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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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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러시아 편? 미국 무기 지원 빨라지나

②우크라이나 전쟁 전망 - 누가 오래 버티느냐 싸움
러시아 경제의 자생력에 서방 제재 효과 못 봐… 전차 등 추가 무기 패키지 지원 여부가 분수령
등록 2023-02-03 16:10 수정 2023-04-20 11:51
2023년 1월31일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지역에서 러시아 군인들이 훈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023년 1월31일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지역에서 러시아 군인들이 훈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독일과 미국 등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전차 지원을 결정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서방 대 러시아의 대결은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사실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지원과 러시아의 자생적인 산업·전쟁 능력 중 어느 쪽이 오래 버티느냐에 따라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지원은 크게 두 가지다. 러시아의 전쟁 능력을 옥죄는 대러시아 제재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직접적인 경제·군사 지원이다.

서방은 2022년 2월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마자 제재를 발동해 지금까지 계속 수위를 높여왔다. 국외에 있는 러시아 자금 동결, 러시아에 대한 각종 품목의 수출입 금지, 특히 러시아의 석유와 가스 등 에너지 금수, 국제금융결제망에서 배제, 러시아에서 기업 철수 등 전례 없는 전면적 제재를 가했다. 하지만 제재는 아직 러시아의 산업·전쟁 능력을 제한하는 데 별다른 효과를 못 보고 있다.

전쟁에도 2023년 러시아 경제는 성장 전망

국제통화기금(IMF)은 2023년 1월30일 발표한 ‘세계경제 전망 업데이트’ 보고서에서 올해 러시아 경제 회복이 세계경제 성장을 추동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평가했다. 2022년 -2.2% 성장한 것으로 추정되는 러시아 경제가 2023년 들어 플러스 성장으로 반전해 2023년 0.3%, 2024년 2.1% 성장하리라고 전망했다. 이는 2023년과 2024년 세계 평균 성장률 2.9%와 3.1%보다 낮지만, 미국·유럽 등 선진경제권의 평균 성장률 1.2%, 1.4%와 견주면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 수준이다. 국제통화기금의 이런 전망은 대러시아 제재가 시간이 갈수록 효과가 커지리라는 전망을 무색하게 한다.

특히 러시아의 전쟁 자금원인 에너지 수출을 옥죄려고 서방이 2022년 말 야심적으로 내놓은 러시아 에너지 ‘가격상한제’ 역시 효과가 없을 거라고 국제통화기금은 평가했다. 서방은 러시아 석유가를 배럴당 60달러를 넘지 못하게 하는 등 가격상한제를 도입했다. 국제통화기금은 “주요 7개국(G7)의 러시아산 원유값 상한제에도 러시아가 원유 수입을 제재하지 않는 나라로 수출을 계속함에 따라 러시아의 원유 수출 물량은 크게 영향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라며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을 실질적으로 감축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서방은 상한가 이상으로 팔리는 에너지를 수송하는 해운회사에는 보험 적용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상한가 정책을 강제했다. 하지만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러시아 에너지를 수입하는 인도의 해운회사가 러시아 석유를 시장으로 실어나르는 등 상한가 정책을 무력화한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1월29일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인도의 ‘가틱해운’이 유조선 25대를 동원해 러시아 석유를 아시아 수입국으로 수송해, 상한가에도 러시아 석유가 유통된다고 전했다.

하지만 대러시아 제재의 핵심인 에너지 분야에서 서방과 러시아의 대결은 장기적으로 보면 승부를 판가름하기 힘들다. 러시아 가스의 최대 수입처인 유럽은 차제에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려 하고, 비화석연료 개발 추세는 러시아의 에너지 경쟁력을 장기적으로 삭감시킬 수 있다. 유럽의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 축소에 더해 2023년 들어 내림세를 보이는 에너지 가격은 러시아의 에너지 판매 수입을 위축시킬 것이 분명하다.

