.
“최근 한국이 대중국 무역적자 확대 문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경제 상황이 좋지 않고 반도체 경기가 하강 국면에 들어서는 등 객관적인 원인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각에서 ‘탈중국화’ 추진을 시도한 것이 더욱 주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양국은 산업망과 공급망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고, 이미 ‘네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네가 있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경제 구조를 형성했다.”
싱 대사의 두 번째 논점은 ‘경제’였다. 안치영 인천대 중국학술원장은 “한-중 관계의 현 상황에 대해 중국 쪽이 어떻게 인식하는지 분명히 드러낸 발언으로 볼 수 있다”고 짚었다. 안 원장은 “이를테면 무역적자 문제를 얘기하면서 세계적 경제 상황도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탈중국화’에 원인이 있다고 본다고 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중국 쪽이 ‘한국이 탈중국화를 시도한다’고 인식하고 있음을 뜻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인식이 심화하면, 양국 관계도 더욱 악화할 수밖에 없다.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현재 국제 정세가 복잡하게 변하고 있다. 중-한 관계는 외부 요소의 도전에도 직면해 있다. 우리는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를 처리할 때 외부 요소의 방해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미국이 권력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상황 속에, 일각에서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베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분명히 잘못된 판단이자, 역사의 흐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싱 대사의 마지막 논점은 ‘외부 요소’, 곧 미국 문제였다. 문제의 ‘베팅’이란 표현도 여기서 등장한다. 중국 쪽은 미-중 대결 심화 속에 어느 한쪽 편을 드는 것을 ‘베팅’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맥락은 조금 다르지만, 친강 외교부장도 주미 중국대사 시절인 2021년 8월31일 미국 미중관계전국위원회 행사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미국 일각에선, 중국이 ‘미국이 패배하는 쪽에 베팅하고 있다’고 여긴다. 또 중국의 발전 목표가 ‘미국에 도전하고 또 미국을 대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는 중국의 전략적 의도에 대한 심각한 오판이다. (…) 중국은 미국을 추월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적이 없고, 미국을 대신해 세계를 제패하려는 야망도 없고, 미국이 패배하는 쪽에 베팅한 적도 없다. 미국이 다른 나라를 억압하거나 이용하는 대신 스스로의 역량으로 번영과 강대함을 유지하고, 세계 평화와 안정을 위해 더 많은 기여를 할 것으로 낙관한다.”
이어 정부와 여당 쪽이 ‘도발적 언행’이자 ‘내정간섭’이라고 비판하는 발언이 등장한다. 싱 대사는 이렇게 말했다. “30년 전 중국을 부정적으로 바라본 이들이 ‘중국 붕괴론’을 주장했다. 그러나 30년이 흐른 지금 중국은 탄탄한 성과를 통해 잘못된 주장임을 증명했다. 단언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이란 점이다.”
싱 대사의 ‘베팅’ 발언이 한국을 특정해서 한 것인지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윤석열 정부의 ‘미국 일변도 정책’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과 경고란 지적도 있지만, 중국 외교부 쪽의 일반적 인식을 언급한 것이란 분석도 없지 않다. ‘베팅’과 ‘후회’란 비외교적 표현을 두고서도, “불장난하면 결국 불에 타죽는다”는 식의 거친 표현이 관용구로 굳어진 중국 외교의 특성일 뿐이란 시각도 있다.
싱 대사의 발언 이후 한-중 양국 외교부가 각각 상대국 대사를 초치했다. 보수 성향의 양국 매체가 서로를 비난하며 혐중-혐한 감정을 부추긴다. 여당 쪽은 이재명 대표의 무대응을 비판하며, 싱 대사를 ‘외교적 기피인물’(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규정해 추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급기야 6월13일 열린 국무회의에선 윤 대통령이 직접 “부적절한 처신에 국민들이 불쾌해한다”며 싱 대사를 비판하는 대열에 합류했다. ‘문재인 정부=친북=친중’과 ‘윤석열 정부=반북=반중’ 구도가 또렷해졌다. ‘집안싸움’이 본격화한 모양새다.
