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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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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전쟁, 평화협상은 애초 왜 결렬됐을까

⑤ ‘러시아 때려 우크라이나 구하자’던 나토 전략에 불거지는 회의론
서방, ‘우크라이나 구해 결국 러시아 벌주는’ 전략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등록 2023-03-03 09:55 수정 2023-04-20 11:50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년을 이틀 앞둔 2023년 2월22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북동부 하르키우의 한 군사 묘지 내 전사자들 무덤 위로 우크라이나 국기가 천천히 흔들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년을 이틀 앞둔 2023년 2월22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북동부 하르키우의 한 군사 묘지 내 전사자들 무덤 위로 우크라이나 국기가 천천히 흔들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나흘 만인 2022년 2월28일부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벨라루스 국경지대에서 휴전협상을 했다. 양쪽은 튀르키예 이스탄불로 장소를 옮기며 그해 4월22일까지 대면협상을 했으나, 결국 결렬됐다.

당시 양쪽은 즉각 정전과 함께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침공의 주된 이유로 주장하는 나토 가입을 추구하지 않고, 러시아는 침공 이전 수준으로 철수한다는 합의 초안까지 작성하는 진전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평화협상이 왜 결렬됐는지 살피는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해법을 찾는 열쇠가 될 수 있다.

회담 분위기는 4월 초 키이우 교외 부차에서 러시아군의 학살 정황이 제기되면서 경색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4월4일 부차를 방문해 러시아를 비난하면서도 평화협상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부 장관은 4월7일 우크라이나가 애초 합의한 초안을 변경해 러시아가 수용할 수 없는 안을 제시했다고 주장해, 협상에 제동이 걸렸다. 우크라이나가 분리독립을 추구하는 크름(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에 대한 주권 포기를 약속하고는 어겼다는 것이다. 라브로프도 협상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요동친 전쟁의 판세, 달라진 셈법

이틀 뒤인 4월9일 보리스 존슨 당시 영국 총리가 서방 지도자로서는 전쟁 이후 처음 키이우를 전격 방문해 강경 발언을 쏟아내면서 분위기는 완연히 경색됐다. 그는 “푸틴은 전범이고, 압박받아야 하며, 협상해서는 안 된다”며 “우크라이나가 푸틴과의 합의에 서명할 준비가 됐다 해도, 그래서는 안 된다”고 못박았다. 사흘 뒤 푸틴은 “우크라이나와의 협상이 막다른 길에 처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양쪽의 대면협상은 4월22일 이후 중단됐다.

한 달 뒤인 5월21일 젤렌스키는 텔레비전 연설에서 협상의 허들을 높였다. 그는 러시아 침공 이전 수준의 영토 회복이 우크라이나의 승리라며 “이는 우리의 모든 영토 반환을 의미하진 않지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나흘 뒤인 5월25일 젤렌스키가 크름반도와 돈바스 지역에 대한 러시아 영유권을 인정하고 평화를 이뤄야 한다는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의 주장을 정면 반박하며, 변경된 입장이 확실해졌다. 키신저는 “우크라이나는 영토를 포기하고, 그 영토를 러시아가 영유하는 것을 수용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강조하고 러시아가 크름반도와 돈바스를 돌려줄 때까지 평화를 합의하지 않을 것이라 밝혔다.

협상이 결렬된 이유는 여러 가지다. 첫째, 전쟁 판세가 요동치면서 각자 셈법이 달라졌다. 러시아는 침공 초기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까지 진공하면서 친러 정부 수립을 노렸다. 위기에 처한 우크라이나는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했다. 젤렌스키가 이스탄불 협상 전까지 “주민의 목숨과 영토 모두를 확보할 수는 없다”며 영토 문제에서 유연한 입장을 보인 데서 드러난다. 러시아도 친러 정부 수립이 어른거리는 국면에서 평화협상에 임해 침공 이전 수준으로 철군이라는 점령지 문제에서 유연한 입장을 내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키이우 전역에서 3월 말 러시아가 보급·작전 실패로 퇴각하자 국면이 바뀌었다. 러시아는 동·남부 지역에서 점령지 확대로 목표를 바꿨다. 우크라이나도 전황에 자신을 갖자 점령지 문제에서 양보를 거뒀다. 러시아는 동·남부 점령지를 인정받아야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고, 우크라이나는 크름반도와 돈바스 회복까지 내걸었다.

