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국제학생평가프로그램(PISA·피사)을 실시한 이래 핀란드 교육이 전세계의 관심의 초점이 됐다. 2006년까지 세 차례 실시된 평가에서 모두 수위권에 속했기 때문이다. 과학이 주요 평가항목이던 2006년 핀란드는 과학과 수학에서 1위를 했고, 읽기는 2위였다.
물론 한국의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에선 누구도 피사 성적이 한국 교육체제의 승리라고 말하지 않는 반면 핀란드에선 어디 가나 자신들의 우수한 교육시스템의 결과라고 자신 있게 자랑한다. 그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부분은 아이들의 성적이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고르게 높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학생들의 성적은 사회경제적 배경과 상관관계가 높다. 피사 성적의 다양한 측면을 분석·평가한 헬싱키대학 교육평가센터의 토미 카라야라이넨 교수는 학교와 학생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피사 결과에 그대로 반영돼 있는 나라의 예로 독일을 들었다. 2006년 성적 분석 결과 독일은 학교간·학생간 편차가 가장 심한 나라에 속했다고 한다. 학교간 편차가 50%나 된 것으로 나타난 우리나라 일제고사 성적 결과를 보면 우리도 독일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반면, 핀란드는 거의 모든 학교가 평균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그렇다고 아주 높은 성적을 거둔 우수학교도 없었다. 이런 결과는 OECD국가들의 평균 학교간 격차가 34%인 데 비해 핀란드는 5%에 불과하다는 기존의 조사결과와 부합한다. 카라야라이넨 교수는 이를 교육에서 평등과 형평성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해온 결과라고 단언했다.
라토카르타노종합학교에서 보았듯이 개별 학교는 뒤처지는 아이를 없애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개별학교 단위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모든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평등한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서 학교와 지자체에 대한 예산 투자에서 적극적인 차별정책을 편다. 외따로 떨어진 작은 학교에 도시 학교들보다 더 많은 지원을 제공하는 게 그 예”라고 요우니 발리예르비 이베스퀼라 대학 교수는 설명한다.
형평성이 교육의 가장 큰 가치로 정착한 이유는 520만 밖에 안되는 적은 인구 탓이 크다. “작은 나라가 성공하려면 교육이 유일한 수단이고, 우리는 잠재적인 재능을 잃어버릴 만큼 여유가 없다는 데 대한 폭넓은 이해가 존재해 왔다”고 발리예르비 교수는 말한다.
국가 통제 없이 교사 전문성 신뢰이런 생각에 따라 국가가 학생들에게 기울이는 정성은 지극하다. 1860년대 “모든 이를 위한 교육”이라는 목표를 내건 공교육이 시작된 이래 아동·청소년교육은 국가의 의무사항이 됐다. 의무교육은 물론 고등학교도 무상이어서 학생들에게는 급식과 교재비까지 제공된다. 법에 따르면 학교와 집의 거리가 5㎞ 이상인 경우에는 교통비도 지급한다. 북쪽의 라플란드처럼 인구가 희박한 지역에서는 지자체가 택시로 학생들을 통학시킨다. 이런 무상 통학지원 서비스를 받는 학생들의 비율이 22%에 이른다고 헤이키 텔라키비 핀란드 지방자치단체연합회 국제국장은 밝혔다.
그렇다고 형평성만으로 핀란드 교육의 우수성을 설명할 수는 없다. 교육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교사들의 전문성이다. 핀란드에서 교사는 희망자의 10%만 될 수 있을 정도로 인기직업이다. 초·중등학교 교사도 최소한 석사학위 이상이 필요하다. 교사의 인기는 교육에 대한 교사의 자율성이 인정되고 사회적으로 존경받기 때문이라고 토이니 라우타마키 포요이스 타비올라고등학교 교장은 설명한다. 카라야라이넨 교수도 그의 말에 동의한다. “전문 직종으로 교사들을 믿고 신뢰하는 분위기가 교사들의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스스로 창의적인 교수법을 연구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이것은 1992년 검인정교과서 제도가 없어지고 학교가 교육과정을 선택할 자유를 누리게 된 것과 관련된다고 발리예르비 교수는 지적한다. 그 후 학교는 교사·학생·학부모가 힘을 합쳐 스스로 교수요강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교사들은 그 어느 때보다 책임성을 갖고 교육에 임하기 시작했단다. “국가가 통제하지 않으니 교사들 스스로 좋은 학습방법을 더 열심히 연구하고 서로 나누게 됐다”고 사투 혼칼라 라토카르타노종합학교 교장도 이를 확인했다.
