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의 직업교육 역시 남달랐다. 이 나라 최대 기업 노키아가 위치한 산업지역 에스포에는 옴니아란 거대한 직업교육 기관이 있다. 쏟아지는 눈이 북구의 겨울을 실감케 하는 1월 하순, ‘옴니아’라는 명패가 걸린 건물 앞에 도착했다. 대로 건너편에도 옴니아란 이름이 붙은 건물이 여러 채 있는 등 규모가 엄청났다. 육중한 문을 밀고 들어서자, 상점이 먼저 눈에 띈다. 모자나 티셔츠, 문방구 등 소품에서 드레스까지 다양하게 전시된 상품은 이 학교 학생들이 만든 것이란다.
이 학교 국제홍보 담당자인 마리트 자렌킬라는 우선 옴니아를 소개하는 영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학교 소개를 시작했다. 영상의 첫머리에는 “모든 길은 옴니아로 통한다”고 씌어 있었는데, 이 말은 전혀 빈말이 아니었다. 우리 식의 실업고등학교에서부터 성인을 위한 직업교육까지 통합돼 실시되는 곳으로, 누구라도 일자리를 찾기 위해 숙련된 기술을 익히려면 옴니아를 통하면 되는 것이다.
옴니아는 크게 4개의 기관으로 구성돼 있다. 직업학교와 성인교육센터, 도제훈련센터, 청소년워크숍이 그것이다. 현재 이 학교에는 직업학교에 4500명, 도제훈련센터에 1500명, 성인교육센터에 1500명 등 모두 7천 명 이상이 재학하고 있다. 성인교육은 자신의 직업능력을 높이기 위해 스스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회사가 위탁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옴니아 직업학교의 유하페카 사리넨 교장은 “졸업생이 여기서 교육을 받고 나가 노동현장에 투입됐을 때 가장 우수한 실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게 하는 게 우리 목표”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학교는 학생들의 희망과 노동현장의 요구에 맞춰 각 학생에게 필요한 맞춤교육을 실시한다.
리나 토이바넨 교사에 따르면, 핀란드에선 직업학교가 인기 있는 편이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중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의 40%가량이 직업학교를 선택하고 심지어 인문계 고등학교를 마친 뒤 다시 직업학교에 오는 경우도 있단다. 1990년대 들어 직업학교를 졸업해도 기술대학뿐 아니라 일반 대학에도 갈 수 있게 된 것이 이런 현상에 영향을 끼친 듯하다고 토이바넨 교사는 분석한다.
보건이나 미용 분야처럼 특히 인기 있는 분야에는 인문계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몰려 그 수를 50% 이하로 제한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는 20% 정도가 고등학교 졸업생들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이 학교의 건축과는 정원이 40명이지만 지난해는 160명이 지망했고, 목공과는 40명 정원에 180명이 지망해 평균 경쟁률이 4 대 1을 넘었다. 목공과의 경우, 정원의 50%는 고등학교를 졸업했거나 대학입학 자격시험에 합격한 학생들이라고 목공과 지도교사는 설명했다. 실제로 목공을 배우고 있는 니나는 일반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이 학교로 진학했다고 한다. “목공을 실제로 해본 뒤 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같은 목공과의 안나 역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왔는데, 장래 가구회사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했다. 교육을 국가의 책임으로 여기고 필요하다면 새로운 기회를 보장해주는 유연한 교육 시스템이 아이들을 이토록 자신감에 차게 만드는 것이다.
핀란드의 직업학교는 스웨덴과는 달리 일반 인문계 학교와 완전히 분리돼 있다. 학생 선발은 이론 테스트와 교사 평가, 상담 등을 거쳐 하는데 성적보다는 선택한 학과에 대한 학습동기를 높이 산다고 안 켐파이넨 교사는 설명한다. 학생들은 3년의 재학 기간에 120학점을 취득해야 하는데 그중 90학점은 직업에 관련된 것이고, 20학점은 공통의무 과목, 나머지 10학점은 자유선택 과목이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온 학생들은 공통과목 등을 듣지 않아도 돼 2년 만에 마칠 수 있다.
학생들의 실습실에는 모든 장비들이 잘 갖춰져 있었다. 건축과 1학년생들이 주로 학습하는 공작실에선 일부 학생들이 창고처럼 보이는 작은 집을 짓고 있었다. 1학년생은 두 그룹으로 나눠 이론과 실습을 번갈아 공부한다. 실습은 주로 학교 내 공작실에서 기본 교육 중심으로 이뤄지지만 건축을 기후조건에 맞추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야외수업을 하기도 한다. 2학년이 되면 학교가 확보한 부지에 직접 주택이나 건축물을 지어본다. 흥미로운 점은 이것이 학교의 사업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실습 과정에서 지은 건물은 일반에게 매각된다. 지난해 팔린 가격은 50만유로(7억~8억원)였단다. 물론 이 집에 대해서는 학교가 10년 동안 보증해준다. 3학년이 되면 실제 건축회사에 가서 수습 교육을 받는데, 월급을 받지는 못하지만 열심히 하면 그 회사에 취직하는 길이 열리기도 한다고 건축과 담당 교사는 설명했다.
현장실습 성적은 실습 회사에서 실제 업무를 가르친 담당자가 학생들의 작업 과정을 관찰해 평가한 것과, 학교 교사와 실습 회사 담당자가 공동으로 낸 시험문제로 평가한다. 단순히 수치로만 평가하는 게 아니라 관찰·협의한 내용도 함께 평가에 포함된다. 이렇게 졸업시험에 통과하게 되면 두 종류의 자격증을 얻는데 하나는 이론 강의, 또 하나는 기술에 관한 자격증이다.
수억원에 팔려나가는 건축과 실습물그러나 핀란드 직업학교 역시 문제는 있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성취동기가 낮은 게 문제예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학습동기를 높일 것인지가 우리에게도 큰 과제”라고 사렌킬라 선생은 솔직하게 인정한다. 학교가 헬싱키 같은 대도시 주변에 있다 보니 알코올이나 마약에 손대는 학생도 있고 직장을 얻으면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사렌킬라 교사는 그러나 가장 중요한 탈락 이유는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것이라며 학교에 들어온 지 두 달 만에 그만두는 일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렇게 중도 탈락하는 비율이 20% 정도나 돼 교육청이 대책을 요구한다면서 괜찮은 방법이 있으면 가르쳐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여기나 저기나 교육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에스포(핀란드)=글·사진 권태선 한겨레 논설위원 kwonts@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속보] 김용현 쪽 “포고령에 ‘통행금지’ 포함…윤석열이 검토·수정”
[단독] 권성동 “지역구서 고개 숙이지 마…얼굴 두껍게 다니자”
육사 등 없애고 국방부 산하 사관학교로 단일화해야 [왜냐면]
버티는 한덕수, 대행 탄핵에 ‘200석 필요’ 해석 믿나
“백령도 통째 날아갈 뻔…권력 지키려 목숨을 수단처럼 쓰다니”
민주, 한덕수에 최후통첩…“1초도 지체 말고 재판관 임명하라” [영상]
여고생 성탄절 밤 흉기에 찔려 사망…10대 ‘무차별 범행’
대법원, 윤석열 주장과 달리 “비상계엄은 사법심사 대상”
우리가 모르는 한덕수 [12월26일 뉴스뷰리핑]
오세훈 “한덕수, 헌법재판관 임명해야”…조기 대선 출마 “고민 깊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