나라 밖 상황은 전혀 다르다. 미 국무부는 6월14일 “토니 블링컨 장관이 오는 18일과 19일 이틀간 중국 베이징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2023년 2월 초 미국 상공에 나타난 중국의 ‘정찰 풍선’을 미군 전투기가 격추한 사건 이후 무기한 연기됐던 블링컨 장관의 방중은 미-중 고위급 대화 재개의 신호탄이다. 미 국무부 쪽은 블링컨 장관이 중국 고위 관계자와 만나 △양국 관계의 책임 있는 관리를 위한 소통 채널 유지의 중요성 △지역과 세계 차원의 양국 공통 관심사 △공통된 글로벌 과제에 대한 잠재적 협력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국 국기는 ‘성조기’다. 50개 주를 상징하는 별 50개가 새겨져 있다. 중국 국기는 ‘오성홍기’다. 큰 별 하나는 중국 공산당을, 작은 별 네 개는 각각 △노동자 △농민 △소자본가 △민족자본가를 상징한다. 그러니 미-중이 전세계를 무대로 벌이는 치열한 대결과 불꽃 튀는 경쟁은 ‘별들의 전쟁’으로 부를 만하다. 최근 사례 두 가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란 군당국은 2023년 6월2일 페르시아만 연안 국가들과 해군 협력을 대폭 강화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협력 대상국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바레인, 이라크 등 중동 국가와 함께 인도와 파키스탄까지 이름을 올렸다. 앞서 아랍에미리트는 5월31일 페르시아만 연안에서 원유 수송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 주도로 38개국이 참여해 꾸려진 연합해상군(CMF)에서 탈퇴한다고 발표했다. 이란 <파르스> 통신은 샤흐람 이라니 해군참모총장의 말을 따 “역내 국가 간 시너지와 협력을 통해 지역 안보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다는 점을 관련 각국이 마침내 인식했다”고 강조했다.
이슬람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과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숙명의 앙숙이다. 두 나라는 2016년 1월 초 사우디 쪽이 반정부 시아파 성직자를 테러 혐의로 처형하고, 이에 분노한 이란 시위대가 자국 주재 사우디 대사관을 습격하면서 국교를 끊었다. 두 나라는 오랜 물밑 협상 끝에 2023년 3월 국교 정상화에 합의했는데, 이를 최종 중재한 것이 바로 중국이었다. 당시 미국에선 “미국이 대중국 경쟁에 집중하기 위해 중동을 비운 새, 중국이 빈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우려 섞인 분석이 나왔다.
중국의 중재로 손을 맞잡은 이란과 사우디가 불과 석 달여 만에 주변국까지 묶어 ‘미국 없는 군사협력’을 추진하는 것은 여러모로 상징적이다. 이란 쪽 발표가 나온 직후인 6월6~8일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사우디를 방문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회담하고 걸프협력회의(GCC)에 참석한 것을 두고도 ‘위기관리’ 성격이 짙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3연임 확정 뒤인 2022년 12월 초 사우디를 국빈 방문해 양국 정상회담과 함께 제1회 중국-아랍 정상회외와 중국-GCC 회의 등의 일정을 소화하며, 나흘에 걸쳐 아랍권 국가 17개국과 정상회담을 했다.
미국 쪽은 2023년 5월 일본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강조했던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대한 공동 대응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6월9일 영국·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뉴질랜드 등 영어권 5개국 간 정보공유 동맹인 ‘파이브 아이즈’에 일본을 묶어 ‘무역 관련 경제적 강압과 비시장 정책과 관행에 반대하는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선언문엔 ‘중국’이 명시적으로 등장하지 않지만, 그간 미국이 비판해온 중국 쪽 ‘국가 주도 경제정책’의 핵심이 낱낱이 열거됐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경제적 강압과 비시장적 정책 및 관행을 파악하고, 방지하고, 억제하고, 해결하기 위해 모든 이해당사국과 함께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고 밝혔다. 중국에 추가적인 경제제재 조치가 있을 것임을 내비친 셈이다.
미 국무장관의 방중은 양국 간 ‘무역전쟁’ 발발 초기인 2018년 10월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장관 이후 4년8개월 만이다. 블링컨 장관의 방중에 거는 기대는 미국 내에서도 높지 않아 보인다. 회담 의제로 ‘소통 채널 유지’를 첫손에 꼽은 것도 사전 논의에서 별다른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했음을 암시한다.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은 2023년 6월14일 전화 브리핑에서 “치열한 경쟁은 치열한 외교를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별들의 전쟁’ 한가운데 선 윤석열 정부도 귀담아들을 만하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미-중 별들의 전쟁'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양자관계로 불리는 미-중 관계를 들여다보는 칼럼입니다. 별은 미국 성조기의 별과 중국 오성홍기의 별을 의미합니다. 매주 또는 2주 부정기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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