크름반도 합병 뒤 서방 제재에 면역 생겨

어쨌든 대러시아 제재가 지금까지 별다른 효과를 못 보는 것은 러시아 경제의 완결성 때문이다. 러시아는 넓은 영토에 풍부한 자원, 전통적인 중공업을 바탕으로 자기완결적인 산업구조를 가졌다. 이는 러시아혁명 이후 서방의 대러시아 고립 정책이라는 환경에서 만들어졌다. 특히 러시아는 2014년 크름반도 합병 이후 시작된 서방의 제재에 면역력이 생기고 자생력이 강해진 상태이다.

미국의 시카고국제문제위원회(CCGA)가 2023년 1월 발표한 러시아 국민 상대 여론조사(2022년 11월24~30일에 실시)를 보면, 조사 대상 러시아 주민의 18%만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서방의 경제제재가 자신들의 가계에 심각한 문제를, 27%는 일부 문제를 야기했다고 응답했다. 53%는 문제를 야기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현재로서는 제재보다는 우크라이나 지원, 특히 무기 지원이 전쟁에 직접적 영향을 줬다. 서방은 전쟁이 발발하자 ‘탄약→ 중화기→ 곡사포→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하이마스)→ 장갑차→ 중전차’로 이어지며 지원을 격상해왔다. 특히 하이마스 등 중거리 정밀무기 지원은 2022년 하반기 이후 우크라이나가 하르키우와 헤르손에서 러시아를 퇴각시키는 데 역할을 했다. 문제는 우크라이나가 반격 과정에서 상당한 병력을 소모하고 재래식 무기 역시 재고에서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에 지원될 예정인 독일 레오파르트2 전차가 2023년 2월1일 아우구스트도르프에서 성능 시범을 보이고 있다. 로이터

우크라이나에 지원될 예정인 독일 레오파르트2 전차가 2023년 2월1일 아우구스트도르프에서 성능 시범을 보이고 있다. 로이터

2023년 들어 시작된 동부전선 등의 러시아 공세 재개는 이를 반영한다. 서방이 그동안 꺼리던 독일의 레오파르트2와 미국의 에이브럼스 등 공격형 중전차를 제공하기로 결정한 것도 이를 배경으로 한다. 전차 지원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게임체인저’라고 평가되기도 하나, 설사 게임체인저라 해도 이 전쟁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데는 일러도 2023년 하반기, 본격적으로 2024년 초나 돼야 한다. 전차의 위력은 전선 돌파나 방어인데 이런 효과를 보려면 적어도 30대의 전차가 동시에 기동해야 한다. 약 1천㎞인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전차의 위력을 생색이라도 내려면 아무리 적어도 100대는 있어야 하고, 우크라이나가 요구하는 것처럼 300대가 있어야만 적에게 위협이 된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은 1월31일 독일과 미국 등 12개 국가로부터 1차 인도분 전차가 120~140대가 될 것이라면서도 그 시기는 특정하지 않았다. 독일은 14대의 레오파르트2 전차가 3월에는 인도돼 작전에 나설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으나, 미국이 지원하겠다는 31대의 에이브럼스 전차가 언제 인도될지는 알 수 없다.

소모전 되면서 우크라이나는 재래식 무기 부족

애초 미국은 에이브럼스 전차가 기술적 이유로 지원에 적합하지 않다고 끝까지 버텼다. 이 주요한 이유는 이 전차가 열화우라늄탄을 사용하고 열화우라늄을 장갑용으로 쓰기 때문이다. 열화우라늄 기술이 극비인데다 열화우라늄탄도 일종의 핵무기이기 때문에 전술핵무기 사용 논란을 부를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은 열화우라늄 장비를 제거한 M1A2 변종을 지원할 방침이다. M1A2 생산에는 시간이 걸린다. 우크라이나에 지원될 전차의 주력은 결국 독일의 레오파르트2 전차인데, 생산 회사인 라인메탈 쪽은 일찌감치 이 전차의 재고가 없어 보수하고 생산해서 우크라이나에서 제대로 기동하려면 1년이 걸릴 거라고 밝혔다.