덧붙여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분명한 교육철학을 갖고 일관되게 교육정책을 추진한 지도부의 존재다. 스웨덴 웁살라대학에서 북유럽 교육을 연구해온 안승문씨는 핀란드 교육개혁은 20년간 국가교육청장으로 재임하며 종합학교 제도 도입, 교육과정 개혁, 고등학교 개혁, 교사교육의 혁신 등을 이끈 에르키 아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그는 정권이 바뀌어도 정치인과 교육자들을 설득하여 교육개혁의 원칙을 지켜냈다. 그 결과 90년대 학교 선택권을 확대하는 등 부분적인 개혁은 있었지만 평등을 기본으로 하는 교육이념이 흔들린 적이 없었다.
학교 단위에서도 지속 가능한 교육이 가능한 구조다. 야르벤파고등학교 앗소 타이팔레 교장은 그 학교에서만 29년을 근무했다고 한다. 유카 오텔린 교감은 20년째 근무하고 있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학교를 옮기는 게 드물어 교사와 학교, 공동체 사이의 일체감이 높다”고 오텔린 교감은 말한다. 교육환경의 안정성이 사회 구성원 사이의 신뢰를 낳고 이것이 다시 지속가능한 교육정책의 바탕이 되고 있는 것이다.
자율 평가제도 역시 핀란드 교육의 버팀목이다. 핀란드의 교사평가나 학교평가는 결코 타율적이지 않다. “학교에 대한 평가의 기본원리는 학생이나 교사에 대한 평가의 그것과 마찬가지다. 평가는 목표에 따라 이뤄지기 때문에 교사나 학교가 먼저 목표를 정한다”고 혼칼라 라토카르타노종합학교 교장은 설명한다.
그렇게 각 학교가 목표와 달성 기준을 정한 뒤 1년에 한번 결과 보고서를 지방자치단체에 내 승인을 받으면 된다. “보고서라고 해야 15쪽 정도다. 시 학교위원회는 이 보고서를 보고 필요하면 간단한 논평을 하고 학교는 그 논평을 반영해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학교에 문제점이 발견되면 학교위원회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 혼칼라 교장이 밝힌 학교평가 과정이다. 핀란드의 평가는 문제를 지적하고 벌주기 위한 게 아니라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는 텔라키비 국제국장의 발언과 같은 이야기였다.
타이팔레 야르벤파고등학교 교장은 평가가 지원으로 이어진 예를 하나 들었다. “지난해 조사 결과 우리 학교에는 좀 더 많은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사실 즉, 학교에 더 많은 간호사와 심리학자와 상담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학교는 간호사와 상담사의 증원을 지자체에 요구했고, 지자체에서는 증원을 허가했다.”
자율적 목표, 지원 위한 평가 제도이런 다양한 요소들이 긍정적으로 상호작용한 결과, 핀란드는 표준화를 지향하고 읽기·수리 등 문자해독 능력을 강조하며 교사에게 결과에 대한 책임성을 요구하는 세계의 일반적인 교육 사조와 달리, 유연성과 다양성을 지향하고 광범하고 폭넓은 지식을 강조하며 교사의 전문성을 신뢰하고 그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는 교육을 추구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게 됐다고 카라야라이넨 교수는 분석했다.
헬싱키(핀란드)=글·사진 권태선 한겨레 논설위원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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