‘푸틴 계속 때리라’던 미국과 동맹국

둘째, 전황이 바뀌자 서방도 차제에 ‘러시아 손보기’에 비중을 뒀다. 개전 때 평화협상을 중재한 나프탈리 베네트 당시 이스라엘 총리의 말을 들어보자.

“만약 그들이 막지 않았다면, 휴전할 좋은 기회가 있었다. …양쪽은 휴전을 아주 원했고, (양쪽의) 양보는 서로에게 큰 조처였다. …(협상에 대한 푸틴과 젤렌스키의 접근은) 매우 실용적이었다.”

베네트는 2023년 2월4일이 중재 역할과 관련해 이스라엘 언론인 하노크 다움과 5시간에 걸쳐 인터뷰하며 미국과 서방 동맹국들이 자신의 평화협정 중재를 막았다고 주장했다. 베네트는 2022년 3월7일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나 평화협정 중재자로 역할을 했다. 그는 이 중재가 미국·프랑스·독일·영국과의 공조로 시작됐다고 밝혔다. 푸틴은 젤렌스키를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우크라이나 비무장에 관한 기존 입장도 철회하는 양보를 했고, 젤렌스키도 러시아가 주장하는 침공의 주된 이유인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양보를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베네트는 “푸틴을 계속 때리라는 서방의 결정이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더 적극적으로 접근하려 미국에 물었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없어 내가 한 모든 것을 마지막 세부사항까지 미국·독일·프랑스와 협조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들이 막았다는 것이냐”라는 질문에 “기본적으로 그렇다. 그들이 막았고, 그들이 틀렸다”며 그들에겐 푸틴을 때리는 것이 더 중요했다고 주장했다.

미국 관리들은 이 주장을 즉각 부인하며 평화협상은 우크라이나가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이틀 뒤 베네트는 트위터에서 “합의가 있었는지 불확실하다. 그때 나는 약 50%의 기회가 있다고 봤다. 미국은 그 기회가 더 낮다고 봤다. 누가 옳은지 말하기 힘들다”며 “그런 합의가 바람직했는지 확실하지 않다. 당시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시간만이 말해줄 것이다”라고 한 발을 뺐다.

전황은 그 뒤에도 몇 차례 바뀌었다. 러시아는 5월 이후 동남부 공세에서 점령지를 확대했으나, 9월 이후는 우크라이나가 반격으로 동부 하르키우와 남부 헤르손을 탈환하며 기세를 올렸다. 러시아는 11월 헤르손에서 철수하며 전열을 정비한 뒤 12월부터는 바흐무트를 중심으로 한 동부전선에서 공세를 펼쳤다. 러시아는 소모전으로 우크라이나의 병력과 자원을 고갈시키는 전략을 이어갔다. 러시아는 점령지 굳히기에 들어갔다. 협상이 재개되지 않는다면 시간이 갈수록 러시아의 굳히기가 공고화할 공산이 크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진행 중인 2023년 2월28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카림 칸 국제형사재판소 검사(오른쪽)를 만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가운데). EPA/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진행 중인 2023년 2월28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카림 칸 국제형사재판소 검사(오른쪽)를 만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가운데). EPA/연합뉴스