게임체인저라는 전차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당분간 상징적 효과에 그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가 요구한 F-16 등 전투기 지원을 한마디로 ‘노’(No)라고 거절한 것도 인도와 훈련에 시간이 걸려 당장 실효가 없는데다 러시아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모전으로 들어가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가 더 필요로 하는 것은 대포 등 전통적인 재래식 무기이다. 하지만 곡사포 등 대포와 그 포탄은 서방에서 재고가 바닥난데다 그 생산량이 미미해 서방은 우크라이나가 사용하는 소련식 무기를 포함해 155㎜ 포탄 등 재래식 무기를 구하기 위해 전세계를 뒤지고 있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 등은 전했다.

서방 언론은 2022년 개전 한 달 이후부터 지금까지 러시아가 포탄과 미사일이 바닥났다고 보도했으나, 러시아에 전쟁 자원 부족을 겪는 징후는 뚜렷하지 않다. 개전 한 달 만인 2022년 3월24일 콜린 칼 미국 국방차관은 러시아가 정밀 유도 병기가 바닥나서 재래식 포탄과 대포에 의존한다고 말했으나, 러시아는 오히려 연말 이후 우크라이나 전역에 미사일 공격과 공습을 강화해오고 있다. 2022년 10월11일치 <뉴욕타임스>는 2022년 여름 돈바스 지역에서 러시아가 하루 4만~5만 발의 대포를 쐈는데, 우크라이나는 6천~7천 발의 대포에 불과했고, 미국이 생산할 수 있는 포탄은 한 달에 1만5천 발에 그친다고 전했다.

소련식 무기와 최근 지원받은 서방 무기가 뒤섞여 있는 우크라이나가 무기 유지와 보수에 어려움을 겪는 것에 견줘,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방대한 군수산업이 있는데다 무기 체계가 단일화, 일체화돼 있다. 러시아는 미국에 이은 무기 수출 2위국으로 세계 무기 판매의 20%를 차지한다. <인사이더>에 따르면, 러시아는 T-72s 탱크가 현재 1900대 가동 중이고 7천 대 재고가 있다. 러시아가 기존 무기 생산력을 이번 전쟁에 집중할 것은 분명하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 공군 중령 출신으로 라줌코우센터 소장인 올렉시 멜닉은 <파이낸셜타임스>에 “러시아가 언제 미사일이 바닥날지 예측하는 것은 아마 좋은 전략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은 소모전으로 들어갔다. 러시아는 2022년 말 이후 바흐무트 등 동부전선에서 우크라이나군을 묶어두고 병력과 자원을 ‘갈아버리는’ 화력 중심의 소모전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 때문에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1월31일 내각 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장기적인 교착상태는 러시아만을 이롭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 교착상태는 러시아만 이롭게 할 것”

<월스트리트저널>은 1월30일 “우크라이나에 서방의 군사지원을 급격히 강화하는 결정 뒤에는 시간이 러시아 편이라는 일부 서방 국가의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일부 서방국의 관리들은 전쟁에 인력과 자원을 계속 적극적으로 쏟아붓는 크렘린(러시아 대통령궁)이 장기 소모전에서 우위를 획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고 보도했다. 서방 언론들이 우크라이나 전황 평가를 인용하는 미국 워싱턴의 전쟁연구소(ISW)는 “2022년 필요한 무기를 전달하지 못한 서방의 실패가 11월 이후 우크라이나의 진공을 막은 주된 이유”라고 평가했다.

미국은 에이브럼스 전차 지원 결정에 이어 22억달러 규모의 추가 무기 지원 패키지를 준비하고 있다. 이 중에는 사거리가 150㎞인 지상발사소직경폭탄(GLSDB) 시스템도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로이터>는 보도했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가장 요구하고 실효성 있는 장거리 정밀무기인 사거리 300㎞의 에이태큼스(ATACMS·전술지대지탄도미사일)에는 못 미치나 피점령지 탈환에 위력을 보였던 하이마스 이상의 위력을 보일 것이다. 러시아의 공세가 가열되면 미국의 에이태큼스 등 장거리 정밀무기 지원도 시간문제가 될 것이다.

러시아의 소모전에 맞설 서방의 정밀무기가 언제, 얼마큼 지원돼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냐가 향후 전쟁의 양상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

정의길 <한겨레>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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