길어지면, 견딜 수 없게 된다

독일·프랑스·영국은 전쟁 1주년을 맞아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과 나토와의 안보조약 체결 등을 약속하면서 평화협상도 촉구한다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이 2023년 2월24일 보도했다. 이들 국가는 나토가 우크라이나와 안보협정을 체결해, 나토의 표준적 무기체계에 대한 접근, 우크라이나군의 서방 군수산업 공급망으로의 통합 등 안보 보장을 부여하겠다는 의도이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원하는 나토 가입은 아니나,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보 보장으로서는 가장 구체적이고 진전된 것이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뮌헨안보회의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이런 청사진이 2023년 7월 나토 연례회의에서 의제가 돼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월 초 파리에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배석한 젤렌스키와의 회담에서 프랑스와 독일 같은 불구대천의 원수도 제2차 세계대전 뒤 평화를 이뤘다며 러시아와의 평화회담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권했다고 측근들은 전했다. 프랑스의 한 고위 관리는 뮌헨회의에서 “우리는 러시아가 이겨서는 안 된다고 반복해서 말하나,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라고 물으며 “만약 전쟁이 이런 강도로 장기화하면, 우크라이나의 손실은 견딜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크림반도를 회복할 수 있다고 아무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토 사령관을 지낸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 당선자는 “우크라이나 영토 일부 해방이 그 사회가 감당하는 것 이상의 인명 손실을 초래하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며 “우크라이나가 다른 결과를 생각할 지점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은 중국을 적극적으로 제압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유명한 대중 강경론자인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학 교수는 이 대학의 러시아 전문 누리집인 ‘러시아 매터스’의 전쟁 1주년 전황을 평가하는 ‘우크라이나 전쟁 보고 카드’에서 “서방 언론들은 우크라이나의 성공을 부각하나, 우리는 이 전쟁의 2년째가 지난해의 복사판이 된다면, 2024년 2월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거의 3분의 1을 통제할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 전쟁을 세 개의 숫자로 요약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 ‘5분의 1’을 점령했고, 우크라이나 국내총생산(GDP)은 ‘3분의 1’이나 추락했고, 우크라이나 에너지 기반시설의 ‘40%’가 파괴됐다고 지적했다.

앨리슨 교수는 2월22일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 기고에서 미국은 이 전쟁을 통해 강화된 나토를 이룬 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완전히 상실하고 강화된 서방에 직면했다며 이렇게 권고했다. “2030년 유럽의 지도를 상상하고, 그 안에서 우크라이나의 위치를 결정할 요인을 고려하면, 학살을 통해 현재의 분쟁선을 동서로 100마일 정도 더 옮겨놓는 게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미국 주도의 나토에 보장된 확장된 유럽의 제도 안에서 역동적인 자유시장 민주주의를 구축함으로써, 서독은 소련이 점령한 동쪽 지역 회복을 시간문제로 만든 상황을 연출했다. 우크라이나도 21세기의 서독이 될 수 없는가? 우리는 나토가 받쳐주고 전선에 선 우크라이나와 함께하는, 신냉전이 규정한 유럽의 미래를 기대해야만 한다.”

영토 포기해도 서방 진영 편입이 승리

미국 최고의 러시아 전문가인 스티븐 코트킨 스탠퍼드대학 교수는 2월17일 미국 잡지 <뉴요커>와의 회견에서 “우크라이나는 트위터에서는 이기나, 러시아는 전장에서 이기고 있다”는 2022년 자신의 발언을 재확인했다. 그는 영토 문제보다는 우크라이나를 전쟁 이후 서방 진영에 확고히 편입시키는 것이 전략적 승리라고 지적했다.

코트킨 교수는 이 전쟁을 방 100칸을 가진 러시아가 방 10칸을 가진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현재 2칸을 차지하고는 우크라이나에서만 치고 박는 상황으로 비유했다. 하지만 그는 이 전쟁이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에서 완전히 독립된 국가로 재탄생시켰다는 점에서 푸틴의 전략적 재앙이라며, 무엇이 승리인지 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즉 “우크라이나가 영토를 모두 회복하고 유럽연합에 들어갈 수 없다면, 그것은 승리인가? 반대로, 우크라이나가 영토를 모두 회복하지 못하더라도, 유럽연합에 들어갈 수 있으면 그것이 승리 아닌가?”라고 물었다.

서방은 지금까지 ‘러시아 벌주기’를 통한 ‘우크라이나 구하기’ 전략을 추구했으나, 이제 그 전략을 수정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즉 ‘우크라이나 구하기’를 앞세워, 장기적으로 ‘러시아 벌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길 <한겨레>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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